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해력 수업 - 누구나 역사를 말하는 시대에 과거와 마주하는 법
최호근 지음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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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자 최호근의 책이다. 저자는 역사란 물건 가득한 초대형 창고가 아니라 약간의 완성품, 단순 가공이 필요한 중간재들, 장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재와 원료들이 질서 없이 뒤섞여 있는 끝없는 대지라고 말한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입니다란 피델 카스트로의 말 이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카스트로의 선례를 따라 민주와 민족을 위해 투쟁한 죄로 사형 받는 자리에서도 오히려 영광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문제는 역사의 법정이란 말이 남용되었다는 점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행위 주체로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27 페이지) 나는 이를 조금 바꿔 조선이 성리학 때문에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성리학 역시 행위 주체가 아닌 바 조선 망국의 책임은 성리학에 있지 않고 성리학 일변도의 나라를 만든 사람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전제는 그들의 말이 맞다면 말이다. 역사의 법정과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의 이야기와도 공명한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지당한 말이다. 단 아무런 대가도 없이, 혹은 그 대가로 자기 자리나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만 그렇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거짓으로부터 참을 구별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양심적 학자들이 있을 때만 그렇다. 진실 규명을 기본으로 삼고 진실의 재현을 업으로 삼는 역사가들이 아니라면 거짓이 참을 가리는 경우도 허다하다.’(129 페이지)

 

저자는 역사에 힘입어 발언하고야 말겠다는 누군가의 의지와 결단이 없다면 역사 스스로 말하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역사에 기반을 둔 오리엔테이션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우리는 시공간적 범위를 넓게 잡아 다양한 경우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가는 온전한 과거 재현을 위해 엄격한 방법과 절차를 준수하도록 훈련받은 학자인 동시에 당파적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이다.(42 페이지)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개의 요청에 어떻게 응답할지 보여준 사람이 마르크 블로크다. 나치 독일이 조국 프랑스를 침략하자 53세의 나이에 참전한 그는 프랑스가 점령당한 후 레지스탕스 활동에 투신했다가 체포되어 해방되기 직전 총살당했다. 블로크는 학문과 현실 모두에 충실했던 인물이다.

 

2017년 2월 2일 중앙일보가 울산과학기술원 게놈연구소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한국인의 뿌리는 (북방계가 아닌) 혼혈 남방계라고 보도했다.(47 페이지) 3만년전에서 4만년전 사이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부 해안을 거쳐 극동 지방에 들어와 북방인이 된 남방계 수렵 채취인과, 신석기시대가 시작된 1만년전에 같은 경로로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의 피가 섞여 한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임진 - 한탄강 유역 구석기인들의 모습을 왜 서양인처럼 만들어 전시하느냐는 이의제기를 한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서다. 혼혈 남방계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3만년전에서 4만년전 사이, 1만년전에 유입되었다는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 현재 우리는 임진 - 한탄강 유역 구석기인들과 무관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글이 가득하다. 가령 ‘동아시아의 역사가 과연 긴장과 갈등, 대립과 충돌의 연속이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역사가 그랬다기보다 역사서술이 그랬을 것이다.’란 말을 보라. 과거는 역사책을 통해 후세에게 두 가지 면에서 스승 노릇을 한다. 귀감으로서 스승 역할, 반면교사로서 스승의 역할이 그것이다. 이 중 귀감을 보자. 귀는 거북 귀(龜)로 거북 등을 불에 구워 갈라지는 상태를 보고 장래의 일을 예측했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저자는 역사 자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스승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동일한 사건, 인물, 행동에서 얻어내는 교훈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믿음의 체계와 상징적 행위가 사람들의 삶에 분명하게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 역시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93 페이지) 연성(軟性) 사실이 그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과거 세계는 우리 현재의 삶과 마찬가지로 다성(多聲), 다채(多彩), 다면(多面), 다양(多樣), 다층(多層)으로 이루어진 복잡계였기에 현재 속에서 과거를 되살리는 역사가의 재현 작업도 그에 맞게 다원적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마땅하다.(96 페이지) 다원적 해석이 무능의 증좌가 아니듯 하나의 닫힌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유능의 증좌도 아니다.(117 페이지)

 

