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는 다카기와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 지요코와 나 그리고 다카기가 더해진 일종의 삼각관계가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그중의 패배자에 해당하는 내가 마치 운명의 갈림길을 예견한 듯한 태도로 도중에 그 관계 밖으로 도망친 것은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는 필시 바라던 바가 아닐 것이다. 나 자신도 얼마간 불길이 잡히기도전에 서둘러 화재 현장에서 철수해버린 듯한 기분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처음부터 이떤 의도를 갖고 일부러 가마쿠라에 간 것으로 보이겠지만 질투심만 있고 경쟁심을 갖지 못한 내게도 그에 상응하는자만심은 이따금 음침하고 어두운 가슴 어딘가에서 어른어른 피어올랐던 것이다. 나는 자신의 모순을 충분히 연구했다. 그리고 지요코에대한 자만심을 끝까지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없게 하기 위해 다른 사상이나 감정이 내 마음을 빼앗으러 어수선하게 교대로 찾아오는 번거로움에 시달렸던 것이다.
- P279

이치조는 세상과 접촉할 때마다 안으로 몸을 사리는 성격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자극을 받으면 그 자극이 차례로 회전하여 점점 깊고촘촘하게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어디까지 파고들어도 한계를모르는 똑같은 작용이 연속되어 그를 괴롭힌다. 끝내는 어떻게든 그내면의 활동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랄 만큼 괴로워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저주처럼 끌려간다. 그리고언젠가 그 노력 때문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혼자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을 안게 된다. 그리하여 미치광이처럼 지쳐간다. 이것이 이치조에게는 생명의 근간에 가로놓인 일대 불행이다. 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안으로, 안으로만 향하는 생명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 밖으로 몸을 사리게 하는 수밖에 없다. 바깥에 있는 사물을머리로 옮기기 위해서는 눈을 사용하는 대신 밖에 있는 사물을 머리로 바라본다는 심정으로 눈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 단 한사람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마음을 빼앗는 훌륭한 사람이나 아름다운사람이나 자상한 사람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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