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이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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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빅히스토리 관점으로 쓴 역사서이다. 러시아사를 전공한 데이비드 크리스천(David Christian; 1946 - )이 제안한 빅히스토리에 대해 저자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등 네 영역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주 전공이 지구 역사이지만 대멸종 덕분에 생명 역사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화학(인간이 현실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의 배경에 물리학과 화학이 있다고 말한다.)을 넘어 지질학, 고생물학, 생물학, 고고학, 천문학, 우주론과 같은 역사과학을 살핀 후 인류사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놓인 현실의 모든 부분과 관련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전문화된 역사는 우리의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빅히스토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빅히스토리가 재미 있는 이유는 연구에 뚜렷한 방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86 페이지) 저자는 지구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인간 현실의 역사를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기술하기보다 지질학자의 관점에서 인류가 놓인 조건을 보려 한다고 말한다.(32 페이지) 이 말은 빅히스토리의 목적은 인류사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는 것이라는 저자의 다른 말(41 페이지)과 들어맞는다.

 

저자는 우리의 세상이 가능하게 한 자연의 세 가지의 마술을 논한다. 그것은 1) 별을 만든 것, 2) 별 내부에서 새로운 원소들을 융합한 것, 3) 그 중 일부의 별을 폭발시킨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자연은 연금술사들이 결코 가진 적이 없는 별의 중심부라는 실험실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핵반응에 의해 새 원소가 만들어진다.(59 페이지)

 

별 내부에서는 양성자를 두 개 가지는 헬륨부터 스물 여섯 개를 가지는 철까지 만들어진다. 여기에는 암석(지구)의 네 가지 주요 성분도 포함된다. 지구에는 산소, 마그네슘, 규소, 철이 월등히 많다.(76 페이지) 이 가운데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규소다.(79 페이지) 규소는 우리 행성을 구성하는 광물 대부분과 암석의 근간이다. 탄소가 생명의 기본이라면 규소는 암석의 기본이다.(78 페이지)

 

인간이 석기를 만들고 그로 인해 뇌가 발달하고 지성이 발전한 것은 지구가 규질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구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물질은 흑요석이라 불리는 화산유리와 규질암 또는 부싯돌이라 불리는 퇴적암이다.(용암이 급속도로 식어 결정이 만들어질 시간이 없을 때 만들어지는 흑요석은 이산화규소가 풍부하지만 너무 희귀하다.)

 

규소 원소는 산소와 쉽게 결합해 석영과 감람석 같은 규소 광물들을 만든다. 자연에서 산소와 결합하지 않은 천연 규소 금속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88 페이지) 화학공학자들은 컴퓨터 칩을 만들 때 사용되는 규소 금속을 위해 이산화규소에서 산소를 제거해 순수 규소 금속을 얻는 제조 과정을 개발했다.

 

지구 깊숙한 곳에 있는 암석들은 약 44%의 이산화규소를 포함하는 반면 해양 지각은 약 50%, 소멸 지역 위에 위치한 화산은 약 60%, 그리고 대륙 충돌에 의해 만들어지는 화강암은 약 75%의 이산화규소를 포함한다.

 

75%의 이산화규소는 석영이 결정화되기에 충분하며 실제로 화강암에서는 석영이 보통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제 인간은 석영 결정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 저 아래에서 단단한 화강암에 갇혀 있다. 지구는 어떻게 그것을 밖으로 빼내어 순수한 석영 모래로 전환 시킬까? 화강암 덩어리가 포함된 산의 깊은 뿌리조차 표면까지 서서히 올라와서 침식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그 결과 화강암은 고대에 만들어진 산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석이 됐다. 판의 이동으로 인환 과정과 거친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처음에는 행성에 존재하지 않던 석영이 지구에서 만들어졌다. 점토 광물은 입자가 매우 작아서 석영만 남겨 놓고 물이나 바람에 쉽게 휩쓸려가 버린다.

 

석영 입자들은 지극히 안정적이어서 모래 언덕이나 강의 수로, 그리고 해변에 쌓여 거의 영원히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은 이런 모래 퇴적을 사암이라 불리는 암석으로 굳힌다. 가장 순수한 사암은 거의 100%에 이르는 이산화규소 성분으로 이루어져 석영을 제외한 어떤 것도 포함하지 않는다. 이렇게 유리와 컴퓨터 칩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다량의 석영 모래 퇴적을 생성하기 위해서 지구는 수십 억년이 필요했다.

