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 나에게서 가장 멀리 뒤돌아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
김태형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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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하루하루에 조바심내고 있다. 그저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현듯한, 그러니까 으레 안고 살아가는 '흔한' 불안이 아닌, 내가 선택한 삶의 방향, 그러니깐 정말로 삶의 지속성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 그 길이 내게 요구하는, 하루하루 무언가 어제보다 달라져야만 하는 강박감은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았던 반복적인 패턴에서 나를 더욱 채근했다. 거기다 최근에는 전개가 빠르거나 혹은 적어도 분량적인 부담이 적거나, 이해 자체가 어렵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로 만났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는 한장 한장, 문장 하나 하나 읽어 내려가는게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느릿느릿 쉬엄쉬엄 읽다 내려놓다를 반복하고 나니, 한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처음에는 책에 대한 순수한 받아들임 보다는, 이런 질문들이 더 강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왜 이 책에 집중하지 못하는가, 시인이 쓰는 언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나의 언어적 사고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 아닌가. 물론 그것들은 기본적인 이유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시'에 대한핑계를 붙들고 있어야 할지, 조금은 한심스럽고 막연한 심정이지만 어쨌든 그랬다. 반면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왜 이 책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지 못하는지. 왜 너무도 쉽게 길을 잃어 버리는지...

 

 

두번을 다녀온 사막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이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은 사막위에서, 그리고 수많은 별 아래에서 시인 김태형이 느낀, 사막에 대한 기록이면서 헌사이고, 자신에 대한 성찰이자, 세상과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사막을 여행하면서 받아들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막에 대한 정보, 혹은 사막에 대한 흔한 예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내겐 그것이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야기. 한 곳에 잠깐 머물며 그곳에 대하여 풀어놓고, 또 이동하여 다른 곳을 예찬하는, 그것이 많이 느렸다. 김태형의 기록은, 달려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읇조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동하는 곳에서, 긴 시간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사막의 모래를 바라보거나, 혹은 서서히 저물어 가는 황혼을, 그리고 영원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였다.

 

 

뉘엿뉘엿 펼쳐지는 언어에서 나는 조금은 빠른 이야기의 전개를 원했던가. 아, 나름의 고민끝에 나를 돌아본 바로는 그랬다. 김태형의 이야기는 사막을 가로질러 달리고 있지 않았다. 때로는 모래 바닥에 바짝 웅크려 바라보고, 때로는 몸을 곧게 펴서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앞으로 나가야하는, 그래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멈춰있는 이야기 같으면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느릿한 발걸음은 앞으로 향하는 것보다 더 값진, 안으로 향하는 이야기였다. 얼핏보면, 삶을 움직일만한 대단한 깨우침도, 거창한 예찬도 없을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돌아보고, 돌아보는 고백들은 너무나 솔직하고, 또 아름다웠다. 물은, 음료보다 자극이 없지만, 질리지 않고 늘 하루의 일부를 구성하듯, 김태형의 이야기들은 그랬다. 모래폭풍의 스펙터클함을 침튀기며 설명하는 것이 아닌, 고요한 태풍의 안쪽에서 하나하나 풀어내는 이야기와 같았다.

 

이 별 아래에서 나는 내 한마디 말을 삼키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잊지 않기 위해, 사막의 황량한 아름다움에 미쳐 온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내 가슴속에 남은 한마디 말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황량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281)

 

그것을 느끼자, 시선은 아주 약간 달라졌을 뿐인데도, 그의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 사실 그의 움직임은 그렇게 느리지 않았었다!) 사막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가 무슨말을 하는 지, 조금씩 더듬어 볼 수 있었다. 그는 포기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자꾸로 안으로, 안으로 하는 말들이 주는 묵직함을 조금은, 그러니깐 아주 약간은 더듬어볼 수 있게 되자,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그리고 그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그리고 그가 언어로 빚어내는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인류와 지구와 생명을 묶어내는 초월적인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이유로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어졌다. 그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시처럼 강렬해서, 그만큼 소중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다. 차를 타고 먼저 달려가 바라보길 바랐던 내가, 그의 뒤 꽁무니를 최대한 천천히 따라잡기 위해서 책을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사막의 형태와, 모래,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믿음과 순수. 그로인해 그 어느때보다 더 깊이 들여다보는 우리 자신의 모습들. 그가 그만큼 오래도록 바라보았던 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마음의 허기와 그리움을 눌러담았을 그의 글을 이뤄놓은 글자 하나하나가 별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신과 나, 그리고 무엇인가를 마주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314)

