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자락(이기를)에 당첨되어 격리의 무료함과 약기운의 나른함 사이에서 읽었다. 인류애는 개인을 향한 사랑의 조건으로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은 곧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말이 다른 무엇보다 가슴을 울린다. 비교적 가벼운 병증이지만 그럼에도 두려움과 짜증이 문득 찾아올 때마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와 남편의 웃음소리에 귀기울인다.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고 작가는 연이어 말한다. 차별과 폭력의 세상에서 태어나 어느 때보다 두려운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그 목소리는 담담하면서 흔들림 없다. 사랑은 용기와 인내를 전제한다는 자신의 말처럼 그의 설득도 결코 격정적이지 않다. 이해가 부족하여 때때로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읽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던 질문에 답해 주는 듯한 책읽기는 즐거웠다. 또 읽는 내내 믿을 수 없을 만큼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남편이 떠올랐다. 나는 여전히 사람은 배우며 변해갈 수 있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되고 싶어 공부하고 책을 읽고 대화한다. 나의 부족함과 가능성을 함께 깨닫게 해 준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 힘들면 잠시 쉬어가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진정한 사랑은 무해한 것이고 그리하여 모두의 소중함과 특별함을 받아들이며 함께 평화로울 수 있다는 사실도. 사유와 통찰의 힘은 이런 것일까. 수십 년의 시간에서도 빛을 잃지 않은 말과 글에 감사하다.
여기 저기서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우화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뒤늦게 펼쳤다. 하지만 고학년 장편동화인데 종이 두께가 왜케 두껍냐라는 당황스러움과 이야기의 시작에 뭐지 했던 게 무색하게 술술 읽혔다. 처음에는 어릴 적 좋아하던 동물의 왕국과 여러 다큐가 떠올랐는데 읽어나갈수록 계속되는 은유에 여러 책들과 미디어 속 장면들과 어린 딸을 두고 죽음에 문턱에 섰던 내 모습까지, 거대하고도 사적인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종이가 왜케 두껍냐 하던 나는 어느새 줄줄 눈물 흘리다 책을 마쳤다. 이 책을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있었는데, 모든 동화가 이러면 곤란하겠지만 이런 작품을 만나 기쁘다는 말에 가장 공감이 갔다. 처음의 당황스러움이 낯설고 새로운 기쁨으로 안착하는 느낌. 어린이들은 어떻게 읽을까 더욱 궁금하다. 만 다섯살이 된 딸은 책이 너무 예쁘다며 좋아하는데 몇 년 뒤에 함께 읽으면 어떨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