전체 여덟 장 가운데 세 번째 장에서 저자는 직업적 역사가로 인정받기 위해 체득해야 할 네 가지 방법을 예로 들었다. 사료비판, 비교, 반(反) 사실적 가정, 계량 등이다. 염분 섞인 바닷모래로 100년 가는 시멘트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진위를 알 수 없는 자료를 가지고 온전한 역사 해석을 도모할 수 없다. 그래서 사료비판이 중요하다. 저자에 의하면 문서만이 사료는 아니다.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확인시켜준 경기도 연천 한탄강 변의 조각돌도 마찬가지다(130 페이지)

 

역사가는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마법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역사가에게 비교는 일상이요 본업이며 방법이라 첨언한다.(134 페이지) 사람들은 막스 베버가 서구중심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베버가 살아있었다면 ‘엄청난 자료의 바다에서 표류하거나 익사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로지 내 문제의식에 충실한 연구를 수행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비대칭 비교뿐이었다.’고 응수했을 것이다.

 

비대칭 비교란 A와 B를 같은 수준에서 세밀하게 맞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A의 내재적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A를 중심에 놓고 B 또는 B, C, D와 선택적으로 비교하는 것이다. 개인 연구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품을 들이면서도 큰 성과를 내기 쉬운 방법이 비대칭 비교다.(151 페이지) 반사실적 가정은 경험적 상상의 힘과 관련된 말이다. 가령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유엔군의 북진은 가능했을까? 같은 상상 또는 가정이 그것이다. 랑케 이후 직업적 역사가들 사이에 경험의 세계 너머나 이면을 언급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태고가 분위기처럼 자리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관행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막스 베버다. 그는 만일이라는 물음의 유용성을 부정하는 역사가들의 집단적 관행을 문제삼았다. 계량은 시계열 속에서 변화의 추세 읽기와 관련된다. 역사학은 시간의 학문이다. 인간의 삶에 일어난 변화들을 시간의 축 위에서 추적하는 분과학문이다. 역사가가 된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특유의 감각을 체득하는 과정이다.(172 페이지) 결과에서 출발하여 원인을 찾아가는 소급적 탐색이 인과적 사고라면, 역사적 사고는 결과에서 원인으로, 원인에서 다시 결과로 나아가는 과정을 부단히 반복한다.(174 페이지)

 

좁은 의미의 역사적 사고가 과거의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해당 시대의 시공간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역사화 작업을 뜻한다면, 역사의식은 이 작업에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나 인물을 현재의 시공간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현재화 작업까지 포함한다.(184 페이지) 프랑스의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이 보여준 장기지속적 구조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 시간의 지평을 크게 확장해주었다. 지중해 세계, 지중해 문명, 지중해 심성에 대한 그의 서술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자연과학 영역에 한정되었던 지질학의 시간과 지리적 시간이 역사가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186 페이지)

 

레비스트로스는 요동하는 시간의 흐름 밑바닥에 자리한, 거의 정지해 있는 시간을 동료인 브로델에게 알려주었다.(190 페이지) 파도(波濤)의 시간, 해류(海流)의 시간, 해구(海溝)의 시간은 역사적 시간의 세 층위다.(211 페이지) 파도의 시간은 사건의 시간, 해류의 시간은 국면의 시간, 해구의 시간은 구조의 시간이기도 하다. 브로델은 움직임이 거의 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반복적이고 영속적인 지리적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장기지속이라는 개념을 고안해냈다. 브로델이 주목한 것은 인간의 행위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는 기저의 힘이었다. 국면으로 번역되는 콩종튀르는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한두 세기 간격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리듬을 말한다.

