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이민진의 『파친코(문학사상,2018)』는 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에 맨몸으로 맞서며 사라지고 만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기록한다. 작가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삶 대부분이 경시당하고 부인당하고 지워진다는 이야기를 글로 써야한다”(p.384)는 믿음이 확고했기에 30년에 걸쳐 소설을 완성해낸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 거주자”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 ‘자이니치(재일동포)’는 속지주의를 택하는 미국의 재미교포와는 다른 조건을 부여한다. “문제는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은 일본이 고향이고 일본어가 모국어인데, 왜 자신이 외국인 취급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p.392,2권) 소설은 떨칠 수 없는 인생의 굴레와 옥죄는 고통에 맞서는 인물들을 담아낸다. 유년 시절 가족 이민으로 뉴욕에 정착한 이민진은 한국 이름을 고수하며 2004년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2008년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을 발표, 여러 상을 수상한다. “파친코”는 올해 웹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주목을 끌고 재출간되는 등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p.11, 1권) 여운을 남기는 도전적 선언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기형이 있지만 “분별있는 부모”(p.13)밑에서 자란 덕분에 훈이는 양진을 아내로 맞을 수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자녀 선자는 정상으로 태어나 부모를 기쁘게 하지만 딸에게 애틋했던 아버지는 일찍 병사한다. 아기때부터 엎혀 드나들던 남포동 시장에 이제는 홀로 장보기를 도맡아야 하는 선자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새로온 생선 중매상 고한수를 만난다. 이삭을 만나기 6개월 전이다. 이미 결혼한 고한수의 아이를 가지고 그의 제안은 거절한 채 선자는 이삭을 받아들이고 함께 이삭의 형, 요셉이 있는 일본으로 향한다. 선자는 이삭이 투옥된 지 일주일 후 처음 장사를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여성, 또는 모성으로서의 마땅한 삶, 희생이자 고생이라고 일컬어지는 길로 들어선다.

요셉은 일본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이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싶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p.267)고 되뇌인다. 선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 역시 나름의 싸움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의연하고 차분하고 영리했던 큰 아들, “엄마가 걱정할 게 없네.”(p.277)라고 말할 수 있었던 노아는 모든 규칙을 지키고 최고가 되면 “적대적인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p.282, 2권) 믿었다. 아들의 마지막 선택 앞에서 “그런 잔인한 이상”을 방기했다고 어머니는 자책한다. 모자수와 그 아들 솔로몬의 선택까지 확인하고 나면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다. 부산 영도의 훈이와 양진부터 그의 딸 선자, 선자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4대에 걸친 가족사가 펼쳐진다. 그들과 관계하는 인물들의 서사도 등장과 맺음마다 고유한 의미와 흔적을 선명히 남긴다. 선악을 떠나서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 이입해 보고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며 실패와 좌절, 실수나 후회에 가슴 아파하게 된다. 이는 작가가 지난한 취재를 꼼꼼히 다지고 탄탄하게 서사와 배경을 구축한 덕분일 것이다. 묘사와 대화의 균형, 간결한 문체, 담백한 서술, 속도감 있는 진행은 가독성을 높이고 몰입케한다. 반면 다양한 측면의 나열식 정보 전달이 오히려 주요 사건과 인물에 한껏 침잠하는 데는 저해요소가 아니었나 아쉬웠다.

<파친코>가 아니었다면 자이니치와 그들이 겪어온 시간에 여전히 무감각했을지도 모른다. 아픈 역사를 망각과 몰이해에서 빛으로 끌어오고 목도케 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보편적 질문이 도처에 흩어져있다. 다분히 현대적인 시대극이기에 등장인물들의 명멸은 분량과 관계없이 무게를 간직한다. 작가는 1권 고향(1910~1949)의 제사에 찰스 디킨스를, 2권 조국(1953~1989)의 제사로는 박완서의 문장을 선택한다. 『파친코』는 고향을 떠나 조국을 그리며 불모의 삶일지언정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도전에 응전해온, 여전히 진행중일지도 모르는 인생들에게 바치는 찬가로 읽힌다. 이제 영상으로 만나볼 차례다. 아껴둔 선물이 가슴 뛰게 한다.

책 속에서>

선자는 인생을 살면서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이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가끔씩 선자는 자신이 언젠가는 쓸모없어질 튼튼한 농장의 가축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자신이 떠나고 없어도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준비해주어야 했다.(p.330, 1권)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p.220,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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