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로스트 2 : 검은 파도 - 시즌 1 닥터 프로스트 2
이종범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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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재미를 갖추면서도 심리학의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내었던, 현대사회가 개인에게 주는 스트레스와 한 개인의 심리에 대해 밀도있고 흥미진진하게 추적했던 <닥터 프로스트> 2권, '검은 파도' 를 읽었다.

(닥터 프로스트 1권 리뷰 : http://blog.aladin.co.kr/764223194/5641774)

 

프로스트 교수가 있는 학생심리상담소의 조교 윤성아가 한때 아르바이트로 가르쳤던 한 고등학교 여학생의 증세를 프로스트-윤성아 콤비가 풀어가는 이야기가 바로 2권이다.

 

고3 여학생인 최나리는, 상위권의 성적이다. 하지만 고3으로 올라가고 부터는 종종 등교를 거부하고 하루종일 인터넷만 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반대로 또 새벽 일찍부터 학교를 나서는 경우도 있는 것. 이 종잡을 수 없는 증상에 대해 일단은 '은둔형 외토리'로 접근하지만, 윤성아가 직접 최나리를 대면하고 질문지를 작성한 결과로는 그렇게 간단히 문제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프로스트 교수가 잡은 단서로는, '불안 민감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이 모호한 최나리의 증상은, 프로스트를 자극하고, 

 

상담을 꺼리는 나리, 이에 대한 프로스트 교수의 접근은

1권에서 내담자의 방에 몰래 '잠입' 한 것보단 신사적이지만...

 

 

그리고 외국에서 돌아온 미모의 송선 교수는 프로이트가 상담소에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내담자와 함께 있으면 안된다는 말 끝에, 살인마라고 까지 말하는 그녀. 아무래도 그녀가 갖고있는 불신으로 미루어 본다면, 분명 프로스트 교수는 과거에 어떤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쨌거나 프로스트 교수에 대한 퍼즐조각이 하나 추가되는 셈인데, 과연 진실은, 무엇이, 언제쯤, 어떻게 밝혀질지..

 

 

 

어쨌거나, 맹목적 질투만을 갖고있거나 하는 등의 가벼운 캐릭터가 아닌, 무언가를 쥐고 있는 중요 인물로 보이는 송선 교수는 프로스트 교수가 내담자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경솔한 조치로 오해받아 경찰서까지 가는 상황에서의 만남서 다시금 날선 대립각을 보이지만, 내담자를 위해서 서로를 뒷받침해주는 파트너쉽을 발휘해준다...

 

 

 

 

꽤 오래전에, 지금보다 훨씬 책을 멀리 할때, (그러니깐 한마디로, 심각할때) 도서관에서 책정리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잠시 한 적이 있었다. 그때에 잠시 남는 시간에 내 흥미를 끌어서, 결국 잠시 빌려가 다 읽은 책이 있었다.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도시에서 일상에 찌들어서 심리적인 병세가 있던 환자가, 자연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때의 난 그 실제 인물에 대한 낭만적인 극복의 과정에 매료되었었는데, 여기서 중요한건 그때 그 주인공이 겪던 증상이 바로 '공황장애' 였던 것. (기억이 흐릿한지라 사실 틀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주인공은 운전을 하던중에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러가지 증상들로 말미암아 도로 한가운데서 목숨이 위태로울 뻔 했었던 것이 분명하다.

 

공황장애의 증상과 정의에 대해 <닥터 프로스트>에 소개된 부분의 일부를 발췌해 가져오자면, [공황장애는 그 중에서도 '이유없는 강렬한 공포와 불안'이 마치 파도와 안개처럼 밀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불안장애. 공황장애 환자들이 공황발작을 일으킬 때에는 현기증, 답답함, 식은땀과 강렬한 심장박동 등의 증세부터 시작해 죽음에 대한 공포나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공황장애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과 증상들은.. 언급을 생략하겠음!)

