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에필로그에서, 발란데르가 사건 수사 중에 미뤄두었던 현실 문제를 하나씩 마무리 짓는다. 그 중에 여든 연세인 아버지와 이탈리아 여행 계획이 있었다. 그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임으로 로마 지도를 펼쳐 보고, 목적지 기상 상황을 확인하고, 짐을 싸놓고서 발란데르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베르디 음악을 들었다. 「라 트라비아타」를! 아마도 ˝축배의 노래˝일 것이다.

나의 예상대로다. 발란데르 형사가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썪이는 동안 음악이 언급되지 않고, 사건이 해결되고나면 음악이 나올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사건을 잘 해결하였다는 칭찬을 들었고, 망설였던 청혼을 결행했고, 아버지와 여행을 앞두고 있는 발란데르가 행복한 순간에 다시 음악을 들었다. 주인공의 휴식과 행복감이 연상되는 음악인 것이다. 작가가 음악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라 트라비아타」는 베르디 오페라 중에서도 유명하다. 특히 제 1 막의 파티 장면에서 불리는 ˝축배의 노래˝가 유명하다. 술잔을 들고 축배하고 노래를 부르는 내내 흥겨움이 넘친다. 주인공의 들뜬 마음을 표현하는 데 이만한 곡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에필로그에 제격인 노래다.

그는 위스키 잔을 들고 앉아 「라 트라비아타」 를 들었다.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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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10-24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 「춘희」를 재밌게 읽었어요. 그래서 라 트라비아타에 대한 환상성이 있죠. 오페라를 한번도 보지 못 했지만.

오거서 2016-10-24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입니다만, 중학교 때 춘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술가의 삶과 사회의 음지를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오페라는 베르디 작품 중에서도 유명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많아요. 유튜브에서 La Traviata 검색하여 쉽게 찾아서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네트렙코와 빌라존이 콤비를 이루는 공연이 가창력 좋고 화질이 뛰어나서 볼 만 하더군요.

samadhi(眞我) 2016-10-24 21:04   좋아요 0 | URL
어렴풋하지만 그때 춘희의 삶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 이후로 춘희와 비슷한 작품을 만나거나 비운의 예술가들 이야기를 들으면 늘 춘희를 떠올리곤 했죠.

마르케스 찾기 2016-10-25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페라 유명한 아리아들을 모아서 발매한 CD만 닳도록 들어요ㅋ 클레식은 대학생때 거의 속아서(?) 셋트로 몽땅 구매한 뒤 거의 손을 안 대고 있지만ㅋㅋ
오페라는,,, 기껏 돈죠바니와 피가로의 결혼만 관람해 놓고선 ˝반했다˝는 표현을 써도 될련지 모르지만ㅋ (귀여운 여인의 줄라아로버츠처럼ㅋ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의 향연이 펼쳐져도 어찌그리 아름다운지,,,)
전곡 다들어 있는 CD는 비싸고 방대해서ㅋㅋ 간간히 듣기엔 유명 아리아만 모아놓은 게,, 살짝 발만 담구는 제겐 맞더라구요ㅋㅋ
이것저것 모아놓인 것이라 들으면서, 이건 어느 오페라의 어느 부분이다라고 말하는 전문성은 없지만,,, 폰에도 다운받아 걸으며, 버스 맨 뒷자리에서 듣기엔 이보다 더 좋은 건 없구나,, 합니다ㅋㅋ

여행을 앞둔, 행복한 순간에,, 위스키 한 잔 마시며 듣는 라트라비아타라면,,, 저 역시 축배의 노래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편한 일인용 쇼파에 신발 벗어 발밑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술 잔든 손을 살짝씩 까딱대며, 흥얼거리기도 하면서ㅋㅋㅋ

페이지 사이사이에 음악을 넣은 소설이라,, 오거서님도 한 번 써 봄직해도 좋겠다는,, 건,,, 망구 제 느낌입니다 ^^
 

발란데르는 형사 본분에 충실하다. 매우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걱정 많은 아버지이고, 새로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지만 연인한테 자신있게 나서지 못하여 망설이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 변명해야 하고, 선의의 거짓말도 불가피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인간적이다. 왠지 우리 이웃 중에 있는 사람인 같다.

