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해력 수업 - 누구나 역사를 말하는 시대에 과거와 마주하는 법
최호근 지음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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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자 최호근의 책이다. 저자는 역사란 물건 가득한 초대형 창고가 아니라 약간의 완성품, 단순 가공이 필요한 중간재들, 장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재와 원료들이 질서 없이 뒤섞여 있는 끝없는 대지라고 말한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입니다란 피델 카스트로의 말 이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카스트로의 선례를 따라 민주와 민족을 위해 투쟁한 죄로 사형 받는 자리에서도 오히려 영광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문제는 역사의 법정이란 말이 남용되었다는 점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행위 주체로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27 페이지) 나는 이를 조금 바꿔 조선이 성리학 때문에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성리학 역시 행위 주체가 아닌 바 조선 망국의 책임은 성리학에 있지 않고 성리학 일변도의 나라를 만든 사람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전제는 그들의 말이 맞다면 말이다. 역사의 법정과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의 이야기와도 공명한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지당한 말이다. 단 아무런 대가도 없이, 혹은 그 대가로 자기 자리나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만 그렇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거짓으로부터 참을 구별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양심적 학자들이 있을 때만 그렇다. 진실 규명을 기본으로 삼고 진실의 재현을 업으로 삼는 역사가들이 아니라면 거짓이 참을 가리는 경우도 허다하다.’(129 페이지)

 

저자는 역사에 힘입어 발언하고야 말겠다는 누군가의 의지와 결단이 없다면 역사 스스로 말하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역사에 기반을 둔 오리엔테이션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우리는 시공간적 범위를 넓게 잡아 다양한 경우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가는 온전한 과거 재현을 위해 엄격한 방법과 절차를 준수하도록 훈련받은 학자인 동시에 당파적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이다.(42 페이지)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개의 요청에 어떻게 응답할지 보여준 사람이 마르크 블로크다. 나치 독일이 조국 프랑스를 침략하자 53세의 나이에 참전한 그는 프랑스가 점령당한 후 레지스탕스 활동에 투신했다가 체포되어 해방되기 직전 총살당했다. 블로크는 학문과 현실 모두에 충실했던 인물이다.

 

2017년 2월 2일 중앙일보가 울산과학기술원 게놈연구소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한국인의 뿌리는 (북방계가 아닌) 혼혈 남방계라고 보도했다.(47 페이지) 3만년전에서 4만년전 사이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부 해안을 거쳐 극동 지방에 들어와 북방인이 된 남방계 수렵 채취인과, 신석기시대가 시작된 1만년전에 같은 경로로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의 피가 섞여 한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임진 - 한탄강 유역 구석기인들의 모습을 왜 서양인처럼 만들어 전시하느냐는 이의제기를 한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서다. 혼혈 남방계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3만년전에서 4만년전 사이, 1만년전에 유입되었다는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 현재 우리는 임진 - 한탄강 유역 구석기인들과 무관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글이 가득하다. 가령 ‘동아시아의 역사가 과연 긴장과 갈등, 대립과 충돌의 연속이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역사가 그랬다기보다 역사서술이 그랬을 것이다.’란 말을 보라. 과거는 역사책을 통해 후세에게 두 가지 면에서 스승 노릇을 한다. 귀감으로서 스승 역할, 반면교사로서 스승의 역할이 그것이다. 이 중 귀감을 보자. 귀는 거북 귀(龜)로 거북 등을 불에 구워 갈라지는 상태를 보고 장래의 일을 예측했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저자는 역사 자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스승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동일한 사건, 인물, 행동에서 얻어내는 교훈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믿음의 체계와 상징적 행위가 사람들의 삶에 분명하게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 역시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93 페이지) 연성(軟性) 사실이 그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과거 세계는 우리 현재의 삶과 마찬가지로 다성(多聲), 다채(多彩), 다면(多面), 다양(多樣), 다층(多層)으로 이루어진 복잡계였기에 현재 속에서 과거를 되살리는 역사가의 재현 작업도 그에 맞게 다원적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마땅하다.(96 페이지) 다원적 해석이 무능의 증좌가 아니듯 하나의 닫힌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유능의 증좌도 아니다.(117 페이지)

 

전체 여덟 장 가운데 세 번째 장에서 저자는 직업적 역사가로 인정받기 위해 체득해야 할 네 가지 방법을 예로 들었다. 사료비판, 비교, 반(反) 사실적 가정, 계량 등이다. 염분 섞인 바닷모래로 100년 가는 시멘트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진위를 알 수 없는 자료를 가지고 온전한 역사 해석을 도모할 수 없다. 그래서 사료비판이 중요하다. 저자에 의하면 문서만이 사료는 아니다.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확인시켜준 경기도 연천 한탄강 변의 조각돌도 마찬가지다(130 페이지)

 

역사가는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마법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역사가에게 비교는 일상이요 본업이며 방법이라 첨언한다.(134 페이지) 사람들은 막스 베버가 서구중심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베버가 살아있었다면 ‘엄청난 자료의 바다에서 표류하거나 익사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로지 내 문제의식에 충실한 연구를 수행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비대칭 비교뿐이었다.’고 응수했을 것이다.

 

비대칭 비교란 A와 B를 같은 수준에서 세밀하게 맞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A의 내재적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A를 중심에 놓고 B 또는 B, C, D와 선택적으로 비교하는 것이다. 개인 연구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품을 들이면서도 큰 성과를 내기 쉬운 방법이 비대칭 비교다.(151 페이지) 반사실적 가정은 경험적 상상의 힘과 관련된 말이다. 가령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유엔군의 북진은 가능했을까? 같은 상상 또는 가정이 그것이다. 랑케 이후 직업적 역사가들 사이에 경험의 세계 너머나 이면을 언급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태고가 분위기처럼 자리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관행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막스 베버다. 그는 만일이라는 물음의 유용성을 부정하는 역사가들의 집단적 관행을 문제삼았다. 계량은 시계열 속에서 변화의 추세 읽기와 관련된다. 역사학은 시간의 학문이다. 인간의 삶에 일어난 변화들을 시간의 축 위에서 추적하는 분과학문이다. 역사가가 된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특유의 감각을 체득하는 과정이다.(172 페이지) 결과에서 출발하여 원인을 찾아가는 소급적 탐색이 인과적 사고라면, 역사적 사고는 결과에서 원인으로, 원인에서 다시 결과로 나아가는 과정을 부단히 반복한다.(174 페이지)

 

좁은 의미의 역사적 사고가 과거의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해당 시대의 시공간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역사화 작업을 뜻한다면, 역사의식은 이 작업에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나 인물을 현재의 시공간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현재화 작업까지 포함한다.(184 페이지) 프랑스의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이 보여준 장기지속적 구조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 시간의 지평을 크게 확장해주었다. 지중해 세계, 지중해 문명, 지중해 심성에 대한 그의 서술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자연과학 영역에 한정되었던 지질학의 시간과 지리적 시간이 역사가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186 페이지)

 

레비스트로스는 요동하는 시간의 흐름 밑바닥에 자리한, 거의 정지해 있는 시간을 동료인 브로델에게 알려주었다.(190 페이지) 파도(波濤)의 시간, 해류(海流)의 시간, 해구(海溝)의 시간은 역사적 시간의 세 층위다.(211 페이지) 파도의 시간은 사건의 시간, 해류의 시간은 국면의 시간, 해구의 시간은 구조의 시간이기도 하다. 브로델은 움직임이 거의 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반복적이고 영속적인 지리적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장기지속이라는 개념을 고안해냈다. 브로델이 주목한 것은 인간의 행위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는 기저의 힘이었다. 국면으로 번역되는 콩종튀르는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한두 세기 간격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리듬을 말한다.

 

일반인이 특히 기억해야 하는 말은 역사는 수많은 우연적 계기에 의해 틀지어진 다양한 발전 경로의 총합에 가까운 바 단순명료한 역사 해석을 요구하는 일반인의 기대에 직업적 역사가들이 부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말이다.(243 페이지) 단순한 자기중심적 역사 해석이나 주관적 역사 해석의 수준을 넘어 하나의 역사관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긴 호흡과 넓은 시야에서 역사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유물론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논한다. 마르크스에게 물질은 물성을 지닌 그 무엇이라기보다 사회적 존재를 의미했다. 이 말은 우리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사회경제적 토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시사(示唆)가 되는 기억해야 할 마르크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애덤 스미스를 통해 마르크스는 임금과 화폐에 앞서 노동이 있고, 노동과 함께 노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설마 그 똑똑한 청년 마르크스가 그 전에는 이런 점을 몰랐을까? 그건 아닐 테다. 다만 흩어져 있던 지식들, 확신할 수 없었던 이론들이 ‘국부론’을 통해 인간사를 이해하고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지식체계로 재탄생한 것일뿐이다.(289 페이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애덤 스미스가 여러 국민의 부의 축적과정과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옹호하기 위해 ‘국부론’을 썼지만 마르크스는 스미스의 이 책을 자기 방식으로 전유하면서 읽었다는 것이다.

