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 시인의 시집 '보라의 바깥'을 읽고 있었다. 표제작인 '보라의 바깥'은 이런 시이다. "눈 마주쳤을 때/ 너는 거기 없었다// 물렁한 어둠을 헤집어 사라진 얼굴을 찾는 동안,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시선의 알갱이들이 쏟아진다 산산이 뿌려진/ 눈빛들이 나를 통과하여 사라져갔다..." 고흐의 '실편백나무가 있는 별이 빛나는 밤'을 프로필 사진으로 삼은 한 알라디너가 친구신청을 했다. 거칠게 말하면 '보라의 바깥' 은 감수성 갑(甲)인 젊은 시인의 색채감각이 빛나는 시들이 만개한 시집이다. 
 
시인은 '푸른 꼬리의 소년' 에서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란  한국 록 그룹 로로스의 노래 가사를 인용한다. '메스칼린'에서 시인은 "둘러보니 온통 색으로 얼룩진 소리, 소리들 사방으로 흐/ 르는 거대한 팔레트 속이었다 나는 색에 흠뻑 절여진 음계/ 들을 훔쳐 유리컵 밖으로 도망한다..."고 말한다. 감각적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감각적이다. 
 
고흐는 공감각을 얻기 위해 압생트를 즐겼을까? 아니 공감각은 압생트의 우연한 효과였는지도 모른다. 조용미 시인은 '압생트'란 시에서 "...고흐는 단지 찬란한 노란색을 얻기 위해 매일 압생트를/ 마셨던 것은 아니다 그토록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 서라면 스스로를 조금 속일 필요가 있었던 것, 그는 노란/ 색을 완전 장악했던 걸까 노란색의 심연에 도달하기 위/ 해서는 압생트가 아니라 고독과 광기의 섬세함과 난폭함이/ 고루 필요했다...."는 말을 한다. 
 
노란 높은 음이란 말을 주목하자. 고흐의 '실편백나무가 있는 별이 빛나는 밤'은 영감과 경외감으로 빛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고흐가 생레미 정신요양원에 스스로 들어간 후 그린 그림들 중 하나이다.(1889년 6월) 귀를 자른 후에 그린 작품이다. 
 
철학자 시인 진은영은 '고흐'란 시에서 "왼쪽 귓속에서 온 세상의 개들이 짖었기 때문에/ 동생 테오가 물어뜯기며 비명을 질렀기 때문에/ 나는 귀를 잘라버렸다...."는 말을 한다. 설득력이 높다고 할 수 없지만 이어지는 "...한 개의 귀만 남았을 때/ 들을 수 있었다/ 밤하늘에 얼마나 별이 빛나고/ 사이프러스 나무 위로 색깔들이 얼마나 메아리치는지...."란 표현은 절실하다.
 
이에 비해 조르주 바타유는 고흐가 태양을 위해 귀를 잘라 바친 것으로 해석한다. 귀를 자르는 자기파괴가 신성한 신이자 태양이라는 이상을 모방함으로써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나는 태양과 귀절단을 연결지은 바타유의 논리보다 진은영 시인의 논리에 마음이 간다. 귀를 자름으로써 고흐는 (결과적으로) 역동하는 밤하늘과 색깔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꽃잎처럼 터지는 기/ 포들을 따라 내 속에 거처하던 색들도 먼 길을 떠나"('메스칼린' 마지막 부분)간다고 말한 시인의 심경이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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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으로서의 편집자 (양장) - 현대 독일 프로테스탄티즘과 출판의 역사
후카이 토모아키 지음, 홍이표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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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하이데거(1889 - 1976)란 이름으로부터 우리가 연상하는 것은 무엇일까? 난해한 사상과 나치와의 연관성 등이지만 그가 유고(遺稿)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은 생각하기 어렵다. 유고 정책이란 자신의 작품이나 저작이 후세에 어떤 취급과 평가를 받을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작성하고 편집하는 모든 행위 전략의 총체를 의미한다. 이는 저자 - 독자라는 2자 관계 틀에서 저자 - 편집자 - 독자라는 3자 관계 틀로 전환된 현대의 출판 환경을 말하기 위해 일본의 철학자 후카이 토모아키(1964 - )가 예시한 사례이다.


하이데거가 그렇듯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1886 - 1965) 역시 유고 정책의 시행자였다. 1950년대 망명지 미국에서 독일 출신의 무명 신학자 틸리히의 성공에 한 몫을 한 데에는 편집 역할을 한 번역자가 있었다. 틸리히는 어떤 내용은 넣고 어떤 내용은 뺄지, 제목은 어떻게 지을 것이며 구성은 어떻게 할지 등을 면밀히 구상한 편집자의 도움으로 독일과는 사정이 다른 미국 독자들을 상대로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편집 전략에 따라 틸리히가 쓴 논문의 일부는 완전히 새로운 신작 논문으로 작성되기도 했다. 틸리히는 애덤스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는 틸리히에 의해 ‘나 이상으로 나의 사상을 잘 아는 사람’이라 불린 사람이다.


