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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막 ㅣ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2월
평점 :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소설을 처음 접했다. 글쎄,소감은 어릴적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나 앙드레 지드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랄까? 이 소설가는 책 안표지를 보니 메부리코에 날카롭고 섬세한 얼굴을 갖고 있는데 사실 이소설도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여주인공 마리아 크로스 간의 사랑의 감정을 매우 섬세한 심리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아마 엄격하고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한 작가의 사춘기당시의 체험과 고통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아들 레몽 쿠레주가 파리의 한 단골술집에서17년전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교류했던 여주인공 마리아 크로스를 만나는 장면('그녀는 마흔네 살이야. 그때 나는 열여덟, 그녀는 스물일곱이었으니까.' 14쪽)에서 시작해서 과거의 회상으로 이어지다 소설의 마지막에 그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아버지(그도 역시 마리아 크로스를 몹시 사랑한다)를 만나고 기차역에서 이별하는 것으로 끝난다.
처음 도입부분에서 사춘기 소년과 유부녀의 사랑.. 게다가 전차에서의 만남은 몇달 전에 읽었던 베른 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나중엔 완전 반전)를 연상하게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보르도라는 마을에 이사온 매력적이지만 소문이 좋지 않은 라루셀의 정부, 마리아에게 존경받는 의사(의학박사)인 아버지와 사춘기 아들이 사랑에 빠져드는 이야기이다.(도스또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그루센카를 사이에 둔 아버지 표도르와 아들 드미트리?) 이 난감한 상황...그렇다고 난잡하고, 에로틱한 장면이 연출되지는 않는다.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각 인물의 심리를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세심하게 묘사,설명하는데 가끔씩 작가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그의 긴코 밑에 콧수염을 더 진하게 붙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마치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의 '이수일과 심순애'(프랑스판) 변사흉내를 내는 듯하다.
"정욕을 지배하는 법칙은 예상외로 매우 단순함을, 레몽은 게임의 일장에서 이미 간파할 수 있었다. 누구의 충고없이도 타고난 본능의 가르침에 따라, 소년은 '여자 혼자 안달 복달하도록 놔두기'라는 사랑의 첫 번째 규칙을 충실히 실행해 갔다."(150쪽)
"난 닳고 닳은 타락한 여자이고,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야 우리 사이에는 하늘처럼 거대한 공간이 가로지르고 있어. 그 하늘이 얼마나 넓은지 내 욕망조차 그에게 이르는 길을 내기를 거부해"(154쪽)
"마리아는, 박사가 사춘기 이래로 사랑했던 모든 여인들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언제나 동일한 사랑의 방식. 이 추억의 표지판을 따라가면서 박사는,사랑에 빠질때마다 매번 비슷한 감정이 엄습했던 것을 깨달았다.~하나같이 허무하게 끝난 사랑, 그 열정의 주인공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175쪽)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존시킨다. 그들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그래서 죽음은 사랑을 썩지 않게 보존하는 소금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로 사랑을 분해시키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삶이다"(189쪽)
레몽은 17년전 사춘기시절 마리아의 집에서 육체적 접촉을 시도하지만 거절당하자 이에 대한 앙심을 품고,여자관계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며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시도 역시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녀에 대한 더욱 깊은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존경받고,책임감 있는 가장으로서 숨막히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통해 탈출구를 찾았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마리아에 대한 정염을 끄기 위해 놓았던 수많은 맞불들이, 사실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커지게만 했음을 그는 깨달았다.~ 아마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고통받겠지. 무슨 그런 인생이 다 있담. 난 아버지처럼 하지 않겠어.~ 다시 한 번 늙으신 아버지를 껴안아 드리고 싶다.아들로서의 평범한 애정때문이 아니라... 이제 자기와 아버지 사이에는 혈연이상의 끈끈한 관계가 있다. 둘은 마리아 크로스라는 매개체를 통한 일종의 근친인 것이다."(228,229쪽)
""널 봤으니 이제 됐다. 날 보려고 온 것만으로 충분해. 얘야, 이젠 내려라. 기차문이 닫힐 시간이야" ~ 늙은 박사는 아들이 안전하게 역의 플랫폼에 내려선 것을 보고서야 평온을 되찾았다."(231쪽)
사랑의 감정을 서로 알지만 현실적인 상황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적극적인 사랑을 할 수 없는 안타까움...그리고, 사람에 대한 평가나 판단는 쉽게 단정지을수 없다는 것, 그 누구도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수는 없다는 사실.. 모든 개별자들에게는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과 현실이 사막처럼 가로놓여져 있다. 다만,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이러한 사막을 건너는 방법은 서로 따뜻하게 소통하고, 진심어린 애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주인공 레몽은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그 사막을 완전히 건널 수는 없다는 '존재론적 비극!'을 이 소설은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