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름이 가득했던 하늘,
안개와 먼지로 뒤덮였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다.

 

늘 다시 파란색으로.
그것은 아마도 가을이 가지는 항상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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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신메뉴도 많고 다양한 소스의 치킨도 많지만 가장 무난하게
가족들이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치킨을 주문했다.
주문한 곳은 나름 이름 있는 곳.
쉽게 말해 유명 연예인이 CF를 찍고 어느 동네에나 두루 매장이 있을 법한 그런 브랜드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데 치킨이 도착하고 보니 먹음직스럽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정.말.맛.이.없.었.다.
그래서 충격이었다.
아니,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고 하는 게 튀김인데,
신발도 아니고 닭을 튀긴 것뿐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두꺼운 튀김옷+ 기름 가득 흡수 + 닭 자체 군데군데의 지방을 함께 먹는 식감이었는데
배고팠어도 도저히 한 개 먹고는 못멋겠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니 이런 후라이드에 양념소스를 버무린 들 양념치킨이라고 맛있을 리가 있나.

 

 

닭 자체가 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격이 싼 것도 아니면서 맛이 이 모양이라니!!!
무엇보다 후라이드는 치킨의 가장 기본 아닐까 싶은 것이다.
특히나 이름 있는 곳에서 주문했는데 맛이 이 모양이면 정말 배신감이 샘솟는다.
이런 건 원래 닭 튀기는 방법이라든가 기본적으로 교육을 받고 가게를 오픈하고 그렇지 않나?
그런 게 없을지라도 본인들 것 딱 먹어보면 알 텐데, 어쩌면 치킨이 이렇게 맛없을 수가 있는지...
우와-. 이 집은 치킨 정말 못하는 집이구나 싶었다.
그렇다.
어디 뭐 같은 브랜드 다른 지점도 다 이런 맛이겠는가.
이 집이 문제인 거라 생각하며... 그냥 다시는 이 집에 주문 안 하기로 결심한다.

 

 

원래 치킨은 식어도 맛있는 게 치킨인데......
닭고기는 사랑인데...
치는님은 최고인데...
오늘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배우게 되었다. 치킨도 복불복일 수 있다는 거.
그나저나 어쩐다. 이 치킨은 글렀다.
크크큭. 웃음이 나오지만 웃겨서 웃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아, '계륵'이란 말이 생각난다.
치킨과 계륵. 이 절묘한 상황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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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에는 두 개의 펜이 있었다.
겉으로 보았을 때 펜들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둘 다 양쪽으로 쓸 수 있는 펜이었는데 한쪽은 푸른색, 다른 한쪽은 붉은색의 뚜껑을 가지고 있었고

펜 몸톰은 검은색을 바탕으로 그 위로 단순한 무늬가 덧그려져 있었다.
그 디자인도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지나치는 행인 입장에서는 그것도 잘 모를 일이다.

그나마 차이가 나는 것은 두께였다.
하나가 다른 하나에 비해 좀 더 두껍다는 정도.

 


펜 근처에는 말쑥한 차림의 한 남자가 서 있다.
분위기만 봐도 펜을 팔기 위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부드러운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남자는 목소리를 높여 사람을 끌어모으지도 않았고,
구경하려고 다가온 사람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듯 섣불리 다가서지도 않았다.
잠시 후, 그저 조용히 미소 한 번 띄더니 말없이 펜을 주워든다.

 

 

남자는 두 개의 펜 중 얇은 펜의 푸른색 뚜껑을 빼고 화이트 보드 위에 크게 테두리를 그린다.
푸른색이 나오는 쪽은 형광펜처럼 직사각형의 두툼한 펜촉이었는데
남자가 그린 선은 원에 가깝기보다는 그저 자유롭게 그린, 둥근 형태의 끈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남자는 자신의 몸통보다 훨씬 큰 그 공간을 빠른 속도로 쓱쓱 칠하기 시작했다.
붓으로 칠하는 것처럼 시원스럽게 금방금방 채워지는 공간.
그러자 가장 처음 든 느낌은, 어? 저래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과 약간의 당황감이었다. 
시연을 하기 위해서라면 좀 더 작게 그렸어도 될 텐데 말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으니 이쪽도 괜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남자는 저 넓은 공간을 다 채울 모양이니까.

 

 

펜촉 끝에서는 선명하고도 깊은, 푸른 파랑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쾌청한 하늘 한쪽을 뚝 떼어놓은 것 같았는데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러한 색깔이 나올 수 있는지 모두 놀라워했다.

푸른색으로 공간을 채웠으니 다음에는 펜 반대쪽의 붉은색 뚜껑 차례다.
파란 바탕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남자.
이 순간, 남자는 상품 판매원이라기보다 예술가 같은 느낌이다.

그는 마치 원주민의 공예품에나 볼 수 있는 정교한 무늬들을 붉은색 펜촉으로 쓱쓱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푸른색 위에는 붉은색이 아닌 모든 색깔들이 다 등장한다.

선명한 빨강, 노랑, 초록, 연두, 노랑, 자주, 남색, 보라 등등.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걸까. 궁금증과 감탄도 잠시, 우리는 모두 남자의 다음 행동에 주목한다.

