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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 ㅣ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 전 돌아가신 종횡무진 인문학자 남경태 선생이 옮겼다. 이 책은 브라질 빈민가에서 태어나 실천하는 지식인의 전범을 보여준 파울로 프레이리의 혼이 담긴, 전설같은 책이다.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는 농활,공활,위장취업, 노조건설 투쟁,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의 현장에서 의식화 교재로 많이 읽혀졌던 금서였었다.(나는 당시 워낙 겁이 많은 범생이여서 이 책 구경도 못해 보았다.)
지금 이시점에서 과연 이 책이 시의성이 있고, 읽을 가치가 있는가? 남경태 선생은 당연히(옮긴이니까!)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할 테고,이 책 말미(219쪽)에 붙어있는'왜 지금 페다고지를 다시 읽어야 하는가'라는 심성보 부산교대 교수의 해제는 지금에도 이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는데 매우 타당하다. "군사정부 때보다 물리적 억압이 상당히 사라지고 절차적 자유를 다소 누리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진정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엔 아직도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빈곤이 여전하고, 폭력적 제도와 관행이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 또한 억압을 억압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암울한 현실을 체감하지 못하게 조작하는 침묵의 문화... 또한 대화를 가로막는 시장적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 보다 높은 차원의 진보적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전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222쪽)
그러고 보니 이 책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도 그린비 출판사에서 2002년 5월 초판 1쇄를 발행한 이후 2016년 3월에 2판 9쇄를 발행하고 있는 걸 보니 꾸준히 찾아 읽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그리고 이 책이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지금도 억압의 메카니즘은 정교하게 작동되고 있어 약자는 여전히 억압을 받고 있다는 현실과 함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파울루 프레이리의 생생한 체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민중들의 이야기들을 겸손한 마음으로 낮은 자세에서 경청하는 그의 교육철학이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페다고지'는 200여쪽의 얇은 책이지만, "제1장의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의 정당성에서부터 제2장 억압의 도구로 이용되는 '은행저금식' 교육개념, 그 전제와 비판과 문제제기식 교육개념을 통한 교사-학생모순의 해소, 제3장 대화:자유를 실천하는 교육의 본질,'생성적 주제'의 탐구를 통한 비판적 의식의 자각, 제4장 반(反)대화와 대화: 억압도구로서의 반대화와 해방 도구로서의 대화, 대화적 행동이론과 그 특징: 협동,단결,조직,문화 통합" 에 이르기까지, 교육학, 철학, 사회학, 해방신학, 역사학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아리스토텔레스,헤겔,루소, 마르크스,알튀세,루카치,파농,모택동,체게바라 등 역대 철학자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결코 쉽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이 책에서의 핵심개념과 인상적인 글에 대해 언급해보면, 억압(oppression)은 폭력을 유발시키는 부당한 질서가 내면화된 결과다. 이는 억압자와 피억압자 양쪽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인간화의 총체이자 '길들이기'다. 이런 비인간화의 길들이기에 순응하지 않고 의식의 눈을 떠 자신을 찾는 것이 바로 '의식화'다. 사람이 억압의 힘에 더 이상 먹이가 되지 않으려면 거기에서 탈출해 그 힘에 항거해야 한다. 그래서 의식화는 '현실을 변혁시키는 힘'이 된다.그러나 투쟁초기에는 억압자의 '허구적 관용'에 속아 피억업자는 해방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억압자'나 '아류 억압자'가 되기위해 노력한다. 즉,소작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소작인들은 지주밑에서 마름의 역할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나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더 낮은 임금으로 도급을 받을수 밖에 없더라도 건설현장의 십장이 되기를 바라거나 이윤극대화를 위해 동료의 노동강도를 감시하고, 고용주의 이익에 부합되는 근로조건을 획책하는 공장의 조장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억압자는 억압자의 본질과 정체를 알고 해방을 위한 조직적인 투쟁에 참여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얻고, 이러한 모순된 노동에서 해방된다. 이 깨달음은 순전히 지적인 것만이 아니라 행동에 참여 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나아가 단순한 행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성찰을 병행해야만 참다운 의미의 '프락시스(praxis)'가 될수 있다. 또한 행동이 순수한 실천으로 간주되려면 그 행동의 결과가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며 그런 뜻에서 '프락시스 '는 피억업자의 새로운 존재근거이다. 여기서 프락시스(praxis)는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실천으로 번역할 수 있는 practice와 동일한 어원을 갖지만, 실천이 이론없는 행위로 협의화하는 것을 막고, 성찰과 이론이 부재한 행위(action)와 차별화 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로 '이론적 실천'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프레이리는 교육의 실천방법으로 학생과의 대화와 토론이 생략된 채, 권위적인 교사의 일방적 설교식 수업에 따라 받아쓰고, 암기하고, 반복하는 '은행저금식 교육'에서, 교사가 항상 학생들을 배려하며 대화하고 자신의 성찰을 재형성하는, 그래서 인간과 세계를 결합시키는 문제인식을 갖도록 하는, 이론적 실천의 교육인 '문제제기식 교육'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강조한다.이러한 변혁을 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비판의식을 가질수 있고, 결국에는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열린사회로 갈수 있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수십년간의 군사독재 정부하에서 억압적인 병영식 교육을 받아 왔다. 그래서 반복적 암기와 세뇌교육을 통해 체제순응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의 삶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성할 수 있었다는 점과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을 일에 대해서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의가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문자해독 교육 부분을 읽다가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글을 읽지 못했던 그녀들(할머니 세대)은 아마 우리사회에서 가장 억압받았던 약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봉건적 가부장제 아래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 등이 굽었던 할머니... 그 검게 주름진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만히 다가가,너무 고생하셨다고,...미안 하다고... 마디 굵은 손을 잡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