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일  -김사인

 

이 도 저 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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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아니어도, 밤의 어느 시간에든 잘 어울리며 위로가 되는 시.

가끔은 밤과 새벽 사이를 즐길 때가 있다. 

그 순간의 고요하고도 차분함이 좋다.

그러나 가끔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술렁거리며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저 시처럼,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다는 거다.

조용함을 함께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기대어질 일이다.

 

 

 

 

 

밤 - 정지용


눈 머금은 구름 새로
힌달이 흐르고,


처마에 서린 탱자나무가 흐르고,

 

외로운 촉불이, 물새의 보금자리가 흐르고......

 

표범 껍질에 호젓하이 쌓이여
나는 이밤, '적막한 홍수'를 누어 건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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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

밤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서 더욱 빠져든다.

왠지 모르게 자꾸 읊조리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별 - 이병기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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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으면 그냥 달도 보고 싶고 별도 보고 싶어지는 시.

밤하늘 별이 총총총... 그런 풍경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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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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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은 대개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방식에 근거해 타인을 판단하고, 거기에 맞춰 사람을 가려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러한 분류와 경계는 잠시 내려놓아도 좋으리라.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는 신영복 선생의 유고 모음집이다. 그의 삶은 크게 감옥 이전 20년, 감옥 20년, 그리고 감옥 이후 20년으로 나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같이 징역 살았던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동창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20년간 옥살이를 일명 ‘나의 대학 시절’이라 일컬었다. 출소 후, 신영복 선생은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는데, 결국 그에게는 세 개의 기간 하나하나가 모두 ‘대학’이었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감옥에서의 그렇게 긴 세월이라니, 누구보다도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힘들고 고통스럽던 징역살이를 토로하기보다는 거기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의식과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게다가 사람들이 겪었던 사회의 실상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꽤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글은 잘 몰라도 무식이 더 날카로운 통찰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노인의 한마디.
집을 그릴 때 집을 짓는 순서처럼 주춧돌부터 그리기 시작한 옛날 목수.
그리고 교과서가 아닌 당사자들의 삶에서 바로 듣는 생생한 역사의 순간 등등.
  신영복 선생은 수많은 재소자들과의 만남이 그 죄의 질과 양을 떠나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충격과 경이의 연속이었노라 언급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겸손한 마음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시선이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다. 신영복 선생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발견할 줄 아는, 자신의 언어는 뒤로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교감할 줄 아는 분이셨던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처음 만났어도 잠깐만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재소자들을 만나면 편견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본인들의 넘치는 자신감과 달리, 죄가 있든 없든 그냥 눈앞의 사람조차도 제대로 바라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저는 어느 개인에 대한 이해는 그가 처한 처지와 그 개인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p.37)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이해에서 출발하여 사실보다는 진실에 주목하고 그 사람과 그 처지를 함께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세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방금 이야기한 '관계'의 문제입니다. 대상을 대상으로 저만치 떼어 놓고 인식한다는 것은 적어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부정확하고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p.38)


  

이 책은 그 외에도 자본주의의 환상과 열등의식, 존재론적 패러다임 등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 대해 신영복 선생은 관계론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가치에 대한 이야기, 대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의 단조로웠던 고등학교 시절이라든가 붓글씨와의 인연처럼 살아생전의 추억들, 손글씨를 직접 볼 수 있는 미발표 유고까지 실려 있어 그의 삶을 한층 더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는 신영복 선생의 담백하고도 소탈한 문체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던 책이 아닌가 싶다. ‘시냇물’이라는 그 동요처럼 모두가 시냇물에서 강물로, 강물에서 바다로 나아갈 수 있기를.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며 다 함께 단단히 뿌리내리고 밑동을 키워갈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응원해본다.

 

대나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무들은 마디나 옹이로 먼저 밑둥을 튼튼하게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일상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새 학교를 시작하든, 묵은 학원을 다시 시작하든, 새직장을 시작하든, 어제의 일터에 오늘 다시 불을 지피든, 모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맨 먼저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짧고 많은 마디입니다.(p.203, <죽순의 시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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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밝은 연두색들이

점점 초록색으로 짙어가는 5월.

