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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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4월 20일, 차라리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등장할법한 이야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끔찍한 사건이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다.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총격전이 벌어진 것. 게다가 대학살의 범인은 바로 그 학교를 다니고 있던 두 소년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경악을 안겨주었다.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 도대체 그들은 왜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가서 또래 친구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었던 것일까.
  『콜럼바인』의 저자 데이브 컬런은 살인자들이 남긴 테이프와 일지, 언론인과 조사관들의 공식문서, 생존자들의 기억과 대화를 통해 당시 그날을 전후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이 책에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자료 출처를 이야기하며 ‘멋대로 지어낸 문장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실제의 대화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해 그 인물의 말투와 특성을 살려냄으로써 그날의 충격적인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은 콜럼바인 사태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하나의 거대한 보고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
두 아이가 살상극을 준비해온 것은 적어도 1년 반 전부터였다. 에릭은 틈틈이 폭탄을 만들고 총기를 마련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계획의 꼼꼼함에 고개를 내저으며 아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과연 십 대 남자아이가 가질 수 있는 생각인가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참혹한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이들의 계획은 단순히 총기와 폭탄으로 무장을 하고 학교에 가 보이는 대로 모두를 쏜다, 정도가 아니었다. 에릭에게는 각 단계별로 이루어진 폭탄 폭발 계획이 있었는데 우선 집 근처 공원에 미끼용 폭탄을 설치해 이웃을 놀라게 하고 경찰을 교란시킬 생각이었다. 에릭은 특히 이 단계를 망설이고 있는 딜런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한 유도 작업으로 꼭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딜런도 완전히 전념할 것이다(64p)'라는 그의 생각 자체가 오로지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겠다는 것처럼 들려 어쩐지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에릭의 치밀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관찰을 통해 학교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각과 장소는 11시 17분 학생식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학생식당에도 폭탄을 두기로 결정한다. 이것은 총격을 위한 그들의 공격 시점이기도 했는데 더 많은 살상과 피해를 위해서 고른 시간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그의 무자비한 사고방식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러나 다행히 폭탄은 불발되어 그들의 계획은 차질을 빚는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학교에서 가장 높은 장소로 가 보이는 사람을 다 쏘기 시작한다. 어떤 아이들은 이들이 총을 쏘는 모습을 보고 서바이벌 게임을 하거나 선배들이 장난치는 것으로 생각해 자세히 보려고 다가서다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치기도 했다. ‘딜런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반면 에릭은 계단 위에서 총을 쏘고 깔깔 웃고 파이프폭탄을 던지며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p.91)’
  학생식당 안과 밖, 날개건물 2층, 3번 과학실, 도서관. 에릭과 딜런의 총격에 학교는 빠른 속도로 대혼란에 빠졌고 학생들은 공포에 떨었다. 경찰과 방송국 기자들, 특수기동대와 FBI, 소방관, 의료대원들이 사건 현장으로 몰려들었지만 총격자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언론매체들은 추측 보도를 했고 당연히 그러한 보도들은 사건의 혼란만 가중시킬 따름이었다. 공격 개시 49분 후인 12시 8분, 두 아이는 도서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이 발견된 것은 특수기동대가 건물 수색을 한지 세 시간 후의 일이었다.
  경찰과 형사들은 에릭과 딜런의 집에서 여러 증거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FBI 퓨질리어 부서장은 에릭과 딜런이 남긴 테이프와 일지를 통해 그들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살해 동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대개의 기자들, 목격자들, 대중들은 에릭과 딜런을 사회 부적응자로 여기거나, 아니면 운동선수들의 괴롭힘이 있어 보복을 위한 행위로 무차별적인 총격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을 모르고 하늘 말이었고 총격자들이 사회 부적응자일 거라는 생각 자체는 엄청난 편견에 해당했다.
  에릭과 딜런은 학교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고 머리도 좋았다. 수학도 잘했고 기기도 잘 다뤘으며 집안 형편도 좋았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종종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고는 했다. 단지 그 둘의 성향이 다를 뿐이었는데 에릭은 침착하고 빈틈없는 성격에 말을 잘하는 데다가 남이 원하는 대로 반응할 줄 알아서 곤란한 상황을 쉽게 빠져나올 줄 알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가 통제하길 원하는 리더 유형이었고 친구도 많았으며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은 편이었다. 반면 딜런은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성격이 불같아 가끔 화를 벌컥 냈는데 감정적으로 폭발하면 그것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와 달리 에릭은 인류 멸종의 공상에 빠져있었고, 웹사이트와 일지에는 증오와 분노가 가득했다. 인간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보며 자신을 우월화했는데 콜럼바인 사태는 인류 멸종은 불가능해도 고등학교 하나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다는 일종의 실행이자 자기우월화의 증명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에릭은 타인의 고통받는 모습을 즐겼는데 퓨질리어는 분석을 통해 그가 사이코패스라고 확신하게 된다. 딜런의 경우 많이 외로워했고 우울해했으며 심한 자살 충동을 빠지고는 했다. 그런 딜런은 에릭에게 설득당하고 조종당해 1년 반 동안 서서히 살상극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책은 총격자들이 죽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상황이 완전히 마무리되고 다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학교는 살육의 난장판이 되었고 총에 맞은 학생들은 죽었거나 혹은 생사를 오가는 중이다. 생존자들 역시 여전히 공포와 고통, 혼란과 슬픔의 연장선에 있었다. 따라서 책의 후반부는 콜럼바인 사태 이후의 그들의 모습 또한 흐름 있게 잘 담아냈는데 더불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그 조사 과정 역시 많은 고난으로 순탄치 않았음을 책을 통해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10년에 걸친 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했다. 그는 아마도 사건과 관련된 사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요하고 끈질기게 그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소문이나 추측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생존자들은 저마다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오래 흘렀어도 사람들의 삶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 사건은 쉽게 아물지 않는 법이다. 앞으로는 부디 콜럼바인 사태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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