 

 

나는 여기 이 <닥터 프로스트 : 검은파도>에서 최나리가 겪는 공황장애를 생각해보며 그때의 책의 내용이 떠올랐고, 이런 공황장애 같은 불안장애 들이 현대사회에서 점점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반드시, 혹은 최소한 이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거나, 이것은 해야한다는 사회적인 통념, 압박과 같이 행복에 대한 공통적인 충족조건들의 무조건적인 강요와 세뇌, 그래서 그것들을 충족하지 못한 삶에 대한 무시 혹은 비난이 점점 더 많은 이들을 불안장애로 물아세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깐, 비정상적인 사회의 모순들이 병을 늘리고 있는 셈 아니겠는가. (사실 뭐 이건 새로운 주장도 아니지만)

 

한국사회, 그 중에서도 특히 어린 나이에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학생들이 간단한 상담을 통해서 나아질 수 있는 질환들을 혼자서 안고 살아간다고 말하는 작가는 심리, 정신분석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인한 이런 문제 감추기가, 상담사로 하여금 문제해결을 더디게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마지막으로 상기시키며 이야기를 마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심리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조금씩 바로잡는 동시에 일정한 정보까지 제공하는 이 만화의 역할은 앞으로도 작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본편이 끝나면, 단행본만의 부록이 약 30페이지에 걸쳐 수록되어있다. 1권에서 이어지는 구성인데, [하얀방의 심리학자](위 사진)는 프로스트를 비롯해, 프로스트에 대한 과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소개되는 천상원 교수의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 프로스트 에 대한 궁금증과 실마리를 건넨다.

 

그리고, 조금은 묵직한 분위기를 단번에 환기시키는 네컷개그만화, [노란방의 심리학자] (아래 사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별한 설명은 필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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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의 아폴론 5
코다마 유키 글.그림,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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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권 이야기

 록밴드를 결성해서 축제때 함께 공연하자는 마츠오카의 제안을 센타로가 당연히 거절할것이라 생각했던 카오루는 센타로가 자신의 예측과는 반대로 록밴드에 들어가게 되자 센타로에게 실망과 배신감을 느낀다. 게다가 여기에 오기 전 괴로웠던 학창시절까지 떠올리며 카오루는 센타로를 밀어내게 된다..

 

 

 

 

5권..

시시한 농담도 거의 나눌 수 없는 서먹한 관계가 되어버린 카오루와 센타로.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언젠가 다시 연습실에서 카오루와 센타로의 재즈 연주를 들을 수 있으리라 막연한 희망을 놓지 않는 리츠코. 하지만 축제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게된 카오루에게 밴드 참가신청을 하려던 센타로의 짧은 재회는 역시나 삐그덕 거리며 나아질 조짐이 보이질 않는다.  

 

 

 

 

이윽고 축제 날, 밴드부 공연에서 드럼을 치는 센타로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 보인다. 그런데 장비에 이상이 생겨 공연은 중단되고, 파행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것을 해결해야하는 책임이 있던 카오루는 우연찮게 센타로의 속마음을 듣게 된다. 센타로는 마츠오카가 자신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유명해지려고 한다는 것을 듣고 축제 때 그를 도와주기로 했던 것.

 

 

 

 

 

 

그런 센타로의 마음을 알게된 카오루는 피아노 연주로 점점 지쳐가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센타로가 바로 합세해서 둘은 계획에 없던 환상의 연주를 함께 하게 된다. 재즈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친구의 연을 맺게된 이 둘의 갑작스런 균열은 이렇게 다시금 재즈와 음악을 통해서 제자리로 향해간다. 즉흥연주를 통해 곡을 바꾸며, 클라이맥스로 향해가는 이 둘의 연주는, 화해해가는 마음들이 즐겁고 힘차게 뒤섞여 그 어느때의 연주보다 생생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전의 연주들도 좋았지만 이번엔 그 순수한 마음들이 너무나 예뻐서였는지 정말 푹 빠져들었달까!! 멈춰있는 그림들이 절로 영상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이야기의 흐름이 아직 두개 남았다. 하나는 일전에 카오루의 고백을 거절한 리츠코의 마음에 어느틈엔가 카오루를 향한 미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 소꿉친구인 센타로가 자신을 이성으로 생각지 않은 것과, 카오루와 한 반인 덕에 같이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며 점점 카오루의 매력을 발견해나가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리츠코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어떻게 진행될지는 조금 두고볼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표지를 장식한, 이들의 공통적 선망의 대상인 준이치의 이야기다. 학생운동의 실패로 고향으로 돌아오게된 준이치는 아버지와의 의절까지 겪고있다. 하지만 늘 센타로의 선망하는 어른이었던 준이치는 이제 자신이 짝사랑하는 유리코의 마음을 빼앗아간 남자이기도 했다. 짐작은 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센타로, 하지만, 모든 것을 뚜렷히 하기위해 찾아간 곳에는 더 큰 아픔만이 있었다...

