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The Top Secret season 0 시즌 제로 1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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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도 들어가지 않은 펜선일 뿐인데 때때로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장면들이 나왔던 <비밀>. 그럼에도 이 만화를 끝까지 봤던 이유는, 그 적나라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어두운 면들을 이야기하며 삶이란 무엇일까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아픔과 절망을 함께 겪은 마키와 아오키의 마지막이 그럼에도 평화로움을 확인하며 약간의 아쉬움과 큰 안도감을 느끼며 책을 덮었지만, 마키와 스즈키의 이야기는 과연 어땠을까 궁금했던 게 사실이다. 작가도 이들을 쉽게 보낼 수 없었나 보다. 이미 비극으로 끝난 이야기를 다시 들춘 것을 보면.

<비밀> 본편에 스즈키의 마지막을 나와 있기에 첫 권에 등장한 밝으면서 강한 그의 모습이 더 슬프게 다가온다. 앞으로 본편보다 더 처참하고 아픈 이야기가 전개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이 거대한 떡밥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겠지. 비록 종이 위에 살고 있는 가상의 인물일 뿐인지만 그들이 너무 많이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뭐... 첫 권을 보아 하나 작가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ㅜ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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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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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다. 잠을 못자는 것도 아닌데 자도자도 피곤하고, 병원 세 곳을 동시에 다니는 생애 첫 경험까지. 이게 꺾인다는 걸까 싶으면서도 조바심이 나기도 했고 여러 모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걸 이제야 확실히 안다.) 이 또한 성장통일 것이란 걸 알지만, 왜 그런지 알아도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니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몇 개월의 시간을 돌아보니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싶다. 삽질하느라 고생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걸어오느라 애 많이 썼다, 그 속에서 얻은 게 있으리니 훌륭하지 않아도 쿨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시 나아지기까지 시간도 필요했지만 나 혼자였다면 그 상태 그대로였을 것 같다. 인간은 온전히 홀로 설 수 있어야 하지만 늘 혼자인 건 참 쓸쓸하고 슬픈 일이다. 감추고픈 못난 모습을 눈감아주는 가족과 친구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껏 빛 한번 보지 못하는 두더지로 땅속 저 깊은 어느 곳에서 여전히 삽질만 하고 있었겠지. 현명해서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 능력이 출중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다. 서로의 고된 삶과 아직 자라지 못한 마음, 때로 너무나 짧은 생각을 감싸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이 못났지만 늘 그런 건 아니고 때로 잘난 것 같지만 그 또한 늘 그런 것 아니니, 우리는 지금까지 어우러져 시간을 보낸 것이리라. 만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선배들도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도 그 시간의 어느 지점에서 한데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이라니 얼마나 행복하고 멋진 일인지.

그리하여 2014년에는,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겠다. 

울 땐 실컷 울고 털어 버리겠다.

분노할 일은 넘어가지 않되 소소한 화는 덮어 두겠다.

다 아는 척하지 않고 모르는 것에 도전하겠다.

쓰고 싶은 게 훨씬 더 많지만, 이것만 지켜도 큰 성공이란 걸 잊지 않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 있음이 행복이란 걸 기억하며 얼마 남지 않은 2013년을 잘 보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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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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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갑자기 난독증에 걸린 것처럼 글자들이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책벌레는 아니어도 삶의 순간순간을 채워준 것이 책이었는데, 어찌하여 나는 책과 서먹하게 겉돌고 있는가 풀리지 않는 의문만 커져 가는데 답은 모르겠고. 꾸역꾸역 책장을 넘기기는 했지만 어느 글자 하나 두개골조차 넘지 못했다.

왜 그렇게까지 힘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지금까지와 다른 변화가 있었다. 그로 인해 내 삶이 변하고 있었고 그 과정은 즐거운 만큼 혼란스럽고 때로 힘들었다. 언제나 심심한 적 없던 나였는데 무엇 하나 즐겁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찌질한 인간이었나 혹은 내가 미친 걸까 같은 생각만 머리에 꽉 차서 사실은 무척 우울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 탓인 건가 싶으면서도 전에는 그런 적 없으니 한편으로 억울했고 누굴 탓하자니 그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나는 백수였을 때가 인생의 제일 밑바닥을 헤엄쳤을 때라고 생각했는데 삶이란 늘 놀라움을 안겨 준다. 널을 뛰는 감정을 스스로도 어찌할 줄 몰라 아예 놔버려야 하나 고민만 가득하던 중, 물론 지금도 그 고민이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읽었다. 처음 읽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리 울었을까. 어째서 글자 하나하나가 그토록 아련하게 새롭게 다가왔을까. 아마 그건 영원히 알 수 없겠지.

