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하는 딸들 - 단편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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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의 단편을 더 좋아한다. <아이의 체온>이나 <그는 화원에서 꿈을 꾼다>, 물론 이 책도 빼놓을 수 없지. 거기에 단편은 아니지만 <플라워 오브 라이프>까지. 작품에 대놓고 혹은 살며시 드러나는 게이 코드 때문에, 꽃배경을 뒤로 마성의 게이 드립을 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는 <서양골동양과자점>이라는 희대의 걸작(!) 때문에 야오이 작가로 알려졌지만, 나는 그가 '관계를 풀어내는 데 능숙한 만화가'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려내는, 사람과 사람이 일으키는 감정의 진동은 종이를 넘어 현실에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 적절한 대사 조절, 때론 글자 하나 없이 그림만으로 이어지지만 흐트러지지 않는 긴장감 등 이렇게 다양한 떨림을 주는 만화가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해야 하는 딸들>은 그가 처음으로 온전히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엄마의 재혼이 마땅찮은 딸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작품은, 다양한 관계 속의 참으로 다양한 여자들을 비춘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만화 속 인물들이 엄마와 친구와 때론 남자를 느끼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살짝 눈물이 맺히기도.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은이의 인물들은 끈적하지 않다. 그 산뜻함이 문화적 차이 안에 깃든 '부딪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녀 사이의 이 쿨한 관계는 마음에 든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때론 엄마라는 이유로 나는 소중한 분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는 엄마. 이제껏 엄마란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강요한 적 없는 순진한 분이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부터라도 엄마에게 좀 쿨한 딸이 되고 싶다. 주인공처럼, 나 역시도 엄마가 죽는다면 아주 많이 슬퍼할 만큼 사랑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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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한국사 상식 44가지의 오류, 그 원인을 파헤친다!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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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시절에 아빠가 사주셨던 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 두 가지 -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필 메세지를 써주신 영어사전. '공부 열심히 해라 - 아빠' 비록 한 줄짜리였지만, 애정표현 한 번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안 했다는 게 아니라 못했다는 걸 안다) 과묵한 아빠였기에, 정말 기뻤다. 또 하나는 박은봉 선생님의 책 세 권. 당시엔 가람기획에서 출판된 <세계사 100장면><한국사 100장면> 어딘지 기억은 안 나는 <세계사 뒷이야기>를 진짜 재미있게 그리고 마음 아프게 읽었다. 역사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어린 나에게 불을 붙여준 것이 그 책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졌다. 노예들은 왜 반란을 일으켰을까. 왜 전태일은 분신을 한 것일까. 그 전쟁은 정말 평화를 위한 것이었나. 그 여자는 진짜 악녀였을까. 역사에서 패자는 말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 내가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게 보았던 그 시간이 피와 눈물로 얼룩졌다는 것을 그때 처음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니 내게는 참 소중하고 귀한 책들이다. 하여, 생각하지 못했던 자리에서 선생님을 뵈었을 때 나는 너무 놀라고 떨려서 말도 잘 하지 못했더랬다. 책에 실린 사진을 수없이 보았지만 실물을 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크흑. 내가 좀 더 쿨했다면 좋은 시간이 되었을 텐데. 

여튼 필자는 개인적으로나 역사출판에서나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손을 댄 것은 진실이라 믿어왔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반론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래서 바로잡기 더 힘든 한국사의 상식을 돌아보는 것이다. 44개의 테마 가운데 나 역시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많았다. 굴곡이 많은 우리 역사, 일제 침략은 물론 독재를 겪으면서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들을 별 생각없이 믿고 말해왔다는 게 부끄러웠다. 언제나 그렇듯 필자의 글은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슴에 울컥해지기도 한다. 승자만이 아니라 역사적 패자, 피해자, 말할 기회를 잃은 자들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대목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뛰어난 글솜씨만이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깊이 있게 살펴 추론하는 부지런함 또한 필자의 장점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알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생각의 폭이 넓히며 진실에 다가선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가는 필자의 책들을 앞으로도 계속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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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츠 칵테일 - 단편
한혜연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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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총> 리뷰에서 언급했지만, 한혜연 씨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중 하나다. 하지만 그만큼 미안한 마음이 크다.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소장한 작품은 다 중고이고, 중고도 못 구해서 보지 못한 것도 있는, 실질적인 사랑은 주지 못한 못난 독자이기 때문에. 그래서 <팝툰>에 연재하는 <애총>은 신상으로 구매하고 다음권을 기다리고 있었건만............. 

어느날 걸려온 전화 한 통. 격주간에서 격월간으로, 불안한 걸음을 계속하던 팝툰 사무실에서 온 그 전화는......... 예고서에 나온 것 같은 휴간 결정. 환불이나 <씨네21>로 전환해주겠다는 수화기 너머의 그 분께 내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그럼 <애총> 다음 권은 언제 나올지 모르는 건가요ㅜㅠ"였다. <씨네21> 또한 격하게 애정하지만 이런 식으로 받아보고 싶지는 않았는데ㅠㅜ 이제 겨우 성실한 애독자로서 작품을 모으는 중이었는데... 너무 슬펐다. 

