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가곡으로 독일어를 배울 수 있다는데…
(어제 독일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흐 칸타타를 감상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애초에 쓰려고 했던 페이퍼는 완성하지 못한 채로 밀쳐 두었었다. )
며칠 전에 <슈베르트 가곡으로 배우는 독일어>(이재인 지음, 부크크), 이런 책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독일어 때문에 생고생하는 까닭에 ‘배우는 독일어’에 꽂혔다. 그런 와중에 드는 생각이 …
나는 독알못, 독일어를 알지 못한다. 독일어를 공부해 본 적이 없다. 선후배들한테서 독일어를 배우는 것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선입견을 가진 탓도 있겠지만, 시도해봤자 시간 낭비가 될 것이 뻔한 일을 벌이지 않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을 고수한 탓으로 배움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다.
나는 이과 공부를 했다. 문과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싫어서 이과를 선택하였다. (왜 선택지가 둘 뿐인지. 현재까지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교육부를 성토하지 않을 수 없다. 옆길로 새지 않아야 하니까 참아야지.) 그 당시에 수학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히면 성취감이 상당하였지만 문과 과목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래서 문과보다 이과가 나의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문과적 소양이 부족한 것인데, 특히 언어적 소질이 많이 부족함을 안다. 영어를 비롯해서 외국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국어 공부는 딱 질색이다. 지금도 여전하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면서 독일어로 표기된 텍스트를 대할 때마다 얼마나 난감한지 모른다.
그런데, 독일어를 알지 못하지만, 요즘 바흐 칸타타를 연속 감상하면서 가사를 보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니까 어쩔 수 없이 구글 번역의 도움을 받고 있다. 번역된 결과를 보면서 의미를 알아채는 정도라고 해도 장님이 눈뜬 기분을 느낀다. 이마저도 없이 음악에만 전념하면 감상이 지겨운 일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구글 번역기가 없었다면, 머리에 끈을 질끈 동여 매고 독일어 단어를 사전에서 일일이 찾아보고 문법을 공부해가며 문장의 의미를 파악해야 했을 텐데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외국어를 공부하기 싫어한다.
슈베르트 가곡을 충실히 감상하는 데 필요한 텍스트와 미디어를 하나씩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독일어를 배우는 기회가 된다면,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러나 외국어 공부를 싫어하는 성향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데다 의심 없이 단번에 시도하는 경우에 실패한 경험(최근에 ‘바흐의 음악은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구입하였다가 크게 실망 등) 때문에 의구심이 채 가시지는 않는다. 독일어를 배우기가 그리 쉬웠다면 진작 배우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페이퍼를 마무리하지 못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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