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추방당한 존재이다. 그는 도시에서, 규칙적인 일에서, 그리고 제한된 의무에서 추방당한 존재이다...”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에서 내가 자주 음미하는 글이다. 블랑쇼는 잠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함은 바로 자기 자신을 놓을 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잠 못 이루는 자는 돌아눕고 다시 돌아누우며 몸을 뒤척인다. 그는 ‘진정한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블랑쇼의 글에서 내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말은 자리를 찾는다는 말이다. 나희덕 시인의 ‘흔적’이란 시를 생각한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유난히 엷고 어룽진 쪽을/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본다...” 자신의 기원 또는 존재 근거 등을 찾는 것이리라.

인간은 무엇이든 찾는 존재이다. “살아온 길이... 어느 범박한 무덤 하나 찾는 거”(1992년 4월 출간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수록 시 ‘꽃핀 나무 아래’ 중 일부)라고 말한 뒤 비유가 아닌 실제 무덤을 찾는 것을 주(主)로 하는 고대 근동 고고학을 전공하기 위해 독일로 간 허수경 시인이 생각난다.

블랑쇼의 예의 그 진정한 자리를 찾기 위해 나는 오늘 종묘에 간다. 무덤 묘(墓)가 아닌 사당 묘(廟)자를 쓰는 종묘.

거기서 신(神)을 대신하는 몸체인 신위(神位)를 만날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의지하는 자리인 신위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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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의와 문화해설의 차이는 무엇일까? 역사는 주로 가시적 유물과 무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분야이고 문화 해설은 궁궐(宮闕)이나 능(陵), 박물관의 구체적 전시물들 또는 유물들을 보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분야이다.

어떻든 문화는 역사 강의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이렇게 역사와 문화의 차이를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역사문화연구소 김용만 소장의 ‘조선이 가지 않은 길’에서 세종 이야기를 접하고서이다.

이 책에 의하면 세종은 최고의 성군이지만 노비정책에서만큼은 너무 큰 실책을 범했다. 남편과 아내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도 노비이면 그 자식은 무조건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一賤則賤)에 따른 종천법(從賤法)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문화 해설에서도 당연히 세종의 이런 실책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가시적인) 전시물들을 보며 이야기를 하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정책적 실수를 말하게 될 여지는 별로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세종의 종천법 수용을 증거하는 자료가 있겠지만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세종의 그런 점을 널리 알리지 않는 것은 김용만 소장의 말대로 성군 세종의 명성에 금이 가지 않게 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세종의 종천법 수용 이후 조선의 노비 숫자는 확대 일로를 걸었다. 이는 양인(良人)의 감소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조선은 상당히 허약한 나라가 되었다.(어떤 경우든 균형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히 그런 점을 염두에 두는 해설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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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가지 않은 길
김용만 지음 / 창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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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다는 생각이 어떻게 다수의 사람들에게 신봉되게 된 것일까? 이 지배적인 생각에 철저한 반기를 든 책이 김용만의 조선이 가지 않은 길이다. 저자는 조선의 안타까운 역사를 조목조목 들춰보며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논지를 펼친다.

 

1장 활짝 피지 못한 조선문명의 기대주들, 2장 기득권을 위해 변용된 유교의 폐해, 3장 잘못된 선택이 불러온 생활모순, 4장 잃어버린 자주, 자립, 자강의 꿈 등의 장에 각 다섯 꼭지씩의 글을 배치한 조선이 가지 않은 길은 그래서 ‘20 가지 키워드로 살펴본 조선의 선택을 부제로 갖는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자아성찰이어야지 현실의 우리를 변명하거나 자만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저자를 따라 우리는 선조(先祖)들이 범한 실패와 무능, 강박적 오류로부터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는 그런 길을 걸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그런 깨달음에 근거해 바람직한 걸음을 걷는 것이다.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는 조선이 왜 백성에 반하는 나라, 사대부의 나라, 임금보다 신하들의 힘이 강한 나라가 되었는지 알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명()에 원병을 청한 것과 관련해 이름을 알린 역관 홍순언과 그의 사연을 전하며 저자는 상세히 쓰지 않겠으나 그 스토리는 소설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고 말한다.(296 페이지) 어떤 이야기인지 자못 궁금한데 홍순언 이야기가 실린 방편의 사대(事大)에서 변질된 비굴한 도그마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소제목의 글들이 드라마틱하다.