 

유물론적 역사 해석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는 지질학이나 건축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토대와 상주구조의 메타포가 그 중 하나다. 토대란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생산관계의 총체를 말한다.(290 페이지)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 마르크스의 어법에서 규정이란 말은 결정보다 융통성 있는 표현이다. 대부분의 경우 토대가 상부구조를 좌우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상부구조가 역으로 토대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291 페이지) 그렇기에 마르크스를 경제결정론자로 간주하는 것은 부당하다.

 

실증사관으로 유명한 랑케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 일제 강점기 민족주의 역사가들은 조선의 역사가 외세의존적이며 정체된 것이었다고 선전하는 일본의 역사가들의 논리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도입한 랑케의 실증사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만났다. 랑케의 풍부한 역사사상이 일본에 수입되는 과정에서 엄밀한 사료비판으로 축소되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의 학자들은 랑케의 역사학을 전폭 수용하지 않고 랑케 역사학 속에서 자신들이 추구해온 훈고와 고증방법의 정당성을 재발견했다. 동아시아에서 랑케는 술이부작의 지침을 강조했던 공자의 서구적 현현이 되었다.

 

베버는 ‘과학자는 혼돈 속에 있는 다양한 현상에 질서를 부여한다. 이 질서는 복잡한 현실을 관통하고 있는 실재적 성격의 인과적 질서가 아니라 복잡한 현실의 한 자락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부과한 사후적 질서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325 페이지) 이렇게 되면 역사가는 감당 불가능한 중무장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총으로 무장한 경보병처럼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지역을 자신의 문제의식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빠른 걸음으로 탐색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극단적 상대주의의 대가는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하며 그 피해는 약자들에게 집중되기 십상이라고 설명한다.(338 페이지) 마지막 장인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헤로도토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에게 역사책은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는 인간 기억의 물방울들을 움켜잡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다.(352 페이지) 사료는 과거와 현재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와 같다. 돌과 돌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어 한 발로 뛰어 건너기 어려운 경우라면 역사가는 온전한 논문의 형태로 글을 쓰지 못한다. 사론(史論)이라는 이름의 역사 에세이를 쓸 수 있을뿐이다. 원자료를 증거로서 병기하는 각주나 후주가 없다면 어떤 학술지도 글을 게재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랑케를 통해 확립된 근대 역사학의 전통이자 계율이다.(356 페이지)

 

모든 역사 서술은 중심 배치, 주변화, 배제라는 서술의 일반 규칙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규칙에 선행하는 것이 인식과 조망을 결정하는 틀이다. 기자들은 이것을 프레임이라 부른다.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과정, 사건과 사실관계를 서술하는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프레이밍이다. 신구 사료 간의 상호 대조 속에서 역사가 다시 쓰인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텍스트들을 시대의 콘텍스트에 비추어 재해석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입장 구속성이란 말이 있고 의식의 부동성(浮動性)이란 말이 있다. 역사적 진실의 객관적 규명에 힘쓰는 시대가 있고 모든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사실은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다원적 접근을 강조하는 시대가 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논리가 극한에 도달하면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학문적 입장과 논리의 도전이 시작된다. 역사는 거듭 다시 쓰여야 한다. 심지어 새로운 사료의 발굴이 없는 경우에도 역사는 새로 기록되기를 거듭했다. 역사학도 재조명과 재해석과 다시 쓰기를 거듭하면서 발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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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드림의 무섭게 빠져드는 과학책 - 읽다 보면 어느새 과학이 쉬워진다!
김정훈(과학드림)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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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빅뱅 후 4억년이 지난 시점에 수소로 가득한 먼지 속에서 수소끼리 뭉쳐 헬륨으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났다는 글이다. 암흑 시대가 끝나고 빛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별(항성)의 탄생은 중요하다. 우리가 별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이다. 빅뱅 후 90억년이 지나서야 우리 은하가 생겼다. 갓 태어난 지구는 불덩어리에 가까웠다. 행성 충돌이 잦아들면서 차츰 온도가 식었다. 이후 무거운 원소는 가라앉아 핵이 되었고 가벼운 원소는 상승해 맨틀을 이루었다. 표면에서는 마그마가 굳어 원시 지각을 형성했다.

 

지구가 점차 식어가면서 대기 중 수증기는 비가 되어 내려 강과 바다를 만들었다. 6500만년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지름 10km 정도의 소행성이 충돌해 공룡이 멸종했다.(27 페이지) 트라이아스기 후기인 2억 3천 4백만년전에서 2억 3천 2백만년전 사이인 200만년간 이어진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으로 공룡은 당시 생태계에서 5~10% 비율에서 90% 비율로까지 상승했다.(47 페이지)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은 어떤 이유로 일어났을까?

 

두 가지 가설이 제시되었다. 1) 화산 활동 가설, 2) 조산 운동 가설 등이다. 1)은 대규모의 화산 활동으로 다량의 온실 가스가 배출됨으로써 지구 온난화가 초래되어 물의 증발이 활발해져 많은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2)는 바다에서 융기한 킴메리아 산맥(지층)이 약 2억 5천만년전부터 천천히 위쪽으로 이동한 결과 신(新)테티스해가 열리고 구(舊)테티스해는 점점 닫혔는데 신테티스해에서 만들어진 구름이 킴메리아 산맥에 의해 차단되어 육지로 이동하지 못한 관계로 구름이 계속 쌓이면서 형성된 크고 강한 비구름이 판게아 대륙에 지속적으로 비를 뿌렸다는 주장이다.(49 페이지)

 

공룡 멸종은 아마존 밀림을 탄생시켰다. 운석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먼지구름과 잿더미에는 식물 성장에 필요한 인(燐; P)이 대량 함유되어 있다. 이 먼지가 땅으로 가라앉으며 인이 토양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인이 풍부하고 비옥한 토양에서는 겉씨식물보다 속씨식물이 더 빠르게 성장한다. 인의 공급은 폐허가 된 아마존 토양에서 속씨식물이 우점종이 될 수 있는 환경으로 작용했다. 7500만년전부터 다양해지기 시작한 콩과식물(속씨식물)은 뿌리에 서식하는 뿌리혹 박테리아의 도움으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더 빠르게 아마존의 빈 생태적 틈새를 속씨식물이 채울 수 있었다.

 

아마존 열대림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룡의 멸종이다. 대멸종 이전에는 거대한 초식 공룡이 우뚝 솟은 나무의 잎사귀를 뜯어 먹었기 때문에 숲의 캐노피 밀도가 낮게 유지되었고 햇빛이 지면에 골고루 닿았다. 공룡이 멸종하면서 속씨식물의 잎사귀를 대량으로 먹어 치울 동물들이 사라졌다. 공룡 멸종이 속씨 식물의 번성을 가속화했다는 의미다. 이후 아마존 밀림은 차츰 빽빽한 숲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283 페이지) 빽빽한 숲에서는 키가 큰 식물만 햇빛을 많이 받기 때문에 위쪽 식물과 아래쪽 식물의 탄소 동위원소 비율이 달라진다.