 

 

 

 

청춘이든, 어른이든 사람사는 세상은 늘 화기애애할 수는 없다. 그것이 모든이의 염원이라고 해도, 우리는 각자 다른부분을 조금씩이라도 갖고 있고,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어긋나기도 하고, 때로는 삐그덕대다 일이 크게 번지기도 한다. 청춘이라고 함은 이 대부분이 크건 작건 한번씩은 겪는 충돌과 갈등에 처음으로 놓여지는 시기다. 이전과 다르게, 싸움이나 충돌이 분노를 일으키는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상처를 주는 것을 깨닫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갈등에서 인간다움과 가능성을 느낀다. 누군가를 대하는게, 배려하는게, 사랑하는게, 그리고 때로는 거절하는게.. 모든게 구체적으로 필요해지지만, 너무도 생소한 시기, 그래서 요령이 없기에 더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분명 때묻지 않았던 시간임을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그래서 당시에는 잘 알지 못하는 시간. 때로는 친구때문에, 때로는 사랑때문에, 혹은 나중에 그저 한때의 추억이라고 여길 소소한 일들 하나하나에도 씩씩하게 웃다가, 또 하염없이 슬퍼질 수 밖에 없는, 이들은 지금 눈부신 청춘을 빛나는 모습으로 통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즐겁고, 또 어느샌가 응원하고 있다..

 

덧, 코다마 유키 특유의 섬세함과 기발함이 엿보이는 단편도 역시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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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抱天) 6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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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에 이어서 정가는 여전히 모반을 위한 계략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고, 당연히 이를 막으려는 이시경 또한 동분서주 한다. 이야기는, 오늘날의 경상남/북도를 영도하는 조식과 이황을 정가일당의 위협에서 지키며 시작한다. 조식에 대해서는 이시경이 활빈당과 함께 매복하며 정가일당에게서 큰 손해없이 지켜내지만, 퇴계 이황은 조금 아쉽게 되었다. 화마를 미리 예측한 이시경이 이황을 관가로 불러 호위하는 꾀를 내었지만, 이황이 선조에게 바치려고 했던 성학십도(주자학의 개요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는 결국 정가일당에 의해 불에 타거나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후에 이것을 다시 적어서 바쳤다고 한다) 그리고 율곡 이이를 호위함에 있어 정여립이란 자가 나타나게 된다. 이시경과 정가의 예측을 벗어난 그의 출현에, 이이는 어쨌거나 탈없이 길을 지났지만, 그것으로 인해 정가는 정여립을 언뜻 알아보고, 후에 그를 이용하여 모략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조식과 퇴계이황은 같은 나이로서 서로 친하기도 하고, 또 마찰이 있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이 둘의 일화는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특히 퇴계이황이 자신의 자식이 죽고 며느리의 재가를 허락한 것은, 성리학자로서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이 외에도 올곧은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한 나라의 화폐에 얼굴을 그려넣을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다. 이이와 이황을 비교, 대조하면서 풀어놓는 이야기 또한 놓칠 수 없겠다.

 

 

 

 

일단 급한 위험들을 막은 이시경은, 정도령(정가)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날조한 [정감록] 이나 [격암유록] 등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막고, 나라를 혼란으로 빠트리려는 정도령의 음모를 막고자 이제 드디어 예언서를 집필하려 산으로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언제 정도령의 칼날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 이시경은 딸 초희를 초당 허엽에게 맡기게 된다. 딸 초희를 끔찍하게도 아끼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 측은한 마음이 깊게 들었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능력탓에 백성들을 혼란에 빠트리려 하는 정도령의 음모를 모른 채 하지 못하고, 자칫하다간 자신의 예언서 또한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형벌을 받거나 지탄받을지도 모름에도.. 이시경은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있던 것이다.