빌헬름 제정기에서 바이마르 시기에 걸친 독일의 신학사상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선보인 저자는 사상이 더 이상 일부 지적 서클의 독점물이 아니게 되었을 때 저자 - 독자라는 공고한 틀이 깨지고 양자 사이에 새로운 지성의 프로모터로서의 편집자가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편집자가 사상가인 경우도 있다. 저자는 비틀스를 발견하고 세상에 내놓(아 성공 가도에 올려놓)은 프로듀서 브라이언 엡스타인(1934 - 1967)을 예로 든다. 저자는 비틀스를 엡스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밴드라고까지 언급한다.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저자의 맥락에서 (분야는 다르지만) 엡스타인은 현대의 출판 시장에 종사하는 편집자들의 선례이자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했듯 지금처럼 모든 것이 시장 거래되는 상황에서 출판사나 편집사의 프로듀싱 없이 그 사상을 대중에게 온전히 전달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독일어로 출판사를 페어라크(Verlag)라 하고 편집자를 페어라거(verlager)라 하는데 페어라거는 단순한 편집자가 아니라 한 상품의 종합 코디네이터였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저자는 사상의 상품화가 운명처럼 되어버린 사회에서 편집자나 출판사가 사상가 및 저자와 대치(對峙)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市場)과도 대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전문적인 편집자를 대신하는 시장 또는 대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편집자’가 새롭게 사상의 편집과정을 지배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누가 편집자인가를 묻는다. 흥미로운 것은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저자 막스 베버(1864 - 1920)의 경우이다. 저자는 베버가 오이겐 디더리히스(Eugen Diederichs: 1867 - 1930) 같은 카리스마적인 지식의 프로듀서를 동경한 한편 그 존재를 두려워 했다고 말한다.(베버가 두려워 한 것은 디더리히스의 인맥과 정치적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디더리히스는 헤르만 헤세(1877 - 1962)의 데뷔에도 관여한 인물로 “출판이라는 수단을 통해 기존의 사상이나 제도를 파괴하고 새로운 지식(학문)의 틀을 만들고자” 한 출판인이었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디더리히스를 표현주의적 편집자였다고까지 말한다.(디더리히스는 독자 앙케트 엽서를 역사상 최초로 삽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표현주의는 본질을 표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기존의 형식이나 형태를 파괴하려고 한 회화(繪畫)의 한 유파이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학문은 자기 성찰과 사실적 연관의 인식에 따라 전문적으로 영위되는 직업이며, 구원의 양식과 계시를 주는 선견자나 예언자의 시혜(施惠)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미리 인식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디더리히스는 문학(헤르만 헤세), 신학(프리드리히 고가르텐, 칼 바르트 등)이나 종교 뿐 아니라 정신과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 두루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편집자의 역할을 강조하며 도스토예프스키나 칸트의 저작들을 새롭고 젊은 감각의 최근 언어로 읽기 쉽게 번역하여 이전과 같이 고생하지 않고서도 잘 읽을 수 있게 된 것과, 아침 러시아워 때 열차 안에서 현실을 잊고 꿈속에 있는 듯 멋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새롭게 만들어진 지식(지성)의 산물을 상품으로서 소비하기 쉽도록 보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지식은 신이 내려준 은사(恩賜)이므로 팔 수 없다.“는 중세의 격언은 격세지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사상은 저자에 힘입어 로고스화하지만, 현대에는 한층 더 편집자에 힘입어 사회화한다고 말한다. 현대는 출판이 교회나 국가의 통제 안에 있었거나 단순한 제본 수준이었던 때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대이다. 저자는 해석자로서의 독자는 저자의 사상과 편집자의 사상이라는 두 사상체계를 하나의 세트로 전달받게 되지만 이것을 식별하기 위한 노력이 분명히 무의식 속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편집인들의 정치적 색에 대해 언급한다. 공산주의와 결별해 있던 (붉은 괴벨스라 불렸던) 빌리 뮌첸베르크(1889 - 1940), 나치즘의 선전 장관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 - 9145), 중립성을 기본 편집 방향으로 설정했던 로볼트 부자(父子)...‘일러스트 노동자 신문’의 편집인 등으로 활약했던 뮌첸베르크는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자유로웠다. 이를 통해 그의 편집자로서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운동가로서의 그의 유연한 관점은 편집인으로서 일할 수 있었던 동인(動因)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선전(宣傳)과 편집(編輯)을 구별한 사람이었다.


괴벨스는 당시 사람들이 언론과 출판이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해 알려주는 것보다는 매력적인 말과 문장으로 단순화하여 설명해주기를 바란다는 점을 강하게 느꼈다. 괴벨스는 이미 일어난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모습을 그려보이는 평론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것을 날조나 유언비어가 아닌 비전 제시라 생각했다. 괴벨스는 편집자의 정체성과 정치가의 정체성 사이에서 어떤 모순도 느끼지 않았다.


