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이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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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빅히스토리 관점으로 쓴 역사서이다. 러시아사를 전공한 데이비드 크리스천(David Christian; 1946 - )이 제안한 빅히스토리에 대해 저자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등 네 영역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주 전공이 지구 역사이지만 대멸종 덕분에 생명 역사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화학(인간이 현실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의 배경에 물리학과 화학이 있다고 말한다.)을 넘어 지질학, 고생물학, 생물학, 고고학, 천문학, 우주론과 같은 역사과학을 살핀 후 인류사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놓인 현실의 모든 부분과 관련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전문화된 역사는 우리의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빅히스토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빅히스토리가 재미 있는 이유는 연구에 뚜렷한 방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86 페이지) 저자는 지구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인간 현실의 역사를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기술하기보다 지질학자의 관점에서 인류가 놓인 조건을 보려 한다고 말한다.(32 페이지) 이 말은 빅히스토리의 목적은 인류사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는 것이라는 저자의 다른 말(41 페이지)과 들어맞는다.

 

저자는 우리의 세상이 가능하게 한 자연의 세 가지의 마술을 논한다. 그것은 1) 별을 만든 것, 2) 별 내부에서 새로운 원소들을 융합한 것, 3) 그 중 일부의 별을 폭발시킨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자연은 연금술사들이 결코 가진 적이 없는 별의 중심부라는 실험실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핵반응에 의해 새 원소가 만들어진다.(59 페이지)

 

별 내부에서는 양성자를 두 개 가지는 헬륨부터 스물 여섯 개를 가지는 철까지 만들어진다. 여기에는 암석(지구)의 네 가지 주요 성분도 포함된다. 지구에는 산소, 마그네슘, 규소, 철이 월등히 많다.(76 페이지) 이 가운데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규소다.(79 페이지) 규소는 우리 행성을 구성하는 광물 대부분과 암석의 근간이다. 탄소가 생명의 기본이라면 규소는 암석의 기본이다.(78 페이지)

 

인간이 석기를 만들고 그로 인해 뇌가 발달하고 지성이 발전한 것은 지구가 규질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구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물질은 흑요석이라 불리는 화산유리와 규질암 또는 부싯돌이라 불리는 퇴적암이다.(용암이 급속도로 식어 결정이 만들어질 시간이 없을 때 만들어지는 흑요석은 이산화규소가 풍부하지만 너무 희귀하다.)

 

규소 원소는 산소와 쉽게 결합해 석영과 감람석 같은 규소 광물들을 만든다. 자연에서 산소와 결합하지 않은 천연 규소 금속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88 페이지) 화학공학자들은 컴퓨터 칩을 만들 때 사용되는 규소 금속을 위해 이산화규소에서 산소를 제거해 순수 규소 금속을 얻는 제조 과정을 개발했다.

 

지구 깊숙한 곳에 있는 암석들은 약 44%의 이산화규소를 포함하는 반면 해양 지각은 약 50%, 소멸 지역 위에 위치한 화산은 약 60%, 그리고 대륙 충돌에 의해 만들어지는 화강암은 약 75%의 이산화규소를 포함한다.

 

75%의 이산화규소는 석영이 결정화되기에 충분하며 실제로 화강암에서는 석영이 보통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제 인간은 석영 결정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 저 아래에서 단단한 화강암에 갇혀 있다. 지구는 어떻게 그것을 밖으로 빼내어 순수한 석영 모래로 전환 시킬까? 화강암 덩어리가 포함된 산의 깊은 뿌리조차 표면까지 서서히 올라와서 침식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그 결과 화강암은 고대에 만들어진 산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석이 됐다. 판의 이동으로 인환 과정과 거친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처음에는 행성에 존재하지 않던 석영이 지구에서 만들어졌다. 점토 광물은 입자가 매우 작아서 석영만 남겨 놓고 물이나 바람에 쉽게 휩쓸려가 버린다.

 

석영 입자들은 지극히 안정적이어서 모래 언덕이나 강의 수로, 그리고 해변에 쌓여 거의 영원히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은 이런 모래 퇴적을 사암이라 불리는 암석으로 굳힌다. 가장 순수한 사암은 거의 100%에 이르는 이산화규소 성분으로 이루어져 석영을 제외한 어떤 것도 포함하지 않는다. 이렇게 유리와 컴퓨터 칩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다량의 석영 모래 퇴적을 생성하기 위해서 지구는 수십 억년이 필요했다.

