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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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긴 문장을 이루는 산문과 비교했을 때, 최소한의 단어로도 얼마든지 풍성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시가 주는 매력 중 하나다. 시에서는 종종 주어나 목적어의 생략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독자들은 알아서 그 여백을 채워 넣고 공감을 하며 긴 여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시라도 때로는 반대로 느껴질 수도 있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기본적인 어휘나 간단한 단어들임에도 그것들이 나열 혹은 연결되었을 때, 시의 흐름을 따라가기 좀처럼 어려운 시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온』은 내게 그런 시집이었노라 솔직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백해본다.
  구체적인 상황이 제시되지 않고 바로 시가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온』은 시의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아 때로는 당황스럽고 때로는 어려워 우왕좌왕했다.
슬픔과 침묵, 낮은 분위기.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시인만의 어조와 서술 방식.
시인의 독특하고도 낯선 감각 속에 유영하면서 최선을 다해 시를 읽는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그리고 또 하나, 욕심을 버리고 시에 다가서기로 한다.

 


  그 안에서 생략된 것들을 다 읽어내고 온전히 작가의 생각과 시선을 이해하면 좋겠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 언어를 빚어낸 사람만이 오롯하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삶은 인생의 경험에 따라 저마다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단어 하나에도 독자들은 아마 다 다른 것들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저 부분 부분만으로 받아들여지더라도 만족한다. 그것이 내가 시를 읽고 즐기는 방법이다.

 


  시를 읽다 보니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물, 여름, 꽃, 뿌리, 소문, 거울, 아이, 마음)이나 표현(구부러지거나 휘어진다와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거울’은 보통 옷매무새나 외모를 점검할 때 많이 쓰인다. 꼭 그 용도가 아니더라도 거울을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아닌 사람도 있다. 비추는 모든 것을 반사하는 거울. 그런데 『온』에서의 거울은 주로 '마음'을 투과시킨다. 어떤 이유나 감정에서든 거울은 마주하는 게 썩 달갑지만은 않다. 그리하여 깨뜨릴 수밖에 없고 그 파편들은 결국 얼굴 또한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날카로운 세계가 된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도 사람들은 비틀린 목소리로 말하고 휘어진 거울을 들고 다녔어.(...)
눈물의 모양을 감춰둘 수 없어서 다 깨뜨렸다. 거울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자기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네가 태어나기 전에」中)


거울은 칼날의 세계, (「인디언 텐트」中)


정면에서 찍은 거울 안에/아무도 없다//(「질의응답」中)


거울이 잠깐씩 놓치고 있는 것, 슬프고 비참한 것(「정결中」)


  슬프고 무너지는 마음, 부드럽게 부서지고 쉽게 상할 수 있는 마음.
  이런 불안정함 속에서 거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불안함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때일수록 무조건 긍정을 외치고 남에게 왜 그런 마음이 되지 않느냐며 가르치듯 타박하는 사람도 있던데 글쎄, 마음이 어디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던가. 긍정과 밝음도 좋지만 억지로 했다가 오히려 더 탈이 날 수도 있다는 점, 그러니 제발 강요하지는 말자. 지금은 그냥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두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버팀이자 나름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이다.

 

버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 눈동자가 흔들릴 때.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거울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노크하기 직전의 마음을.
울 수 없는 마음을. 나는 불 꺼진 창을 본다.(「불 꺼진 고백」中)


슬픔에 익숙해지기 위해 부드러움에 닿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中)


무너지는 것이 습관이 된 줄도 모르고/무너지고 무너지면서/
더 크게 무너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톱니」中)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한 사람이 있는 정오 」中)

 


  그러다 “'요가학원에 갔다가/ 숨 쉬는 법을 배웠다”로 시작하는「문턱에서」라는 시를 읽게 되었다. 이 시는 가슴을 끝까지 열어서 발밑까지 숨을 채우는 것, 몸을 여는 호흡법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이미 숨 쉬는 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좀 더 몸을 열어 숨을 편하게 쉬는 이러한 호흡법도 연습해볼 일이다. 턱 밑으로 내쉬는 숨이 아닌 온몸으로 채우는 숨을. 천천히 숨을 들이 마신 후 다시 끝까지 숨을 내쉬어 본다. 거울도 마음도 잠시 잊어두기를. 지금은 더 좋은 숨을 쉬기 위해 호흡에만 집중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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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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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 기욤 뮈소.
혹시 누군가 아직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아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 『종이 여자』를 꼭 읽어보라 강력 추천하고 싶다.

