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파란 하늘과 햇빛.

밝고, 

선명하고,

따뜻하고,

반짝반짝하다. 

잠시 서 있어도 좋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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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따뜻한 간식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한 붕어빵을 파는 곳!!

따끈따끈한 붕어빵 하나면 왠지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붕어빵을 그냥 먹어도 좋지만 따뜻한 커피랑 한잔 먹으면 그게 또 그렇게나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배도 든든해지고 나름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고나 할까.

커피는 원두커피도 괜찮고 그냥 믹스커피도 괜찮다.

커피 앤 도넛? 노노~나는 커피 앤 붕어빵!!

 

 

 

그리고 내가 즐겨 먹는 조합이 또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가래떡과 김의 조합!

가래떡도 먹다 보면 어쩐지 느끼하면서 쉽게 물리는 기분인데 김에 싸서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김은 양념 안 한 그냥 구운 김을 추천한다.

파래김이든 돌김이든 조선김이든 그냥 구운 김이면 된다. 

없으면 양념김도 좋지만 양념김은 손에 기름이 묻어나고, 옷에 닿을까봐 내내 조심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쫄깃쫄깃한 식감에 바삭바삭한 구운김의 궁합! 김이 떡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자매품 : 절편 + 김, 백설기 + 김의 조합이 있다.

 

 

 

음..다른 것으로는 커피를 마실 때 계핏가루 살짝 톡~ 넣어주면

시나몬 향이 솔솔 나면서 믹스커피도 고급진 맛으로 즐길 수 있다.

아니면 믹스커피 + 핫초코 한 티스푼으로도 색다른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젤리(혹은 건과일) 한 조각+ 그냥 일반 초콜릿 한 조각.

이 조합도 은근히 맛의 퀄리티를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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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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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면 계절의 흐름에 한발 늦게 반응할 때가 있다. 봄이구나 싶었는데 바깥은 어느새 여름이고, 마찬가지로 뜨거운 열기로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그 여름도 언젠가는 지나간 시간에 해당되고 만다. 가끔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인식과 현재 진행 중인 계절 사이에서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그에 따른 온도차를 함께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또한 그와 같은 느낌을 잘 담아낸 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책의 단편들은 대체적으로 어떤 존재와의 이별, 영원한 헤어짐, 상실을 다루고 있는데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겪은 일 앞에서 어떤 온도 차이를 느끼게 됨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제야 실질적으로 체감되는 계절의 변화일 수도 있고 또는 다양한 감정에서 기인한 마음의 온도, 아니면 그 전과는 다르게 새롭게 발견한 어떠한 사실일 수도 있다.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 <입동>,
소년은 휴게소에서 버려진 개를 데려와 서로 의지하며 지내지만, 개가 늙고 병들어 죽음을 앞두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노찬성과 에반>,
이수와 도화, 연인의 이별을 담아낸 <건너편>
남편이 죽은 뒤, 사촌 언니의 집이 있는 스코틀랜드에서 잠시 지내게 되는 ‘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그 외에 <풍경의 쓸모>라든가 <가리는 손>은 등장인물이 직접적으로 죽음이나 헤어짐을 겪는 건 아니지만 이 단편들 역시 어느 시점을 전후로 화자의 심리상태가 전과 같지 않음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거기에도 온도 차이는 존재한다.
  <풍경의 쓸모>에서 ‘정우’는 교외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는 여자가 있어 오래전에 어머니와 헤어지셨고 가끔 선물을 보내오실 뿐 별다른 왕래 없이 지내고 있다. 1월, 정우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태국에서 패키지여행을 하는 중이다. 한국은 겨울인데 태국은 여름이다. 하지만 그는 교수 임용에 관한 면접 결과 소식을 기다리느라 여행에 집중할 수가 없다. 휴대폰을 수시로 확인해보지만 원하는 소식은 없고 대신 바쁘냐고, 연락을 달라는 아버지의 문자만이 있을 뿐이다. 잠시 뒤, 그는 모교 최 선생님의 전화를 통해 자신이 왜 면접에서 떨어졌는지 일의 정황을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문자를 받게 되는데 모두에게 보내는 단체 문자라 정우에게도 덩달아 온듯하다. 그것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여자의 부고였다.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p.182, <풍경의 쓸모>중에서)

 