날씨는 초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나무들은 제법 바람에 일렁이며 춤을 춘다.

 

언제나 그러했듯 일정 시간이 지나면 꽃잎은 떨어지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서운하지 않다.

대신 그 자리에는 한껏 싱그러움을 뽐내는 이파리가 가득 채워질 것이기에.

바로 그 초록색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만 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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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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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 순간의 장면들이 다시 펼쳐진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대화라든가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행동,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와 일상적인 소음 등등. 그리고 그 순간의 기억들은 때때로 우리의 삶 속에서 힘든 마음을 토닥이며 큰 위로로 다가온다.
  어떠한 것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그때 상대가 했던 말의 의미라든가 그 말이 갖는 느낌, 무게감 같은 것들. 또는 평범한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꽤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빛의 호위』. 작가의 여러 작품이 묶인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마치 책 한 권을 읽은 기분이랄까. 차분하고도 따뜻한 온기를 나눠 받는 기분이다.
  사진잡지사 기자인 ‘나’는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젊은 사진작가 ‘권은’을 인터뷰하게 된다. 그녀는 친구가 준 필름 카메라로 사진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남기는데 화자는 그녀가 누구인지 바로 떠올리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둘 스치는 기억의 조각 속에서 마침내 화자는 이십여 년 전, 자신과 권은이 아는 사이였음을 떠올리게 된다. 화자는 반장이기에 그녀의 결석 때문에 찾아오지만, 폐허가 되어가는 동네에서 온기 없는 가난한 방에 혼자 있던 그녀가 왠지 모르게 신경 쓰여 읽다 만 만화책이라든가 스노볼에 들어가는 건전지 같은 것을 챙겨주게 된다. 그리고 안방 장롱에서 우연히 발견한 필름카메라를 훔쳐 권은에게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학교에 다시 나오게 된다. 그렇다고 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카메라가 그녀에게 있어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이자 희망이었고 그 시절을 버티게 해주는 무언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근데 여기서 뭘 하는 거야? 권은은 대답 대신 손짓으로 자기 옆에 앉아보라는 표시를 해 보였다. 내가 주춤하며 옆에 앉자, 테두리가 흐릿해지고 있는 발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권은이 말했다. 발자국 안에 빛이 들어 있어. 빛을 가득 실은 작은 조각배 같지 않아? 어, 그런가...... 여기에도 숨어 있었다니...... 뭐가? 셔터를 누를 때 카메라 안에서 휙 지나가는 빛이 있거든. 그런 게 있어? 어디에서 온 빛인데? 내가 관심을 드러내자 권은은 그때까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껏 신이 난 얼굴로 날 바라봤다. (p.32, 《빛의 호위》) 

 


잘 보이지 않는 곳의 빛들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낼 줄 아는 그녀.
‘빛의 호위’라는 제목처럼 밝은 빛에 휩싸이는 듯한 부드러운 여운이 한동안 지속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집의 다른 단편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기억은 망각보다 각인의 속성을 더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번역의 시작》에서는 뻔뻔한 태호의 행동 때문에 화도 났지만, 화자의 서툰 영어를 기다려주고 언어를 초월하는 교감 능력을 보여줬던 안젤라라는 존재가 있어 무척 고마웠다. 한편 《사물과의 작별》에서는 서군이 잡혀간 것에 대해 고모가 그 긴 기간 동안 자신을 탓하며 미안해한 것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기억은 그처럼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고마운 사람은 여전히 고맙고, 미안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영속성을 지녔나 보다.
  가끔 기억 속에서 우리를 찾아와 마음을 두드리는 누군가들. 그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작은 힘이 되는 그런 존재로 기억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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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란 게 참 신기하다.
홑꽃들도 예쁘지만 겹꽃들도 저렇게 예쁘다는 사실.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소담하니, 보고 있노라면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동글동글 귀염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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