 


이 책에서 화자는 《천사 3부작》의 베스트셀러 작가 톰 보이드다. 현재 1, 2권은 잘 팔리고 있고, 출판사와의 계약으로 3권을 집필해야 하지만, 연인이었던 오로르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면서 깊은 우울증과 무력감, 백지 공포증으로 글 한 줄 쓰지 못하는 상태다. 그러던 어느 날 폭풍우 치는 새벽, 그의 집에 모르는 여자가 알몸으로 나타나더니 자신을 그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빌리 도넬리라고 주장하는 게 아닌가.
만약 우리의 눈앞에 이처럼 소설 속 인물이 실제로 나타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빌리는 《천사 3부작》중 2권 에디션의 인쇄 문제, 그러니까 책의 절반이 인쇄가 안 된 파본 때문에 이 세상으로 뚝 떨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톰은 그녀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소설에 나와 있지 않은 빌리에 관한 정보, 다시 말해 톰만이 알고 있는 등장인물의 상세정보까지도 척척 대답한다는 점, 그리고 소설 속 빌리와 너무나도 흡사한 외모와 말투를 가지고 있어 점점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런 톰에게 빌리는 오로르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줄 테니 자신이 책 속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3부작 소설의 마지막 권을 써달라고 하는데...

 


이 책은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로 다가오는데 그 이유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성격의 빌리 덕분이기도 하다.
빌리는 에너지 가득하고 통통 튀는 행동, 활기와 생동감으로 다른 사람까지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잘조잘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데 톰의 공격적인 말에도 자신의 의견으로 맞받아치며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때론 유치하면서도 때론 귀여워 자꾸만 웃음 나게 하는 장면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 소설은 톰과 빌리의 모험 외에도 톰과 함께 어린 시절 빈민가에서 함께 자랐던 밀로와 캐롤, 그리하여 세 사람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빌리가 다시 종이로 변해가는 걸 막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겨진 파본 한 권을 찾는 여정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기욤 뮈소는 소설이라는 것이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현실의 고통을 견디게 해주고 위로를 건네주어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었다.
로맨틱한 상상력과 즐거운 판타지가 적절히 어우러졌던 『종이 여자』.
재미와 감동, 그리고 반전 있는 결말까지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전체적으로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었던 멋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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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 문학동네시인선 100 기념 티저 시집 문학동네 시인선 100
황유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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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이 책은 문학동네시인선의 100호 기념 티저 시집으로, 고은강 시인의 <고양이의 노래 5>부터 황유원 시인의 <초자연적 3D 프린팅>에 이르기까지, 50명의 시인의 시를 담아낸 책이다.
각각의 시 다음에는 바로 산문이 이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시-산문의 구성이 참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는 시인의 시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이나 생각이 덧붙여 있었는데 덕분에 그 시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끔 많은 참고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읽다 보니 마치 어린아이들이 야외활동을 나갈 때 서로의 손을 잡고 줄지어 가는 짝꿍처럼, 단짝으로 여겨져 이러한 조합도 좋다는 기분이 든다. 

 


50개의 시선, 50개의 세상, 50개의 분위기.
이 시집은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을 가진 시인, 그 시인들의 언어와 감각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단어와 단어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어감,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말의 리듬감들. 차분히 읽다 보면 어느새 다양한 시들이 마음을 두드린다.