에른스트 로볼트(1887 - 1960)는 프란츠 카프카의 재능을 간파하여 출판을 추진했고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세상에 내놓은 편집자였다. 로볼트는 시대를 완벽하게 읽은 편집자였다. 그는 지나친 자유는 대중에게 오히려 불안과 불투명성을 느끼게 해 사회를 급격히 보수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저자는 말한다. 로볼트의 입장은 무정치성이 아니었다고. 로볼트는 책은 시대의 조류 속에 될 수 있는 한 격렬히 비집고 들어가 우에서 좌에 이르는 여러 이데올로기의 물결이 반달 모양으로 그려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출판사가 단순 직업의 인쇄소와 같지 않은 것은 거기에 편집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편집자는 저자가 쓰려고 하는 사상만이 아니라 사상으로서의 편집자로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입장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4장)에서 시장에서 잘 팔리는 책을 만들기 급급한 편집인에 대해 다룬다. 시장(市場)이 마치 편집자와 같은 상태가 된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편집자는 사상의 프로모터임과 동시에 출판이라는 산업에 속해 있는 한 시장원리와 관련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그러나 시장이 역사의 산물이며 사상은 시장에서 소비되긴 하지만 시장을 상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상과 시장, 사상과 대중의 관계를 생각할 때 여전히 유효한 것은 폴 틸리히와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론이다. 틸리히는 대중을 세 유형으로 나누었다. 기계적, 역동적, 유기적 대중이 그것이다. 기계적 대중은 정치적 지배자에게는 단지 조작의 대상일 뿐이다. 역동적 대중은 기계적 대중을 파기해 온 대중이다. 양 유형의 대중은 변증법적이다.


가세트는 대중이란 스스로를 특별한 이유로 평가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모두와 같을 것이라 느낌으로써 주변인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막연하게 타인과 자신이 동일하다고 느끼면서 오히려 기분 좋은 상태가 되는 그런 사람들이 거의 전부란 말을 했다. 가세트가 ‘대중의 반역’에서 주장한 바는 대중은 무지하지도 않고 미련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가세트는 대중의 특징을 익명성, 무명성 등으로 보았다.


저자는 출판사가 경제나 정치라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익명의 편집자에게 지배당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한다.(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떠올려도 될지?) 지난 번 출판 편집인을 위한 강의에서 내가 들은 바를 거칠게 요약하면 출판은 철저히 독자의 입장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강사가 강의했는데 한 분은 표절을 한 누구 누구 작가를 거론하며 그가 책을 내도 여전해 팔릴 것을 예언(?)했다. 고뇌에 시기를 넘기고 운운하며 다시 독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이야기이다.


”시장이라는 이름의 검열“(앙드레 시프린의 표현)이 문제이다. 2009년 일본에서는 미국 동화 작가 아론 셰퍼드의 경험담이 ‘이제 출판사는 필요 없다’는 책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지난 번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들 가운데 새로운 변화를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출판사가 저자로부터 돈(제작비)을 받고 출판을 해주는 시스템(의 도입)이다.


저자는 저자가 편집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시장에 접근하는 시스템은 대중이라는 익명의 편집자에게 지배당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우려한다. 우리의 흐름은 너무 흥미 위주로 흐르고 있다. 대중을 상대로 한 문화강의는 깊이보다 넓이를 고려해 한 두 시간에 세계 수십 개 나라를 거론하고 있다.


인기를 얻고 있는 책들은 재미와 간결함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칸트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을 읽기 쉬운 문체로 재번역하는 것과, 다이제스트판으로 소화하기 편하게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저자는 우리의 삶 속에서 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시프린의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끝맺는다. 공감한다. 책이 소중하다는 것은 모든 책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 중요한 책들을 골라내야 하는 전제하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 독서 습관이 경박해진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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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초로 책 갈피에 독자 앙케트 엽서를 삽입, 막스 베버가 존경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두려워 했던 카리스마적인 출판 편집인, 일본의 한 철학자가 표현주의적인 편집자라고까지 말한 사람, 헤르만 헤세의 데뷔에도 관여했던 사람, 교회를 비판해 러시아정교회에서 파문당하고 쫓겨난 톨스토이 전집을 간행, 새로운 플라톤 해석을 보급하는데도 앞장섰던 나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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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완고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는 서로 통한다..”란 구절을 보고 용원화(溶原化)라는 생물 용어를 생각했다면 시인에게, 그리고 글을 올리신 ***님께 실례일까요? 용원화는 바이러스의 DNA의 양끝이 숙주의 끊어진 DNA와 결합해 하나의 DNA가 되는 것을 말하지요. 저는 다시 과학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시간을 만들 생각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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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 신의 선물이라면 마지막 문장은 무엇일까?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자크 모노의 자연과학서 ‘우연과 필연’과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들 수 있다. “인간은 마침내 그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그가 이 우주 속에서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그 어디에도 그의 운명이나 의무는 쓰여 있지 않다.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는 모노. 

 

”...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와 나는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라 말하는 카뮈. 광대한 무관심이란 단어와 부드러운 무관심이란 단어가 대비되어 울린다. 당연히 부드러운 무관심이 좋으리라. 그 세계는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기고 ”아프게 사라”(이상 최윤 작가의 ‘회색 눈사람’에서 인용)지는 사람들에게 눈물이라도 뿌려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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