이 대목에서, 며칠 전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에서 순직한 경관이 오버랩 된다. 죽음을 맞기 전까지 그 역시 직분에 충실한 경관이고, 가족을 사랑하고,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냈을 것이다. 나 원 참, 이제야 기억이 나다니. 내 친구 아버지 중에도 경찰관이 있었다. 친구는 집에 총이 있음을 자랑했고, 그 때문에 친구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괜스레 그랬다…

여하튼 책을 읽은 동안 이래저래 형사와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선의의 거짓말과 회피, 그리고 자기 기만으로 시작하는 날이 그의 인생에서 처음도 아니었다. 샤워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린다에게 새로운 쪽지를 하나 써놓은 다음 6시 30분 직후에 집을 나섰다. 경찰서는 조용했다. 새벽 당직이 피곤한 얼굴로 퇴근하고, 아직 낮근무 직원들은 출근하지 않은 그 이른 아침의 외로운 시간이 발란데르는 좋았다. 그런 고독 속에선 삶도 특별한 의미를 띠는 것 같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느낌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마 20 년쯤 전부터 느껴온 것이었다. (450)

그의 옛 친구이자 멘토였던 뤼드베리도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아주 작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만의 순간들을 지니고 있는 법이야. 언젠가 본인의 사무실이었는지 발란데르의 사무실이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문을 잠그고 단둘이 위스키를 마실 때 뤼드베리가 말했다. 경찰서 안에서의 음주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가끔씩 축하할 일들이 있었다. 혹은 반대로, 슬퍼할 일들이. 발란데르는 그런 짧은, 하지만 왠지 철학적이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쓰렸다. 그건 우정, 혹은 대체할 수 없는 친밀함이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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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찾기 2016-10-24 0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틸틸과 미틸이 떨어뜨려놓은 빵조각을 쫓듯ㅋㅋ
하나 하나씩,, 한발짝 한발짝씩,,
괜찮은,, 데요?ㅋㅋㅋ

오거서 2016-10-24 07:16   좋아요 1 | URL
책을 읽으면서 클래식 음악에, 공감하는 내용에 밑줄긋기를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실은 리뷰를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공감하는 바를 메모해두자고 생각했습니다. 제 편의로요. 이번에는 발란데르의 매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인상 깊은 말을 기억하고자 메모하였습니다^^;
 

밑줄 긋고서 생각한다.
서양문화권의 아빠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특히, 엄마보다 훨씬 잘 들어준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니.

나도 그런 말을 듣는다면 솔직히 기분 좋겠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말고, 아빠가 엄마보다 자식의 마음에 들기가 어디 쉬운가. 물론 나도 그러하고,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이 거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자식한테 인정 받는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임은 세계 공통인가 보다. 더 공감이 큰 이유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아빠는 이야기를 잘 들어줘요. 엄마보다 훨씬 잘 들어주니까. 그래도 대답은 내가 직접 찾을래요."
둘은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밖에 날이 밝아올 때가 돼서야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린다의 말에 발란데르는 기분이 좋아졌다. 모나보다 자신이 이야기를 더 잘 들어준다는 말. 아마 언젠가 미래에는 모나보다 뭘 더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질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바이바가 있으니까. (406)

자식이란 인생에 의미를 주는 존재지. 세스텐이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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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 비욜링(Jussi Björling, 1911–1960)은 스웨덴 출신 테너 가수이다. 아버지와 형제도 가창력이 뛰어나서 비욜링 4중창단으로도 활동하였고, 고음역 노래를 특히 잘 불렀고, 푸치니 오페라로 유명세를 탔다.
그의 노래가 수록된 음반은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안다. 그조차도 오래되다보니, 현재 기준으로, 에디슨 축음기 수준보다 조금 나은 음질이었음을 기억한다. 에그, 그가 남긴 음반에서 스테레오 음향을 기대할 수 없음이 아쉽지만, 그의 노래는 모노 음향 상태에서도 귀가 시원할 지경이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거실에 자리 잡고 앉았다. 전축에서 유시 비욜링의 음반을 걸었다. 잠시 후 그는 맥주 캔을 바닥에 놓은 채 소파에 길게 늘어졌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그는 갑자기 잠에서 깼다. 소파에 누운 채 남은 맥주를 마저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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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패산터널 총격 사건으로 경관이 총에 맞아 숨졌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뉴스에서, 순직한 경찰관은 근무 시작 두 시간 전에 출근하였는데 신고가 들어와서 현장에 출동하였다고 한다. 나한테도 안타까움이 크다보니, 이제는 아무 소용 없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근무시간도 아닌데 왜 일찍 출근했을까. 정해진 시각을 지켜 출근했더라면… 차라리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운명이 바뀌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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