 


김경인의 시 <오늘의 맛>은 제목부터가 흥미롭다. 이 시는 무화과, 대화, 일상의 삼요소가 잘 버무려져 전개되는데 시인은 산문에서 언급하길 ‘올가을의 가장 잘한 일은 생무화과를 처음 보고 처음으로 먹은 일’이라고 한다. 사진의 이미지 한 컷으로 기록하는 현대인들, 이 시처럼 오늘의 맛을 시로 표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언은 자신의 시 <괴로운 자>에서 ‘우리는 사랑 때문에 괴롭다. 사랑이 없는 사람도 사랑 때문에 괴롭다. 그래서 사랑 자리에 다른 말을 집어넣어도 괴롭다.(p.44)'며 끝나지 않는 괴로움에 대해 말한다. 이 시는 우리는 무엇 때문에 괴롭고, 괴롭기 때문에 다시 무엇이라는 형식으로 반복되는데 언뜻 보면 말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가 이러한 마음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 같다. 개인은 각자의 고민이 있고, 그 고민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계속 머릿속을 뱅뱅 돌며 결국 자신을 괴롭히지 않던가. 우리는 모두 괴로운 자인 것이다.

 


서정학<가을>, 이병률<가을 나무>, 이수정<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중이다>에서는 시의 언어만으로도 그 계절의 감성을 잔뜩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시를 읽으며 덩달아 설렜던, 마음 한가득 정감이 피어오르는 작품은 문태준의 시 <입석(立石)>이다.

 

그이의 뜰에는 돌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 돌을 한참 마주하곤 했다
돌에는 아무것도 새긴 게 없었다
돌은 투박하고 늙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나는 그 돌에 매번 설레었다
아침햇살이 새소리와 함께 들어설 때나
바람이 꽃가루와 함께 불어올 때에
돌 위에 표정이 가만하게 생겨나고
신비로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리하여 푸른 모과가 열린 오늘 저녁에는
그이의 뜰에 두고 가는 무슨 마음이라도 있는 듯이
돌 쪽으로 자꾸만 돌아보고 돌아보는 것이었다
(p.78, 문태준, <입석(立石)>전문)  

 

시인은 뒤에 이어지는 산문 <상응하다>에서 '아무 인연이나 연고가 없는 것은 없다. 무엇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무엇에서도 마음은 일어난다. 아침햇살, 새소리, 바람, 꽃가루가 돌에게 가서 돌을 깨우듯이. 그래서 돌이 얼굴과 음성으로 화답하듯이.(p.79)'라고 말했다.
시인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누군가에게는 돌이 그저 길에 흔하게 놓여있는 것, 관심 없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이다. 여기서 대상이 살아 있느냐 아니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마음이 닿은 모든 것들은 생동감을 가지게 되고 우리에게는 의미가 되어 줄 따름이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그게 뭐 어떤가 하고. 시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다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자신이 느끼는 만큼 그 시를 접하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시가 낯설고 어렵다는 사람에게 부담감은 저 멀리 던져버리라 권해본다. 힘을 빼고 최대한 편하고 자유롭게 시를 마주한다면 어느새 시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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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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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발적인 스토리,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사건의 전말과 긴장감, 그리고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며 눈물샘을 자극했던 마지막 결말까지 무엇 하나 놓칠 수 없었던 소설, 『브루클린의 소녀』는 기욤 뮈소의 소설들 중 탄탄한 문장이 돋보였던 멋진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흔히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이에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결혼을 3주 앞두고 연인과 여행을 온 라파엘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약혼녀 안나의 생각은 다르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 한두 가지쯤은 있는 것 아니냐며 지나간 일을 말해봤자 상처만 헤집어놓을 뿐이니 더는 캐묻지 말라 부탁한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라파엘이 아니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든 감당할 수 있고 다 받아들일 수 있다며 모두 털어놓으라 고집부린다. 그러자 안나는 태블릿PC로 불에 타 나란히 누워 있는 시체 세 구가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이 저지른 짓이라고 말한다. 라파엘은 너무 충격스러운 나머지 여행 가방을 가지고 펜션을 나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감당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렇게 나온 것에 대해, 그리고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않고 그 사진만으로 모든 것을 급하게 판단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펜션으로 돌아오지만, 안나는 이미 사라진 다음이다.
  그 뒤 계속 연락이 되지 않자 라파엘은 전직 형사 마르크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안나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되는데...