 

가치있고, 좋았던, 그동안 접했던 몇권의 여행에세이들이 내게 주는 감정이 '저 곳에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면, 김태형의 글이 내게 준 감정은, '저 곳을 느껴보고 싶다.' 였다. 비록 그처럼 풀어내는 것은 어불성설 일지라도 말이다.

 

 

사막이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사막에 있는 모든 해와 달과, 별과, 모래와, 동물과, 사람과, 그리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눌러 담은 그의 이야기. 느릿하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그의 '느낌'들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수록, 내 안으로 안으로 들어와서 깊고 맑은 눈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가 사막을 두번째로 찾은 이유는, 첫번째 여행에서 보았던, 버려진 신발이 큰 이유였다 한다. 내게 강하게 남은 기억은, 그의 이야기와, 그가 보여준 별들 이었지만, 아마도 내가 언젠가, 그리고 반드시 다시한번 이 책을 펼칠때는, 남들은 시시하게 생각될 그 무언가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사막으로 들어가기전 눈을 씻어낼 바위샘물과도 같은게 아닐까... 눈을 멀게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정 같은.

 

나 역시 그러기 위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었을까. 나를 찾아서, 다시 한 번 자기가 되기 위해서. (298)

 

이 책은 내게 우연찮게 찾아왔다. 전혀, 정말로 예기치 못하게. 의아했던 처음의 기분과는 달리, 이제는 그것이 참 고맙다. 사막의 모래 사이, 밤 하늘의 별들 사이, 그리고 사람과 세계, 자신과 자신 사이의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따라가는 것이 일생이라면, 그 일생이 비로소 아름다움이라면 내가 이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자신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그림자로 뒤덮인 밤하늘을 맞이할 것이다. 그 아래 나는 밤새 별을 보며 추위에 떨고 있을 것이다. (326)

 

 

언젠가 이 길을 지나갈 것이라는 오랜 예감마저 이제는 나에게 옛 이름으로 남을 것이지만, 나는 들판을 향해 자꾸만 뒤돌아보고 있었다. 누가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을까. 내 이름은 뒤돌아보는 순간 저 멀리에서 무한이 되고 있었으리라.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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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신화편 - 하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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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함께-신화편>하권은, 전편의 [성주전]에서 이어지는(물론 이야기는 전혀 별개) 가택신의 탄생 배경인 [녹두생이전]과,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었을 강림차사가 차사가 되기전의 이야기인 [강림전] 으로 구성되어있다.

 

 

[녹두생이전]의 모태한량인 남선비 란 자는 많은 자식들과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간다. 아내 여산부인이, 궁여지책으로 자신이 시집올 때 가져온 패물을 팔아 남선비에게 주며, 흉작이 난 나라에서 쌀을 팔라 했지만, 남선비는 쌀을 팔러갔다가 쌀을 팔기는 커녕, 노일자대란 여인에 의해 모두 잃고 만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지만, 노일자대의 음모에 여산부인까지 목숨을 잃고, 노일자대의 음모를 수상히 여긴 자식들은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중 막내인 녹두생이는 억울하게 죽은 엄마를 되살리려 천상으로 향한다..

 

 

[강림전]의 강림도령은 힘이쎄고 크고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령(관가에서 심부름을 하는 직책)이었다. 관장은 차라리 사령자리라도 주고 그의 사고를 방지하려 했던 것. 어느날, [할락궁이전] 에서 홀로 살아남았던 막내 딸이 다시한번, 처절한 살육을 저지르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통에 사령은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을 데리고 오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부인의 지극정성 덕에 무사히 저승에 닿아 염라대왕을 데려오지만, 염라대왕은 잔혹한 살육을 저지른 이는 죗값을 치르게 하는 동시에, 강림을 차사로 임명한다...

