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내와 함께 아침밥 먹으면서 (휴일엔 언제나 그렇듯이!)막걸리 한잔하고 있는데, 휴대폰 알림소리.. 혹시 어제 올린 '페다고지'에 대한 좋아요 북플인가? 광고 스팸문자다. 만지작 거리다 도서관에서 온 문자를 봤다." 안녕? 주정뱅이! 빌렸으면 반납해야 할거 아냐?" 그래,오늘까지 반납해야 하는구나. 다 읽지도 못했는데..겨우 첫 단편소설 '봄밤' 한 편만 읽었는데... 아쉽다. 그래도 기다리는 예약자를 위해 반납해야지. 마침TV에서 메이저 리그 중계하는데 휴스턴의 알투베가 홈런을 쳤다. 밥먹고 같이 방청소 하기로 했는데, 키작은 알투베가 귀엽다며 유독 좋아하는 아내는 그의 홈런에 숨 넘어갈듯 좋아서 정신을 못차린다. "어이쿠 내가 야구를 가르쳐 주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아내가 TV야구 중계에 푹 빠진 틈을 이용해 도서관에 왔다. 온 김에 그냥 반납하기는 아쉽고, 한편이나마 감동깊게 읽은 '봄밤'에 대해 몇줄 남겨놔야 겠다.

 

사실 난 봄을 좋아한다. 꽃이 피고, 따뜻하고, 포근하고... 배불리 막걸리 마시고,알딸딸해지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내가 읽은 소설 속 '봄'은 너무도 쓸쓸하고,안타깝고,잔인했다.  임철우의 '봄날'도 그렇고, 권여선의 '봄밤'도 그렇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중년판 '소나기'다. 우리 국민 누구나 다들 잘 아는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

순박하고, 우직한 시골소년과 잔망스럽던 윤초시네 손녀딸의 순수한 사랑은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결국 결혼에 실패한 중년의 안타까운 사랑으로 이어진다. 주정뱅이와 앉은뱅이의 사랑...극단적인 상황설정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권여선 작가는 사랑이라는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확장되는 힘이, 그 사랑을 알아주느냐, 몰라주느냐 또는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느냐 등 다양한 반응의 밀당 또는 힘 조절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사실감 있는 대화와 묘사,독특한 구성을 통해 작가는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와의 밀당에도 매우 능숙한 듯하다. 이 소설에서 중년 닭살커플의 안타까운 사랑을 증폭시켜  더 눈물겹게 하는 것은 간병인으로 나오는 종우의 사랑얘기다.

 

 "내가 은경이랑 사귀기로 하고 소연이한테 헤어지자고 얘기했을 때,와, 나 진짜 쫄았거든요. 소연이 걔가 막 울고불고할 줄 알았는데 전혀 울지를 않더라고요. 눈은 막 울 것 같은데 끝까지 울지를 않더라고요. 그냥 알았다고, 헤어지자고 그러는 데 혹시 얘가 그동안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었나 싶어서 겁나기도 하고 또 징징거리지 않아서 잘됐다 싶기도 하고, 암튼 이상했어요.집에 간다길래 택시를 잡아주려고 서있는데 갑자기 얘가 코피를 쏟는 거예요. 난 세상에 그렇게 무섭게 코피를 쏟는 거는 처음 봤어요. 그 밤중에, 아무짓도 안했는데 코피가 그냥...."(38쪽)

 

'가끔 영경의 눈앞엔 조숙한 소년 같기도 하고 쫓기는 짐승 같기도 한, 놀란 듯 하면서도 긴장된 두개의 눈동자가 떠오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종우가 대체 무슨 일이냐고, 왜 그러느냐고 거듭 묻는데도 영경은 오랜시간 울기만 했다.' (끝문장- 39쪽)

 

아픈 사랑얘기다. 감동적이다.오랜만에, 책읽는 도중 인공눈물이 필요없는 소설 한편 읽었다. 나이들수록 사랑이 왜 이리도 절절해 지는가? 황지우 시인의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 가 떠오른다. 지금쯤 아내는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아내와의 행복한 중년을 계속 즐기기 위해서는  바로 이 자리에서 이제는 일어나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7-10-2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정현이군요^^: 1989년의.

sprenown 2017-10-24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조정현의 노래제목에서 따온건데, 원래 제목은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군요...저는 ‘할 거야‘고.. 거기서 거기지만...이 아픈사랑를 이렇게 끝내기보다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담아 그대로 두겠습니다.^^ 저 자신의 의지도 반영할 겸..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