그 애정의 시작이었던 <후르츠 칵테일>. 과일을 테마로 엮어가는 단편 만화는 그 짧은 분량과 상관없이 긴 여운을 남긴다. <애총> 리뷰에 써 놓은 것처럼 소재와 결말 때문에 '토마토' 편을 가장 좋아했다. 인간을 바라보는 그 따뜻한 시선, 마음 깊이 남는 스토리... 난 정말 이 분의 만화가 좋다. 좋다고! 근데 왜 보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냐 어헝헝 ㅜㅠ 

만화가가 살기 힘든 우리나라. 만화 잡지 폐간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점도 슬프지만 어찌됐건 지금 가장 슬픈 건 <애총>을 보지 못한다는 것. 그러니 어서 <팝툰>은 일어서 주세요. 그리고 한혜연 씨도 이런 시련은 떨치고 <애총>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도 그려주시길. 무책임하고 철없는 독자는 바라고 있습니다. 더 이상 품절,절판은 싫어욧!

<후르츠 칵테일> 리뷰라기보다는 만화가에게 보내는 펜레터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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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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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생각에 빠지게 했다. 

잘가는 블로그 주인장이 쓴 글 때문에 보게 된 책. 품절된 지 오래였는지 중고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중고책 사이트를 며칠 동안 돌고 또 돌아서 손에 넣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예!라고 외치겠다. 문학평론가의 글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평론이란 말은 왠지 모를 거부감을 가진 적이 있다. 나도 생각할 줄 알고 판단할 줄 아는데 꼭 가르치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조금씩 읽게 되었는데, 생각의 폭도 넓혀주고 재미있기도 하더라. 지은이가 소개하는 책들 가운데 내가 읽지 못한 것은 적어두고 하나씩 지워가는 중이다.

문학이란 무엇일까.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러니 현실을 외면한다면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말 것이다. 책 중간중간 마음에 드는 구절,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 많았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시인의 마음은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자기 바깥의 슬픔에 기꺼이 동참하고, 아파하며, 기어이 큰 목소리로 꺼이꺼이 함께 우는 연민의 태도를 의미한다. 가령 참혹한 전쟁의 '인간방패'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126쪽)  

"역사를 배우는 일은 슬픔을 배우는 일이고, 한 편의 시를 쓰거나 읽는 일은 그것에 동참하여 나누는 일이다." (174쪽) 

"거리의 통증을 지각하고 몸 섞는 것, 그것은 변함없는 작가의 사회적 책임이다."(250쪽)  

하지만 결코 무겁고 진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만남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고종석의 책을 소개하면서 더 많이 팔리길 바란다는 평론가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지루할 것 같은데 알고보니 말 잘 통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만난 기분. 하지만 '그러나 진실은 단순하다. 교육은 결코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187쪽)'처럼 그 대화 중간중간 날카로운 말들이 숨어 있어 적당한 긴장감도 갖게 한다. 특이한 제목에 깃든 책에 대한 애정은 책 머리에 좋은 책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에서도 드러난다. 

"내 생각에 좋은 책이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물음'을 키워주는 책이다. 그런 책들이야말로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창조적 의혹'을 증폭시켜 주고, '자기만의 언어'를 촉구하는 것이다. ....의혹이 충만할수록 사유의 진폭은 넓어지고 깊어진다." 

말로 풀어낼 재주는 없었지만 독자로서 지은이의 말에 공감한다.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 하셨고, 법정 스님은 '읽는 중간 덮게 되는 책, 생각에 빠지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 하셨다. 지은이의 말도 결국 그와 같다. 물음을 키워주는 책. 생각하게 만드는 책. 그로 인해 고민하게 만드는 책.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찌 변하든 책이란 그 의무를 져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은이의 책 한 권을 더 샀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품절이네. 왜 이 좋은 책들을 팔지 않는 거냐! 독자로서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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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 24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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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왔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후다닥 읽은 뒤에 나온 말은 "다음 권은 언제 나와!"였다. 플라스크 속의 난쟁이도, 독자들도 그토록 기다려온 '그날'이 가까워온 것 같은데, 그 결정적인 순간에 컷을 해준 얄미운 작가ㅜㅠ 

연금술이라는 허황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낱말이 제목에 박혀있어 보기 시작했는데, 그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다. 22인가 23권인가 프라이드의 인간예찬은 좀 낯간지러웠지만 그 정도야 참아줄 수 있는 작품이다. 죽은 엄마와의 재회를 꿈꾸었지만 소망은 이루지 못한 채 피를 흘린 형제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상처를 안고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난 음모. 전형적인 모험만화의 전개를 따라가지만 한 번 보면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과연 형제는 몸을 되찾을까. 약속의 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큰 사건부터 인물들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들의 결말이 궁금해질 테니.

엄마를 그리워하는 형제의 이야기는 인간과 호문클루스의 대결로 이어지고 그 속에서는 다시 인간들이 모인 국가와 개인(들)의 대결이 펼쳐진다. 어째 많이 보아온 풍경이 아닌가. 인간들이 모여 생긴 국가라는 집단이 숭고한 희생, 영예, 찬란한 미래 등의 달콤한 말을 핑계로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때론 소리없이 짓밟는 모습이. 구성원들이 생각하길 멈춘, 소통없이 굳어진 집단은 인간들이 모였음에도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괴물과 같다. 그러니 이 만화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향해 달려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말은 무엇을 보여줄까. 플라스크 속의 난쟁이란 귀연 이름과 다르게 오만방자한 괴물 녀석은 어찌 될 것인지도 궁금하지만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남은 인간들의 이야기다. 국가에 대한 믿음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버린 우리 주인공들의 삶은 어찌될 것인가. 물론 그것도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지만......이라고 쓰는 사이 다시 다음 권이 궁금해질 뿐이다. 다음 권은 언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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