  주인공이 유리 볼을 빗대어 다른 사람에게나 해당되듯 시차를 말하기는 했지만, 이 문장은 그 자체로 정우의 마음 상태를 표현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나 기대했던 면접의 탈락, 그리고 알고 보니 내막에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니 바깥은 여름이지만 그의 마음은 온통 겨울일 것이다. 다른 여행자들은 즐겁고 떠들썩하다. 그러나 주인공은 복잡한 감정으로 도저히 거기에 섞일 수가 없으리라.
  한편 <가리는 손>은 다문화 가족의 아이가 받는 편견을 얘기하는 동시에 엄마와 아이 사이를 그려낸 단편이다. 중학생들과 노인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 노인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인터넷상에서는 동영상이 돌아다니는 중이다. 그 동영상에서 ‘재이’는 저 멀리 목격자로 등장한다. 물론 엄마인 ‘나’는 재이가 그 일에 관련 없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런데 재이가 조사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 어딘가 찜찜하고, 아이와 대화하다 보게 된 미소 어린 표정에서 어떤 묘한 기시감을 받게 된다. 재이의 생일을 맞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좋았던 분위기지만, 어쩐지 ‘나’의 마음은 아이의 미소를 본 뒤로는 무언가 계속 석연치 않을 따름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침묵의 미래>이다. 여기에는 단 하나뿐인 언어를 구사하는 마지막 화자들이 모여 사는 ‘소수언어박물관’이 등장한다. 천여 개의 전시실에서 각각의 언어를 구사하는 마지막 화자들이 하루 내내 관광객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을 보러 오는 방문객은 얼마 되지 않아 박물관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마지막 화자들 역시 누군가와 말할 사람이 없어 점점 침묵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나’는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일까 묻고 답하기를 반복한다. 이 단편에서 ‘나’는 언어다. 사실 언어는 가슴이나 눈빛을 통해서도 그 의미가 전달될 수 있지만 어쨌든 말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와 직접 소리로 주고받는 작업이 필요하다. 누군가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말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고, 결국 언어 역시 사멸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서는 ‘나’가 자신의 마지막 화자를 관찰하듯 살펴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언어가 하나의 존재가 되어 사람을 살펴보는 모습이 각별하게 다가와 오랜 여운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주고받는 일상의 말들이 사실은 무척 대단하고 소중한 것임을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내 마지막 화자, 검은 피부에 우아한 속눈썹을 가진 노인은 누군가 자기 말에 귀 기울이고  눈 맞춰준 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같이 하는 건 몹시 오랜만'인데다 '너무 평범하고 친근해 눈물이 날 것 같은' 모국어로 뭐라 대꾸해주길 바랐다. '응'이나 '그래' 같은 아주 간단한 말이라도, 그뿐이라도. (p.127, <침묵의 미래>중에서) 


나는 나무에 그려지고 돌에 새겨지며 태어났다. 내 첫 이름은 '오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었다. (...중략...)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다.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다. 내 몸은 점점 붇고 이름 또한 길어져, 긴 시간이 흐른 뒤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무엇이 됐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이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동력, 쓸모 있는 죽음, 단지 그뿐인 채로 사라진다. (p.145, <침묵의 미래>중에서)

 


『바깥은 여름』. 소설을 읽고 보니 어쩌면 사람들은 각자의 계절을 겪고 있거나 그 안에 머무르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아픔의 계절일 수도 있고 좋았던 순간의 계절일 수도 있다. 저마다의 다른 계절 흐름이 있음을 깨달으며, 오늘은 누군가와 함께 말을 주고받고 싶다고 여겨본다. 노인이 그토록 원했던 ‘응’이나 ‘그래’ 같은 아주 간단한 말이라도, 그뿐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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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과일의 색감에 푹 빠져들고는 한다.

어쩜 이렇게 선명하고 예쁜 색깔이 있을 수가 있는지.