 

 

[강림전]의 강림도령 역시 앞의 [녹두생이전]의 남선비와 비슷한 구석이 있긴 하다. 마음씨 곱고, 한결같은 마음의 부인을 몰라보는 큰 잘못을 지은 것 말이다. 둘다 옆에 있는 부인을 제대로 몰라보았지만, 남선비의 잘못은 그 경중이 훨씬 더 컸다. 더욱이 그 잘못으로 인한 결과가 가히 끔찍했다. 하지만 [강림전]의 강림은 다행이 그 잘못의 경중이 (상대적으로) 작았고, 끝내는 부인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게 되었다. 그럼에도 강림의 잘못이 용서되진 않았을 터. 강림이 끝끝내 부인에게 못다한 말을 가슴에 품고 부인의 장례행렬을 지켜보는 모습은, 그런 강림이 애절한 마음을 잘 표현해 주었다...

 

 

[강림전]에서 또 눈여겨 볼 것은, 강림차사가 사람의 수명을 정해놓고 기록한 적패지를 찢어 버린 것이다. 정해진 운명을 알고 남은 날들의 가치를 업신여기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문서를 찢는 강림의 모습은, 우리가 앞날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기도 했다.

 

<신과함께-신화편>을 끝으로 <신과함께>시리즈는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화에 대한 발견과 재해석, 그리고 권선징악에 머무르지 않고, 그 속에서 현실에서 깨닫고 다시 바라봐야 할 것들을 담아내는 능력은 정말로 대단하다는 말 밖에에는 할말이 없다. 웃고, 뜨끔하고, 마음이 저릿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오래도록, 그리고 자주 다시 꺼내고 픈 만화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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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신화편 - 중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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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함께-신화편>2권은, 이전의 1권에서 잠깐 등장했던 꽃감관의 이승적 이야기인 [할락궁이전]과, <신과함께-이승편>에서 등장했던 가택신의 탄생을 (부분) 그려내는 [성주전]으로 구성되어있다.

 

 

 

 

[할락궁이전]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왕자와 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부유한 나라(원진국)의 공주 원강아미는 가난한 나라(김진국)의 왕자 사라도령이 식물을 연구해서 백성들을 배불리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꿈에 반한다. 둘은 무사히 혼례를 마치지만, 가난한 나라의 왕자인 사라도령은 자격지심을 떨치지 못한다. 이렇게 사랑을 순수하게 이어가기 힘들게 만드는 환경의 차이와 그로인한 자격지심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어쨌든 어느날, 사라도령은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천상에서 꽃감관직을 맡으라는 계시를 받고, 고민끝에 그것을 수락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주 험하고 끔찍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 1권에서 이 꽃감관은 욕심많고 비겁한 소별왕을 간접적으로 도왔는데,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바로 이 [할락궁이전] 이다. 꽃감관의 피눈물의 이유를 알 수 있는...

 

 

 

 

 

[성주전]은 옥황궁을 본따 만든 저승의 대별궁을 재건하게 되며 시작된다. 뛰어난 목수이자 막막부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황우양은 이 대별궁의 재건을 위한 목수로 스카웃 된다. 하지만 이미 연장을 놓고 막막부인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던 황우양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전전긍긍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는 황우양을 보고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가슴이 시키는 건 하고 살아'

 

그리고서는 연장을 손수 만들어주는 막막부인의 모습은 정말 '내조의 여왕' 이라 부르고 싶다. 하지만, 저승에 가서 대별궁을 재건하러 가는 틈에, 소진항이란 자의 속임수에 속아 막막부인의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

 

 

 

 

 