 

개방된 숲에서는 모든 식물이 햇빛을 골고루 받아 어느 식물이든 탄소 동위원소의 비율이 같다. 대멸종 이전의 아마존 식물 화석에서 추출한 탄소 동위원소 비율은 높이 자란 식물이든 아래쪽에 자란 식물이든 큰 차이가 없다. 대멸종 이후의 식물 화석군에서는 탄소 동위원소의 비율 차이가 컸다.(284, 285 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현무암이 이산화탄소를 잘 흡수한다는 사실이다.(38 페이지) 로디니아 대륙에 만들어진 대규모 현무암 지대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온실효과를 감소시킴으로써 냉각기가 도래했으나 결국 얼음이 현무암의 이산화탄소 흡수를 막아 온실효과가 다시 왔다. 이렇게 막을 내린 눈덩이 지구는 생명 다양성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광합성 세균은 많은 양의 산소를 만들어 대기와 바다 깊은 곳까지 공급했다. 얼음에 갇혀 있던 암석들이 지표에 노출되어 풍화 및 침식에 따라 인, 포타슘, 철, 칼슘 같은 무기염류가 바다로 흘러들어 동물들의 외골격이나 신체 조직으로 이용되었다.(40, 41 페이지)

 

현재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지구온난화가 수천만년전에는 인류 기원의 단초가 되었다.(57 페이지) 페름기 해양 생물종의 멸종 원인은 무엇일까? 지각을 뚫고 올라오지 못한 마그마에 답이 있다. 지각판 아래에 고여 있던 마그마가 난방 배관처럼 주변으로 계속 뻗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마그마는 수억년 동안 지층에 쌓여 있던 셰일, 탄산염, 석탄, 석유 등의 화석 연료를 태웠다. 온실 기체의 분출은 약 200만년 동안 지속되었다.(67 페이지) 지구는 더워졌고 해양은 산성화되었고 유독 가스는 만연했다. 이것이 페름기 대멸종의 메커니즘이다.

 

흥미로운 것은 식물마저 50~75% 멸종했다는 사실이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가스가 대량 배출되었기 때문이다.(71 페이지) 페름기는 고생대의 마지막 기이다. 공룡은 페름기의 불지옥에서 살아남은 동물이다. 사하라 사막의 지하수와 페름기 해양 생물종의 대멸종은 비교할 만하다. 전자는 지하로 스며든 물 즉 대수층(帶水層)으로 인한 것이다. 후자는 지각을 뚫고 올라오지 못한 마그마로 인한 것이다. 물론 지하수가 아닌 다른 요인으로 오아시스가 생기기도 한다.

 

고래가 물속이 아닌 육지를 두 발로 걸어다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파키스탄의 고래라는 의미의 파키케투스라는 화석이 발견되었다. 파키스탄의 인더스강 주변 산지에서 약 5000만년전 살았던 육상동물의 뼛조각이다. 인간을 포함한 다른 포유류들은 공기 진동으로 소리를 듣기 때문에 귀뼈 내부에 공기를 받아들이기 위한 공간이 넓다. 물속에 사는 고래는 공기 진동이 아니라 물을 타고 퍼지는 소리를 뼈 자체의 진동으로 들어야 하기에 이 진동을 전달하는 새뼈집이 매우 두껍고 치밀하다. 새뼈집은 오직 고래목에서만 발견된다.

 

걷는 고래라는 의미의 암불로케투스 화석도 발견되었다. 바다와 민물은 산소 - 16과 산소 - 18로 서로 다르다. 암불로케투스는 바다와 강을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다가 육지에서 바다로 진출한 중간 단계 종이다.(110 페이지) 먹이를 더 잘 찾고 포식자를 피하는 등의 이유로 육지에서 바다로 진출했을 것이다.

 

진화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113 페이지) 혁신적이다.(133 페이지) 진화는 또한 최고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저 조상이 가진 기본 틀에서 조금씩 변형될 뿐이다.(251 페이지) 궁금한 것은 진화가 이토록 혁신적이라면 왜 바퀴 달린 동물이나 프로펠러로 헤엄치는 물고기, 날개 달린 유인원은 없는 것일까? 영국의 생물물리학자 찰스 코겔은 ‘생명의 물리학’에서 바퀴는 다리보다 비효율적이라서 진화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바퀴가 도로나 철도 같은 평평한 표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지만 언덕과 자갈, 늪지, 진흙 등 수많은 장애물로 뒤덮인 자연환경에서는 비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물에게 바퀴는 오히려 생존에 매우 불리한 형질이다. 특히 먹이를 사냥하거나 천적을 피할 때 방향을 빠르게 전환하려면 다리가 바퀴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주장했다.(135 페이지) 진화는 일종의 땜장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것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조금씩 고쳐가며 처한 상황마다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다.(138 페이지) 리처드 도킨스는 인류의 팔이 날개로 진화하려면 여러 중간 단계를 거쳐야 한다며 특히 중요한 부분은 각 단계가 어떤 식으로든 생존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팔이 날개로 진화하기 어렵다.

 

반대로 새가 날개를 갖게 된 이유는 진화의 중간 과정마다 매번 생존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다는 의미다.(140 페이지) 날개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 누적된 자연선택의 결과다. 특정 형질이 변하거나 새로운 형질이 등장하려면 선택압이 필요하다. 오랜 세월 선택압이 없었던 은행나무는 1억년 전 모습 그대로 현재에 이르렀다. 인간을 비롯한 여타 포유류(박쥐 제외)에서 날개가 진화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당시 환경에서 날개가 등장할 만한 선택압이 없었기 때문이다.(142 페이지) 등장하기 어려운 형질을 불가능한 표현형이라 한다.

 

까마귀의 경우를 보자. 뇌에서 학습, 기억, 사고 등 지능과 관련 깊은 부위가 대뇌 바깥의 신피질이다. 조류의 뇌에는 신피질이 없고 팔륨(pallium)이라는 부위가 있어 신피질과 같은 역할을 한다. 까마귀의 뇌에 존재하는 팔륨에 분포하는 신경세포의 수가 비둘기, 닭, 타조 등 다른 새들의 신경세포의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찰스 다윈 대학교의 동물학자 파벨 네맥 박사는 지능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뇌의 크기나 체중 대비 뇌의 질량이 아니라 뇌 속 신경세포의 밀도를 꼽았다. 그는 까마귀나 앵무새의 경우 그 밀도가 영장류보다 2배나 높다며 이들의 지능이 높은 이유를 설명했다.

 

까마귀 뇌의 진화의 비밀은 사회적 지능 가설에서 찾을 수 있다. 까마귀는 다른 새들보다 복잡한 사회생활을 한다. 이런 생활이 까마귀의 뇌가 고도화하는 선택압으로 작용했다. 까마귀는 유독 긴 유아기를 갖는다. 비행 방법만 배우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다른 새들과 사뭇 다른 행동 양식이다. 이는 뉴런의 신경 밀도 증가와 인지 능력 확장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1974년 11월 고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은 에티오피아 아파르 지역에서 330만년전의 고인류 화석을 찾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일명 루시)다. 두개골은 없었지만 특별한 단서가 나왔다. 루시는 인류 진화 과정에서 큰 두뇌보다 두 발 걷기가 먼저 나타났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이들의 허벅지 뼈는 안쪽으로 모이는 모습을 했다. 이는 두 발 걷기를 하는 인간의 특징이다. 걷는 과정에서 한 발이 땅에서 떨어질 때 나머지 한 발로 중심을 잡기 위한 것이다. 침팬지를 비롯해 네 발로 걷는 동물들은 허벅지 뼈의 방향이 일자로 쭉 뻗어 있다. 침팬지와 달리 인간의 골반뼈는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균형을 잡기 위해 왕관 모양을 하고 있다. 루시의 골반뼈 역시 현재 인류와 유사했다.(214 페이지)

 

2년 후인 1976년 고인류학자 메리 리키 박사가 탄자니아 라에톨리 지역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발자국을 발견했다. 360만년전 이곳을 걸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이다. 루시는 채식뿐 아니라 종종 육식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에티오피아 디키카 지역에서 어린 소의 것으로 보이는 340만년전의 허벅지 뼈에 날카로운 석기 자국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해당 시기 이 지역에 살았던 고인류 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유일했다. 루시가 도구를 사용했고 육식도 병행했음을 암시하는 증거다. 물론 루시는 적극적으로 동물 사냥에 나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몸집이 작아 맹수가 먹다 남긴 동물 사체를 노렸을 것이다. 훗날 루시는 200만년전 새롭게 등장한 호모속에게 최초의 인류 자리를 내주었다. 물론 두 발 걷기와 육식, 도구 사용, 한 단계 진전된 두뇌, 협력 사회까지 구축한 루시는 분명 최초의 인류답다.(221 페이지)

 

인간은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과일 박쥐, 기니피그와 같이 체내에서 비타민 C 합성을 하지 못한다. 저자는 비타민 C를 버리고 얻은 진화적 이점에 대해 논한다. 수백만년전 인류의 조상은 과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숲에 서식했다. 그렇기에 비타민 C를 합성하는 유전자가 고장 나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훗날 인류가 숲을 벗어나 초원지대로 나오고 진화를 거듭한 호모 에렉투스 같은 인류의 조상이, 기후가 저마다 다른 여러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비타민 C 결핍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졌을 것이다.(256 페이지) 인간이 잃어버린 유전자는 많다. 과학자들은 진화 과정에서 인류가 잃어버린(기능이 망가진) 유전자가 무려 2만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어떤 유전자는 불 때문에 잃었다. 불로 음식을 구워 먹는 과정에서 식물의 독성 물질이 제거되기에 인류 조상은 굳이 쓴맛을 느끼는 유전자를 갖고 있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인류의 뇌는 3000년전까지 폭발적으로 커지다가 그 이후 급격한 감소세를 보였다. 정보의 외장화와 극단적인 분업화가 원인이다.

