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권 교수의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를 통해 거듭 확인한 사실은 명나라의 제후의 나라를 자처한 조선의 실상이다.

조선은 과학 특히 천문에서도 그 주의(主義; 명나라의 제후국 자처)에 걸맞게 천자만이 하늘을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이 얼마나 사대적이었는지는 이덕일 소장의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의 1부인 ’중화라는 이름의 감옥을 깨다‘라는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은선 교수는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에서 경직되기 이전의 유교의 정수(精髓)를 살피자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유교의 정수를 오늘 우리에게 유용한 자산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을까 싶다.

어떻든 조선 초기만 해도 유교는 국가 이데올로기로 정립되기 전이어서 조선 중기 이후처럼 과도한 교조성을 띠지 않았다.(이한우 지음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115 페이지)

김일권 교수의 책을 읽고 나니 궁금한 점이 생긴다. 다재다능한 세종이 천문학에 어떤 정도의 관심과 지식을 가졌는가, 이다.

세종대의 천문학자들은 그들의 관측과 계산을 바탕으로 자주적 역법을 확립했다.(국립 문화재 연구소 엮음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59 페이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어떤가.

이는 1392년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천명(天命) 사상을 만들어 새 국가 건설의 명분을 퍼뜨리려던 중 고구려 성좌도 탁본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이를 돌에 새길 것을 명해 만들어진 석각(石刻) 천문도이다.(박석재 지음 ’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 21 페이지)

물론 박석재 교수에 의하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별자리들은 4신(神) 즉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일 뿐이다.

사신도는 하늘의 방향과 별자리를 지칭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란 김일권 교수의 말(’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104 페이지)이 생각난다.

박석재 교수는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종대왕은 성군 중에서도 성군이었다고 말한다.(’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 32 페이지)

박석재 교수에 의하면 세종대왕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중국 사신의 방문이었다고 한다.

사신 일행이 경복궁 안에 설치된 천문관측 기구를 보고 감히 중국 천자나 할 수 있는 일을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하고 있다며 시비를 걸어올까 염려해 실제로 중국 사신이 오면 그 기구들을 모두 숨겼다고 한다.(’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 35 페이지)

조선 중기 이후 유학의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다.

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은 지금 우리 이전에 조선 중기 이후 교조적이고 자폐적인 성리학 이데올로기를 고수한 성리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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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 고구려 하늘에 새긴 천공의 유토피아
김일권 지음 / 사계절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북두칠성과 오리온 별자리만이 동양과 서양에서 동일한 모양을 이루는 별자리이다. 같은 문화권에서도 중국과 고구려에는 별자리가 다르다. 반면 중국과 조선은 큰 차이가 없었다. 현대 천문학에서는 우리나라든 중국이든 서양식 별자리 체계를 수용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별자리를 체계화시킨 문명은 이라크 일대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중국의 황하문명이다. 저자는 역사천문학자이다. 역사천문학은 역사 유물로 남겨진 천문 자료를 비교하여 천문의 같고 다른 문제를 풀어가는 분과학문이다.

서양 별자리는 황도 12궁에 기초하고 동양 별자리는 적도 28수에 기초하고 있다. 황도 12궁은 태양의 길을 따라 나 있는 12개의 별자리이다. 적도 28수는 천구의 적도를 따라 나 있는 28개의 별자리이다.(22 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사마천의 '사기'가 당시까지의 천문학을 집대성하여 표준화한 최초의 문헌 텍스트라는 사실이다. 저자에 의하면 왕조의 역사서를 기록한 천문서에 천문학이 포함되는 것은 동양 천문학의 중요 특징이다.(24 페이지)

()나라의 초기 정치로 회귀할 것을 주장했던 공자는 하늘의 별과 지상의 정치에 대해 같은 관점을 가졌다. 28(宿)는 달이 천구상을 일주천(一周天)하는 동안 하루에 하나씩 별자리를 지나면서 머물며 되돌아오는데 소요되는 27.3일을 28일로 설정한 결과이다.