 

1960년 프린스턴 대학의 지질학자 해리 헤스는 대륙이 양옆으로 갈라져 멀어짐에 따라 그 사이에서 해양 바닥이 새로 자라서 넓어진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해양이 대륙보다 젊고 지질학적으로 단순한 이유를 설명했다.(117 페이지) 지질학을 공부하며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이원적 대립(binary opposition)의 관점을 취할 것이 많다는 점이다.

 

화성암 중 지구 속에서 식어 만들어지는 심성암과 지표 밖에서 식어 만들어지는 화산암이 있다는 사실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강과 산도 그런 관점으로 대할 수 있다. 가령 산맥이 솟아 오르는 것은 지구 내부 과정에 의한 것이지만 침식은 강이나 빙하처럼 태양에서 오는 열로 진행되는 외부 과정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도 그렇다.

 

이는 어렵지는 않지만 생각하기 쉽지 않은 앎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에는 이런 예가 몇 있다. 햇빛이 전혀 닿지 않는 깊은 바닷속 생물들은 광합성을 할 수 없어 뜨거운 물에 녹은 황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203 페이지)이 대표적이다. 광합성은 지구의 생태계를 심하게 교란했다. 초기 미생물들에게 광합성의 부산물인 산소가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소에 적응하는데 성공한 미생물의 후손이다. 산소 혁명은 인류에게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산소로 숨을 쉬기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의 산업 문명이 크게 의존하는 엄청난 양의 철광석을 만들어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약 5억 4천만년 전부터 생명체의 화석 기록이 풍부해졌다. 생명체의 단단한 부분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달팽이나 조개껍데기, 우리의 뼈와 이(tooth) 등이 그런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이런 화석의 등장을 캄브리아기의 시작으로 잡는다. 이는 자연의 무기경쟁으로 인한 것이다. 단단한 부분을 만들어낸 동물들이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해졌다. 화석 기록에 나타난 결과는 극적이다.

 

갑자기 퇴적암 층에 조개가 나타났다. 부드러운 조직보다 단단한 부분이 바위에 훨씬 더 잘 보존되기 때문에 초기 지질학자들에게 이것은 생명이 갑자기 등장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는 5억 4천만년 이전에도 많은 생명체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증거를 발견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저자는 지구에서 불이 언제 처음으로 나타났을까 하는 질문은 산소와 연료가 언제부터 있었냐는 질문으로 옮겨간다고 말한다.(266 페이지)

 

언급했듯 지구에 가장 많은 원소 네 가지는 마그네슘, 규소, 철, 산소다. 하지만 지구에서 거의 모든 산소는 지구의 지각과 맨틀에 광물로 묶여 있다. 지구의 맨틀에 가장 많은 광물인 감람석에 네 원소가 고체로 묶여 있어 산소가 대기 속 기체로 존재할 수 없다.

 

청동의 요소인 구리는 열수공의 현무암 지대에서 얻고 주석은 대륙의 산맥에서 발견되는 화강암에서 얻는다. 전편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과학혁명이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과 물리학 혁명을 한 1543년보다 100년 앞선 15세기 포르투갈의 항해가 가져온 지질학 혁명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견해다.

 

당시 포르투갈 탐험가들은 과학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중세 시대의 사람들이었지만 오늘날 과학자들이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들이 살던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밖으로 나가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의 지질학자들이 하듯 지구에 의문을 가졌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현대 지질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바람, 해류, 자기 나침반의 편차, 해안선 구성을 체계적이고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그들의 지도는 점점 더 정확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 현대 지질학자들이 자신들의 분야에 속하는 것으로 여길만한 발견들이 이루어졌다. 이 발견에는 대기와 해류의 대순환, 자기장이 약화되는 경향, 지구의 7가지 기후 벨트(두 개의 극지 벨트, 두 개의 온대 벨트, 두 개의 저위도 사막지대, 그리고 초목이 풍성한 적도 벨트), 나중에 대륙 이동과 판구조론으로 이어지는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해안선의 일치가 포함된다.