 

인간에게만 맹점이 있고 부비동에 염증이 생겨 축농증에 잘 걸린다. 인간은 삼키기와 숨쉬기를 동시에 할 수 없는 동물이다. 뱀이나 새는 호흡과 소화 경로가 완전히 구분되었다. 진화생물학자 이상희 교수는 우리의 목구멍이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진화한 이유는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말을 못하는 침팬지는 후두가 위로 올라와 있는 반면 성인 인간은 후두가 한껏 아래로 내려와 있기 때문에 목소리통이 커질 수 있고 이 덕분에 다양한 음성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254 페이지) 우리의 목구멍은 질식사의 위험을 떠안은 대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랑니는 수백만년전 우리 인류 조상에게도 있었다. 240만년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강한 턱 근육을 발현시키는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났다. 턱의 크기는 점차 작아졌지만 치아의 개수를 결정하는 유전자에는 변화가 없었다. 좁아진 공간에 32개의 치아가 모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특히 28개의 치아가 다 자란 후 마지막에 나는 사랑니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턱 없이 부족해졌다. 그 결과 사랑니는 이상한 각도로 날 수밖에 없었다. 불로 음식을 해먹는 과정을 통해 쓴맛을 느끼는 유전자를 잃은 인류는 불로 음식을 해먹게 됨으로 인해 턱이 작아져 사랑니까지 갖게 된 것이다.(265 페이지)

 

호모 날레디는 미스테리한 고대 인류다.(날레디는 별이란 의미다.) 이들은 초기 호모속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특징이 섞인 모자이크 화석이다. 이들은 43만년전 무렵 출현한 네안데르탈인이나 30만년전 무렵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와 동시대를 살았다. 디날레디 챔버에서 발굴된 호모 날레디 화석은 1, 500점에 이르고 15 개체에 달한다.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많은 인류 화석이 발굴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는 장례 문화 흔적으로 해석되었다. 뇌 용량이 600cc에 지나지 않는 이들이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 가설이고 논쟁 중인 이야기다.(274, 275 페이지)

 

진화는 잡종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남극은 지구에서 다섯 번째로 큰 대륙이다. 남극을 덮고 있는 얼음이 모두 녹으면 지구 해수면이 60미터나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남극 얼음은 소금이 녹아 있지 않은 담수다. 이러면 해수의 염도가 대폭 낮아져 산호를 비롯한 수많은 해양생물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

 

대규모의 해수 순환은 해수의 온도와 염도에 따른 밀도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염도가 떨어지면 해수의 밀도도 변화해 지구의 해양 대순환이 망가질 수 있다. 해양 순환은 대기 순환과 연관되기 때문에 결국 지구 전체의 날씨가 극심한 변화를 맞을 수 있다. 저자는 세균이 없는 세상은 죽음의 세계가 될 것이란 말을 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관계하는 진화의 실상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과학의 의미를 저자의 책을 통해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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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모멘트 - 우주 감각을 깨우는 천문학 공부
일본과학정보 지음, 류두진 옮김, 와타나베 준이치 외 감수 / 로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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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모멘트’는 진기한 정보로 가득한 책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465억 광년이란 말이다. 465억 광년(이론상의 수치)이란 우주의 팽창이 표면의 팽창이 아닌 모든 공간의 팽창이기에 나온 수치다. 당연히 관측 가능한 우주의 건너편은 상호작용하지 않아 알 수 없다. 어려운 말이지만 저자는 현대물리학의 표준 모형(양자역학)에서는 소립자를 이론으로 나타내 계산하기 위해 그 크기를 0 또는 점으로 하기로 약속함에 따라 소립자 계산이 가능해졌고 미시적 영역과 우주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42 페이지)

 

1990년 무렵까지 우주가 빅뱅의 여운으로 팽창한다고 생각했다. 1998년 Ia형 초신성이 관측되면서 천문학과 물리학에 충격을 주었다. 우주 팽창이 오히려 가속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암흑 에너지 때문으로 보고 있다. 암흑 물질은 공간이 가진 에너지다.(46 페이지) 암흑 에너지 말고 짚고 넘어가야 할 미지의 물질이 암흑 물질이다. 검출이 가능하지 않아 미세물질도 아니고 물질과 작용해 감마선을 방출하지도 않아 반물질도 아니고 주변 별에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도 않아 블랙홀도 아니다.(48 페이지)

 

현재 천연 원소의 숫자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의 구성비에 따라 94개에 달한다. 물체의 내부를 알아보는 방법은 파괴하는 것이다. 원자끼리 충돌시켜 원자를 파괴했을 때 나오는 입자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때 가속기를 사용한다. 가속기 안에 양성자나 전자를 넣고 광속에 가까운 속도까지 가속해 서로 충돌시켜 안에서 나온 입자를 관측한다. 우주를 관측할 때는 X선 망원경을 지상이 아닌 우주에 발사한다. 우주에서 오는 X선은 공기에 닿으면 확산되고 감쇠하기 때문이다.(61 페이지)

 

중력은 상대성이론이 나타내는 무대이고 소립자는 양자역학이 나타내는 배우와 같다. 그런데 그 연극을 통일하지 못해 양자역학에 중력을 적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양자역학에 중력을 적용하기 위한 소립자 즉 중력자를 고안했다. 중력자는 가설에 불과한 소립자다. 우주는 거의 진공 상태인데 장소에 따라 분자의 밀도가 높은 부분이 존재한다.(73 페이지) 이 부분을 지구에서 보면 검은 구름처럼 보여 암흑성운이라 한다. 태양의 질량을 1이라 할 경우 태양 정도로 밝게 빛나는 항성이 되려면 태양 질량의 약 0.08배에 해당하는 질량이 필요하다.(74 페이지)

 

0.08배 이하의 별은 압력과 온도가 부족해 수소 핵융합이 불가능하다. 별에 포함된 중수소가 핵융합하여 약간의 열량이 생기면 별은 어둑하게 빛나다가 수억 년 후 핵융합이 멈추고 식어 점차 어두워진다. 이 별을 갈색왜성이라 한다.(75 페이지) 항성은 핵융합에 의해 팽창하려는 힘과 중력에 의해 수축하려는 힘이 균형을 이루어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항성이 된다. 항성은 가벼울수록 수명이 길다. 인류는 아직 항성이 수명이 다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태양을 포함해 태양의 0.5배에서 10배 크기의 항성은 수소 핵융합으로 헬륨이 생성되면서 별의 중심에 헬륨이 모여 있다.

 

중심에서 핵융합하던 수소는 외층으로 밀려나 그곳에서 핵융합을 시작한다. 그 결과 항성은 팽창하고 거대해진다. 태양 질량의 10배에서 29배에 이르는 항성은 헬륨의 핵융합으로 탄소와 산소가 만들어진다. 이후로도 핵융합이 이어져 네온, 마그네슘, 규소 등이 생성된다. 최종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철이 만들어진다. 철은 가장 안정적인 원소이기에 더 이상의 핵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때 별은 두 힘(핵융합으로 확대하려는 힘과 중력에 의해 수축하려는 힘)간의 균형이 깨져 중심을 향해 단번에 수축한다. 중심부의 압력이 상승하면 철이 중성자로 변한다.

 

중성자는 더 이상 수축하지 않는 축퇴압(縮退壓)을 가지고 있으므로 중심부의 수축이 순식간에 멈추고 반동으로 표면 물질이 단번에 날아가 별의 핵만 남는다. 이를 초신성 폭발이라 한다. 이렇게 하여 중성자로 이루어진 고밀도의 천체 즉 중성자별이 탄생한다.(79 페이지) 중성자별의 밀도는 압도적이다. 중성자별은 중력에 의해 수축하려는 힘과 중성자가 가진 축퇴압이 균형을 이루어 형태를 유지한다.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양성자, 중성자, 전자라고 여겼던 시대의 가장 궁극적 천체가 중성자별이다.

