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避書)라는 말을 기억하는데 한 인터넷 서점에서 피서(披書)라는 말을 썼다.

피서(避書)는 책에 지친 사람에게 잠시 책을 떠나라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일찍이 김영민(철학자)은 책을 읽다 싫증나면 계속해서 책을 읽으라는 말을 전했다.(‘공부론‘ 165 페이지) 각나간서 즉차간서(覺懶看書 則且看書)라는 말이다.

피서(披書)는 책을 나눈다는 말이다. 그제 나는 피서 입서 소한 소한(避暑 入書 消汗 逍閑)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문법적으로 맞는지 장담할 수 없지만 ’더위를 피해 책의 세계로, 땀을 식히고 한가하게 노니는‘이란 의미가 담겼다.

힘들기에 책을 피하는 피서(避書)의 세계에서 힘들어도 거듭 책을 읽는 세계를 만드는 입서(入書)로 변화했으되 한가하게 노닐기를 바라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찜통 더위가 연일 가동되는 것을 보며 마음으로라도 그런 세계를 상상하려고 지은 것이다.

경회루 연못을 만들 때 파낸 흙으로 만든 가산(假山)인 경복궁 아미산(峨眉山)에는 두 개의 연못이 있다.

하나는 노을이 내려앉은 연못이라는 뜻의 낙하담(落霞潭), 다른 하나는 달을 머금은 연못이라는 뜻의 함월지(涵月池)이다.

그런데 이 연못들은 아름답고 시적인 비경을 상상하라는 뜻으로 돌에 이름을 새긴 가상의 연못들이다.

낙하담과 함월지처럼 나도 더위를 피해 책 속에서 한가하게 노니는 것을 상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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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고 또는 육가陸賈는 한 고조 유방劉邦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말 위에서 권력은 얻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

그런가 하면 ‘금강경’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다. “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다. 법조차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非法)이겠느냐?”

이 말들은 모두 탈 것(vehicle)으로 세상사를 비유한 말들이다.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을 나누는 불교 자체가 탈 것과 친숙한 종교이다.

다만 남방불교도들은 스스로를 소승이라 칭하지 않는다.

매너리즘에 빠져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지금껏 자신이 의거(依據)해온 중요한 지침이나 원칙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나는 “말 위에서 권력은 얻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말을, 부지런한 성실함으로 글을 잘 쓸 수는 있어도 책을 쓰는 것은 별개라는 말로 듣는다.

그리고 “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다. 법조차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非法)이겠느냐?”는 석가모니의 말씀은 변화에 맞추어 지체하지 않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말로 듣는다.

잘 나가면 단점이 잘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드러난다 해도 문제라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고정불변하는 것 즉 비생물체가 아니어서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원칙을 지키는 한도 안에서 그래야 하리라. 그러나 위기가 도리어 기회인 경우로 만드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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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네코 후미코(1903 - 1926)에 대해 안 것은 김혜영 시인의 산문집 ‘아나키스트의 애인’을 읽고서이다.

의열단 아나키스트 박열(朴烈: 1902 – 1974)의 애인으로 일왕 암살을 기도한 남다른 삶을 살다 간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글인 동명의 표제작 ‘아나키스트의 애인‘에서 저자는 자신의 시 ’가네코 후미코‘의 긴 전문을 인용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저자가 왜 그녀를 소재로 시를 쓰게 되었는지를 설명한 글이다.

˝슬픈 시체/ 아버지의 나라를 배반하고/ 천황을 살해하려던 마녀의 몸에서/ 향긋한 벚꽃이 피어났다˝ 같은 구절이 내게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상적인 부분은 “사랑하는 박열의 품에 안겨/ 콧노래를 부르며 책을 읽던 그녀가/ 봄비를 맞으며/ 나의 서재를 다녀갔다”란 마지막 구절이다.

저자의 삶과 가네코 후미코를 연결지은 참신한 조합 때문일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의 시체는/ 박열의 고향인 문경에 묻혀 있다/ 무덤에서 걸어 나온 후미코가/ 동경대학 도서관으로/ 걸어간다˝는 구절까지 저자는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책과 연결짓는다.

이 마지막 구절이 강하게 내 마음을 다녀간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밀정‘이나 ‘박열‘ 등의 관련 영화를 보며 2년 만에 다시 시인의 산문집을 펼쳐 본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고 감동을 받아 박열의 애인이 된 일본 분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의 시를 읽은 것을 계기로 아나키스트들과 교류하다가 박열을 만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가네코 후미코가 자신을 찾아 왔다 갔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서재를 다녀갔다고 한 것일까?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과 다정하게 앉아 책을 읽는 사진을 보고 ’가네코 후미코‘란 시를 쓴 남다른 인연을, 가네코 후미코가 자신의 서재를 다녀간 것으로 마무리 지은 것일까?

2016년 6월 30일 등 지난 몇 차례 고종의 서재인 경복궁 집옥재를 관람한 이래 어제는 고종의 침전 및 편전으로 사용된 뒤 고종 승하 후 일본에 의해 미술관으로 개조된 석조전이 있는 덕수궁에 다녀왔다.

8월 2일 강녕전에서 집옥재에 이르는 경복궁 내전(內殿) 시연을 앞두고 있는 나로서는 석조전 이야기가 고종의 책 이야기를 풍성하게 할 좋은 소재로 여겨진다.