 


  시작은 분명 연인 간의 흔한 사랑싸움, 말다툼 정도였다.
그러나 소설의 분위기는 라파엘과 마르크가 안나의 집에서 지폐 가득한 노란색 스포츠가방과 위조된 두 개의 신분증을 발견하면서부터 급격히 전환된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안나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게다가 연락이 되지 않던 안나는 현재 누군가로부터 납치되어 위험한 상태고, 그리하여 작가는 라파엘이 안나를 구하기 위해 그녀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속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던 중 라파엘은 그녀의 원래 이름이 클레어 칼라일이고, 과거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왔다가 사이코패스로 알려진 하인츠 키퍼에게 희생된 소녀들 중 한 명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 그녀는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라 ‘브루클린의 소녀’로 불리고 있었다. 이처럼 소설은 하나둘 몰랐던 이야기들이 점점 드러나게 되면서 그만큼 더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되는데...

 


  그녀는 탈출 후 왜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에 남아 신분세탁을 했을까? 그리고 지금 그녀를 데려간 사람은 누구이며 왜 그녀를 데려간 것일까? 안나가 라파엘에게 보여줬던 사진의 진짜 진실은 무엇일까?
  클레어 칼라일의 과거는 물론, 그녀의 어머니 조이스 칼라일과 정치가인 아버지에 얽힌 사연, 그리고 거기에 얽힌 다른 살인사건까지! 『브루클린의 소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긴박함으로 흡입력 있게 읽혔다.
  그 어떤 의문이든 섣불리 단정 짓지를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저 기욤 뮈소가 선보이는 서스펜스와 사랑 이야기에 자연스레 흐름을 내맡기면 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이리저리 애를 썼던 라파엘도 인상적이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역시 안나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되어 오랜 시간 고문과 강간을 당했지만 그녀는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탈출 후에도 결단력 있게 행동하며 열심히 살았다.

 

나는 동정심 따위는 필요 없을뿐더러 사람들이 어디서나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소녀로 남고 싶지 않다. (...) 나는 누구보다 강하고, 혼자 힘으로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다. (p.239)


특히 소설 후반부에서 그녀는 그동안 불안하고 힘든 일의 연속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마저도 앞으로 잘 이겨내리라 마음을 다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보다도 강인한 마음으로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한 그녀의 노력은 소설을 읽는 내내 깊은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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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피케티 - <21세기 자본> 이후 3년
토마 피케티 외 24인 지음 / 율리시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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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불평등 그리고 피케티 열풍
  30개 이상 국가에서 번역되었고 210만 권 넘게 판매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있다.
바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이란 책이다.
  《21세기 자본》은 부와 소득 분배의 역사, 불평등을 다룬 책으로, 산업혁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소득과 상속에 대한 세금 자료)를 수집하여 최상위층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몫, 그리고 북미와 서유럽 내 선진국에서 발생한 불평등의 동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그야말로 전 세계는 한동안 피케티 열풍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대중들이 현실에서 소득의 불평등을 직접 경험하고 있고, 그 안에서 점점 심해지는 갈등 또한 몸소 느끼고 있기에 피케티가 언급한 불평등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애프터 피케티》: 각각의 영역 최고의 학자들, 피케티 이론에 대해 토론과 날카로운 비평을 하다
  그리고 《21세기 자본》이후 3년, 이 책, 《애프터 피케티 After PIEKTTY》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과연 피케티는 옳았는가에 대해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 25명의 논증을 담아냈다. 여기서 그들은 ‘부의 불평등’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폭넓은 논의를 보여준다.
  《애프터 피케티》는 총 5부, 2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자들은 피케티의 분석 중 많은 부분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개념과 이론에 대해 부족한 부분은 추가적으로 보충설명을 하거나 상황에 따라서는 심각한 결함을 지적하며 자신의 의견을 단호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1부는 피케티 현상을 다루고 있다. 2부는 ‘자본’의 개념과 이해, 3부는 불평등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다룬다.