 

하지만 소립자의 발견으로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작아져 쿼크별, 기묘한 별 등 새로운 천체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중성자별은 우리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이면서 혹독한 천체 중 하나다. 지름이 20km에 불과한데 질량은 태양과 거의 비슷하다. 작고 매우 무거우며 강력한 중력으로 빛조차 휘게 한다.(82 페이지) 항성의 대부분은 양성자와 전자가 제각기 움직이는 수소의 플라스마 상태다. 항성의 중심인 핵에 가까워지면 압력이 더욱 높아지고 온도가 상승해, 원래였다면 서로 반발했을 양전하를 가진 양성자들의 사이가 가까워진다.

 

온도가 더욱 높아지면 양성자들끼리 반발하는 힘을 떨쳐내고 충돌해 융합한다. 이를 핵융합이라 한다. 수소가 융합하면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헬륨을 생성한다. 별은 자신의 중력으로 스스로 쪼그라드는데 중심에서 일어나는 핵융합이 쪼그라드는 힘을 밀어낸다. 이 절묘한 균형으로 항성은 태양처럼 둥글고 오랜 시간 밝게 빛난다. 하지만 이 균형은 영원하지 않다. 수소의 핵융합이 오래 지속되면 연료인 수소가 점차 줄어들고 수소보다 무거운 헬륨이 항성의 중심에 모인다. 태양 정도 크기의 별은 이 상태가 되면 중심부가 헬륨으로 가득 차고 수소는 물러나서 중심이 아닌 중심보다 조금 바깥쪽의 수소가 핵융합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전자와 양성자는 반발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들러붙는 일은 없다. 하지만 별이 쪼그라들 때의 압력이 매우 강력해 전자와 양성자가 들러붙고 중성자가 생성된다. 초신성 폭발 후 별의 중심에 핵만 남는데 이것이 중성자별이다. 지구나 우주에 존재하는 철보다 무거운 원소의 대부분은 중성자별끼리 충돌해 만들어진다. 중성자별은 서로 충돌해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낸 후 블랙홀이 되어 죽음을 맞는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졌다. 쿼크들을 묶어주는 소립자가 글루온이다. 글루온은 강력을 전달해 입자의 형태를 유지한다.

 

여섯 종류의 쿼크의 다양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입자 중 안정적인 것은 양성자, 중성자다. 쿼크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구성하는 동안에만 안정적이다. 쿼크 단독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95 페이지) 수성은 항성인 태양에 가까이 있어 그 강한 중력에 따라 자전에 제동이 걸려 지구를 도는 달처럼 항상 같은 면을 태양을 향한 채 돈다는 말(104 페이지, 203 페이지)이 새롭다. 물론 수성의 궤도는 타원형이어서 완전한 제동을 피하고 자전한다. 금성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대기가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매우 무겁다. 지표면 부근의 기압은 지구의 92배에 달한다.

 

금성 지표면 부근에 있는 것은 수심 920 미터의 바다에 맨몸으로 잠수하는 것과 같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행성이 되지 못한 물질의 집합체인 소행성대가 있다. 일반적으로 행성은 충돌을 거듭해 만들어진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들은 목성의 강력한 중력에 의해 성장을 방해받아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이다. 물론 이런 목성은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는 것을 막아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목성이 없었다면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는 빈도가 늘어 생명이 풍부한 지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 있다.(110 페이지)

 

태양의 성분인 수소는 초고압으로 전자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플라스마 상태다. 과학에서 에너지는 단 두 가지다. 화학적 위치 에너지, 운동 에너지 등이다. 석유나 석탄은 불을 붙이면 화학 결합이 파괴되어 에너지가 방출된다. 방출된 에너지는 열로 나타나며 우리는 그것을 느낀다. 물의 경우 각 분자의 에너지를 평균한 것이 온도로 나타난다. 우주가 가진 총에너지는 우주 탄생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항상 일정하다.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상대성이론 공식 E =mc²이다. 막대한 에너지를 매우 좁은 영역에 응축하면 물질이 만들어진다. 소립자가 그것이다.(125 페이지)

 

에너지로부터 소립자가 만들어질 때 반드시 두 개가 한 세트로 출현한다. 전자와 양전자 식으로. 양성자나 중성자를 충돌시키는 가속기로 에너지에서 물질을 만들 수 있다. 가속된 양성자나 중성자가 부유 상태의 원자에 충돌하면 막대한 에너지가 고밀도로 발생하고 에너지로부터 입자가 만들어진다. 우주 탄생 초기에 물질과 반물질이 정확히 반반씩이었다면 현재 우주는 전자기파만 떠도는 적막한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중력과 가속은 같다는 전제하에 중력을 특수상대성이론에 도입한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태양이 방출하는 모든 에너지의 99%는 중성미자이고 나머지 1%는 전자기파다.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가설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광양자 가설은 빛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라는 주장을 담은 설이다. 빛의 이름은 광자다.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 불가사의한 소립자다. 소립자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쿼크와 렙톤(전자, 중성미자)이고 다른 하나는 소립자 사이에서 힘을 매개하거나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게이지 입자와 힉스 입자다.(157 페이지) 중성미자의 무게는 전자 무게의 수백만 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초신성 폭발을 관측하면 중성미자를 관측할 수 있다. 초신성 폭발 직전의 별은 수십배에서 수백배에 이르는 비정상적인 크기로 팽창한다. 중성미자는 폭발 순간에 빛보다 빠르게 지구에 닿는 입자다. 핵융합을 하지 않는 별은 핵을 향해 단번에 수축하고 핵에서 반발해 나온 충격파가 별을 날려버린다.(163 페이지)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드물게 물 분자와 충돌해 전하를 띤 입자를 발생시킨다. 물론 순도 높은 물이어야 한다.(165 페이지)

 

지구 탄생 직후 표면이 새빨갛게 타던 무렵 지구 대기는 태양과 거의 비슷하게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졌었다. 강력한 태양풍이 대기의 대부분을 날려버리고 우주 공간으로 방출시켰다. 이로써 지구는 한때 대기가 거의 없는 상태였었다. 이후 표면 온도가 식어 지각이 생기고 화산 활동이 시작되고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되었다. 결빙선(화성과 목성 사이에 존재하는, 지구형 행성과 목성형 행성을 나누는 경계) 바깥의 몇몇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해 대량의 물을 지구에 공급했다. 지구가 더욱 식어가자 대기 중의 수증기가 구름을 만들어 비를 내리게 했다. 비는 바다를 만들고 바다와 암석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대기압이 급속히 낮아졌다.

 

대량의 수증기로 만들어진 바다는 중금속이 녹아내리는 산성을 띠어 매우 유독했다. 지구 내부의 맨틀이 대류하면서 일부가 판에 균열을 만들어 판이 밀려났다. 밀려난 만큼 판은 다른 곳으로 침강했다. 바다에 포함된 중금속이나 육지에서 흘러들어와 바다의 산성을 중화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암석이 해저에 쌓여 판의 침강과 함께 지구 내부에 갇혔다. 이렇게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바다가 만들어졌다.(176 페이지) 지금으로부터 22억년 전쯤에 우리 은하와 소형 은하가 충돌했다. 이 충돌로 거대한 별이 단번에 생겨났다. 거대하고 수명이 짧은 항성은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다.

 

초신성 폭발로 발생한 강렬한 전자기파가 지구에 쏟아져 내려 대기를 변화시키고 구름을 만들어 지구 전체가 얼어붙었다. 거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했다.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바다 아래에서는 살아남은 생명이 다음 진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구가 다시 따뜻해지자 살아남은 생명이 진화를 시작해 지구는 다시 생명으로 넘쳐났다. 판의 이동으로 대륙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대륙으로부터 대량의 영양분이 바다로 흘러들었다. 그때(약 5억 5천년전)까지 몸의 형태가 부드러운 생명만 존재했던 바다에 칼슘이 증가했다. 조개처럼 표면에 딱딱한 골격을 가진 생명이 탄생하기 시작했다.(179 페이지)

 

지금으로부터 700만년전 인류에게 커다란 분기점이 생겼다. 사람 아족과 침팬지 아족의 분기다.(185 페이지) 250만년전 사람속 최초의 인류가 탄생했다.(181 페이지) 30만년전 수렵생활을 하고 문화가 탄생하면서 간단한 단어로 소통을 하게 되었다. 이 무렵 존재했던 인류의 종류는 여섯이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사피엔스 등이다. 인류가 크게 변화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5만년전이다. 그 이전에 사람은 석기를 사용하거나 불을 사용하면서 서서히 진화를 계속했다. 진화의 속도는 매우 느렸다. 유전자의 진화에 불과했다.

