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이 산 물 속 유충 석삼 년의 시간은
산 목숨이 아니다
내게 날개 없는 천일보다
날개 달린 하루가 위안으로 빛난다...“(‘모차르트의 날개’)란 감동적인 시를 쓴 한이나 시인. 그에게는 ‘나비. 꽃이 되다’란 시도 있다.
”고요하여라, 질곡 앞의 생
겨우내 땅 속 어둠에 납작 엎드려
날개를 얻기까지 벌레였을 그...“
모두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하현 달빛 아래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들이
옷을 입는다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저 나비들 좀 봐“란 ‘남한산성.2’에서도 우화등선하는 나비 이야기를 풀어놓은 시인.
하지만 시인이 오랜 기다림 끝의 우화(羽化)나 비상(飛上)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열정의 한철 비상을 꿈꿨던
한 생애의 꿈을 접고
키 큰 나뭇가지 끝에서 오래 견디다가
끝내 뛰어내리고야 마는
낙하,...“란 말도 시인은 한다.(‘낙우송落羽松)
‘모차르트의 날개’와 ‘나비. 꽃이 되다’는 위로로 받고 ‘낙우송’은 격려로 받으면 되지 않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