가네코 후미코의 책, 고종의 책, 그리고 내 인생의 책을 하나로 꿰어 시나리오에 담을 여지가 있을까? 새로운 과제를 만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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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의 시집 ‘조용한 개선’에는 가는 것 또는 떠나는 것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 떠남에 대한 시들이 마음에 전해지면 파문이 인다.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 모든 것은 나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다.˝(‘나도 꽃으로 서서‘), ˝우리는 깨끗이 직각으로 서로 꺾여져 가자˝(‘해부학 교실 1‘), ˝나의 사소한 기억도 언젠가 저 흰 꽃잎처럼 날아가 버리겠지.˝(‘기억의 하늘‘),

˝나는 나를 지켜준 모닥불의 온기를 이 들길에 고이 묻고 떠나리.˝(‘저녁 들길에서‘),˝갈 길은 지천이어도 마음은 때없이 나그네로다.˝(‘다섯 개의 변주‘), ˝오래 기다리다 이제 떠납니다˝(‘비망록 1‘),

˝나를 기다리던 골방의 친구는 멀지 않아 새로 푸르른 젊음을 장만할 것이고, 신대륙을 향한 경건한 소녀의 기도는 옛날에 나와 함께 나누던 꿈을 깨고 길을 떠날 것입니다.˝(‘제3 강의실‘), ˝나도 한때는 거기서 얼어 죽고 싶었다.˝(‘자유주의자‘)

시인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떠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들을 지은 것일 테다.

미국의 인지 심리학자 라파엘 뉴네즈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안데스 산맥의 인디언 부족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들에게 과거를 물으면 시야의 앞쪽을 가리키고, 미래를 물으면 등 뒤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는 이미 경험한 것들이어서 볼 수 있는 앞쪽에 있고, 미래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어서 등 뒤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슈테판 클라인 지음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7 페이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귀환에 대한 꿈은 언제나 실패로 끝난다. 칸트식으로 말하면 귀환은 불발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궁금한 것은 안데스 인디언들에게 그리움은 없을까?란 것이고, 고칠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는가?란 것이다.

마종기 시인의 다른 시집들을 읽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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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은 국맛을 모른다는 법구경(法句經)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국맛을 느끼는 것은 숟가락이 아닌 혀라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시골 교회를 떠나며 함께 했던 청년회원들에게 쓴 것이니 상당히 오래 전 일이다.

교회를 떠난 것이기보다 신앙을 떠난 것이라 해야 옳지만 요지는 교회든 신앙이든 잘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 나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무지하고 영적인 것 즉 신앙에 대해 무감하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상하게 은총이나 은혜 등의 말은 싫어한 반면 영성(靈性)이라는 말은 즐겨 썼다. 오독인지 모르지만 영성에 모종의 반체제적인 뉘앙스가 있다고 생각한 결과이다.

하지만 은총이나 은혜 같은 말과 영성이란 말은 통한다 해야 옳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여서 내가 은혜나 은총이란 단어들을 싫어했던 것 같다.

내 독서의 목적지 같은 것이 있을까마는 시를 잘 이해하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최근 어떤 문인의 페북에서 시인을 알려고 하지 말고 시를 알려고 하라는 글을 읽었다.(정확하지는 않다. 대략 이런 의미이다.)

나에게 들려주는 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를 읽으려 애쓰기도 했지만 한 번 읽고 쉽게 이해되는 시들을 주로 읽었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시들을 두 번, 세 번 그리고 그 이상 읽어서 이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친구를 잃고 속상해 하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친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라 말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자신을 떠난 사람은 친구가 아니니 잃은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 말을 나에게 적용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시를 애써 읽어 이해한 경우가 거의 없으니 (진정으로) 읽었다 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최근 정신과 의사 서천석 님의 페북에서 강연을 하면 수입 면에서 훨씬 유리하지만 상담이 주는 치열함과 강렬한 상호작용, 그 속에서의 배움이나 발전이 없다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과학자 홍성욱 님의 페북에서는 이공계 수업 시간에 교수들이 칠판을 이용하던 옛날과, ppt를 만들어 와서 강의를 하는 요즘을 비교한 글을 읽었다.

양자역학을 가르쳤던 어떤 교수의 경우 속기를 배워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진도가 빨랐다고 한다.

강의 노트 없이 들어와 바로 바로 문제를 푼 교수도 있었다고 한다.

결론인 즉 ppt로 강의하면 강의에 즉흥성이 떨어지고 interactivity도 절반 이하로 격감될 것 같다는 것이다.

두 전문가의 글은 맥락이 같다. 치열함과 강렬한 상호작용, 그 속에서의 배움이나 발전 vs 즉흥성, interactivity(상호 대화, 쌍방향성)의 구도이지만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나의 문제의식에 적용하면 시에 대한 깊은 이해란 말이 된다. 나와 시인이 내 해석을 매개로 대화를 하는 것이니 상호 작용인 셈이다.

시인들의 강의를 자주 들으러 다니는 편인데 인상적인 경우는 지난 5월 31일 용산 도서관에서 들은 권현형 시인의 강의이다.

자기 시를 몇 편 골라 세부적으로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 의미에서 시에 대해 말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권현형 시인과 같은 경우이다.

물론 모든 시를 이렇게 배울 수는 없고 그렇다 해도 필요한 것은 내 스스로 내 문제의식으로 시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이론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편의 시를 거듭 읽는 것이다.

이론을 염두에 두고 읽는 것과, 느낌으로 읽고 이해한 뒤 이론으로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좋을까?

어려운 문제이다. 시가 내게로 왔다는 네루다의 말을 생각하면 내가 시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고르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다가가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한 저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의 최상을 생각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대상이기를 그만 두게 하는 것이고 박학과 친숙함의 이중적 불명예를 피하는 것 등이다.(진은영 지음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에서 재인용)

이 말 특히 박학과 친숙함의 이중적 불명예를 피해야 한다는 말이 이론과 느낌 사이의 딜레마를 풀게 할 열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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