 

5만년전을 경계로 사람은 함정을 사용해 수렵을 하거나 옷을 만들거나 죽은 사람을 매장하거나 동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언어의 발달로 인한 결과다.(186, 187 페이지) 인류 역사상 최강(현대인보다 뇌 크기도 크고 몸도 근육질이었고 생활과 관련한 모든 것을 기억해 동식물의 모든 지식을 취한)이었던 그들이 크게 변화하는 사건이 찾아온다. 약 1만년전의 농업혁명이다.(189 페이지)

 

백색왜성은 별의 시체다. 두 가지 패턴이 있다. 하나는 적색왜성이 타고 남은 재다. 다른 하나는 태양과 같은 거대 행성에서 만들어진다. 거대 항성은 중심부에 수소가 핵융합해서 밝게 빛난다. 점차 수소가 줄어들면 중심부에 헬륨이 모인다. 헬륨 바깥에서 수소가 핵융합한다. 이 상태가 되면 별은 매우 불안정해진다. 별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물질을 방출한다. 별의 약 절반 정도 되는 물질을 방출하고 나면 중심부에는 핵만 남는다. 별의 중심부에서 이루어지는 핵융합은 제어된 핵융합이지만 별의 표면에서 핵융합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수소폭탄 그 자체다.(205 페이지)

 

단번에 수소가 융합해 폭발하는 것을 신성(新星)이라 한다. 태양보다 압도적으로 무거운 별은 수소가 헬륨으로 융합하고 헬륨이 탄소나 산소로 융합해 마지막에는 철이 만들어진다. 철은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아 더 이상 핵융합하지 않는다. 별은 안쪽에서 반발하는 힘을 잃어버린다. 반발하는 힘을 잃어버린 별은 빛의 1/4의 속도로 그야말로 한순간에 수축하고 만다. 수축은 별의 중심에서 튕겨 되돌아오고 반동으로 별은 단번에 물질을 방출한다. 이것이 초신성 폭발이다.(249 페이지) 이때 별의 크기가 태양의 10~20배 정도가 되면 폭발 후에 중성자별이 남는다. 그리고 별의 크기가 태양의 30배 이상이 되면 초신성 폭발 후 블랙홀이 생성된다.(249 페이지)

 

저자는 그레이트 필터 이야기를 한다. 그레이트 필터는 지능을 가진 생명의 숙명인지 모른다. 생명을 근절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을 때 스스로를 멸망시켜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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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이 내 삶에 스며들 때 - 우리는 나다움을 찾으며 코치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김리은 외 지음 / 렛츠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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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나가야 할까? 누군가에게 유용한 지식을 전달해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할까? '코칭이 내 삶에 스며들 때'를 접하며 한 생각이다. 각자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으며 차원이 다른 전문 분야인 코칭계의 구성원들이 코칭 이론을 자신에게 적용한 바를 담은 '코칭이 내 삶에 스며들 때'는 20인의 공저자가 둘로 나뉘어 한 부류는 코칭을 만난 후 체험한 자기 발견과 성장에 대해 기록하고 다른 한 부류는 10년 후 실현되기 바라는 바를 기록한 책이다.

 

소통과 리더십 전문 강사 김리은은 스토리텔러에서 스토리 마이너로란 소제목의 글을 선보였다. '스토리를 전하는 사람에서 스토리를 캐내는 사람으로'란 의미일 것이다. 이는 ‘읽는 사람에서 쓰는(짓는) 사람으로의 전환’이라는 모토를 닮았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읽기만 하는 사람에서 읽고 쓰는 사람으로 전환하는 것이라 해야 더욱 정확할 것이다.

 

금융 공기업 종사자 김만석은 코칭이 일상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 달리기 경험에 근거해 쓴 글이어서인지 이 분의 글이 나에게는 가장 역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분이 언급한 코칭의 역사(스포츠 분야에서 시작해 라이프 분야로, 비즈니스 분야와 모든 커뮤니케이션 영역으로 확대)는 핵심이라 할 만하다.

 

Bloom Grow 연구소 대표 전백근은 독서의 힘을 언급한 데서 나아가 코칭이 자신의 삶 속에 소리 없이 스며들어와 변화와 성장이라는 선물을 주었다고 썼다. 책의 제목이 이 글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보인다. 물론 모든 필자의 글이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그런 취지가 담긴 글일 것이다.

 

독자들은 본문 곳곳에서 코칭을 배운다는 표현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어떤가? 꾸준히 읽어오고 간혹 전문적으로 쓰지만 구체적이지 않았다. 두 분야(문화, 지질)에서 해설을 하는 나는 해설사가 된 지난 2016년 이래 꾸준히 주위의 지인들에게 해설은 어떻고 글은 어떻고 등의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돌아보며 책을 읽고 나니 코칭은 어엿한 전문 분야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짓수 하는 코치/ 임상 심리사라는 흥미로운 프로필의 당사자 최인복은 코칭을 통해서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경험을 수없이 했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떤 방식으로 다가서는지도 알게 되었다.’고 썼다. 코칭의 취지를, 코칭이 자신의 삶에 스며들 때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나는 이를 보며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의 책을 떠올렸다. '내가 나를 치유한다'와 '나를 다 안다는 착각'이다. 미세한 차이를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정신분석까지는 아니고 심리 상담과 공명하는 것이 코칭이 아닐지? 상담 역시 코칭처럼 대화(를 통한 소통과 약속, 신뢰, 기대)가 필수다. 그렇기에 벼랑 끝에 있던 나에게 희망을 주셨다는, 힐링이 되었고 길을 찾게 해주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글(N게임사 HR 담당 국지혜의 글)은 상당히 희망적이다.(HR consultant 8 coach 박혁순이 쓴 코칭함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주목할 만하다. 1. 경청, 2. 판단하지 않기, 3. 마음 알아 차리고 공감하시, 4.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 믿어주기)

 

아우름 코칭 연구소, 동네 코칭 고현희의 글은 가장 문학적인 글이다.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인용되어서만은 아니다. 필자는 17세기 영국 런던의 종(鍾) 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를 코치의 종이란 화두로 이어갔다.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치는 종 소리를 들은 하인이 귀족에게 누가 죽었는지 고하면 귀족은 장례식 참석 여부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다.

 

하인이 종 소리의 실상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고하는 것은 귀족의 부름을 받아서이거니와 존 던은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지니 그것은 그대를 위해 종이 울리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필자는 코치는 삶의 어려움에 부딪힌 누군가가 도움을 구하는 심정으로 치는 종 소리를 듣고 그의 어려움에 동참하여 객관적, 수평적으로 함께 하는 '응원과 위로와 지지와 도움을 담아 치는 소리'의 종을 쳐야 한다고 썼다. 좋은 코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필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기업교육 컨설팅 뉴브릿지에듀 대표 한유정은 가진 것을 나누는, 코치를 양성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다. 공동 프로젝트로 꾸린 책이 주는 역동성과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로 수렴하는 주제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열정과 전문성이다. 진실된 개인의 삶의 면면들을 들은 것은 덤이었고. 코치 되는 법을 비롯 본문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비결을 전하는 부록을 통해서까지 많이 배울 수 있는 책이‘코칭이 내 삶에 스며들 때’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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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에 갇힌 역사, 프레임을 깨는 역사
신유아 지음 / 혜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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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frame)은 틀, 액자 등을 의미한다. 프레이밍(framing)이란 사진을 찍을 때 대상을 파인더의 테두리 안에 적절히 배치해 화면을 구성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는 신유아의 '프레임에 갇힌 역사 프레임을 깨는 역사'를 읽을 때 필요한 최소의 앎이다. 저자는 역사는 어떤 시각으로 어느 면을 보느냐에 따라 허구를 섞지 않은 사실만 가지고도 전혀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32 페이지) 이는 저자가 우리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보자는 취지로 한 말이다. 우리 눈으로 우리 역사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하다.

