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럼 - 시로 만나는 윤동주
김응교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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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의 『처럼』은 윤동주의 시와 삶을 온전히 엮어낸 ‘윤동주 전문가’의 평전으로 부제로 “시로 만나는 윤동주”를 택한다. 저자에 앞서 “요절한 천재 평론가”로 불리는 고석규가 윤동주 시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비평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로 주목받기도 했으며 윤동주 평전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이 기본서로 알려져 있다. 저자가 “평생 잊지 못할 은사”(p.514)라며 감사를 표한 오무라 마스오는 2016년 출간 당시 『처럼』에 대해 “여기 보란 듯한 각주 하나 없이, 읽기 쉬운 표현을 쓰고 있지만 ‘윤동주’에 깊이 박혀 있지 않고서는 결코 쓸 수 없는 책”이라 평했다. 친근하게 많이 읽히는 시와 시인 윤동주의 삶에 독자는 어느 만큼 닿고 있는지 자문케 하는 책이다. 기획을 달리하는 시집과 필사집을 비롯해 유행하는 문화상품만큼이나 풍성한 윤동주 관련서 읽기를 잠시 멈추고 『처럼』을 펴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저자는 차례에 앞서 ‘제사’격으로 책의 제목을 언급한다. “‘처럼’이란 조사만 한 행으로 쓰여있는 시를 본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후, ‘처럼’의 의미는 책장을 넘길수록 인장을 남긴다. 시인을 만나기 위해 먼저 들를 곳은 백여 년 전 만주 땅이다. 윤동주가 태어나고 자란 광활한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가족의 이주배경, 교육공동체로서의 하나 된 마음, 김약연 이라는 스승이자 외삼촌인 어른인 존재, 벗들과 어린 시절을 따라간다. 윤동주에 대한 소개가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은 저자의 집필 동기이기도 한데 1941년 대학 사학년 때 쓴 시(십자가, 서시, 별 헤는 밤, 간 등)에 조명이 집중되는 현실과 대비해 “윤동주 시의 광맥은 초기 시에 있”(p.66)음을 말한다. 숭실 중학교 시절에는 약 칠개월 동안 17편의 시를 써낸다. 저자가 제목과 날짜, 장소를 나열할 때 그 자체로 윤동주의 시간이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이입된다. 고흐, 릴케 등을 비롯해 그에게 영향을 끼친 예술가들 중에서도 백석과 정지용은 중요하며 저자의 시 해설은 시험 없는 국어시간 같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또한 정몽규와 동주 곁 소중한 인물들을 글로나마 만날 수 있으니 감사하다.

“윤동주가 남긴 시 119편을 구분하면, 운문시 74편, 산문시 8편, 동시 30여 편입니다.(중략) 화려한 수식이 없고 토속적인 느낌이 드는 윤동주의 동시는 그가 쓴 모든 작품 중 30퍼센트에 이르고 있습니다.”(p.153) 『처럼』은 윤동주 동시를 발견케 하지만 정감어린 동시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황은 곧 다가온다. 연희전문에서 쓴 첫 시 “새로운 길”은 설렘과 희망이 가득하다. 하지만 한 편의 글도 남기지 않는 침묵기를 거쳐 사학년때 쓴 “길”은 “좌절과 제약의 나날”(p.180)을 암시한다. 저자는 윤동주의 삶과 시가 맺는 긴밀한 연결, 마치 일대일 조응과도 같은 순수하고 정직한 살아내기와 그 결과로써의 쓰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익히 알려진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이름 윤동주는 마치 처음 본 이름처럼 새로이 각인된다. “윤동주의 시 세계는 동시에서 시작해 동시로 끝납니다. 그의 삶과 시는 마치 누군가 짜놓은 듯 신화적입니다. ‘봄’으로 자신의 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까지도.”(p.431)

『처럼』은 덜 알려진 시의 전문을 읽을 수 있고 친필 원고를 곁들여 볼 수 있다는 점, 세심하고 친절한 해설로 독자가 최대한 시와 시가 쓰여진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직강을 듣는 듯한 구어체 글은 독자를 더 집중케 하고 다양한 도표 활용은 직관적으로 핵심을 이해시킨다. 다양한 문헌 인용과 예시도 풍성하고 첫째, 둘째 순서를 명하며 근거를 정리함으로 필요한 내용을 한 번 더 기억하게 해준다. “누군가의 시를 읽을 대 되도록 그 시를 썼던 시기에 쓰인 다른 시와 함께 이해하면 좋습니다. 시집을 만들 때 어느 시인이든 시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목차를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시집이 없다면 그 시가 탄생한 무렵의 다른 시와 함께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시 분석은 독자의 의식으로 시를 재단하기보다는 시인의 시가 스스로 말하도록 시의 혼잣말을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팔복』에 숨겨진 거대한 슬픔을 단순한 냉소적 패러디로 볼 수는 없습니다.”(p.268), “모든 시는 정전을 통해 읽어야 합니다.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에 실린 원래 원고대로 정확히 읽으면,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했는지 알 수 있지요.”(p.314) 와 같이 곳곳에서 시를 읽는 방법론을 전하기도 한다. “일본인이 기억하는 윤동주”는 또 다른 생각의 장으로 독자를 이끈다. 어제 『시인 동주』(안소영/창비)로 만났던 저녁 토론에서 여섯 분 중 네 분이 별점 만점을 주었다. 동주의 때로부터 지나오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시간이다. “큰 고요 곁으로”(p.502)에 담긴 윤동주 시의 다섯 가지 특징을 옮기며 많이, 깊이 읽고 기억하겠다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윤동주와 그의 시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보물이 될 책으로 일독을 권한다.

사실 ‘처럼’만 이렇게 한 행으로 써 있는 시를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시가 아니더라도 영어 시, 일어 시, 중국어 시에서 ‘처럼’만 한 행으로 된 시를 본 적이 있나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윤동주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길이 ‘행복한’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타인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의 고통을 나누는 순간, 개인은 ‘행복한’ 하나의 주체가 됩니다. 그러나 ‘처럼’이라는 직유법처럼 그 길은 도달하기 힘든 삶이지요. 그것을 짊어지고 가는 삶, 윤동주는 그 길을 선택합니다.(p.305)

이제까지 만난 윤동주의 시에는 어떤 매혹이 있기에 이렇게 독자들 마음에서 회감되고 있는지요.

첫째, 윤동주의 시는 자기와 존재를 투시하는 ‘성찰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p.503)

둘째, 윤동주의 시는 기억해야 할 것을 ‘한글’로 기록한 ‘기억의 집’이라는 사실입니다.(p.504)

셋째, 윤동주가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곁의 시인’이었기 때문입니다.(p.505)

넷째, 윤동주의 사랑은 낮지만 ‘거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p.506)

다섯째, 윤동주의 시는 실천을 자극하는 ‘다짐의 시’이기 때문입니다.(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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