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터[596]번째 책이야기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임무성

내가 몰랐던 책 책이야기 텍스터(www.texter.co.kr)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임무성
어떻게 이 시대의 주인이 될 것인가?

모든 인간에겐 자기 생을 완성시킬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다. 완성의 비법은 바로 다시 돌이켜봄이다. 돌이켜 다시 살아보기. 너무 허겁지겁 사느라고 미처 깨닫지 못한 그 의미들을 다시 세울 수 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이 보이는 것이다. 그때 말할 수 있으리라, 다 이뤘노라! 그리고 비로소 이 시대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 참가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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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김애리 지음 / 카시오페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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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리의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는 3년의 힘을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물론 3년은 몰입하는 최선, 최고의 시간이어야 한다. 3년은 1000일 정도의 세월이다. 물론 1000일간 한 가지 일에 집중하려면 투쟁에 가까운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저자는 1000일간 매일 글을 쓰는 것은 내 삶의 주도권을 제대로 움켜쥐고 크고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을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겠다는 다짐이라 말한다.(19 페이지) 그렇게 삼년간 매일 글을 쓰는 것은 세상사를 내 관점으로 정리해 나만의 안목을 갖는 조건이 된다.

저자는 매일 쓰고 솔직하게, 자유롭게 쓸 것을 주문한다. 공감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힘겹지만 행복한 일이다. 저자가 주문하는 것은 획기적이고 역동적인 변화만을 원하지 말라는 것이다. 저자는 성장일기를 1년간 꾸준히 쓰는 것은 자기계발서 100권을 읽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침 5분을 투자해 하루의 질서를 확립하고 자신과의 약속을 글로 적기,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을 지키는 하루로 만들기를 주문한다. 저자는 적절한 이별의식으로서의 애도의 글쓰기를 주문한다. 저자에 의하면 감정을 글로 적는 것은 나를 붙들고 있는 집착, 스트레스, 슬픔 등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과정이다.(41 페이지)

아픔을 대신하는 생산적인 대체 대상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글쓰기 시간을 갖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고 성장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글쓰기 주제들을 만들어 무작위로 뽑아 글을 쓸 것을 제안한다.

글감을 서른 개 정도 만들어 하나씩 완성하는 것도 좋다. 지극히 단순한 주제보다 자극과 영감을 줄 수 있는 주제여야 할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책 리뷰 만큼 중요한 것이 내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추상적인 것 만큼 구체적 글쓰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언제나 해답은 자신 안에 있음을 명심하라고 말한다. 저자는 읽기보다 쓰기가 더 강한 치유효과를 낸다고 말한다.(62 페이지) 동의한다. 나는 읽기는 결국 쓰기를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제대로만 쓰면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자기치유의 도구가 된다고 말한다.(6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치유를 위한 글쓰기의 첫 단계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파헤치는 것이다. 무언가에 고통받고 있다면 그 뿌리를 캐내고 끈질기게 탐색하며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관찰해야 한다. 더하거나 빼지 말고 솔직하게 감정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마음을 거침 없이 적어내려가는 것이다.(68 페이지)

오로지 자신과 독대하며 깊이 소통하는 글쓰기. 이 매혹적인 치유행위는 일단 시작하면 쉽게 멈출 수 없다. 한 번도 안하거나 평생 지속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68 페이지) 쓰기치료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페니 베이커(Penne Baker)는 쓰기를 통한 노출, 자기 고백은 면역체계를 변화시킬 정도로 엄청난 치유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했다.(86 페이지)

치유 글쓰기 과정 가운데 가장 효과가 뛰어난 것은 진솔한 자기 고백형 글쓰기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이다.(87 페이지) 글을 쓰면 명상할 때와 몸 상태가 굉장히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 불리는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이 기법은 물처럼 흘러가는 생각, 심상, 회상, 기억, 감정 등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서술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있다.(91 페이지) 의식의 흐름은 정신분석에서의 자유연상을 닮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저자는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표현력이나 상상력, 감수성도 아닌 시간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절대적 부족이 바로 글쓰기를 영영 강 건너 불구경하게 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116 페이지) 물론 저자는 시간이 부족해 독서와 글쓰기가 불가능하다는 사람에게 하루에 딱 15분만 할애해 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글쓰기를 운전에 비유하는 유시민 작가의 말을 전한다. 운전이 핸들과 페달, 기어 변속기 등이 몸의 일부로 느껴질 때까지 몸으로 훈련해야 하듯 글쓰기도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중요한 것은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이다.