 

저자가 제시한 바에 따르면 국사에는 우리 시각으로 보았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한계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는 저자가 15년간 고교 역사 교사로 근무하며 국사와 세계사를 복수로 가르친 결과 알게 된 사실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제목 그대로 프레임에 갇힌 역사와 프레임을 깨는 역사다. 개인적으로 목차에서 흥미롭게 보게 된 것이 몇 있다. 객관과 실증에 대한 강박, 성리학의 역할, 당쟁, 예송(禮訟), 골품제도의 위력, 과거시험의 위력, 역사 발전의 의미와 동력 등이다.

 

책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전근대와 근현대로 나누는 것은 문제라는 사실이다. 저자에 의하면 근대에 대한 맹신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부작용의 최고봉은 식민지근대화론이다. 근대가 지체된 것에 대한 우리의 과도한 죄책감은 식민지와 근대화라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만나게 했다.(55 페이지) 책은 저자의 경력(국사와 세계사를 함께 가르친)을 반영하듯 세계사와 우리 역사를 넘나드는 방식의 서술로 일관한다. 물론 중심은 우리 역사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바른 길을 제시하는 데에 놓여 있다.

 

저자는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과거에 근거 없는 한계를 설정하여 서양과 똑같은 역사를 갖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6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랑케식의 실증과 객관에 대한 강조는 우리나라의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73 페이지)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역사학자들이 우리에게 전파한 것일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유교적 합리주의가 랑케의 객관적 실증주의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 역사 기록의 성격과 유럽의 그것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유럽의 역사 기록 가운데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전언과 구전에 의한 기록, 음유시인들의 노랫말에 상상을 더한 기록이 많았지만 그들은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라도 과거의 일을 최대한 밝힐 수밖에 없었다.(73 페이지) 랑케가 객관적 사실만을 기록하라고 강조한 것은 이런 사정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사실(史實)의 객관성과 정확성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의 기준에 비추어 합리적이지 않다거나 중국 등 다른 나라의 역사 기록과 차이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불신하고 우리의 역사 기록을 믿지 않으려는 태도는 재고해 보아야 한다.(76 페이지)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실증에 대한 강박에 의해 우리 역사 연구에서 역사적 상상력이 사실상 퇴출된 것이다. 저자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한계로 보는 시각에 대해 재고할 것을 요청한다. 저자에 의하면 신라가 당과 손잡고 대동강 이북 영토를 당에게 넘겨주기로 한 것은 (중국의 사서를 통해 증명되지는 않지만)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신라가 당과 손을 잡지 않았다면 아마도 신라는 망했을 것이며 본래 신라의 영토도 아니었던 대동강 이북의 땅을 잃지 않기 위해 당과의 동맹을 고려하지 않고 자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81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우리 역사를 박(薄)하게 보는 것의 배경을 논한다. 유교적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역사학의 잘못된 만남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일제가 강요한 식민사관(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에 상당한 혐의가 있다고 말한다.(85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역사 인식에 있어서 자가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모든 인류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역사를 누구의 시선에서 보려고 노력해왔는지에 대해 돌아볼 때도 되었다.(87 페이지)

 

저자는 성리학에 의해 조선이 창업되었으니 성리학에 의해 망했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성리학에 의해 백성들의 실생활과 상관 없는 논쟁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정파가 갈려 무익한 정쟁을 일삼으면서 조선이 줄곧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는 시각은 익숙하다. 서인에 의한 반정(反正)이 과연 명(明)에 대한 의리와 폐모살제를 규탄하는 성리학적 명분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광해군의 대북(大北) 정권에 반발한 서인들이 이러한 명분을 이용하여 정권 탈환에 나선 것인지는 잘 따져 보아야 한다.(90 페이지)

 

한 마디로 서인세력은 광해군을 내몰기 위해 적절한 명분을 이용했을뿐 단순히 성리학적 사고에 사로잡혀 반정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91 페이지) 저자는 서인 정권이 인조반정 이후 명에 대한 의리를 무리하게 주장하여 병자호란이라는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도 서인이 사대주의의 화신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함으로써 반정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게 되면 정권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결과로 본다. 저자에 의하면 성리학은 인간의 선악과 시비에 대한 분별력이 왜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 알고 인간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교화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성리학은 현실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또 그 해결을 지향했던 학문이었다.(9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주기론(主氣論), 주리론(主理論)은 식민사관을 주장했던 다카하시 도루가 조선의 성리학을 깎아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잘못된 용어다. 이황은 이(理)가 스스로 동(動)할 수 있다고 보아 인간 스스로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이이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이런 전제하에서는 인간 심성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하게 믿었고 이황의 학맥을 이은 동인(東人; 후에 남인과 동인으로 분기)은 군주에 대한 기대가 크고 마음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큰 편이었다.(외형적 제도나 물질적인 측면의 변화보다 인간 심성의 변화에 의존하는 정도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인간관을 가졌다.)

 

이이에게 인간의 선악은 기질의 차이에서 비롯된 당연한 것이었고 인간이 도덕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이의 학맥을 계승한 서인은 인간을 성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 자체의 도덕적 변화 가능성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황과 이이는 모두 선조에게 성인이 될 것을 주문했다.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군주의 심술(心術)에만 의존하려는 성향은 남인의 패인이었다.(102 페이지) 남인은 왕권을 견제하기보다 강화하는 쪽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남인 가운데 실학자로 분류되는 인물들은 뒤늦게나마 다방면에 걸친 제도 개혁을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부정하지 않았다.(104 페이지)

 

저자는 예송에 대해 중종 이후 줄곧 수세적 위치에 있었던 왕권이 효종 대의 북벌, 현종 대의 예송을 통해 다시 성장하기 시작해서 숙종 대의 환국을 통해 크게 강화됨으로써 영조와 정조 대의 중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다고 썼다.(125 페이지) 역사를 편견 없이 읽으려 한 결과 예송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제시한 모범 사례로 기록될 부분이다. 물론 저자의 시각은 왕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중세사회에서 왕의 위상에 대해 신하들이 왈가왈부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의 발전인 바 그 부분에 예송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쓴 ’한국사 속의 한국사 2; 조선왕조 500년‘과 비교할 만하다.

 

긍정적인 시각이라는 점은 같지만 전자는 왕권 강화에 초점을 두었고 후자는 신하들이 왕권에 대해 왈가왈부했다는 점이 발전이라는 말을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관건은 짧게 제시된 저자의 글을 내 나름의 근거와 논리로 보강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재미 있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효종과 현종대에 있었던 서인과 남인의 충돌이 계기가 되어 국왕의 역할이 계속 확대되었다고 썼고(126 페이지) 숙종 대에는 왕권이 강화되었고 황해도와 평안도까지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실시되었으며 인구와 경지 면적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으며 국경 수비 시설에 대한 보수 공사도 활발히 진행되어 말 그대로 부국강병이 이룩된 시기였으며 신분 상승 가능성도 효종 대의 19%보다 높은 30%대로 뛰어오른 시기라 썼다.(128 페이지)

 

또한 영조는 쌍거호대(雙擧互對) 원칙을 내세워 하나의 부서에 노론과 소론, 때로는 남인까지도 고루 등용하는 정책을 폈다고 썼다.(12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영조는 무신란(戊申亂;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노론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같은 소론 온건파에게 진압을 맡김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탕평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12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정조 대에는 경지면적과 인구,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더욱 확대되었다.(136 페이지) 덧붙여 저자는 정조 대의 발전은 정조의 치세에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정치 개혁의 결과라기보다 현종 대부터 시작되었던 역사의 상승 국면이 꽃을 피운 결과라는 말도 했다.

 

저자는 정조 말년의 수원 화성 축조 등으로 인한 재정 부담이 그의 사후 세도정치의 단초가 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논의할 부분은 ’인간의 역사에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는 서로 분리되어 움직였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모두 상호작용을 해 왔고 어느 한 가지 요소도 절대적인 원인으로서 선행하지 않았다.‘(8 페이지)는 말이다.

 

책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꽤 있다. 정조가 말년에 시행한 수원 화성 축조 등으로 인한 재정 부담 가중으로 그의 사후 세도정치의 단초가 되었다는 글(136 페이지)이 그렇다. 현실인식이 잘 된 광해군이 아무 이유 없이 궁궐 공사 등으로 재정을 낭비했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고 보며 당시 광해군은 모문룡에 대한 지원 등 명의 과도한 요구를 물리치기 위해 궁궐을 지어 국가재정을 다 써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는 글(91 페이지)도 그렇다.

