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신분석 책을 완독했다. ‘헬조선에는 정신분석‘이란 책이다. 이 책은 읽는 과정을 통해서는 물론 리뷰를 쓰는 과정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도록 이끄는 책이다.
아홉 분의 필자가 참여한 ‘헬조선에는 정신분석‘은 정신분석이란 하나의 목소리로 환원되지 않지만 하나의 목표로 수렴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정신분석이 하나의 목소리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게 된 것은 홍준기 님의 진단에 힘입은 결과이다.
홍준기 님은 프로이트는 사회적인 영향력에 주목한 반면 라캉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이었다는 말, 안토니오 네그리가 불평등을 완화시켜주는 적극적 정책의 필요성을 모두 비판하고 오직 자유로운 개인의 실현이 자유로운 연합을 낳는다는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인 이론을 주창한 반면 들뢰즈, 바디우, 지젝 등은 라캉 정신분석 이론을 사회이론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이들의 목표점은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관념적인 이론에 있다는 말을 한다.
반면 정신분석은 하나의 목표로 수렴된다. 여러 필자들의 논의가 조금씩 다르지만 정신분석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학문이라기보다 히스테리적 비참을 일상의 불행 정도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자 방법론이라는 프로이트의 말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의 불행이란 빛과 어둠이 함께 있는 감당할 만한 불운을 의미한다. 정신분석가 백상현 교수 역시 유사한 말을 했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증상의 소멸이 아니라 주체가 증상과 함께 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이 그것이다.(‘라깡의 루브르‘ 98 페이지)
다른 해석의 여지, 반론의 여지가 있지만 수용할 만하고 앞을 보는데도 유용한 시사점이 되리라 생각된다. 아홉 필자의 글이 모두 시사적이고 유용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정신분석가 김서영 교수의 논의이다.
전문가에 대한 논의인데 가령 이런 글이 그렇다. ‘전문가라는 이름은 내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그 여정 속에서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지 않는 사람 즉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 스스로를 연마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선물‘이란 말, 전문가란 자신의 욕망 속에서 스스로의 장단을 찾고 그 장단에 맞추어 앞으로 걸어 나가는 이를 뜻한다는 말, 전문가는 주변 사람들이 지겨워할 정도로 같은 일 또는 같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모든 구차하고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세부들에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이며 느린 걸음으로 기약 없는 외로운 싸움을 끝내 견뎌내는 사람이라는 말 등이다.
정신분석은 모든 사람은 소외된 존재, 신경증적인 존재라 말한다. 이 말을 모든 사람은 불행한 존재라는 말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상술할 수 없지만 이는 욕망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정신분석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 말한다. 지금으로서는 소외된 존재인 타자 그리고 그의 욕망에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말 정도를 할 수 있다.
한때 정신분석은 버리기 위해 읽는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병리현상을 일으키는 사회 및 환경 문제를 동시에 주목하며 프로이트 의 임상과 이론을 수정, 확대, 재구성한 멜라니 클라인, 도널드 위니캇 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임옥희 님의 ‘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2016년 10월 출간)을 읽어야겠다.
페미니즘, 마르크시즘, 정신분석의 길항 관계를 정리한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어머니의 계보학‘으로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 한계를 극복하려 한 멜라니 클라인의 작업이다.
이 책은 갈등하지만 서로 얻을 부분이 있는 삼자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책이어서 기대가 크다.
임옥희 님은 ˝우리 사회에서 마르크시즘 - 정신분석학 - 페미니즘은 서로 충돌하고 긴장을 요구하는 삼각관계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었다(‘페미니즘과 정신분석‘ 10 페이지)
‘페미니스트 정신분석 이론가들‘은 꼼꼼하게 읽되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버리는 독서의 첫 사례가 될 책이다. 먼 길을 가는데 필요한 나침반 같은 것이 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