사실 빨강이란 게 잘못하면 부담스럽고 과할 수도 있는 색인데

사과의 빨강은 가을 햇빛을 다 모아놓은 듯 자꾸만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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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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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4월 20일, 차라리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등장할법한 이야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끔찍한 사건이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다.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총격전이 벌어진 것. 게다가 대학살의 범인은 바로 그 학교를 다니고 있던 두 소년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경악을 안겨주었다.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 도대체 그들은 왜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가서 또래 친구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었던 것일까.
  『콜럼바인』의 저자 데이브 컬런은 살인자들이 남긴 테이프와 일지, 언론인과 조사관들의 공식문서, 생존자들의 기억과 대화를 통해 당시 그날을 전후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이 책에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자료 출처를 이야기하며 ‘멋대로 지어낸 문장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실제의 대화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해 그 인물의 말투와 특성을 살려냄으로써 그날의 충격적인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은 콜럼바인 사태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하나의 거대한 보고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
두 아이가 살상극을 준비해온 것은 적어도 1년 반 전부터였다. 에릭은 틈틈이 폭탄을 만들고 총기를 마련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계획의 꼼꼼함에 고개를 내저으며 아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과연 십 대 남자아이가 가질 수 있는 생각인가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참혹한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이들의 계획은 단순히 총기와 폭탄으로 무장을 하고 학교에 가 보이는 대로 모두를 쏜다, 정도가 아니었다. 에릭에게는 각 단계별로 이루어진 폭탄 폭발 계획이 있었는데 우선 집 근처 공원에 미끼용 폭탄을 설치해 이웃을 놀라게 하고 경찰을 교란시킬 생각이었다. 에릭은 특히 이 단계를 망설이고 있는 딜런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한 유도 작업으로 꼭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딜런도 완전히 전념할 것이다(64p)'라는 그의 생각 자체가 오로지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겠다는 것처럼 들려 어쩐지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에릭의 치밀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관찰을 통해 학교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각과 장소는 11시 17분 학생식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학생식당에도 폭탄을 두기로 결정한다. 이것은 총격을 위한 그들의 공격 시점이기도 했는데 더 많은 살상과 피해를 위해서 고른 시간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그의 무자비한 사고방식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러나 다행히 폭탄은 불발되어 그들의 계획은 차질을 빚는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학교에서 가장 높은 장소로 가 보이는 사람을 다 쏘기 시작한다. 어떤 아이들은 이들이 총을 쏘는 모습을 보고 서바이벌 게임을 하거나 선배들이 장난치는 것으로 생각해 자세히 보려고 다가서다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치기도 했다. ‘딜런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반면 에릭은 계단 위에서 총을 쏘고 깔깔 웃고 파이프폭탄을 던지며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p.91)’
  학생식당 안과 밖, 날개건물 2층, 3번 과학실, 도서관. 에릭과 딜런의 총격에 학교는 빠른 속도로 대혼란에 빠졌고 학생들은 공포에 떨었다. 경찰과 방송국 기자들, 특수기동대와 FBI, 소방관, 의료대원들이 사건 현장으로 몰려들었지만 총격자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언론매체들은 추측 보도를 했고 당연히 그러한 보도들은 사건의 혼란만 가중시킬 따름이었다. 공격 개시 49분 후인 12시 8분, 두 아이는 도서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이 발견된 것은 특수기동대가 건물 수색을 한지 세 시간 후의 일이었다.
  경찰과 형사들은 에릭과 딜런의 집에서 여러 증거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FBI 퓨질리어 부서장은 에릭과 딜런이 남긴 테이프와 일지를 통해 그들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살해 동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대개의 기자들, 목격자들, 대중들은 에릭과 딜런을 사회 부적응자로 여기거나, 아니면 운동선수들의 괴롭힘이 있어 보복을 위한 행위로 무차별적인 총격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을 모르고 하늘 말이었고 총격자들이 사회 부적응자일 거라는 생각 자체는 엄청난 편견에 해당했다.
  에릭과 딜런은 학교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고 머리도 좋았다. 수학도 잘했고 기기도 잘 다뤘으며 집안 형편도 좋았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종종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고는 했다. 단지 그 둘의 성향이 다를 뿐이었는데 에릭은 침착하고 빈틈없는 성격에 말을 잘하는 데다가 남이 원하는 대로 반응할 줄 알아서 곤란한 상황을 쉽게 빠져나올 줄 알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가 통제하길 원하는 리더 유형이었고 친구도 많았으며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은 편이었다. 반면 딜런은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성격이 불같아 가끔 화를 벌컥 냈는데 감정적으로 폭발하면 그것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와 달리 에릭은 인류 멸종의 공상에 빠져있었고, 웹사이트와 일지에는 증오와 분노가 가득했다. 인간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보며 자신을 우월화했는데 콜럼바인 사태는 인류 멸종은 불가능해도 고등학교 하나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다는 일종의 실행이자 자기우월화의 증명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에릭은 타인의 고통받는 모습을 즐겼는데 퓨질리어는 분석을 통해 그가 사이코패스라고 확신하게 된다. 딜런의 경우 많이 외로워했고 우울해했으며 심한 자살 충동을 빠지고는 했다. 그런 딜런은 에릭에게 설득당하고 조종당해 1년 반 동안 서서히 살상극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책은 총격자들이 죽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상황이 완전히 마무리되고 다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학교는 살육의 난장판이 되었고 총에 맞은 학생들은 죽었거나 혹은 생사를 오가는 중이다. 생존자들 역시 여전히 공포와 고통, 혼란과 슬픔의 연장선에 있었다. 따라서 책의 후반부는 콜럼바인 사태 이후의 그들의 모습 또한 흐름 있게 잘 담아냈는데 더불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그 조사 과정 역시 많은 고난으로 순탄치 않았음을 책을 통해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10년에 걸친 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했다. 그는 아마도 사건과 관련된 사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요하고 끈질기게 그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소문이나 추측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생존자들은 저마다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오래 흘렀어도 사람들의 삶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 사건은 쉽게 아물지 않는 법이다. 앞으로는 부디 콜럼바인 사태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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