 

저자는 ’인간의 발전을 물질적 측면의 변화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고 묻는다.(139 페이지) 저자는 ’산업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풍요로운 삶의 토대일뿐 인간의 삶을 진정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처음부터 인간 자신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아닐까?’라고 묻는다.(141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역사 발전의 동력은 인간이 자유를 더욱 확대하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제공되고 자유의 확대는 이성과 합리가 더욱 증대된 시스템에 의해 가능하다.(143 페이지) 욕구 실현의 기회가 오직 혈통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지배층으로 태어난 이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대다수의 피지배층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계급 또는 신분을 세대마다 새롭게 실력 대결을 통해 결정하려고 하면 그 집단은 몇 세대 이상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들끼리의 경쟁으로 인해 외적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147 페이지) 부모의 능력이 자손에게 고스란히 유전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 절대 다수의 인간들은 유전자가 보증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여간해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분 세습을 내면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종교가 제시하는 전생 또는 내생에 대한 믿음이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지배층은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를 계속해서 누리기 위해 어떻게든 국가의 수명을 늘려야만 했고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것이 학문의 역할이었다.(149 페이지)

 

능력이라는 개념으로 고려(高麗)라는 국가에 대해 풀어보자. 광종 대에 과거 제도를 도입한 고려(163 페이지)의 건국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려 왕조의 건국은 흔히 고대사회에서 중세사회로의 전환이라고 평가된다. 골품제도가 폐지되고 능력에 따라 출세할 수 있는 사회로 한 단계 발전하였기 때문이다.(163 페이지) 과거(科擧)는 송(宋)에도 변화를 초래했다. 과거제가 세습적 특권을 단절시키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게 되면서 송의 지배층은 더 이상 귀족이 아닌 유교 경전을 공부한 사대부(士大夫)로 바뀌었다.(162 페이지) 송의 과거는 황제가 최종시험을 직접 주관함에 따라 황제권이 크게 강화되었다.

 

송 대의 과거제가 초래한 결과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철저한 관료제의 확립이 황제권을 비대하게 만들어 환관에 의한 측근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 기회를 가진 모든 구성원이 신분 상승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송 대에 화약과 나침반이 발명되고 과거 시험의 수험서를 인쇄하는 과정에서 인쇄술이 크게 발전하는 등 문화가 융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212 페이지) 귀족 출신에게 유리했던 과거제가 송 대에 들어와 더욱 합리적으로 바뀐 것은 당말 5대 10국의 항쟁 과정에서 귀족 세력이 대부분 몰락했기 때문이다. 가문의 영향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오직 개인의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완전한 형태의 과거제가 시행될 수 있었고 국가의 중심세력도 귀족이 아닌 사대부 계층으로 바뀌었다.(211 페이지)

 

과거제의 시행은 왕건에게 협조하여 나라를 세운 호족세력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태어나는 동시에 보장되었던 여러 가지 특권들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바뀔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164 페이지) 광종은 쌍기를 지공거(知貢擧)에 임명했다. 쌍기는 그가 주관한 두 번째 과거 시험에서 서희를 진사 갑과로 뽑았다.(165 페이지) 서희는 소손녕과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인물이다. 강동 6주가 고려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서희가 거란에 땅을 떼어주기보다 소손녕과 담판을 할 것을 주장한 것은 그가 광종 대에 과거에 합격하여 송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거란과 송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했기 때문이다.(166 페이지)

 

소동파가 고려 사람들을 미워한 데에도 고려, 송, 거란의 역학 관계가 깔려 있다. 거란의 3차 침입 때 강감찬이 대승을 거둔 곳도 강동 6주에 속한 귀주성이었다.(168 페이지) 13세기 세계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과의 수십 년에 걸친 전쟁에서도 강동 6주는 고려에게 빛나는 승리를 안겨주었다. 광종 대에 처음 제정된 과거제는 현종 대에 이르러 더욱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지방의 인재들도 넓게 응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로 여겨지면서 고려는 빠르게 문관 위주의 사회로 재편되어 갔다. 서희, 윤관, 강감찬, 김부식은 모두 문관 출신으로서 군사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170 페이지)

 

이런 이유 때문인지 고려 정부는 전시과를 개정하여 무관들에 대한 대우를 조금 개선하는 것 외에 무관 출신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후 고려 조정은 무관 출신에 대한 홀대로 인해 무신정변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고려에서 무관에 대한 대우가 문관에 비해 낮았던 데에는 송의 문치(文治)적인 정치문화의 영향도 있었다. 과거제는 개인의 실력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나 폐단도 낳았다.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지공거가 자신이 합격시켜준 사람들과 좌주(座主) - 문생(文生) 관계를 이루면서 이들이 정치세력화한 것이다.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활약한 서희, 여진족을 막은 윤관,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 공민왕 대 정치 개혁의 주역인 정몽주와 정도전, 권근, 조준 등은 모두 과거 급제자 출신이었다.(172 페이지) 정도전은 혈통에 의해 세습되는 왕이 직접 정치를 하는 것보다 무수한 경쟁을 뚫고 자신의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온 재상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왕조국가 체제하에서 나오기 힘든 대단히 합리적인 발상이었다.(181 페이지) 조선 개국은 단지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가 무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 급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합리적 개혁을 통해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민심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180 페이지)

 

사회경제적 모순이란 과거제도는 지공거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고 토지는 권문세족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탈점(奪占)되어 있었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178 페이지) 인재 선발과 관직 승진 제도에서 조선이 고려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인재를 등용할 때 출신 가문보다 개인의 능력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 데에 있다. 가난한 농민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조선이 양반 중심의 사회였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일종의 편견에 가깝다.(183 페이지)

 

당시 피역(避役) 수단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조선시대 지방의 공립학교였던 향교에는 일반 양인 출신들이 다수 등록되어 있었고 향교에서는 국가의 비용으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학비가 별로 없었다. 농사철에는 방학을 하고 추수 뒤에 개학했기 때문에 농민의 자제도 충분히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향교에서는 일반 농민의 자제가 많이 다녀서 지방 양반들은 자제를 서원에서 별도로 교육시키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후기에 서원이 남설(濫設)된 데에는 이런 사정도 있었다.

 

조선이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을 취해 제도적으로 농민만 우대하였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농민의 경우 농한기에 과거에 합격하는 경우가 많아 잠재적 관료 후보군으로 여겨져서 사회적으로 우대받았던 것이고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회적 인식이 농민과 달랐던 것이다.(184 페이지) 현종 대는 예송 말고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이 없는 시기인데 신분 상승의 가능성과 인구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193, 194 페이지)

 

과거제도를 더욱 합리적으로 정비하려는 노력은 조선왕조가 지속된 전 기간에 걸쳐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과거 시험을 시부(詩賦)에서 유교 경전과 정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묻는 대책(對策)으로 바꾸어 나가려는 시도는 이미 고려 말 이제현에 의해 시작되었다. 원의 간섭으로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옛 고전 문학작품을 시험 쳐서 인재를 뽑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196 페이지) 한영우 교수는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장수한 비결은 지배 엘리트인 관료를 세습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능력을 존중하는 시험제도인 과거로부터 부단하게 하층사회에서 충원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조선 정부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탄력적인 사회를 유지하려 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신분제 사회에서 조선왕조에서 소위 개천 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왕조가 지속된 전 시기에 걸쳐 평균 30%를 훌쩍 넘고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는 40-50%를 넘나들었다는 것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인 사실이다.(202 페이지)

 

저자는 역사 발전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한 사회적 합리성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합리성을 확대하는 길의 전부는 관직 등용의 기회를 넓히는 것이 아니다. 세제의 합리적 개선을 통해 경제적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도 구성원들의 자유 획득에 대한 의지를 제고하는 좋은 방법이다.(221 페이지)

 

저자는 개인의 실력에 의해 경쟁하는 시험이 폐지되고 경제력에 의해 개인의 미래가 좌우되는 제도가 점점 더 늘어나고 그것이 더 발전한 제도인 척 우길 수 있는 까닭은 서양에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25 페이지) 우리는 경제적으로 궁핍해도 개인의 능력만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었던 시대를 이미 거쳐왔다. 재산 축적의 기회가 보장된 사회단계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되어 경제력이 없어도 개인의 실력만으로 더욱 포괄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었던 역사적 경험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22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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