 

그 드라마틱함은 실상을 제대로 알게 하는데 더 없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 스무 꼭지의 글들이 하나 같이 진귀하다고 할 사실들을 전하는데 특히 환구단(圜丘壇)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방치하기에는 너무 아픈 이유란 글은 역사의 비경(秘經)들을 엿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가령 고조선과 삼국시대에 성했던 무천, 영고, 동맹 등의 제례의식에서 보듯 우리 조상들에게 하늘 제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을 자처한 조선은 사직단과 종묘에서만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유교 예법을 받아들인 탓에 제천의례를 중단하게 되었고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함으로써 중화질서가 붕괴되자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제국에 어울리는 의례인 제천행사를 행하기 위해 환구단(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시대의 제단)을 건립했다는 글(287 페이지)을 보라.

 

방편의 사대에서 변질된 비굴한 도그마란 글도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중종과 선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중종은 신하들이 주축이 된 쿠데타인 중종반정으로 집권하게 되었기에 권위가 약했다. 이로 인해 중종은 이웃한 초강대국 명나라의 인정을 통해 권위를 확보하려 했다.

 

선조는 명의 위세를, 임진왜란을 겪으며 땅에 떨어진 초라한 신세를 보호해주는 버팀목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방편적 사대는 절대적 사대로 바뀌었다. 이런 전환은 결국 갖가지 무리수와 불합리, 패악(悖惡)적이고 반동적인 정치 행태를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징비록(懲毖錄)‘이란 책에서 미래를 철저히 대비함으로써 다시는 참혹한 수난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서애 유성룡이 쓸데없는 일을 한 인물로 몰려 귀양을 가게 된 것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런 배경을 따져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사대부들이 선조가 비난을 받으면 자신들도 비난받게 될 것임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내부로부터 권위가 무너진 정권이 만들어낸 외세의존이 조선의 자주성을 해쳤음은 물론 전도(顚倒)된 정치를 만들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다. 유교 특히 성리학은 중국의 천하관을 주변세계에 이식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292 페이지)

 

선조와 사대부들은 명으로부터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입었다면서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사대의 예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니 중국이 강제한 성리학을 조선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유교적 가치관 및 소중화(小中華) 의식, 중국의 제후국을 자처한 정책 등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 망해가는 명에 목숨줄을 대고 청을 배척함으로써 국제 무대에서 뒤처지고 결국 나라까지 잃은 계기가 된 것도 그렇고 억압적이고 극심한 여성차별, 백성이 중심이 되는 축제가 사라지고 종묘제례악 같은 조선 백성들에게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음악이자 왕과 사대부들만을 위한 춤과 노래가 조선을 접수한 것 등은 극히 일부에 해당할 것이다.

 

유교는 지배층을 위한 지배층에 의한 종교이다. 저자는 마음 속에 한 점 거리낌이 없는 군자의 삶을 목표로 수련하는 유교는 기독교나 불교와 형식만 다를 뿐 인간의 다양한 삶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종교였다고 말한다.(301 페이지)

 

조선은 지배층의 나라였고 사대부들이 자기 나라의 왕이 아닌 명의 천자에게 최종 충성을 바친 나라(298 페이지)였다. 그리고 경세제민(經世濟民)과는 너무 거리가 먼 마인드를 가졌던 나라이다. 더욱 소중하고 너무도 귀한 가치, 발명품, 자연자원 등을 놓치거나 활용하지 못한 안타까운 나라였다.

 

조선의 제도적 미비, 무능, 불합리는 나라 전체를 숨막히게 했다. 조선은 또한 그토록 본받고자 한 송나라에도 없던 노비 세습과 매매를 강행한 나라였다.(240 페이지) 특기할 것은 세종이 권세가들의 공세에 휘말려 남편과 아내 가운데 어느 한 쪽이라도 노비이면 자식은 모두 노비로 삼는 종천법(從賤法)을 수용함으로써 노비의 폭증을 낳은 장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사대부들은 노비지배의 합리화와 정당화를 위해 주자학의 명분론을 들먹였다. 상하, 존비, 귀천의 사회적 구분이야말로 우주 질서와 같이 절대적이라고 강변한 것이다.(234 페이지) 이를 보면 고도의 이론적 사상도 현실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의 성리학자 대신들은 임금이 덕을 쌓아 왕도 정치를 하면 강대 적국의 위협도 두려워 할 것이 못 된다는 말(157 페이지)을 할 정도로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 스무 꼭지의 이야기들이 모두 치열하고 묵직한 사연들이라는 점이 특기할 바이다.

