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고 또는 육가陸賈는 한 고조 유방劉邦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말 위에서 권력은 얻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
그런가 하면 ‘금강경’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다. “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다. 법조차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非法)이겠느냐?”
이 말들은 모두 탈 것(vehicle)으로 세상사를 비유한 말들이다.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을 나누는 불교 자체가 탈 것과 친숙한 종교이다.
다만 남방불교도들은 스스로를 소승이라 칭하지 않는다.
매너리즘에 빠져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지금껏 자신이 의거(依據)해온 중요한 지침이나 원칙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나는 “말 위에서 권력은 얻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말을, 부지런한 성실함으로 글을 잘 쓸 수는 있어도 책을 쓰는 것은 별개라는 말로 듣는다.
그리고 “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다. 법조차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非法)이겠느냐?”는 석가모니의 말씀은 변화에 맞추어 지체하지 않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말로 듣는다.
잘 나가면 단점이 잘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드러난다 해도 문제라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고정불변하는 것 즉 비생물체가 아니어서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원칙을 지키는 한도 안에서 그래야 하리라. 그러나 위기가 도리어 기회인 경우로 만드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