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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ㅣ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평점 :
일전에 재일교포 3세작가인 가네시로 카즈키의 자전적 소설 'GO'를 읽고 나서 최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일본작가들의 소설에 관심이 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임순례감독의 영화(아직 안봤다. 흥행엔 실패한 모양이다.)로 만들어져 익숙해서인지 가장 끌리는 작품인 '남쪽으로 튀어'를 집어 들게 되었다. 읽다보니 이 '오쿠다 히데오'작가라는 작자는 도대체 누구야? 정말 맛깔나게 글 잘 쓰고, 사고의 폭도 넓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미 '공중그네'라는 작품으로 나오키상까지 받은 작가란다. '공중그네' 이후 첫 작품이라는 이 책은 번역자 양윤옥의 후기에 의하면 그의 대표작으로 점찍어도 손색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왜? 자기가 번역했으니까!ㅎㅎ)
적시성있는 상황,심리묘사나 기발한 대화내용, 좌중우돌 사건의 전개때문에 유쾌,통쾌,상쾌한 코미디극같은 소설이지만 소설전편을 흐르는 주제는 묵직하다. '국가란 무엇인가?' '학교라는게 꼭 필요한 사회제도인가?' '나의 국민됨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나, 이제부터 이 나라 국민 안해"라고 하는 선언이 갖는 효과는? 등등
초딩6학년 우에하라 지로를 주인공인 화자로 삼아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옛 운동권 과격파('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행동대장 출신)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가 가족과 함께 도쿄에서 남쪽 오키나와의 작은섬에 이주하여 정착(사고치고 어버지본인과 어머니는 또 다른 섬으로 이주)하기까지 과정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진다.
"무슨 소릴. 나는 진심이야.당신과 결혼할 때도 말했었지? 내 이상향은 자급자족의 생활이야. 어느 누구에게도 착취당하지 않고 우리 가족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거야.~ 학교에서 너희 머릿속에 주입하는 건 체제에 적당히 써먹을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최면술 같은 것이야. 어떤 시대에나 학교는 일종의 교정 시설이었어.~ 국민의 3대 의무라는거, 새빨간 거짓말이야. 잘 들어둬. 교육,근로,납세의 의무. 그런 건 본래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게 옳아.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일하지 않는다, 세금은 내지 않는다.인류는 역사의 대부분을 그렇게 보내왔어. 전혀 불편할 것도 없었고 전혀 잘못될 것도 없었어."(1권 77쪽)
이런 시대착오적인 아버지때문에 우리의 주인공 지로는 주위사람들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곤란을 겪기도 한다. 사실, 아버지 이치로 같은 이런 인간은 어느나라에서든지 경찰,교육,과세,노동,사법당국의 골치덩어리일 것이다. 그런데 1권 후반부에 아버지의 옛동료로서 그의 집에서 숙식하던 아키라 아저씨가 지로의 도움으로 사람까지 죽였는데, 아버지 이치로와 주인공 지로가 너무 쉽게 풀려나오는 모습을 보니 일본 사법체계가 매우 느슨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아버지 이치로는 최소한 살인방조혐의로 상당기간 조사받은 후 구속되지 않았을까? 설사 본인은 전혀 아는바 없다고 잡아뗀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범죄행위에 대해 보호자로서의 책임도 있을테니 말이다.(일단 잡아가둔후 공모공동정범이니 교사범이니 하며 윽박지르고, 족쳤을 공산이 크다)
오키나와에서도 더 남쪽에 위치한 작은섬 이리오모테섬에서의 생활이 그려지는 2권은 '유이마~루'라는 품앗이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풍습이 소개되는 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의 집성촌의 풍경과도 닮아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제도권교육의 맹점과 시민사회운동의 허구성이나 시민운동가의 허위의식, 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개인의 자유의 한계문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과연 아버지 이치로는 아들 지로가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는가?
"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발 한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 낸 것이지.누군가가 나서지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2권 245쪽)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 만 살아가는 그런사람은 되지 말라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2권 288쪽)
아버지 이치로가 아들 지로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이 말은 자본주의(신자유주의)체제하의 치열한 경쟁,부당한 제도속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도 초식동물처럼 순하게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일갈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그런데 현실적으로 이치로와 같은 삶은 살수는 없을 것이다. 지로의 아버지 이치로는 이제 더이상 공산주의자도 아나키스트도 아니다.(사실 소설에서의 그의 언행은 무정부주의자와 가장 가까워 보이지만 본인은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그는 극도의 개인주의자인가? 아니면 단순한 사회부적합자 또는 사회부적응자인가? 아마 그는 이렇게 말하겠지..." 날 내비둬.. 나를 규정하지마. 나는 그냥 나일 뿐이라고.. 내가 어떻게 살든 니가 뭔 상관이야!" "아하, 그렇다면 당신은 완전한 자유주의자이시군요." "이쒸, 캭~"
그나저나 탈주한 지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최남쪽에 있다는 이상향 '파이파티로마'라는 섬을 향해 떠났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어도'일텐데..거기서 어떻게 잘 먹고,잘 살아 가고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한번 남쪽으로 튀어볼까?' ㅎㅎ맨날 생각뿐이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