저자는 글 잘 쓰는 데에서는 책 많이 읽은 사람을 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하나 둘 쌓여 뿜어내는 내공은 단기속성으로 배운 작법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것이 진짜이다. 진짜 내 생각, 내 글이다.(133 페이지)

저자는 인생의 반전은 독서와 쓰기가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52주는 책 한 권 쓰기에 매우 적합한 시간이라 말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는 내가 책을 쓰려는 이유는 내게 결핍과 열등감이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책이 내게 치유의 수단이었듯 이제 쓰기가 치유의 방편이 될 것이다.

저자는 책 쓰기에서 영감보다 중요한 것은 체력이라 말한다.(171 페이지) 저자는 건강 관리를 위해 하루도 빠짐 없이 수영했다고 전해진 프란츠 카프카 이야기를 한다.(172 페이지) 저자는 수많은 작가가 꿈과 현실의 줄타기를 병행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목표야말로 꾸준히 지속하는 힘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란 말을 하며 작가를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사람으로 정의한다.(173 페이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쓰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정말 뭐든 써도 좋다. 단,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180 페이지)

저자는 좋은 글쓰기의 3요소를 뻔뻔하게, 자유롭게, 솔직하게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자유롭고 뻔뻔하고 솔직한 글쓰기는 진짜 나를 만나게 하는 길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한다.(180 페이지)

저자는 쓰기는 버티기라 말한다.(192 페이지) 저자는 모든 글쓰기에는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고 말한다.(197 페이지)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펜을 들고 문자를 적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긴긴 과정에서의 마무리 단계에 불과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고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온갖 키워드를 끄집어내는 과정이다.(19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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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발트그린 2017-02-17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벽마다 글을 쓰신다는 유홍준 교수님이 생각났습니다 ㅎ나의 글쓰는 즐거움은 뭘까 고민해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7-02-17 06:03   좋아요 0 | URL
네... 자신을 아니 자신의 글쓰기를 돌아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례적으로 이 늦은 시각에 한강을 건넌다. 뜻하지 않은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지금은 사당에 가는 길. 사당이라야 내가 가는 이유는 변함 없이 책을 사기 위한 것.

언제나 한 아름 풍성하게 책을 살 것 같지만 서점에 들어서면 여러 제약이 힘을 발휘한다.

늘 책 갈증에 시달리는 나는 어쩌면 아귀 같은 존재일지도...

아귀는 목구멍이 바늘처럼 가늘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늘 굶주림에 허덕인다.

이 아귀에게 부처의 제자 아난이 보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 수륙재(水陸齋)이다.

감로도(甘露圖)는 수륙재에 사용되는 그림이다. 우란분절이 부처의 제자 목련과 관련된 일화라면 수륙재는 아난과 관계된 것.

책은 내게 감로 같은 것. 그러나 현실을 잊고 책만 본다면 진짜 단 맛에 빠져 이런 저런 문제를 안게 될 것이다.

오늘 산 책은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김애리의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인나미 아쓰시의 ‘1만권 독서법‘ 등이다.

사흘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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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붓다 - 배트맨과 사천왕의 공통점에서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의 차이까지 명법 스님의 불교미학산책
명법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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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만화하는 세계상을 알게 하는 글이 있다. “텔레비전 화면상의 한 점에 밝은 점이 얼마간 있다가 사라지면 사실은 그 점에서 빛이 발생하는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것인데 밝은 점이 생겨 있다가 멸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소광섭 지음 물리학과 대승기신론’ 23 페이지)는 문장이다.

 

허상을 실재로 착각하지 말라는 의미의 글이다. 같은 이야기를 물리학이 아닌 미학의 관점에서 말하는 책이 있다. 명법 스님의 미술관에 간 붓다이다. 저자는 호랑이 뼈로 호랑이를 만든 마술사가 그 호랑이에 잡아먹혔다는 인도 전설과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는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전한다.

 

이들은 이미지와 실제, 가상과 진상이 역전된 사태를 상징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그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도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컴퓨터 게임 등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학(美學)이란 것이 서양 근대의 도구적 합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출발했다고 말하는 저자는 천강의 달 그림자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불교 예술의 이미지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달 그림자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부질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하늘에 뜬 진짜 달과 함께 달의 진실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지에 집착하지도 말고 이미지를 무()라고 내치지도 말라는 것일까? 저자에 의하면 천강의 달 그림자는 궁극적인 깨달음은 삶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 존재함을 알리는 은유이다.

 

미술관에 간 붓다는 저자가 불교 예술을 통해 본 미학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미학적 관점이나 불교학적인 지식도 모두 내려놓고 상징물들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에만 집중한 책이다. 저자의 작업을 잇는 키워드는 불교와 미학, 세간과 출세간이다.