[성주전]이 가택신의 프리퀄격인 이야기의 일부이면서, 위에 언급한 것처럼 꿈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지만, 한가지 더 재밌는 점은, 열정을 빙자한 대가없는 '봉사'를 강요하는 풍토에 대한 꼬집음이다. 그것은 사실 [할락궁이전]에서 신들조차 간과함으로써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었던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 발생하고 있는, (열정에 의해 움직이기 전에) 어떤 의무로써 열정을 강요받는 세태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이런 비판은 자칫 '열정이 없느냐'라고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문제임에도, 작가는 대담하게 그려낸다. 어쨌든 이렇게, 성주전은 권선징악의 이야기 안에서도 기막히게 현실을 그려내는 능력을 또한번 보여준다. 부록으로 수록된, [신과함께-이승편]에 등장했던 철융신의 이야기 또한...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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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신화편 - 상 신과 함께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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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저승편과 이승편으로 한국적인 이야기에 대한 재미와 가능성을 보여준 주호민 작가 <신과함께> 시리즈의 마지막, '신화편'의 이야기는, 저승편에서 등장하는 차사들과 가택신들의 과거는 물론, 우리가 단군신화로만 알고있는 건국 신화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신화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기존 신화에 대한 각색 및 창작) 1권에서는 이승과 저승의 건국 신화와 해원맥과 덕춘이 차사가 되기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대별소별전] 은 이승과 저승의 왕인 대별왕과 소별왕의 이야기다. 하늘과 땅의 왕인 천지왕은 이승에서 독재를 일삼으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수명장자를 제지하기 위해, 두 아들이 세상을 다스릴 준비를 점검하기 위해 대별왕과 소별왕을 땅으로 내려보낸다. 동생 소별왕자의 자만과 서툰솜씨 탓에 대별왕자가 겨우 수명장자를 제압한다. 이후 꽃을 피우는 것으로 다시한번 합을 겨룬 결과, 이승은 소별왕자가, 저승은 대별왕자가 맡게 된다. 벌레들의 탄생또한 풀어놓는 이야기는 나아가 해와 달이 하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신화적인 이야기는 물론 현대까지 이어진 문제와 해법까지도 제시한다.

 

 

 

 

수명장자라는 독재자가, 가축을 기르는 법을 가르쳐 주는 등, 먹고 사는 문제를 쉽게 해주었다고, 자유를 빼앗긴 것에 대해 아랑곳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이후 나타난 소별왕 또한 백성들의 위치에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백성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탁상행정'을 펼치는 것이야 말로, 현대에서도 여전히 일어나는 문제였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별왕이 해와 달의 문제를 백성들 스스로 '자존감'을 깨우치게 함으로써 풀어내는 것은, 독재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현대의 사회를 살아가는, 정치를 대하는 모든 이들의 태도로 까지 확장되며 빛을 발한다.

 

 

 

 

[차사전]에는 해원맥과 덕춘이가 어떻게 차사가 되었는지의 이야기다. 이승에서 인간은 점점 폭력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내것, 내주변의 이익만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무예가 매우 뛰어남은 물론이거니와 철저하게 규율과 옳고그름에 양보가 없던 해원맥은 그 올곧음 때문에 미움을 사 혹한의 변방에 배치되고, 그곳에서 오랑캐를 소통하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해원맥은 그 틈에서 아무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죄 없는 아이들까지 희생당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볼 수 없었다. 그렇게 누구보다도 냉정하고 앞뒤 꽉막힌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을 희생할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지닌 해원맥과 그가 베풀었던 은혜를 잊지 않았던 덕춘은 나란히 차사가 될 수 있었다. 해원맥과 덕춘의 과거, 즉 프리퀄의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간접적으로 인간의 어리석고 악랄한 탐욕을 드러내주는 차사전. 마지막에 이 둘의 이름이 세번 불릴 때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듯 했다. 아... 그래도 다행이야.. 라는 생각과 함께..