 


  사실 ‘자본’이든 ‘불평등’을 말하려면 다양한 요소의 고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피케티는 조세 기록을 중심의 데이터로 말하다 보니 나머지(이 책의 전문가들에 의하면 기술, 권력, 인종, 특권, 성별, 정치, 정책, 지리, 피케티가 고려하지 못한 다른 형태의 자본 등)에 대해 소홀하기도 했고, 무관심을 넘어서 무시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서 많은 학자들이 피케티 분석에서 결여된 부분이라든가 큰 결함들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며 그의 논리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져본다. 특히 피케티가 무관심했던, 때로는 크게 다루지 않았던 요소들에 대해 학자들은 그것들이 ‘자본’이나 ‘불평등’을 설명하는 데 있어 얼마나 긴밀한 연결성을 가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신의 장章에서 자세히 풀어나갔다.

 


  경제학자 수레쉬 나이두는 경제 영역의 불평등이 어떻게 정부 정책을 왜곡시킬 수 있는지 다양한 메커니즘을 보여줌으로써 ‘부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 정치 영역의 관련성’을 기술한다. 역사학자 디아이나 레미 베리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고려하지 않았던 ‘노예 자본’에 대해, 경제학자 마이클 스펜스와 로라 타이슨 피케티가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기술 변화와 세계화’를 강조한다. 지리학자 가레스 존스는 《21세기 자본》에 '공간'이 빠져 있다고 비판하며, 21세기의 불평등을 설명하려면 ‘공간적 정치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경제학자 히더 부셰이는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여성주의 경제학을 제시하며 피케티의 데이터에 ‘성별과 인종’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4부는 자본과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을 다룬다. 여기에서는 경제 부문에서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정치적·법률적 장치들을 분석해 나가는데 경제 불평등은 오로지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제도, 법률이 모두 맞물려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을 잘 알게 되었다. 따라서 경제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경제 정책 외에도 정치나 법률적으로도 적절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함을 배워본다.
  5부는 피케티의 답변과 해명, 보충설명이 이어진다.
그는 불평등의 역사를 말할 때, 다른 학자들이 지적한 부분, 그러니까 표면적 언급에만 그칠 뿐 그 연결고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21세기 자본》이 지나치게 서구 중심의 접근방식이라는 한계에 대해서는 꾸준히 ‘세계 부와 소득 데이터베이스WID를 업데이트하고 확장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p.657)으며 지금은 많은 주요 국가들의 데이터가 WID에 포함되거나 포함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에 '지금까지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못한 불평등의 다른 차원들(15장에서 히더 부셰이가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내 책에 대체로 빠져 있는 성 불평등 문제 등)을 포함시키려 한다.’(p.657)고도 하니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바다.

 


*결론 : 학문을 넘나드는 다각도 담론의 장,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문득 이 책의 서문에서 《21세기 자본》이 이뤄낸 영향력을 언급한 것이 떠오른다.
《21세기 자본》은 사회학, 정치과학, 정치경제학처럼 경제학 외부적으로 다른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수많은 담론을 이끌어냈다며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어쩌면 피케티에게는 《애프터 피케티》가 검증과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많은 비판을 들어야 했던 혹독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것은 다른 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것이고,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피케티 스스로도 자신의 연구가 경제학과 사회과학 간의 화합을 이루고 이후 나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랐던 것처럼 말이다.
  21세기 우리가 느끼는 불평등은 시간을 두고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 다양한 관계에 의해 복합적으로 생성되어 온 만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서로 꾸준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활발한 논의가 펼쳐야 한다고 본다. 그러다 보면 각자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부실한 아이디어는 수정과 보완, 향후의 연구 방향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해결방안도 많이 도출되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이런 담론의 장이 많이 이루어지기를. 독자의 입장에서는 《애프터 피케티》덕분에 다양한 학문의 시각으로 자본과 불평등에 대해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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