 

만일 이것이 최초의 과학 혁명이었다면 그것은 지식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즉 선원들과 작은 배의 선장들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과학 혁명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우주와 지구 영역에서의 우연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령 암석과 같은 고체가 부서지는 것도 자세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미세한 균열과 흠집 또는 원자 단위의 위치 차이에 민감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결정적 사건이 하찮은 비본질적 사건에 의해 일어난 예는 많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가 하나의 문제틀로 엮이는 빅히스토리의 문제작인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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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관점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과학에도 유일한 관점 같은 것은 없다. 과학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관점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다.”(프리먼 다이슨 지음 ‘과학의 반역’ 중)

 

“수학이나 과학 분야의 질문에는 단 한 가지 정답만이 존재할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책에서 보이고 싶었다.”(‘생명을 묻다’ 저자 정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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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
닐 올리버 지음, 이진옥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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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의 책이다. 제목만으로는 문학책 같다. 저자는 닐 올리버. 이야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이야기는 세계라는 직물 안에서 구성원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실과 같다.” 오래된 이야기들은 시간의 파도가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릴 때 운 좋게 남은 화석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야기란 한때 온전히 전체를 이루었던 것들의 파편이다.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는 무엇이든 짜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책은 1 챕터인 가족부터 마지막 12 챕터인 죽음까지 이어진다. 메리 리키가 발견한 라에톨리 발자국은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 인근 라에톨리의 화산재 위에 찍힌 사람 발자국이다. 이는 그들이 날카로운 날을 만들거나 주먹도끼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기 훨씬 이전부터 두 발로 걸었음을 알게 한다. 360만년전 vs 260만전년이 답이다. 전자는 직립을 말해주는 연도이고 후자는 도구 제작을 말해주는 연도다.

 

올두바이 협곡은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루돌펜시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등의 화석이 발견된 고인류 화석의 보고(寶庫)다.(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최초로 고인류 화석을 발견한 사람은 한스 렉이다.; 91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형태인 크로마뇽인의 크로마뇽은 동굴 또는 바위 그늘을 뜻하는 크로와 그 땅의 주인을 의미하는 마뇽의 결합어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는 약 40만년전부터 2만 5000년전까지 살았던 고인류다. “사랑과 보살핌은 현생인류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보다 수십만년 앞서 지구상에 등장한 인류는 삶과 죽음의 자리에서 동료를 보살폈다.” 저자는 땅을 밀고 솟아나 깎이고 닳아 바다로 씻겨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것, 돌과의 연결, 돌에 대한 믿음이 자신에게 필요한 유일한 불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라지겠지만 바위들은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인류학자 헨리 번은 약 200만년전의 고인류들이 저녁거리를 신중하게 고르는 미식가들이었다고 말했다. 헨리 번 이전까지 초기 인류는 사자와 하이에나가 포식을 끝내고 고기와 골수를 발라 먹는 쓰레기 처리꾼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번은 그들이 저녁거리를 신중하게 고르는 미식가들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를 찾았다.

 

올두바이의 한 도살 유적에서 번은 180만년전의 인간 사냥꾼들이 남긴 영양, 가젤, 누의 뼈를 발견했다. 턱뼈에 남은 치아를 관찰하여 동물들의 나이를 추정한 결과 닥치는 대로 사냥했던 사자나 표범과 달리, 호미닌 사냥꾼들은 오직 다 자란 동물들만 골라 사냥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른 영장류들은 긴 소화기관에 적합한 채식 위주의 식단에 만족했지만 인류는 영양이 풍부한 고단백 육류를 안정적으로 섭취했다. 그 결과 인간의 두뇌는 점점 더 커졌다. 1931년 영국의 고인류학자 도널드 매킨스는 올두바이에서 고인류 뼈와 석기, 동물 뼈, 둥그렇게 놓인 돌 무더기를 발견했다.

