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예술가, 작가, 비평가, 화가 등으로 활약했던 John Berger가 92세로 타계한 지 한달여 정도가 지났다. 그의 성(姓)을 버거로 발음해야 하는지 버저로 발음해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확한 발음을 취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바루흐의 스케치북‘이 아닌 ‘벤투의 스케치북‘이란 책을 썼다는 사실이다.
스피노자는 유대교에서 파문당한 뒤 유대 이름 바루흐를 버리고 라틴 이름 베네딕트를 취했다. 그를 파문한 유대식 이름 대신 라틴어 이름을 사용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아니 유대 이름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란 말이 더 타당할 것이다. 내 알라딘 서재 아이디가 ‘벤투의 스케치북‘인데 John Berger가 ‘바루흐의 스케치북‘이란 이름을 취하지는 않았겠지만 만일 그랬다면 나는 다른 아이디를 골랐을 것이다.
생전의 John Berger는 지금도 마르크스주의자냐는 질문에 ˝내가 마르크스주의자인지의 여부는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마르크스에 대해 읽고 공부를 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붙은 그 꼬리표는 마르크스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규정을 내린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반면에 (나처럼) 마르크스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 묻는다면 마르크스주의자가 맞다.˝고 받아쳤다고 한다.(한겨레신문 2017년 1월 11일 곽윤섭 기자)
그런데 Berger가 한 것은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하거나 그렇다고 받아친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가 한 것 같은 대기설법이다.
듣는 사람의 근기(지적 수준)에 맞추어 다르게 말하는 이 대기설법은 공자가 취한 지식의 주요 전달 수단이기도 했다.
이는 바람직한 수단이다. 문화해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듣는 사람의 지적 수준과 관심, 성향에 맞는 해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설사가 모든 경우의 수에 대처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결국 관건은 철저한 준비이다.
석가모니도 공자도 John Berger도 스토리텔링의 달인이었다. 빙산 만큼 준비하고 그 일각을 전하되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만큼만 전하면 된다는 한 해설사 동기의 말이 대단하게 들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