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동안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갑자기 난독증에 걸린 것처럼 글자들이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책벌레는 아니어도 삶의 순간순간을 채워준 것이 책이었는데, 어찌하여 나는 책과 서먹하게 겉돌고 있는가 풀리지 않는 의문만 커져 가는데 답은 모르겠고. 꾸역꾸역 책장을 넘기기는 했지만 어느 글자 하나 두개골조차 넘지 못했다.

왜 그렇게까지 힘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지금까지와 다른 변화가 있었다. 그로 인해 내 삶이 변하고 있었고 그 과정은 즐거운 만큼 혼란스럽고 때로 힘들었다. 언제나 심심한 적 없던 나였는데 무엇 하나 즐겁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찌질한 인간이었나 혹은 내가 미친 걸까 같은 생각만 머리에 꽉 차서 사실은 무척 우울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 탓인 건가 싶으면서도 전에는 그런 적 없으니 한편으로 억울했고 누굴 탓하자니 그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나는 백수였을 때가 인생의 제일 밑바닥을 헤엄쳤을 때라고 생각했는데 삶이란 늘 놀라움을 안겨 준다. 널을 뛰는 감정을 스스로도 어찌할 줄 몰라 아예 놔버려야 하나 고민만 가득하던 중, 물론 지금도 그 고민이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읽었다. 처음 읽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리 울었을까. 어째서 글자 하나하나가 그토록 아련하게 새롭게 다가왔을까. 아마 그건 영원히 알 수 없겠지.

작가는 다시 이런 책을 쓸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 속에는 다시 쓸 수 없을 거라는 서글픔이 배어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청춘처럼, 다시 겪을 수 없는 그때가 아니면 의미 없는 일들이 있으니까.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감정을 나는 다시 느낄 수 없겠지. 그 순간은 단편적인 것만 기억날 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청춘이라는 화려한 불꽃놀이에서는 한걸음 멀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나이고, 이 순간도 다시는 만날 수 없고, 지금 이 기분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테니까. 뭐라고 쓰고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 혼란이 조금은 가시고 있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스무살 무렵 서른 살 이후의 삶을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삶이 조금 달라졌을 거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게 우리의 스무살이었고, 그렇기에 스무살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느 순간 저만큼 멀어진 작가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은 여전히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그 고마움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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