작가는 다시 이런 책을 쓸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 속에는 다시 쓸 수 없을 거라는 서글픔이 배어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청춘처럼, 다시 겪을 수 없는 그때가 아니면 의미 없는 일들이 있으니까.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감정을 나는 다시 느낄 수 없겠지. 그 순간은 단편적인 것만 기억날 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청춘이라는 화려한 불꽃놀이에서는 한걸음 멀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나이고, 이 순간도 다시는 만날 수 없고, 지금 이 기분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테니까. 뭐라고 쓰고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 혼란이 조금은 가시고 있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스무살 무렵 서른 살 이후의 삶을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삶이 조금 달라졌을 거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게 우리의 스무살이었고, 그렇기에 스무살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느 순간 저만큼 멀어진 작가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은 여전히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그 고마움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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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전날
호즈미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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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심장한 제목, 궁금해지는 표지 그림, 게다가 단편집! 보자마자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를 팍!

마침 <은수저>도 신간이 나왔기에 다른 책들과 함께 주문했다. 퇴근하니 책이 왔기에 바로 읽어 본 감상은, 기대보다는 쩝.. 가장 아쉬웠던 건 작가 스스로 반전이라는 거에 너무 얽매여있다는 느낌이었다. 호흡이 긴 장편은 시작부터 빵하고 터뜨려주지 않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정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반면, 단편은 짧다는 점이 장점이자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흔히 택하는 방식이 '이럴 줄은 몰랐지?' 하고 반전을 주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 또한 잘못 쓰면 진부해지거나 열린 결말도 아닌 것이 영 어쩡쩡해질 수 있다는 함정이 있다. 여운을 주려다 안드로메다 간다고 할까. 여기서도 몇 편의 단편을 모아놓고 보니 그 결말의 반전이 반복적이고 심지어 참신하지도 않다; 몇 편은 완전히 짐작대로 흘러갔고, 다른 것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던 것 중에 하나로 끝이 났다. 

솔직히 말하면 표제작의 승리라고 본다 이 책은. 그리고 그 편에 작가의 장점이 잘 녹아 있다. 안정적인 그림체와 담담한 연출, 감정의 적절한 강약 조절. <결혼식 전날>만큼은 인정! 아직 신인이고 책 한권으로 평가하기는 무리일 수 있지만, 오직 이 책만을 본 뒤의 느낌은 이렇다. 어설픈 판타지를 굳이 엮으려 하지 않으면 더 좋겠다, 결말의 반전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것.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알고 보면 모두 평범하지 않은 속내를 잘 포착하는 후미 요시나가처럼 담백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만화를 그려 주면 좋겠다. 순전히 내 소망이지만. 물론 다른 식으로 확 뻗어나가는 것도 좋다!

별 세 개 줘서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다음 작품이 나오면 또 살 것 같다. 이제 시작인 작가니까 다음 행보가 어떨지 궁금하면서도 기대된다. 고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리고 있다는 작품은 또 어떤 느낌일지도 궁금한다. 다음이 기대되는, 새로운 창작자를 만나는 건 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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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 죽음의 땅 일본원전사고 20킬로미터 이내의 기록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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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체크를 하다가 바로 주문한 책이다. 제목도 표지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벌써 2년 가까이 흐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그날이 벌써 이렇게나 멀어졌다. 그즈음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다며 방사능 방사성물질 편서풍 등등 다양한 말들이 휘몰아치듯 주위를 떠다녔는데, 지금은 이토록 잠잠하다니 그것도 놀랍다. 그 당시 걱정스럽게 예견했던 우리나라 원전의 상태가 몸시 위험하다는 것도 역시나 사실로 밝혀졌는데, 그 일은 후쿠시마 사고 때보다 더 빨리 조용해졌다.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그 영향이 너무나도 엄청나지만, 여전히 원자력에 대한 정책은 굳건하고 사고 대비는 미흡하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지금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그보다 오래전 체르노빌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원전 관리와 그에 대한 견해가 무책임한 기업의 전형이었던 2년 전 도쿄 전력과 무엇이 다를까 걱정이 된다. 냉정하게 말하면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은 안타까운 사고를 겪은 외국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일 수 있는 것이다.

사지 자유로운 사람들도 처참하게 희생된 지옥 속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동물들의 상황은 너무나 엄청나다. 사진 한 컷 책 한 장을 넘어가기가 괴로웠다. 그 상황을 직접 마주한 지은이도 무척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것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에게는 댈 수 없겠지만. 지옥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책을 덮은 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나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거기서 멈춰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아직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도 만들어지는 이런 수많은 지옥을 보고도 웃으며 감내하고 그것과 싸울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그게 참 어렵다.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살아남은 생명들과 애쓰는 존재들이 더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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