宿은 별자리 수자이다. 28수는 28사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집 사()자이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라는 관념은 28수 별자리를 계절별로 형상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무덤 속에 별자리를 그리는 것은 진시황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중원 지역에서 별자리 벽화가 쇠퇴 일로를 걷던 동안 고구려에서는 화려한 별자리 벽화가 꽃피었다.(33 페이지)

중원(中原)은 한족(漢族) 본래의 생활영역을 말한다. 고구려 벽화 무덤 속의 별자리 그림은 한 줄에서 석 줄까지 뚜렷한 연결선을 지닌 것들이어서 고대 동아시아 천문학사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볼 때 고구려의 벽화천문도는 동아시아 천문도 연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36 페이지) 고구려 벽화고분의 천장부는 우주의 재현을 위한 주 무대이며 상단 천장 궁륭(穹蕯)부에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궁륭은 활이나 무지개처럼 한 가운데가 높고 길게 굽은 형상이다.

특이한 것은 고구려의 별자리는 둥근 원반 모양이었다는 점이다. 각각의 별들에는 하나에서부터 둘 또는 세 가닥의 연결선이 그려졌다. 동서양의 별자리들 중 전혀 다른 모양을 취한 사례는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이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의 반대편에 위치한 카시오페이아는 서양에서 W자로 그려진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중국은 W자 모양이 일체 없다. 그런데 고구려의 벽화무덤에서 오히려 서양 전통과 통하는 W자 모양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가 중국의 천문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리라 생각되지만 독자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은 고려로까지 이어진다.

동아시아 천문 전통에서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이렇게 그리는 것은 오직 고구려만이었다. 별자리는 신화와 긴밀한 관련성을 갖는다.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별자리와 신화도상이 그려져 있다. 저자는 벽화 속에서 별들이 연결된 각각의 별자리를 찾아내어 해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별자리들이 어떻게 전체적인 체계를 이루고 하늘 세계를 나타내는지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숱한 신화와 광대 제국을 건설했던 역사의 편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구려의 25기의 별자리 벽화무덤 중 가장 다채로운 것으로 덕흥리 무덤을 꼽는다. 덕흥리 무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구조로 이루어졌다.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목은 천상의 수렵도(狩獵圖)이다. 저자는 지구가 자전축에 의해 회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고구려가 지축이란 용어를 사용한 사실을 언급한다. 더구나 그 것은 한 몸에 머리가 둘 달린 신화적인 모습을 취했으니 지축의 원리를 너무나 잘 구현한 천문학의 미스터리이다(58 페이지)

덕흥리의 북두칠성 별자리에서 실제 관측과 관련하여 더욱 놀라운 점은 보성(輔星)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에서 일찍이 오행성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다. 2세기의 문헌 자료가 증거한다. 덕흥리의 토성 표현은 단순한 원반 형태가 아니라 공 모양의 입체적 구헝이다. 놀라운 사실이다.

중국 천문도에서는 '돈황성도 갑본' 등의 예에서 보듯 북극성좌가 5성인데 고구려는 3성이다.(64 페이지) 저자는 이 덕흥리 토성 표현을 천체가 공처럼 둥글다는 혼천설의 천체학 이론의 모태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별자리는 아니지만 매우 주목할 도상이 북쪽 하늘에 그려져 있다. 북두칠성의 머리 아래쪽에 몸이 하나로 볼 수 있으면서 사람 형상의 '머리가 둘이고 다리가 넷'인 반인반수상이 있다. 이 신화적 동물 옆에 지축일신양두(地軸一身兩頭)란 글자가 쓰여 있다. 하나의 몸통은 지축, 양두는 지축의 양끝 즉 북극과 남극을 나타내니 천문지식을 신화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65 페이지) 언제나 북두칠성과 대칭을 이루며 남쪽 하늘에 등장하는 별자리가 남두육성이다. 서양에서는 궁수자리라 부른다. 25개의 천문벽화 중 남두육성이 그려진 벽화는 14기 정도이다. 대부분 북두칠성과 대칭으로 그려졌다. 북두는 사후세계를, 남두는 생전의 수명장수를 주관하는 도교적 신앙을 나타낸다.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는 북극성 주위에서 매우 뚜렷하게 빛나는 별자리이지만 놀랍게도 중국의 고천문도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카시오페이아 부분의 별자리를 W자 모양으로 파악하지 않고 각도성과 왕량성, 책성이라는 세 가지 별자리로 분리 인식한 결과이다.(86 페이지)

전기했듯 고구려는 이 예를 따르지 않았는데 이는 고구려의 자체적 천문 전통을 증거한다. 저자는 고려의 석관천문도가 고구려의 별자리를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자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8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고려의 석관천문도는 한중일 고대 동아시아 유물 중 현대 서양 천문학이 도입되기 전 그려진 유일한 W자형의 5성 별자리이다.

