발란데르는 형사 본분에 충실하다. 매우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걱정 많은 아버지이고, 새로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지만 연인한테 자신있게 나서지 못하여 망설이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 변명해야 하고, 선의의 거짓말도 불가피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인간적이다. 왠지 우리 이웃 중에 있는 사람인 같다.
이 대목에서, 며칠 전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에서 순직한 경관이 오버랩 된다. 죽음을 맞기 전까지 그 역시 직분에 충실한 경관이고, 가족을 사랑하고,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냈을 것이다. 나 원 참, 이제야 기억이 나다니. 내 친구 아버지 중에도 경찰관이 있었다. 친구는 집에 총이 있음을 자랑했고, 그 때문에 친구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괜스레 그랬다…
여하튼 책을 읽은 동안 이래저래 형사와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선의의 거짓말과 회피, 그리고 자기 기만으로 시작하는 날이 그의 인생에서 처음도 아니었다. 샤워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린다에게 새로운 쪽지를 하나 써놓은 다음 6시 30분 직후에 집을 나섰다. 경찰서는 조용했다. 새벽 당직이 피곤한 얼굴로 퇴근하고, 아직 낮근무 직원들은 출근하지 않은 그 이른 아침의 외로운 시간이 발란데르는 좋았다. 그런 고독 속에선 삶도 특별한 의미를 띠는 것 같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느낌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마 20 년쯤 전부터 느껴온 것이었다. (450)
그의 옛 친구이자 멘토였던 뤼드베리도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아주 작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만의 순간들을 지니고 있는 법이야. 언젠가 본인의 사무실이었는지 발란데르의 사무실이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문을 잠그고 단둘이 위스키를 마실 때 뤼드베리가 말했다. 경찰서 안에서의 음주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가끔씩 축하할 일들이 있었다. 혹은 반대로, 슬퍼할 일들이. 발란데르는 그런 짧은, 하지만 왠지 철학적이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쓰렸다. 그건 우정, 혹은 대체할 수 없는 친밀함이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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