 

어쨌든, 세상의 탄생과 함께 해원맥과 덕춘의 과거까지 풀어낸 <신과함께-신화편>상권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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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는 외박중 10 - 완결
원수연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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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담당하고 있는 톱스타 세지가 기습적으로 교제 사실을 밝힌 후, 약간 혼란스러웠던 매리의 마음을 비롯한 매리와 정인과의 관계도 다시금 정리되는 듯 보인다. 그리고 무결의 어머니가 한국으로 와서 이뤄진, 매리 아버지와의 상견례 자리. 거기서 매리와 무결인 초반의 긴장감을 살짝 벗어난 이후, 매리의 아버지가 진심으로 마음이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 자리가 된다.. 하지만 그 후, 매리와 무결, 정인은 그동안 자신들을 떠밀었던 불편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후, 정말로 자신의 마음을 찾아 일년간의 여행을 떠나는 매리.....

그리고, 그녀가 찾아올, 진정한 자신의, 자신을 위한 '마음'.....

 

이 만화를 처음 접할 때, 나는 주인공인 매리와 무결이의 빠른 전개(?)에 급 당황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만화에 별을 꽉 채워 줄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렇게 급하게 진행된 매리와 무결의 결혼은, 이 <매리는 외박중>의 시작에 불과했던 것을 알게되고 적잖이 당황하기도.. (보통의 이야기에서 결혼이라 함은 엔딩의 여운이 짙으니깐..)

 

최대한 끝까지 끌어가서 마지막에 빵- 하고 터뜨려야 할 결혼이라는 지점을 오히려 초반에 배치하며, 거기에서 이중결혼의 이야기를 배치했을 때, 나는 이 이야기가 이렇게 긴 시간동안, 긴 흡인력을 가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 두 남자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한 여자의 모습으로도 치부될 수 있는 이야기를 원수연 작가는, 사랑과 결혼, 현실과 이상, 결혼을 대하는 당사자와 부모의 입장에 대한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든 결혼이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돌아보는 과정을 빼어나게 표현해냈다.

 

심리묘사에 대한 것을 약간 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주인공 매리 뿐만 아니라 무결이와 정인, 결혼에 대해 큰 환상과 기대를 갖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매리의 친구 민형, 그리고 매리를 정말로 사랑하고 아꼈던 매리의 아버지까지. 누구의 마음도 폄훼되거나 무시되지 않고, 성실하게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것은 작가의 준비와 공부 덕이 아니었을까. 다양한 입장의 다양한 생각들, 옳고 그름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고, 또 이해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일은, 감히 생각컨데 보통의 준비와 조사로는 쉽지 않은게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사랑과 결혼에 대한 통찰, 기존관념에 대한 재확인 뿐만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의 재조명은 정말로 결혼을 앞두고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다양한 고찰과 시각, 그것을 조금 특이하게 겪는 이들의 심리또한 일품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이 <매리는 외박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진정한 자신의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살면서 여러가지를 신경쓰다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벗어나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밥먹는것보다 쉬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죽도록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자신의 선택이 남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경우라면 우리의 선택은 진정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될 때가 있다. 그 중에서 결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게다가 가장 광범위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선택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인에 대한 배려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서툰 것은, 자신의 마음에 대한 솔직함과 자율성 인지도 모르겠다. 매리는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을 시험당하고 또 흔들리는 동안, 배웠던 것들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마음을 주변에 휘둘리지 않은 채로, 온전하고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그리고 동시에 상대방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이며, 나아가 상대를 더 사랑하고 아끼기 위한 전 단계이다. 더불어 작가는, 이것이 비단 결혼에만 필요한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무척 중요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세상에서 결혼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인류가 가장 보편적으로 겪는 중요한 선택이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때 겪는 고통또한 다른것에 비해 크면 컸지 작지 않을 것이다. <매리는 외박중>은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사랑에서 결혼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인물들을 섬세하게 묘사해가며, 우리가 왜 자신의 마음을 휘둘림 없이 바라보아야 하는지 보여준 작품이었다. 작가가 선택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그 선택의 중요성으로 말미암아 결혼을 가지고 이야기 되었지만, 세상의 어느 선택의 순간, 혹은 이미 선택된 순간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정말로 어려운 일,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것이, 결국은 모두를 위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 만화책 <매리는 외박중>, 결혼을 앞두고 불안해 하는 이에게는 꼭, 그렇지 않은 이에게도 한번은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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