 

일반인이 특히 기억해야 하는 말은 역사는 수많은 우연적 계기에 의해 틀지어진 다양한 발전 경로의 총합에 가까운 바 단순명료한 역사 해석을 요구하는 일반인의 기대에 직업적 역사가들이 부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말이다.(243 페이지) 단순한 자기중심적 역사 해석이나 주관적 역사 해석의 수준을 넘어 하나의 역사관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긴 호흡과 넓은 시야에서 역사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유물론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논한다. 마르크스에게 물질은 물성을 지닌 그 무엇이라기보다 사회적 존재를 의미했다. 이 말은 우리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사회경제적 토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시사(示唆)가 되는 기억해야 할 마르크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애덤 스미스를 통해 마르크스는 임금과 화폐에 앞서 노동이 있고, 노동과 함께 노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설마 그 똑똑한 청년 마르크스가 그 전에는 이런 점을 몰랐을까? 그건 아닐 테다. 다만 흩어져 있던 지식들, 확신할 수 없었던 이론들이 ‘국부론’을 통해 인간사를 이해하고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지식체계로 재탄생한 것일뿐이다.(289 페이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애덤 스미스가 여러 국민의 부의 축적과정과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옹호하기 위해 ‘국부론’을 썼지만 마르크스는 스미스의 이 책을 자기 방식으로 전유하면서 읽었다는 것이다.

 

유물론적 역사 해석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는 지질학이나 건축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토대와 상주구조의 메타포가 그 중 하나다. 토대란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생산관계의 총체를 말한다.(290 페이지)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 마르크스의 어법에서 규정이란 말은 결정보다 융통성 있는 표현이다. 대부분의 경우 토대가 상부구조를 좌우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상부구조가 역으로 토대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291 페이지) 그렇기에 마르크스를 경제결정론자로 간주하는 것은 부당하다.

 

실증사관으로 유명한 랑케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 일제 강점기 민족주의 역사가들은 조선의 역사가 외세의존적이며 정체된 것이었다고 선전하는 일본의 역사가들의 논리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도입한 랑케의 실증사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만났다. 랑케의 풍부한 역사사상이 일본에 수입되는 과정에서 엄밀한 사료비판으로 축소되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의 학자들은 랑케의 역사학을 전폭 수용하지 않고 랑케 역사학 속에서 자신들이 추구해온 훈고와 고증방법의 정당성을 재발견했다. 동아시아에서 랑케는 술이부작의 지침을 강조했던 공자의 서구적 현현이 되었다.

 

베버는 ‘과학자는 혼돈 속에 있는 다양한 현상에 질서를 부여한다. 이 질서는 복잡한 현실을 관통하고 있는 실재적 성격의 인과적 질서가 아니라 복잡한 현실의 한 자락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부과한 사후적 질서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325 페이지) 이렇게 되면 역사가는 감당 불가능한 중무장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총으로 무장한 경보병처럼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지역을 자신의 문제의식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빠른 걸음으로 탐색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극단적 상대주의의 대가는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하며 그 피해는 약자들에게 집중되기 십상이라고 설명한다.(338 페이지) 마지막 장인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헤로도토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에게 역사책은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는 인간 기억의 물방울들을 움켜잡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다.(352 페이지) 사료는 과거와 현재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와 같다. 돌과 돌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어 한 발로 뛰어 건너기 어려운 경우라면 역사가는 온전한 논문의 형태로 글을 쓰지 못한다. 사론(史論)이라는 이름의 역사 에세이를 쓸 수 있을뿐이다. 원자료를 증거로서 병기하는 각주나 후주가 없다면 어떤 학술지도 글을 게재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랑케를 통해 확립된 근대 역사학의 전통이자 계율이다.(356 페이지)

 

모든 역사 서술은 중심 배치, 주변화, 배제라는 서술의 일반 규칙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규칙에 선행하는 것이 인식과 조망을 결정하는 틀이다. 기자들은 이것을 프레임이라 부른다.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과정, 사건과 사실관계를 서술하는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프레이밍이다. 신구 사료 간의 상호 대조 속에서 역사가 다시 쓰인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텍스트들을 시대의 콘텍스트에 비추어 재해석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입장 구속성이란 말이 있고 의식의 부동성(浮動性)이란 말이 있다. 역사적 진실의 객관적 규명에 힘쓰는 시대가 있고 모든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사실은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다원적 접근을 강조하는 시대가 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논리가 극한에 도달하면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학문적 입장과 논리의 도전이 시작된다. 역사는 거듭 다시 쓰여야 한다. 심지어 새로운 사료의 발굴이 없는 경우에도 역사는 새로 기록되기를 거듭했다. 역사학도 재조명과 재해석과 다시 쓰기를 거듭하면서 발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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