 

1960년 프린스턴 대학의 지질학자 해리 헤스는 대륙이 양옆으로 갈라져 멀어짐에 따라 그 사이에서 해양 바닥이 새로 자라서 넓어진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해양이 대륙보다 젊고 지질학적으로 단순한 이유를 설명했다.(117 페이지) 지질학을 공부하며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이원적 대립(binary opposition)의 관점을 취할 것이 많다는 점이다.

 

화성암 중 지구 속에서 식어 만들어지는 심성암과 지표 밖에서 식어 만들어지는 화산암이 있다는 사실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강과 산도 그런 관점으로 대할 수 있다. 가령 산맥이 솟아 오르는 것은 지구 내부 과정에 의한 것이지만 침식은 강이나 빙하처럼 태양에서 오는 열로 진행되는 외부 과정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도 그렇다.

 

이는 어렵지는 않지만 생각하기 쉽지 않은 앎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에는 이런 예가 몇 있다. 햇빛이 전혀 닿지 않는 깊은 바닷속 생물들은 광합성을 할 수 없어 뜨거운 물에 녹은 황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203 페이지)이 대표적이다. 광합성은 지구의 생태계를 심하게 교란했다. 초기 미생물들에게 광합성의 부산물인 산소가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소에 적응하는데 성공한 미생물의 후손이다. 산소 혁명은 인류에게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산소로 숨을 쉬기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의 산업 문명이 크게 의존하는 엄청난 양의 철광석을 만들어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약 5억 4천만년 전부터 생명체의 화석 기록이 풍부해졌다. 생명체의 단단한 부분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달팽이나 조개껍데기, 우리의 뼈와 이(tooth) 등이 그런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이런 화석의 등장을 캄브리아기의 시작으로 잡는다. 이는 자연의 무기경쟁으로 인한 것이다. 단단한 부분을 만들어낸 동물들이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해졌다. 화석 기록에 나타난 결과는 극적이다.

 

갑자기 퇴적암 층에 조개가 나타났다. 부드러운 조직보다 단단한 부분이 바위에 훨씬 더 잘 보존되기 때문에 초기 지질학자들에게 이것은 생명이 갑자기 등장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는 5억 4천만년 이전에도 많은 생명체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증거를 발견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저자는 지구에서 불이 언제 처음으로 나타났을까 하는 질문은 산소와 연료가 언제부터 있었냐는 질문으로 옮겨간다고 말한다.(266 페이지)

 

언급했듯 지구에 가장 많은 원소 네 가지는 마그네슘, 규소, 철, 산소다. 하지만 지구에서 거의 모든 산소는 지구의 지각과 맨틀에 광물로 묶여 있다. 지구의 맨틀에 가장 많은 광물인 감람석에 네 원소가 고체로 묶여 있어 산소가 대기 속 기체로 존재할 수 없다.

 

청동의 요소인 구리는 열수공의 현무암 지대에서 얻고 주석은 대륙의 산맥에서 발견되는 화강암에서 얻는다. 전편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과학혁명이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과 물리학 혁명을 한 1543년보다 100년 앞선 15세기 포르투갈의 항해가 가져온 지질학 혁명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견해다.

 

당시 포르투갈 탐험가들은 과학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중세 시대의 사람들이었지만 오늘날 과학자들이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들이 살던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밖으로 나가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의 지질학자들이 하듯 지구에 의문을 가졌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현대 지질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바람, 해류, 자기 나침반의 편차, 해안선 구성을 체계적이고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그들의 지도는 점점 더 정확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 현대 지질학자들이 자신들의 분야에 속하는 것으로 여길만한 발견들이 이루어졌다. 이 발견에는 대기와 해류의 대순환, 자기장이 약화되는 경향, 지구의 7가지 기후 벨트(두 개의 극지 벨트, 두 개의 온대 벨트, 두 개의 저위도 사막지대, 그리고 초목이 풍성한 적도 벨트), 나중에 대륙 이동과 판구조론으로 이어지는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해안선의 일치가 포함된다.

 

만일 이것이 최초의 과학 혁명이었다면 그것은 지식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즉 선원들과 작은 배의 선장들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과학 혁명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우주와 지구 영역에서의 우연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령 암석과 같은 고체가 부서지는 것도 자세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미세한 균열과 흠집 또는 원자 단위의 위치 차이에 민감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결정적 사건이 하찮은 비본질적 사건에 의해 일어난 예는 많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가 하나의 문제틀로 엮이는 빅히스토리의 문제작인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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