 

이번에는 몸통이 좀 더 두꺼운 펜을 잡는다.
뚜껑을 개봉하자 푸른 펜촉이 확실히 더 크고 두꺼워 보였다.
남자는 또 다른 화이트보드에 아까와 같은 큰 테두리를 그렸고 이번에도 빠른 속도로 그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진다.

이번에는 진하면서도 두께감 있는 질감으로, 푸른색에서 하늘색까지의 그러데이션이 펼쳐진다.
게다가 그 안에는 펄이 들어가 있었는지 푸른색 위로 반짝거림이 보였다.
붉은색은 더욱 신기했다. 펜 끝에서 홀로그램이 쏟아졌다.
펜끝에서 은색이 나오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무지개, 홀로그램이 물길처럼 펼쳐졌다.

신기하면서도 예뻤다. 너무나 예뻐 발을 동동 구를 만큼.

 


남자는 먼저 그렸던 그림 앞으로 다가간다.
남자는 보드의 가장자리에서 조심스레 무언가를 떼어낸다.
사실 보드 위에는 투명한 코팅지가 한 겹 더 미리 붙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림은 통째로 떼어질 수 있었다.
남자는 파랑 위의 선명한 무늬들을 가위로 조각조각 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초콜릿이에요."라면서. 그리고 자신은 저 멀리 물러난다.

 

초콜릿이라고?
얇은 조각을 살짝 구부리니 얇은 그림이 투명한 코팅지와 분리가 된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그림을 입안에 넣으니 초콜릿의 진한 풍미가 입안에 가득 맴돌았다.
적당한 단맛과 적당한 쌉싸름함.

 


그것은 사람을 무척 기분 좋게 하는 맛이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경쟁하듯 그 조각에 달려들었다.
하나라도 더 맛보기 위해서.
아름다운 색깔들이 쏟아지더니 그것이 초콜릿이 되는 펜. 신기하고도 신비로운 일이다.
그 아름다운 색감만으로도 이미 내 머릿속은 펜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강렬히 사로잡혔다.
얼른 고개를 들어 남자를 찾는다. 펜의 가격이 얼마인지 묻기 위해서.
그러나 남자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고 남아 있는 건 그 초콜릿을 한 조각이라도 더 먹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들뿐이다.
놓쳤다는 강한 아쉬움이 맴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 시원한 파랑과 반짝이는 파랑, 선명한 색깔의 무늬들의 잔상이 이렇게나 아른거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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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리고 한낮의 햇볕에 잘 마르기라도 했는지
보송보송한 빨래 냄새가 났다.
제법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별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
사락거리는 나뭇잎들.

 

 

단면적이 넓은 천이 너울거리듯
보드라운 바람 속을 걷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밤을 거닐었다.
오랜만의 고요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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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견 곤 이야기 2
가게야마 나오미 글.그림, 김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일러스트레이터 가게야마 나오미. 그녀와 그녀의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시바견 곤과 테쓰!
곤이 이해심 많고 의젓한 형이라면, 아직 어린 테쓰는 살짝 거친 성격에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개라 말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번 책은 곤과 테쓰가 함께 하는 일상을 더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게다가 4컷 만화 외에도 사건수첩을 들여다보듯 ‘모월 모일’의 기록 형식이라든가 곤과 테쓰와 함께하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짧은 글 에세이가 있어 구성면에서 다양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한 모습이 신선하면서도 2권 나름의 개성, 정성으로 다가와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 페이지 하단, 숫자를 표시하는 부분에는 개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조금씩 그림이 달라져 종이책을 빠르게 넘기면 움직이는 그림이 된다. 그래서 개가 멍멍 짖는 것 같은 모습이 된다고나 할까.
참고로 1권의 움직이는 그림은 곤이 달리는 모습이다.

 

 
그럴 때가 있다. 바쁘고 급하면 누구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때.
이 책의 작가 역시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빨래를 널어놨다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정신없이 빨래를 걷으며 이 순간 집에 있는 개들이 빨래 정도는 좀 걷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개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반가워하며 쪼르르 따라다니기만 할 뿐.

 


부부는 난폭하기만 했던 테쓰가 살짝 몸을 기대오면 기쁜 마음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다리가 저려도 꾹 참는다. 여행을 떠나도 집에 있는 반려견을 떠올리며 곤과 테쓰의 선물을 사고, 다른 일은 미뤄도 곤과 테쓰에 관련된 일이라면 우선으로 해결한다. 
물론 곤과 테쓰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말썽도 부리지만 가게야마 부부는 곤과 테쓰를 애정으로 대한다.
콧등으로 방충망을 열고, 작가가 욕실에 있으면 들어오고 싶은 듯 앞발로 문을 득득 긁어대는 테쓰.
자꾸만 맡게 되는 곤의 고소한 발바닥 냄새.
이 책은 귀엽고 쓰담쓰담 하고 싶어지는 그림들이 한가득이다.
1권에 이어 2권 역시 치명적인 귀여움과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해주는 『시바견 곤 이야기』.
앞으로도 곤과 테쓰가 건강하게 잘 지내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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