 

메리 리키는 누군가 은거지를 만들기 위해 그 화산암 무더기를 의도적으로 배치해놓은 것이라 설명했다. 190만년전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집이다. 저자는 당시 인류는 식량을 집으로 가져와 기다리는 이들과 나눠먹을 줄 아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고 남성이 먹을 거리를 구해와 가족을 부양하는 성별 분업설을 러브조이(오웬 러브조이가 주장) 가설이라 한다. 물론 그의 주장은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책에는 스카바 브레 이야기도 나온다. 스코틀랜드의 폼페이라 불리는 그곳은 5000년 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다가 1850년에 몰아친 또 다른 사나운 폭풍으로 마법처럼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 유적이다. 이 부분에서 탄자니아 라에톨리 발자국을 생각하게 된다. 응고롱고로 화산 폭발 때 생성된 화산재에 비가 내린 덕에 바닥은 진흙처럼 질척였다. 그래서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연이은 화산 폭발 때 생성된 화산재가 그들의 발자국을 덮었고 그 발자국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계곡을 흐르는 물에 의해 차츰 모습을 드러냈다. 조지아 공화국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두개골 유적은 아프리카 대륙 밖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호미인 화석이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다섯 개체분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었다.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가우텐겐시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루돌펜시스 등이 명명되었다.

 

그런데 드마니시에서 각양각색의 생김새를 지녔으며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다섯 개체 분이 발견되었다. 이는 생김새가 다르다고 무조건 다른 종이 아니며 이들 모두가 하나의 종 즉 호모 에렉투스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초기의 호모 에렉투스는 시간상으로 우리보다 우리의 친척이자 아프리카의 작은 유인원으로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더 가까웠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던 첫 번째 부류였다. 그들은 아직 인간 즉 호모라고 할 수 없었지만 유인원과는 달리 팔로 물건을 든 채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었다. 오랫동안 고고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를 원숭이 같은 인간, 야만적인 멍청이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근 일부 학자들이 호모 에렉투스가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냈다.

 

호모 에렉투스는 구대륙의 끝까지 뻗어나갔다. 남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수십만년 뒤에는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렀다. 그들 중 일부는 지부티의 해변에 서서 아덴만(아라비아 반도의 예멘과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사이의 만) 너머를 응시하다가 해협을 건너 아라비아 반도에 당도했을 것이다. 빙하기였던 플라이스토세 동안 간혹 해수면이 낮아지면 걸어서 해협을 건너기도 했을 것이다.

 

이들은 아라비아부터 구대륙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를 떠나는 이민자와 난민들은 200만년전 호모 에렉투스가 개척한 그 경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120, 121 페이지)

 

인간의 외모는 왜 이렇게 다양한 것일까? 유전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인류가 같은 유전자를 나눠 가졌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규모가 크고 건강한 집단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는 바다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유전학자들에 따르면 화산 폭발 같은 재난이 일어나 어떤 종의 개체 수가 급감하면 인구의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인류 개체 수가 급감하여 가임 인구가 몇 남지 않은 상황은 돌연변이에게 자기 유전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130 페이지) 현대 아프리카인의 살과 뼈에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유래한 DNA가 없지만 유럽인에게는 많게는 4%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마주쳤을 때 울려퍼진 메아리는 강철에 부싯돌이 닿을 때처럼 불꽃 같았을 것이다. 그 혼합물에서 한없는 창조성이 마법처럼 피어났다.

 

마지막으로 빙하가 물러난 시기는 약 1만 2천년전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들은 그 광활한 대륙을 떠나 이동을 시작했고 중동을 거쳐 아시아, 유럽, 마지막으로 약 2만 5000년전 오늘날의 베링해협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다.

 

저자가 처음 고고학 발굴에 참여한 것은 18세이던 1985년이다. 장소는 스코틀랜드 에이셔주 댈멜링턴에 있는 둔 호수가였다. 석기시대 사냥꾼들이 쓰던 플린트의 부스러기와 처트(규산을 함유한 퇴적암)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다. 고고학자들은 석기시대인들이 돌로 도구를 만들 때 생기는 그런 부스러기들을 데비타지(debitage)라 한다.