또한 이 자료로 인해 고구려 덕흥리 벽화의 서쪽 W5성 별자리를 카시오페이로 비정(比定)할 수 있다. 고구려의 북극삼성 천문학 전통이 고려의 북극삼성으로 계승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고려의 석관천문도는 덕흥리 서벽의 W자형 5성을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로 해석하게 하는 결정적 자료이다. 저자는 400년간 고구려의 초기 도읍지였던 국내성을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도시로 묘사한다.

수많은 무덤들이 도시 곳곳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벽화를 그린 무덤 내부 공간도 생사일여의 공간이다. 덕흥리 고분의 벽화에 그려진 별들은 자기 자리가 있다. 이는 큰 사건이다. 별을 보고 방위를 찾을 때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은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는 북극성 뿐이다. 언제나 북쪽 하늘에서 북극성 주위를 시계처럼 도는 북두칠성도 훌륭한 방위지표가 된다.

하늘 전체를 하나의 판 속에 그린 천문도를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라 한다. 고구려는 전천천문도가 문헌에 나타나기 2세기 전에 고구려 고분벽화에 전천천문도 형식의 그림을 그렸다.(95 페이지) 고구려 고분벽화는 주제의 변화에 따라 보통 세 시기로 구분된다. 1기는 인물 및 생활 풍속도 위주이고 2기는 생활풍속도와 장식무늬 및 사신도 주제가 병행되었다.

3기는 사신도가 벽화의 중심 주제로 그려진 시기이다. 이 분기법에 별자리 내용 변천을 결합해 구분한 시기는 다음과 같다. 1기는 4세기에서 5세기 중반까지 고구려식 별자리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2기는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고구려식 별자리 체계와 중국식 28수 체계가 결합하는 시기이다.

3기는 6세기 중반에서 7세기까지 고구려식 우주관이 크게 확충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들을 아울러 말하면 벽화 고분 속의 방위 체계가 사방위 별자리 및 해와 달, 사신도 등이 중첩된 구조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풍수를 일컬을 때 좌청룡, 우백호라는 말 때문에 사신도(四神圖)를 지상의 방위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원래 사신도는 하늘의 방향과 별자리를 지칭하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104 페이지)

저자는 우리 역사에 등장했던 하늘은 고려와 조선이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170 페이지) 조선의 하늘이 성리학 이념에 경도된 이법(理法)의 하늘만을 공인했다면 고려의 하늘은 다양함을 공존시키는 다원성을 지향했다고 말한다. 고려와 고구려의 하늘이 동질적이라면 고려와 조선의 하늘은 이질적이다. 조선이 들어서고 불과 몇 백 년 사이에 인간은 하늘과 유리되고 하늘의 천공 속을 자유롭게 노닌다는 사유체계는 불가능하게 되었다.(171 페이지)

하늘은 천문학의 대상이지만 우리의 사유가 한껏 펼쳐지는 마당이기도 하다. 조선은 성리학적 중화 질서에 편입되면서 제천 의례를 혁파하여 하늘과 교통하던 통로를 스스로 봉쇄했다. 성리학은 여러 면에서 문제적이었다.

김일권 교수의 책은 천문학적 지식은 물론 천문학의 대상인 만큼 상상력의 캔버스 같은 곳이기도 한 하늘을 고구려와 조선이 어떻게 다르게 보았는지를 알게 하는 책이다. 조선을 중심으로 우리 선조들의 과학을 천문학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아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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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휴머니스트입니다 :D


낡은 상식과 기존의 역사 인식에 도전하는 《하나일 수 없는 역사》의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하나일 수 없는 역사》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 교과서도 국정으로 발행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우리가 꼭 주목해야할 책입니다. 역사를 어떻게 읽고 기억해야 하는지, 주체적인 역사 인식을 위해서, 다양한 시각자료와 함께 더욱 생생하게 역사를 읽어보세요.



그 어떤 금지도 독단도 터부도 없이 역사를 읽는다!

 

하나일 수 없는 역사

르몽드 '역사 교과서' 비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고광식 김세미 박나리 이진홍 허보미 옮김김육훈 해제



모든 학생이 국가가 만든 하나의 교과서로 공부하고, 그 교과서에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역사 교육이 아니다. 권력이 앞장서서 정치적 쟁투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은, 국민의 기억을 동제함으로써 그것을 의도하는 이들의 생각대로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일이다.

