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퀼로스의 극을 보던 청중들이 복수의 여신의 등장에 기절할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는 것은유명하다. 시인 이비코스 죽음 후, 복수의 여신의 등장과 때마침 두루미의 출현은 청중이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고 살인자들은 그 공포에 못이겨 소리를 지름으로 발각된 기록도 신화와 함께 전해진다.
고대의 시가 가진 디오니소스적인 힘은 지워지고, 시는 얌전히 길들여졌다.






시가 불러일으키는 격렬한 정서적 반응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포phobos와 연민‘이라 부른다. 원어에 따르면 ‘공포란 급작스런 놀라움, 즉 ‘경악‘에 가깝다고 한다. 연극을 보며 ‘경악‘을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될지 모르겠다. 온갖 허구에 익숙한 우리야 공포영화를 봐도 눈 하나 깜짝 않지만, 그리스인들에게는 재현과 현실 사이의 존재론적 틈이 그리 넓지 않았다. 가령 눈앞으로 열차가 달려드는 영화를보고 경악하는 뤼미에르 형제의 관객들과 비슷했다고 할까.
‘연민‘ 역시 그저 불행을 당한 이웃을 향한 동정 이상의 것이었다.
우리는 남의 불행을 느낄 때조차도 감정이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들 사이에 아직 높은 벽이 없었던 그리스인들은남의 불행을 거의 직접적으로 느꼈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타인의 불행을 언제라도 내게 떨어질 수 있는 내 불행으로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연민이었다. 따라서 이 역시 우리의 ‘동정‘과 달리 매우 강렬한 감정 상태였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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