 

다른 고인류들처럼 호모 사피엔스도 탐험가였고 방랑자였다. 그들의 여정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중동으로 이어졌고 이전부터 사용되던 동쪽 길을 따라 아시아와 호주, 베링해협을 통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4만년전에 유럽대륙에 입성했다. 그러나 그들이 유럽에서 멀지 않은 이스라엘 땅에 닿은 것은 무려 17만 7000년전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가르멜산에 있는 미슬리아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좁은 얼굴, 좁은 이마, 전체적으로 덜 건강한 인상, 뚜렷한 턱)을 가진 젊은 성인의 왼쪽 위턱뼈 일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175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 대륙을 코앞에 두고도 건너가지 못한 것은 이미 그곳에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쇠닝겐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들의 창은 그들이 생각보다 더 현대적이며 지혜로웠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의 네안데르 계곡에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발견한 것은 1856년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긴 사실을 장막에 거주하는 조용한 사람인 야곱이 꾀와 속임수를 써서 능숙한 사냥꾼인 에서를 이긴 성경 이야기에 비유한다.(176 페이지)

 

인류 발달 역사에서 엄지손가락의 진화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엄지손가락에 다른 손가락과 맞닿는 움직임이 가능해지면서 도구를 집는 힘이 늘고 손재주도 향상되었기 때문이다.(264 페이지) 갓난아기는 270개의 뼈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몇몇 뼈들은 성장과정에서 하나로 붙게 되고 어른은 총 206개의 뼈를 갖게 된다.(357 페이지)

 

우리 종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종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손이었다. 인류는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온갖 기술을 탄생시켰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지고 잡고 움켜쥐었다.(268 페이지) 인도학자 프리츠 스탈 교수는 인간에게 말보다 의례가 먼저 등장했다고 믿는다.

 

의례를 이루는 패턴화된 행위,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몸짓은 새들의 짝짓기 춤이나 곤충의 분봉 행위를 본뜬 것일 수 있다.(296 페이지) 저자는 우리의 첫 조상들은 의식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에 그저 걸었고 창조했고 살고 죽었다고 말한다.(297 페이지) 이는 우리 조상들이 날카로운 날을 만들거나 주먹도끼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기 훨씬 전에 두 발로 걸은 사실을 연상하게 한다.

 

본문에 중석기 시대(Mesolithic)라는 말이 나온다. 마지막 사냥꾼이 살던 시대를 일컫는 고고학 용어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중간을 의미한다. “우리 종은 20만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왔다. 그 시간 동안 인류의 생리나 지능이 근본적으로 변했을 리는 없다. 우리는 그들과 같다. 다른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선택이다.”(325 페이지)

 

저자는 성소(聖所; sanctuary)의 동굴 벽화란 말을 한다. 프랑스 남서부의 트루아프레르 동굴의 성소라 불리는 방에 매머드, 곰, 말, 야생 염소, 들소, 순록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1만 5000년전의 그림이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전율하게 한다. 저자는 그 벽화를 만들어낸 힘이 상상력이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상상력이라는 얇은 막을 걷어내면 우리는 여전히 사냥꾼이다.

 

“우리 종의 동맥에는 보랏빛 세쿼이아보다 고귀한 생명선이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의 생명선, 그것은 바로 지혜다. 원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 지혜는 환기하고 회복하는 힘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 조상들이 익히고 알게 된 모든 것이며 현대적 자아를 지닌 우리의 깊은 뿌리에 있는 무엇이다. 수십억년 동안 이어진 삶의 유산, 원시로부터 온 생명력이 우리의 DNA 가닥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도 조용히 눈을 감으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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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과 상담 동양상담학 시리즈 17
나예원.박성희 지음 / 학지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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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이항복은 익살과 재치의 주인공으로만 너무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지혜와 결단력으로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극복하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더욱 그는 풍자와 해학의 주인공임은 물론 고위(高位)에 있었지만 귄위주의적이지 않았던 바람직한 사람이었다. 본문에 의하면 풍자는 부정한 인물이나 시대상을 비판하는 데서 비롯되는 행위이고 해학은 억압받고 고통받는 대상에 대해 애처로움과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데서 비롯되는 행위이다.

 

명종 말년인 1556년에 태어나 광해군 초기인 1618년에 사망했다. 선조 13년인 1580년 문과에 급제해 호조참의, 도승지 등을 역임했고 선조 25년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扈從)해 의주까지 가 명나라에 대해 지원병을 요청할 것을 주장했다.

 

1589년 정여립 반란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항복은 심문 내용을 받아적는 기록관 역할을 담당했다. 이항복은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다스린 공로로 정3품 벼슬에 올랐다. 당시 동인은 기축옥사가 반란이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선조는 모든 책임을 송강 정철에게 씌워 그를 축출했다. 정철은 너무도 가혹하게 정여립과 관련된 동인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문제적 인물이다.