 

 

 

 

허엽에게 9년이라는 세월에 대해 초희를 맡아주기를 약속한 이시경은 과연 무사히 예언서를 만들어서 돌아올 수 있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단 보류하기로 하고, 앞서 말한 조식, 이황, 이이의 일화들이 크게 한 덩어리로 재미를 주었다면, 다음은 허엽 일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큰 덩어리다. 표지를 봐도 언뜻 알 수 있듯, 그것은 홍길동을 지은 허균이 태어난 가문이다. 더 이상의 긴 설명은 생략. (나처럼 눈치없다면) 충격적이기도 한 반전(?) 뿐만 아니라.. 안타까운 이야기가 한데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일단 보시라..

 

어쨌거나, 이시경이 예언서를 쓰려고 사라진 후 ... 그로부터 이십년 후.. (..지구방위대!?;;) 스토리의 큰 줄기인, 빼놓을 수 없는 정도령. 이시경이 예언서를 쓰기위해 사라진 사이에도 그의 역모는 계속되어왔던 것. 정여립을 이용하여 역모를 꾸미는 정가일당은 위에서 언급된 허엽의 가문에도 묘에 말뚝을 박거나, 수상한 약재를 보내는 등, 지속적인 해를 뒤에서 몰래 입히며 자신들의 계획을 진행시켜 가고 있었다. 잠깐 나이를 먹은 이시경의 모습이 잠깐 등장하지만 길지가 않다. 

 

 

 

 

이시경이 예언서를 쓰기위해 초희를 허엽에게 맡기고 결국 이십년이 지난 시간까지 그려낸 포천 6권. 그 사이에 이시경에게 벌어진 일은 무엇이고, 예언서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이시경과 정가,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7권에서는 그것들이 어느정도 풀어질지 기대된다. (아 이런 구성 정말 기대되면서도 야속하다..ㅠㅠ) 조식, 이황, 이이, 허엽 일가를 인물들과 동인, 서인과 같은 정세에 대해 팩트와 픽션을 능구렁이 처럼 넘나들며 여전히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주고 계신 (실은 거의 다 까먹은 것을 다시금 되짚게끔 해주는;;) 포천, 벌써부터 7권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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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抱天) 6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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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만의, 역사와 재미를 결합한 정교한 팩션의 재미가 여전합니다. 6권에서는.. 저처럼 눈치없는 독자는 반전에 깜놀까지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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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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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자유를 빼앗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선량한 시민들의 목숨을 빼앗아왔다. 이 독재가 결국, 개인의 어느 바닥에서 발현되는지부터, 인류의 어디까지 침몰시킬 수 있는지 <염소의 축제>는 매우 다양한 접근방식과 다층적이고, 다중적인 소설기법으로 펼쳐낸다. 

 

이 소설은 독재가 한참전에 끝난 시대, 우라니아가 모국 도미니카로 돌아와 노쇠한 아버지에게 과거를 상기시키며 시작한다. 두번째는 수십년 전, 견고한 독재가 언제까지고 계속 될 것처럼 트루히요의 군더더기 없는 모습에서 시작하고, 세번째는 안토니오 임베르트 무리가 독재자 트루히요를 암살하려는 날로 시작한다. 여기에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까지 합쳐져 '독재'와 '독재자' 그리고 그 독재에 '저항하는 자들'의 특성과 심리를 바닥부터 관찰하며, 각 시대를 온전히 담아내는 이 세개의 하루는 30년이 넘는 시간을 간결한 글에 압축하여 펼쳐낸다.

 

트루히요의 예처럼, 으레 독재가 오래도록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독재자를 도움으로써 보장받을 수 있는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 그 지배층 뿐만 아니라 피지배층 모두가 갖고 있는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그로인해 발생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만족, 하나뿐인 목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밥그릇 뒤에 놓을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함, 언론의 결탁 등등. 하지만 작가는 독재의 지속성에 대해서 좀 더 깊이있고, 통찰력 있는 근거들을 그려낸다. 독재자에게는 잘못된 아버지 상을, 피지배자에게는 고통을 행복의 과정이라고 보는 잘못된 인식과 두려움을 통한 수긍-길들여짐에서 찾아낸다.

