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 문학동네시인선 100 기념 티저 시집 문학동네 시인선 100
황유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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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이 책은 문학동네시인선의 100호 기념 티저 시집으로, 고은강 시인의 <고양이의 노래 5>부터 황유원 시인의 <초자연적 3D 프린팅>에 이르기까지, 50명의 시인의 시를 담아낸 책이다.
각각의 시 다음에는 바로 산문이 이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시-산문의 구성이 참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는 시인의 시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이나 생각이 덧붙여 있었는데 덕분에 그 시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끔 많은 참고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읽다 보니 마치 어린아이들이 야외활동을 나갈 때 서로의 손을 잡고 줄지어 가는 짝꿍처럼, 단짝으로 여겨져 이러한 조합도 좋다는 기분이 든다. 

 


50개의 시선, 50개의 세상, 50개의 분위기.
이 시집은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을 가진 시인, 그 시인들의 언어와 감각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단어와 단어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어감,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말의 리듬감들. 차분히 읽다 보면 어느새 다양한 시들이 마음을 두드린다.

 


김경인의 시 <오늘의 맛>은 제목부터가 흥미롭다. 이 시는 무화과, 대화, 일상의 삼요소가 잘 버무려져 전개되는데 시인은 산문에서 언급하길 ‘올가을의 가장 잘한 일은 생무화과를 처음 보고 처음으로 먹은 일’이라고 한다. 사진의 이미지 한 컷으로 기록하는 현대인들, 이 시처럼 오늘의 맛을 시로 표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언은 자신의 시 <괴로운 자>에서 ‘우리는 사랑 때문에 괴롭다. 사랑이 없는 사람도 사랑 때문에 괴롭다. 그래서 사랑 자리에 다른 말을 집어넣어도 괴롭다.(p.44)'며 끝나지 않는 괴로움에 대해 말한다. 이 시는 우리는 무엇 때문에 괴롭고, 괴롭기 때문에 다시 무엇이라는 형식으로 반복되는데 언뜻 보면 말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가 이러한 마음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 같다. 개인은 각자의 고민이 있고, 그 고민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계속 머릿속을 뱅뱅 돌며 결국 자신을 괴롭히지 않던가. 우리는 모두 괴로운 자인 것이다.

 


서정학<가을>, 이병률<가을 나무>, 이수정<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중이다>에서는 시의 언어만으로도 그 계절의 감성을 잔뜩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시를 읽으며 덩달아 설렜던, 마음 한가득 정감이 피어오르는 작품은 문태준의 시 <입석(立石)>이다.

 

그이의 뜰에는 돌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 돌을 한참 마주하곤 했다
돌에는 아무것도 새긴 게 없었다
돌은 투박하고 늙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나는 그 돌에 매번 설레었다
아침햇살이 새소리와 함께 들어설 때나
바람이 꽃가루와 함께 불어올 때에
돌 위에 표정이 가만하게 생겨나고
신비로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리하여 푸른 모과가 열린 오늘 저녁에는
그이의 뜰에 두고 가는 무슨 마음이라도 있는 듯이
돌 쪽으로 자꾸만 돌아보고 돌아보는 것이었다
(p.78, 문태준, <입석(立石)>전문)  

 

시인은 뒤에 이어지는 산문 <상응하다>에서 '아무 인연이나 연고가 없는 것은 없다. 무엇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무엇에서도 마음은 일어난다. 아침햇살, 새소리, 바람, 꽃가루가 돌에게 가서 돌을 깨우듯이. 그래서 돌이 얼굴과 음성으로 화답하듯이.(p.79)'라고 말했다.
시인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누군가에게는 돌이 그저 길에 흔하게 놓여있는 것, 관심 없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이다. 여기서 대상이 살아 있느냐 아니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마음이 닿은 모든 것들은 생동감을 가지게 되고 우리에게는 의미가 되어 줄 따름이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그게 뭐 어떤가 하고. 시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다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자신이 느끼는 만큼 그 시를 접하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시가 낯설고 어렵다는 사람에게 부담감은 저 멀리 던져버리라 권해본다. 힘을 빼고 최대한 편하고 자유롭게 시를 마주한다면 어느새 시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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