 

정철은 강계로 귀양을 갔다. 이때 유일하게 귀양 가는 정철을 배웅해준 사람이 이항복이었다. 감동을 받은 정철은 유배지 강계에서 “내 생애는 설새령에 놓였지만 마음은 필운산에 가 있네“라는 시를 썼다. 이러자 동인은 이항복과 정철이 짜고 사건을 일으켰다고 공격했다. 이에 이항복은 필운 대신 백사라는 호를 썼다. 이항복은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해 함경북도 북청에 유배된 지 5개월만에 병사했다.

 

한 마디로 그는 기축옥사, 임진왜란, 계축옥사 등 조선 중기 격동의 사건을 정면으로 관통한 인물이었다.(32 페이지) ‘이항복과 상담’은 학지사의 동양상담학 시리즈의 한 권이다. 지은이는 교육상담학 전문가 나예원과 박성희다. 박성희는 ‘고전에서 상담 지식 추출하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박성희는 서양 사람들에게서 뽑아낸 상담 지식을 한국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의 문제를 직시했고, 나예원은 장난기 넘치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소년, 당쟁과 임진왜란이라는 격동기를 정면으로 맞서 살았던 인물이라는 이항복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지식에 이항복은 긍정적인 삶의 실천가이자 상담자라는 정의(定義)를 추가하려 한다고 말한다.

 

‘이항복과 상담’은 바로 이런 두 사람의 사상적 공명(共鳴)의 결과물이다. 이항복은 자기연민의 승화(昇華), 수용과 성찰, 자애, 개방성의 주인공이었다. 특히 그는 아들에게 과거 급제를 해라, 출세하여 집안의 명성을 드높여라 등의 주문을 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이항복은 선조가 명으로 피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성룡은 선조의 명 피난에 반대했다.

 

이항복의 주장대로 명으로의 피난이 결정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항복은 유성룡이 머무는 숙소를 직접 찾아가 사죄했고 유성룡은 자기에게도 잘못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지난 앙금을 풀고 다시 좋은 결말을 맞이했다. 두 사람이 만일 소유적인 관계였다면 상대를 자신의 뜻에 맞지 않게 행동한 괘씸한 인물로 낙인찍었겠지만 두 사람은 서로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했다.

 

이항복은 역적으로 몰릴 위험이 있다 해도 상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언행으로 보여주었다. 이덕형이 왕의 미움을 받아 쫓겨나자 자신의 의견은 이덕형과 다를 바 없다며 그를 두둔하고 벼슬을 거절했다. 1602년 우계 성혼과 송강 정철을 구하려다가 축출 위기를 맞았고 1612년 권필이 구속되었을 때 울음으로 그의 억울함을 간언했다.

 

저자는 이항복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상대를 구해야만 의미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교훈이라고 말한다.

 

‘이항복과 상담’은 이항복을 모신 포천 화산서원(花山書院) 해설을 의뢰받고 읽게 된 책이다. 필운대(弼雲臺)가 포함된 서촌 해설에서도 이항복에 대해 잘 다루지 않았던 미흡함을 반성하며 뒤늦게 이항복의 진수를 알게 해준 책이다.

 

관계를 맺는 것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뜻하고 특히 서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며 성장시키는 것이라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이항복 개인에 대해 배운 것도 의미 있지만 관계의 진수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항복을 다룬 책이 별로 없는 것이 아쉽다. 시리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미수 허목과 상담’이란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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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박물관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1만년전쯤 멸종했다는 매머드에 정(情)이 들었다. 몸집이 크기 때문인지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닌데 멸종되었다는 사실에 슬픈 감정이 든다. 일본인이 만든 오리가미(おりがみ; 종이접기) 매머드를 보고 나니 그러함이 조금 줄었다. 아니 매머드만이 아니다. 박물관이 있는 2층에 오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고인류들의 추정 모형도도 그런 듯 하다.

 

특히 네안데르탈인이 그렇다. 사피엔스보다 몸집이 크고 머리도 컸다는 그들이 멸종한 이유가 궁금하다. 돌이나 모래, 흙 같은 지질의 대상들을 공부할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 이입(移入)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생물인 그들에게도 정이 들었다. 맨틀 대류로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지구는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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