 

조선이 가지 않은 길은 깊이 있고 서로 연결되는 스토리텔링식의 이야기 속에 참으로 많은 세세한 사실들을 담은 책이다. 스무 꼭지의 사연들이 모두 하나로 귀일(歸一)하고 수렴하는 잘 짜여진 책이란 말을 아울러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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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5-30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중화 16세기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신분제 사회였죠.

그 중심에는 대토지와 과거제라는 양날
의 칼을 쥔 사대부 계급이 있었구요.

고상한 유학 이론인 성리학을 바탕으로
오로지 지배계급의 이익만을 추구한 사회
의 파국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 아니었
나 싶습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7-05-30 18:52   좋아요 1 | URL
네. 동의합니다. 안타까운 역사이지요. 조선과 고려, 조선과 고구려의 차이가 새삼 많은 것을 일깨웁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겹다, 눈물겹다, 지겹다 등의 말에 들어있는 겹다는 1) 정도나 양이 지나쳐 참거나 견뎌 내기 어렵다, 2) 감정이나 정서가 거세게 일어나 누를 수 없다, 3) 때가 지나거나 기울어서 늦다 등을 뜻한다.

근심겹다는 말도 있고 약간 어색하지만 사랑겹다 같은 말도 있다. 분(憤)에 겨워, 졸음에 겨워처럼 쓸 수도 있다.

정겹다는 정이 넘칠 정도로 매우 다정한 것을 뜻한다. 눈물겹다는 눈물이 날 만큼 가엾고 애처롭다는 뜻이다.

그러면 지겹다는 말은 무엇이 넘치는 것일까? 지긋지긋함이 넘친다고 하는 것은 어색해 보인다. 지긋지긋이란 말이 지겹다보다 더 강하기에 그렇다.

지겹다란 말은 넌더리가 날 정도로 지루하고 싫다는 뜻이니 결국 지루함이 넘친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버겁다는 어떨까? 버겁다란 말에는 힘에 겹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힘겹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버겁다는‘버‘함이 넘치는 것이 아니어서 버겹다고 하지 않은 것일까?

지난 번 유종인 시인이 순 우리말을 하루에 하나씩 새기라는 말을 한 것을 기억하는데 나는 산문집이 아닌 김행숙 시인의 평론집을 읽는다.

제목은 ’천사의 멜랑콜리‘. 평론집이라고 하기에는 본격적이지 않고 시인이 쓴 산문인 만큼 감성적인 비유들이 눈에 띈다.

가령 “흩어진 파편들(글)을 주워 모아서 단단한 집을 지을 수는 없다. 건축적인 환각은 위험하다. 자칫하면 무너질 건물에 손님을 맞이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그렇고, “질문은 우물 안에 던져진 돌 하나였고, 그 우물은 내 영혼이”었다는 말이 그렇다.

곱고 맞춤한 단어 선택보다 은유의 적절한 사용이 훨씬 세련되고 깊은 의미를 발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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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시인의 ‘천사의 멜랑콜리‘를 읽는다. 제주 라이딩(사이클)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고 한 동기를 생각하며.

나는 오늘 21기 연구원 첫 만남 시간을 틈타 예의 그 ‘천사의 멜랑콜리‘란 책을 그 동기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무거운 마음을 벗어버리는 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물론 ‘천사의 멜랑콜리‘에서 천사의 멜랑콜리보다 내 관심을 더 끄는 부분은 ‘자신의 시를 쓰고 읽기에 관하여‘란 글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작가가 자기 자신의 작품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어떻게 동어반복과 자기지시성을 넘어서는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타자를 경유하는 일인지, 그리고 그렇게 먼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의 산문을 통해서 천천히 음미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란 파나마 태생의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이고 산문이란 ‘나 자신을 읽고 쓰기에 관하여‘란 제목의 글이다.

저자의 멘트를 몇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우선 말할 것은 우리 모임(전문해설사 36기- 연구원 21기)은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의 모임(문화로써 친구를 사귀고 벗을 통해 어짊을 보완하는 모임)이란 말이다.

저자(김행숙)의 말을 응용한다면 이문회우 이우보인의 모임이란 많은 좋은 타자 즉 벗을 만나는 모임이며 그런 만남을 거친 ‘나‘는 예전의 나일 수 없다는 점이다.

하나 같이 스승 같은 네 명의 ‘36 - 21‘ 멤버들을 만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 새롭고 의미로운 해설사가 될 것을 다짐한다...

상투적이어서 아쉽지만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음을 이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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