 

그건 그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사랑 때문이었어. 아이가 권위적인 부모를 사랑하면서 채찍질과 구타가 결국은 그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거라고 믿는 것처럼 말이야.

 

트루히요는 스스로 시민들의 진정한 아버지, 아버지들의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온갖 더러운 욕망을 가진 ‘의붓아버지’ 다. 더러움을 속으로 흐르게 해야할 하수도에서 넘쳐나온 오물에 그가 그렇게도 신경이 곤두섰던 것은, 자신과 하등 다를바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우라니아의 아버지가 가족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 딸의 처녀성을 멋대로 희생시킨 것은, 트루히요의 모습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가족에서 국가로 넘어가면서 희생의 범위와 강도가 더 커지는 것은 자명한 것. 권위적인 부모의 폭력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독재자의 무분별하고, 국민을 향하지 않은 국가운영에 대해 국민은, ‘우리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 이라고 믿었던 것은 얼마나 끔찍한 오해인가.

 

그는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져, 비록 총통이 몸은 죽었을지라도 그의 영혼이나 정신 같은 것이 계속해서 그를 지배하고 있다고 느꼈다.

 

게다가, 트루히요의 죽음을 확인하고서도 오랜시간 세포하나까지 지배당했던 로만 장군은 정권을 잡지 못했다. 길들여진 개가 목줄이 끊어졌음에도 도망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을 지배했던 독재자의 아우라를 벗어나지 못하고 거사에 참여했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허무하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독재자의 아우라를 끔찍하게 뒤집어쓴 것은 과연, 로만 장군 뿐일까?

 

이 나라는 짧은 시간동안 남부럽지 않은 독재자들을 배출했다. 트루히요를 찬양했던 많은 도미니카 시민들은 억압뒤에 따라오는 경제의 혜택으로 말미암아, 독재시대를 더 살기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법 및 기간에 대한 간섭과 제재가 거의 없는 독재가 경제적 성장마져 없다면 그것이야 말로 독재자 스스로의 수치아니겠는가. 독재 뒤의 콩고물과 같은 경제혜택을 좇는다면, 언제어디서 또 다른 독재자가 탄생해도 이상할 게 없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가치이고 평등이다. 어떤 통치도 독재를 바탕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밥한그릇은 우리 노동의 대가이다. 자유대신 주어진 밥 한그릇에 만족하는 것은 절망적이다. 그것은 동시에, 누군가가 받았던 고통에 대한 침묵의 대가이기도 했으니깐.

 

그럼에도 우라니아가 제 가슴속에 꼭꼭 감춰둬야만 했던 뼈아픈 과거를 사촌들에게 낱낱이 고백하고, 대답없는 그의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진 것처럼, 우리가 용기있게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다시 이야기 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자신, 사회,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유/무형의 독재자는 인류사에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그것은 한명에게 다수에 대한 책임과 동시에 권리를 쥐어주는 것에 대한 피할 수 없는 리스크 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지켜봐야한다. 독재에 저항하기를 머뭇거리거나 포기함은, 서로의 비극을 방관하는 것이며, 그것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건너편 동료의 고통을 외면하고, 바로 앞의 밥그릇을 핧을때 머지않아 우리는 건너편의 위치에 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목에 걸린, 아름다운 무늬로 세련되게 치장된 독재의 목줄을 그저 바라보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직무유기다.  

 

우라니아가 무표정으로 고백한 과거의 진실이 그 사촌들을 무너뜨렸듯, 무표정의 글에서 독재는 더 지독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독재자의 모습들은, 예상보다 큰 분노의 감흥이 없었다. 문득 스스로에게 놀라며, 허탈해졌다. 비극에 길들여지는 비극, 이 얼마나 끔찍한가. 자유의 훼손을 방관했던 시민들은 독재자의 가장 큰 피해자다. 우리는 인간의 가치를 건, 그 지난한 싸움에서 결코 길들여져서는 안된다.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점철된 시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 시대의 저항방식을 통해 잠시나마 세상을 바꾸려는 물결에 함께했었다. 그리고 결과에 좌절했고, 나또한 내 밥그릇 찾아 자연스레 뒤돌아 가는 것을 보며 스스로에게 좌절했었다. 그래서 이 글은 내가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에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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