 

이미지를 대하는 바람직한 방법을 설파(說破)한 저자는 형상과 형상 없음 사이에 있는 참된 붓다를 만나려면 형상에도 속아넘어가지 않고 관념에도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30 페이지)

 

붓다가 깨달은 것은 몸은 지수화풍 4대의 결합물 즉 가상이라는 점이다. 붓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이나 허무에 빠지는 대신 놀랍도록 담담하고 고요해졌다. 붓다의 적멸(寂滅)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즐거움이 아닌 일어남과 사라짐이 없는 영원한 즐거움이다.(39 페이지)

 

석가모니의 사유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사유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유이다. 사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서양 미학에서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물이나 인공물 앞에서 위험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숭엄하고 거룩한 느낌과 스스로 고양됨을 느낄 때의 미적 감정을 숭고라고 한다.(44, 45 페이지)

 

그러나 고려 불화의 관음은 온 우주를 감싸는 부드러움과 온화함으로 느껴진다. 불교는 수행 과정에서 겪은 고통보다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강조한다(25 페이지)고 말하는 저자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생사를 걸 때 그 절박함 때문에 희망이 있는 것이라 말한다.(59 페이지)

 

저자는 상상력이란 실재하지 않는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오랫동안 동서양에서 감정이나 직관 등과 함께 오류와 허위의 주범으로 취급되었지만 올바른 인식의 한 단계이며 미적 인식의 하나이고 불교 수행의 한 방법인 매우 중요한 마음의 능력이라 말한다.(79 페이지)

 

상상력은 초월적 대상을 형상화해야 하는 불교에서 더욱 중요하다. 저자에 의하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일상적인 장면과 지옥과 아귀가 묘사된 상상계가 함께 존재하는 감로도하단은 복잡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불교적 관점에서 아귀와 지옥은 실재하지만 감로도에 묘사된 세계는 상상의 산물이다. 저자는 이를 에밀 뒤르켐의 이론으로 설명한다. 상상 속에는 한 문화의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믿음 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지각하는 특별한 방식과 같은 근본적인 개념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8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상상에는 상징적 의미가 숨어 있다. 저자는 세계의 비실재성과 심리적 현실성을 이야기한다.(92 페이지) 저자는 상상력은 도덕적 선의 위대한 수단이라는 들뢰즈의 말을 인용한다. 저자는 감로도의 상상력을 타자의 것으로 생각되는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라 말한다.

 

감로도는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는 수륙재에 사용되는 그림이다. 수륙재는 부처의 제자 아난이 아귀에게 보시한 일화에서 시작된 것으로 상상계와 현실계를 연결하는 중심에 아귀가 있다. 아귀는 바늘처럼 가는 목구멍 때문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항상 굶주림에 허덕인다. 한 스님이 감로수를 흩뿌리고 제주들이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리고 불보살이 내려오기를 기도한다.

 

저자는 모방을 뜻하는 서양 개념인 미메시스와 동양의 사()를 이야기한다. 동양에서는 외관을 유사하게 그린 것을 형사(形似)라고 하고 정신성이나 기운을 생동적으로 그려낸 것을 신사(神似)라고 한다. 더 높게 평가되는 것은 신사이다. 서양에는 이런 구별이 없다.

 

저자에 의하면 예술 작품에서 사실은 궁극적으로 가짜 현실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가 역사보다 더 진실하다는 말을 했다. 그가 말한 그럴 듯함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실재라고 믿는 우리의 믿음이다.(116 페이지)

 

미술관에 간 붓다에는 반영, 투영 등의 말이 자주 등장한다. 신화를 빼놓을 수 없다. 저자에 의하면 신화에는 세계의 근원, , 자연현상, 죽음 등에 대한 옛사람들의 삶과 사유가 반영되어 있다. 신화는 인류의 지혜와 상상력이 응집된 보고로 오늘날까지도 소설, 영화, 컴퓨터 게임과 같은 형태로 현대인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146 페이지)

 

죽음 이후의 세계인 저승은 우리가 가 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모든 종교적 상상력이 모여드는 중심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현실의 차원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 속 신화의 세계 역시 인간 세계를 그대로 모방한다.

 

이미지에 집착하지도 말고 이미지를 무()라고 내치지도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말을 한 저자는 명부전(冥府殿)의 동자상은 신화적 세계에서 그들이 맡은 역할도 미미하지만 조형적으로도 그다지 귀엽거나 사랑스럽지 않기 때문에 오랫 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서 억지로 다정스러움을 찾아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157 페이지)

 

저자는 딱딱하고 차가운 표정이 본질에서 나온 것이라면 오히려 그 표정이 감추고 있는 미덕을 찾아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저자는 빔비사라 왕과 왕비 위제희 부인,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아사세 사이에서 일어난 왕사성의 비극을 담은 관무량수경을 논한다. 비극이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오이디푸스 신화와 비교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말이 있듯 아사세 콤플렉스란 말도 있다.

