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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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의 『쥐The Complete Maus(권희섭, 권희종 옮김/아름드리미디어)』는 유태인 대학살을 다룬 장편 만화로 부제는 “한 생존자의 이야기”다. 작가의 부모님이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책은 부모님과 자신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전적 이야기와 부모님의 생존담을 전한다. 작가는 유태인을 쥐로, 다른 등장인물들도 동물로 묘사한다. 잡지에 연재되던 『쥐 1』이 1986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데 8년이 걸렸고, 그로부터 6년 후인 1991년에 『쥐 2』가 출간된다. 합본판은 발간 20주년을 기념해 2010년에 나오게 된다. 슈피겔만은 창작 예술가이자 만화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영상 예술 학교에서 “만화사”를 강의한다.(p.314) 또한 그는 만화라는 대중문화를 예술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 끌어올린 ‘그래픽 노블’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쥐』는 1992년 만화책으로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 부록(p.246)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쥐』는 만화를 하나의 정점에 달하게 했고, 새 지평을 열도록 문을 열어주었다는 극찬을 받아 마땅한 자타가 공인하는 걸작이다.”

아들 아티는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과 어머니 아냐의 삶, 그들이 겪었던 전쟁에 대해 쓰고 싶어한다. 부자 관계는 소원한 편이었지만 그는 아버지 얘기를 듣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쥐는 아버지의 회상 속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결혼 후 행복했던 시간은 잠시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징병통지서를 받은 아버지는 어머니, 어렸던 형과 헤어져 입대하게 된다. 전쟁 포로가 된 블라덱이 내뱉는 “난 죽지 않을 거야. 여기 있지도 않겠어! 난 인간 대접을 받고 싶다구!”(p.60)라는 말은 그를 지탱하는 주요 동기다. 블라덱의 고객이자 재단사였던 일체키씨에게 우연히 도움을 받고 목숨을 구하지만 도움을 준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다행히 그들의 아들은 살지만 블라덱의 큰아들, 아타가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형 리슈는 살아남지 못한다. 죽음은 자기 그림자처럼 가까웠고 예측가능성이란 없는 시간이다. “독일놈들에게 유태인 소수를 넘겨주면 나머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유태인 경찰, 독일인이 아닌 유태인 경찰에게 아냐의 조부모님은 이끌려 희생당한다. 또한 작가는 단 두 지면을 할애해 스타디움 선별작업 당시 딸을 위해 담을 넘고 죽음의 편에 기꺼이 섰던 블란덱의 아버지를 그린다. 오래전부터 되풀이 들어왔던 이야기의 실재를 보여준다.

책 속의 책 “지옥 혹성의 죄수-하나의 일화”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어떻게 서서히 삶을 망가뜨렸는지, 고통의 대물림을 압축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는 장면 회상으로 1부가 끝날 때 아티는 아버지가 어머니 아냐의 노트를 태워버렸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지 못한다. 너무 많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브란덱의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 했던 무수한 선택의 연장선에 있다. “나는 항상 아꼈지···만약을 위해 말이다!”(p.69)에서도 생존 본능이 그의 성격으로 고착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전쟁 이후 현재를 갉아먹는 불화의 단초가 된다. 2부에서는 『쥐1』이 성공해 조명 받던 당시 작가의 심정도 드러난다. “제가 바라는 건···사면입니다. 아니···아니에요···제가 원하는 건···제 어머니라구요.”(p.206), “인생은 늘 산 사람편이죠. 그래서 무슨 이유인지 희생자들은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최선의 인간은 아니었듯이 죽은 사람들도 최선은 아니었죠. 무작위였으니까요!”(p.209)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명징하다. 브란덱과 아냐의 행적은 전쟁 종식과 이후 재회로 계속된다.

흑백의 빽빽한 그림, 진하고 거친 질감이 “한 생존자의 이야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더 심연으로 끌어내릴것 같았다. 가슴 아프고 잔혹한 장면은 속수무책으로 독자를 괴롭히지 않을까 두려움도 있었다. 아타는 책 속에서 현실이 만화로 하기엔 너무 복잡하다며 누락과 왜곡을 고민한다. 아타의 아내는 “그냥 솔직하게만 그려요.”(p.180)라고 답하는데 『쥐』는 이를 충실히 따른다. 책은 감정이 개입될 여지 없이 객관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의인화와 상징은 독자를 좀더 가까이 초청하고 어느새 숨을 죽이며 실제 일어났던 전장, 숨죽여야 했던 날카로운 공간에 함께 세운다. 『쥐』는 후반에 실린 작품해설까지도 또 하나의 작품 역할을 한다. “소호에 있는 천정이 높은 아트 슈피겔만의 저택 다락에는 한쪽 벽 전체가 전쟁 전의 폴란드와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책자로 가득 쌓여 있다”(p.314)는 설명으로 짐작할수 있듯 여러 곳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림 칸의 배열과 시점의 변화를 반영한 원근법 적용 등 다양한 시도는 알고 읽으면 더 감탄을 부른다.

형식적으로 최초의 그래픽노블로 획을 그었다면 내용적으로, 주제에 있어 반드시 쓰여져야 할 이야기다. 일정한 시기에 갇힐 수 없으며 계속 반복해서 다루어져야 할 아픔이다. 이 책의 빼어난 점은 과거와 현재,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전쟁과 전쟁 이후, 상처와 치유가능성 등 대응하는 두 개 축이 이루는 균형에 있다. 아버지 블라덱의 과거 회상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페이지를 정독하게 하는 일과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세대 갈등, 부자간 감정의 마찰과 애틋함은 또다른 결로 생생하게 닿는다. 놀랍게도 유머까지 만나게된다. 읽고 나면 먹먹함에 질문을 던지게 되는 지점, 안타까운 면면들이 여전히 남는다. 정답이 없을지언정 충분히 묻고 숙고하고 경청할 때마다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은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이기심이 촉발한 참혹한 전쟁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쥐』는 결코 과거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읽어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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