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55 - 지옥에 부처님
오다 에이이치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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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았을 때 기발하고 재미있다 느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항해를 할 줄은 몰랐다. 이 나이까지 여전히 이들의 모험에 함께할 거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모험을 이토록 기다리게 될 줄은 짐작도 못했다. 한 작가의 머릿속에서 구축된 세계는 점점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남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적왕이 되겠다 외치는 주인공은 다분히 만화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동료를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사건들은 그저 만화라 치부하기에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꿈, 국가의 존재, 공포와 신, 진정한 우정, 삶의 환희 그리고 무엇보다 유머. 너무나 좋아하는데도 다시금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0권 정도의 사건이 진행되어서야 절망을 느끼는 주인공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작품이었다가도 이쯤되면 주인공들이 무적이 되면서 스토리가 흔들리기 시작해 작품 자체가 안드로메다행을 예약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 능력치가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서 동료를 모두 잃게 하는 시련을 주었다. 슬픈 땐 웃음버섯을 먹어서라도 웃는 주인공 루피가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지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 함께하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나에게는 <빨간머리 앤>과 더불어, 할머니가 되어서도 보고 싶은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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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내 방 태학산문선 109
허균 지음, 김풍기 옮김 / 태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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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첫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사람. 허균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그것뿐이었다. 폐쇄적인 유교 사상으로 꼼짝하지 못했던 조선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었던 그의 삶 전체를 반영했다는 사실은 좀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뛰어난 재주를 자랑했다가 결국 역모죄로 길거리에서 죽임을 당한 허균의 삶은 너무나 드라마틱하다. 혁명의 뜻을 굳히기 전에 그는 속세를 떠나 신선처럼 살고 싶었으면서도 입신해 이름을 떨치고 싶은, 일치할 수 없는 욕망의 사이를 걸었다. 그러면서 신분제를 비웃듯 서얼들과 어울리고, 불교와 도교에 심취하고, 여인네들과 염문을 뿌리며 조선의 문제아로 떠올라 수차례 파직과 유배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매창에 보낸 짧은 편지에서 자연에 숨어 살겠다 한 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벼슬을 얻은 제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라 좋았다. 가난 때문에 벼슬을 할 수 있다면서 다른 사람을 통해 친구에게 조심스레 작은 벼슬을 권하는 자상한 마음 씀씀이에 반했다. 숙부인 첩지가 내려왔을 때 오래전 세상을 떠난 부인을 그리워하며 쓴 글에서는 살짝 눈가가 젖었고, 스승의 평가에 자신만의 시를 쓰고 싶다고 되받아치는 당당함에 가슴 설렜다. 좀더 많은 작품이 실려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길 만큼 허균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간다.  

별을 네 개만 준 것은 풀어쓰기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허균과 그의 작품을 소개한 책이 많지 않은 지금 그의 세계를 느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돌베개에서 나온 <허균 평전>과 함께 읽었는데, 허균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그의 작품을 읽으니 더 이해가 잘 되었다. 또한 두 책에서 작품이 겹칠 때는 서로 다른 풀이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허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좋은 방법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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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개정판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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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을 대신하는 말에서 고종석은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로 글을 쓰고 싶다'면서 한국어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유일한 언어라고 고백한다. 순수한 언어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한국어를 살아 있는 언어로서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고백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재미있기까지 했다.  

언어에서 역사 이야기를 뺄 수 없고, 역사에 민족 이야기를 뺄 수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생각의 혼란과 오류들을 그냥 넘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 책을 읽을 수 있던 것은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감염자이므로 순수한 언어는 없다 라든가 아름다움은 섞임과 스밈, 불순함 속에 있다는 말들은 얼마나 호쾌한지. 특히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를 읽었을 때는 무엇보다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인류의 기본적 단위로서의 개인, 궁극적 소수로서의 개인이라고 말하는 이 글은 정말 놀라웠다. 생각의 깊이란 이래서 중요한 것인가.  

처음으로 산 고종석의 책이지만 정말 좋아하게 됐다.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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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낱말편 1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 유토피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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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누가 물었을 때 잘 안다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쓰고 있는 나 역시 자신이 없다. 이곳에 나고 자랐고, 그래서 한국어를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의문을 키워주지 못하는 교육을 받았다는 점도 한몫을 했을 테고. 

국밥 시리즈 3편 <국어독립만세>의 여는 글 제목은 '물을 의식하는 물고기'다. 물고기는 자신이 물속에 산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한다. 자동화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어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하다. 그래서 한국어와 거리를 두고 살펴보자는 책이다. 그 작업의 시작, 국밥 시리즈의 시작이 바로 이 책이다. 별생각 없이 쓰는 낱말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 그것을 인지했을 때 그 쓰임이 얼마나 다채로워지는지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진행되는 설명은 자세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친절한 선생님 같다고 할까. 

당연시했던 것을 낯설게 보고 다시 생각해보는 태도는 살아감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호기심과 탐구력이 있다. 그것이 발현되었을 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공부란 말이 성적과 직결되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역시, 무언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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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쉽게 찾기 호주머니 속의 자연
이대암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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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대문에 앉으면 바로 앞에 마당이, 그 앞에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 그 앞에는 앞집 텃밭이 그 너머에는 자동차와 사람이 섞여 오가는 큰 길이, 그 너머에는 푸른 논이, 그 너머에는 시내의 아파트가 작게 보이고, 더 멀리에는 수묵화 선처럼 흐릿하게 높은 산들이 있다. 고개를 조금만 들면 넓고 푸른 하늘이 보인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멀리 있어 가끔 찾아가는 지금도, 그곳에 앉아 낮의 하늘과 별이 뜬 밤하늘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린 종종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국민학교 등교길을 오갈 때도, 버스를 타고 타녔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낮과 밤의 차이였을 뿐 고개를 들면 언제나 넓은 하늘이 내 눈 앞에 있었고 그게 참 좋았다. 하늘과 구름 사진을 열심히 찍는 내 모습은 이런 과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낮과 밤의 하늘 모두 좋아하지만, 구름이 있는 하늘 사진을 찍는 것은 참 재미있다. 언제나 흐르고 있는 구름은, 그래서 한시도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솜처럼 하얗다가도 거무죽죽, 거인처럼 거대하다가도 새털처럼 변하고, 황금빛으로 물들다가도 붉은 노을에 발갛게 물드는 구름은 꼭 어린아이 같다. 그 생기넘치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그래서 이 책을 보았을 때 두근두근 설렜다. 구름이 도감으로 나오리라고 생각을 못했으니까. 물론 식물, 동물, 곤충 등 다른 도감처럼 분류가 정확하게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체계가 잡히도록 정리를 해놓았다. 사진들도 깨끗하다.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내가 찍은 사진들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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