 

빔비사라 왕이 왕비 위제희 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늙어가자 불안감을 느껴 예언자를 찾아간다. 예언자로부터 숲 속의 선인이 3년 후에 죽어 왕자로 환생한다는 말을 들은 왕은 조급한 마음에 사람을 시켜 선인을 죽인다.

 

얼마 후 왕비가 아이를 낳는데 어느 관상가로부터 아이가 원한을 품고 있다는 말을 듣고 높은 누각에서 갓난 아이를 떨어뜨려 죽이려 한다. 하지만 왕비의 모성애와 지혜 덕에 살아난 아이는 자기를 죽이려 한 부왕의 진실을 알고 아버지를 죽인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아사세 컴플렉스를 작품화한 것이라고 한다. 오이디푸스의 운명 자체에 의해 결정된 것과 달리 아사세의 부친 살해와 모친 유폐는 아사세의 부왕인 빔비사라의 과거 악행의 결과이다. 비극, 비극, 비극...

 

저자는 이미지 범람의 시대를 말하며 감각의 구제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감각의 지멸(止滅)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관무량수경이야기를 한다. 아사세에 의해 궁전에 유폐된 위제희 부인이 붓다에게 하늘에서 내려와 주기를 간청하자 붓다가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수행법으로 제시한 것이 관무량수경이다.

 

저자에 의하면 불교미술의 주인공인 붓다는 제한이 없다. 제약 없이 한 명이든 일곱 명이든 원하는 대로 붓다를 그려넣을 수 있는 불화와 달리 조각은 그 조성의 어려움이나 공간적 문제 때문에 천불이나 만불을 조성한 경우는 없었다.

 

둔황의 천불동이나 화순 운주사는 드물게 천불이 조성된 곳인데 애초부터 그렇게 계획했던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조성해 가다 보니 천불이 된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불교 미술사는 불상의 조성을 신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대승불교로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로 설명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불상 역시 단순한 숭배의 대상이라 이해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불상은 다른 종교인들이 비판하는 우상숭배와 다름이 없고 대승불교 비판자의 견해처럼 대승불교는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초기불교로부터의 이탈로 간주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대승 불교의 공() 사상을 염두에 둔다면 그것은 너무 안일한 결론이다.(219 페이지) 저자는 법신(法身)에 대한 호소는 정신에 대한 호소이므로 형상화에 대한 제한도 과감하게 떨쳐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란 말을 한다.(220 페이지)

 

저자는 우리 시대를 몸을 잊어버린 몸짓이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자아마저 타인의 눈에 비친 이미지로 해체된 시뮬라크르의 시대로 정의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 시대는 이미지들만 남아 부유하는 시대이다.(23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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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와 마음‘(2016년 11월 출간)을 감명 깊게 읽고 저자 명법 스님의 이전 작인 ’미술관에 간 붓다‘(2014년 6월 출간)를 찾아 읽었다.

미학(美學)이란 것이 서양 근대의 도구적 합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출발했다고 말하는 저자는 천강(千江)의 달 그림자를 이야기한다.

이것들은 불교 예술의 이미지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달 그림자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부질 없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들은 하늘에 뜬 진짜 달과 함께 달의 진실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지에 집착하지도 말고 이미지를 무(無)라고 내치지도 말라는 것일까?

저자에 의하면 천강의 달 그림자는 궁극적인 깨달음은 삶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 존재함을 알리는 은유이다.

이 책에서 서양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비교되는 아사세 컴플렉스를 만났다. 빔비사라 왕이 왕비 위제희 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늙어가자 불안감을 느껴 예언자를 찾아간다.

예언자로부터 숲 속의 선인이 3년 후에 죽어 왕자로 환생한다는 말을 들은 왕은 조급한 마음에 사람을 시켜 선인을 죽인다.

얼마 후 왕비가 아이를 낳는데 어느 관상가로부터 아이가 원한을 품고 있다는 말을 듣고 높은 누각에서 갓난 아이를 떨어뜨려 죽이려 한다.

하지만 왕비의 모성애와 지혜 덕에 살아난 아이는 자기를 죽이려 한 부왕의 진실을 알고 아버지를 죽인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아사세 컴플렉스를 작품화한 것이라고 한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운명 자체에 의해 결정된 것과 달리 아사세의 부친 살해와 모친 유폐는 아사세의 부왕인 빔비사라의 과거 악행의 결과이다. 비극, 비극,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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