낡은 상식과 역사 인식에 끊임없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은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길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다.


- 김육훈(역사교육연구소장,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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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예술가, 작가, 비평가, 화가 등으로 활약했던 John Berger가 92세로 타계한 지 한달여 정도가 지났다. 그의 성(姓)을 버거로 발음해야 하는지 버저로 발음해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확한 발음을 취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바루흐의 스케치북‘이 아닌 ‘벤투의 스케치북‘이란 책을 썼다는 사실이다.
스피노자는 유대교에서 파문당한 뒤 유대 이름 바루흐를 버리고 라틴 이름 베네딕트를 취했다. 그를 파문한 유대식 이름 대신 라틴어 이름을 사용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아니 유대 이름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란 말이 더 타당할 것이다. 내 알라딘 서재 아이디가 ‘벤투의 스케치북‘인데 John Berger가 ‘바루흐의 스케치북‘이란 이름을 취하지는 않았겠지만 만일 그랬다면 나는 다른 아이디를 골랐을 것이다.

생전의 John Berger는 지금도 마르크스주의자냐는 질문에 ˝내가 마르크스주의자인지의 여부는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마르크스에 대해 읽고 공부를 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붙은 그 꼬리표는 마르크스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규정을 내린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반면에 (나처럼) 마르크스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 묻는다면 마르크스주의자가 맞다.˝고 받아쳤다고 한다.(한겨레신문 2017년 1월 11일 곽윤섭 기자)
그런데 Berger가 한 것은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하거나 그렇다고 받아친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가 한 것 같은 대기설법이다.

듣는 사람의 근기(지적 수준)에 맞추어 다르게 말하는 이 대기설법은 공자가 취한 지식의 주요 전달 수단이기도 했다.

이는 바람직한 수단이다. 문화해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듣는 사람의 지적 수준과 관심, 성향에 맞는 해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설사가 모든 경우의 수에 대처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결국 관건은 철저한 준비이다.

석가모니도 공자도 John Berger도 스토리텔링의 달인이었다. 빙산 만큼 준비하고 그 일각을 전하되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만큼만 전하면 된다는 한 해설사 동기의 말이 대단하게 들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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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최근 생각하게 된 것은 인상주의 회화에 사진기가 튜브 물감과 함께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사진기의 위력에 대책이 없었던 화가들은 빛을 다루는 새 방식을 개발해야 했다. 튜브 물감은 야외 미술 작업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튜브 물감은 운반과 보존이 간편해 화가로 하여금 밖에 나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그러니 사진기는 화가들에게 역경(逆境)으로 작용해 결과적으로 새 장르를 만들게 한 것이라면 튜브 물감은 순경(順境)이 되어 화가들에게 힘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스미스소니언 사진전을 보았다.

어떤 작품들은 화려함으로, 어떤 작품들은 경이(驚異)로, 어떤 작품들은 신비함으로 눈길을 모았다.

가장 크게 내 관심을 끈 작품은 ‘뉴파운드 협곡 전망대에 선 메노나이트 여성들‘이란 작품이다.(아래 사진 참고)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고 명상의 대상이기도 한 대자연의 장관이 전통과 반문명의 신앙을 고수하는 메노나이트 여성들에 의해 가려졌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깊은 생각을 유도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메노나이트는 문명을 거부하고 농사를 짓는 등 자연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기독교 재세례파(유아세례는 당사자의 신앙고백과 무관한 것이기에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성인이 되어 다시 세례를 받는다.)이다.

문화해설사 동기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며 나는 아무래도 이 메노나이트 여성들의 사진이 가장 인상적이라는 말을 했다.

뒷 모습, 문명을 거부하는 신앙인들의 신비, 제한적이지만 대자연의 장엄을 엿보게 함 등의 특성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지난 2월 2일 동기들과 함께 감상한 그레타 거윅,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매기스 플랜‘과의 연결성 때문이다.

연결성이란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퀘이커 여교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진을 올리고 게시 배경의 말을 덧붙이자 한 동기가 그 영화의 주인공이 저 메노나이트 여성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서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더했다.

유쾌한 연결이자 상상이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소통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현묘함과 신앙의 신비함이 어우러진 저런 작품은 쉽게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사진을 감상하고 책을 한 아름 사서 돌아가는 길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성공회 성당 담을 넘어 종소리라도 들려올 것만 같은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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