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 한국적 페미니즘, 한국적 포스트모던 영성
이은선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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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는 한국 유교의 종교성을 여성들의 삶, 리더십 등과 연결시킨 책이다. 1부 다른 유교, 2부 다른 기독교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영정조 시대의 여성 성리학자인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 1793)과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 1832)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제시한다.

 

강정일당은 지극한 종교인,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남편에게 삶에서 도를 추구하는 삶이 가장 귀중한 일임을 일일이 강조하고 부귀나 생계, 과거 시험 등이 결코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음을 누누이 상기시켰다.

 

저자는 이런 의식이야말로 오늘날 어떤 현대의 페미니스트 주체의식보다 더욱 견실한 주체의식이라 규정한다.(48 페이지) 저자는 유가적 도()의 특성이 성인지도(聖人之道)의 추구라고 보면서 그것이 단순히 어떤 정치경제적 의미나 윤리, 도덕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배움을 통해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깊은 내재적 초월성과 종교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또한 유교 종교성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공적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한국 유교 영성과 종교성이 오늘날 여성들에게 포괄성과 지속성의 영성을 준다고 본다.

 

저자는 가정의 안녕을 기초로 해서 정치와 문화와 경제를 통괄해서 보는 안목, 드러나는 일순간의 효과에 좌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결심, 자신의 가정이나 사적 울타리를 넘어서 세상의 만물에 마음과 관심을 두는 포괄적 배려심과 생명적 책임감 등의 덕목과 배려심이야말로 오늘 여성들에게도 긴히 필요하고 그것을 강정일당과 같은 유교 여성들의 삶에서 배울 수 있다고 여긴다고 말한다.(53 페이지)

 

1부의 두 번째 장인 한류와 유교 전통 그리고 한국 여성의 살림 영성은 우리가 어떻게 유교 전통에서 새롭게 배울 수 있고 어떻게 유교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지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물은 글이다.

 

저자는 유교의 내성외왕(內聖外王),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등의 가르침을 공과 사, 이념적 삶과 물질적 생활, 타자와 자아 등 오늘날 여성들도 포함해서 현대인들이 첨예하게 느끼는 삶에서의 근본적 간극들을 매우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방식으로 조화시키려 한 노력으로 본다.

 

내성외왕은 안으로는 성인(聖人)이며,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함께 갖춘 사람이라는 뜻으로, 학식과 덕행을 모두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하학이상달은 낮고 쉬운 것을 배워 깊고 어려운 것을 깨달음을 이르는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성적 차별과 무관한 유교의 태극론적 우주관이 리()의 현실적인 활동을 위해 다시 음과 양의 우주론적 기()의 원리를 받아들여 형이상학적으로 존재의 구별과 차별을 말하기 시작했다.(60 페이지)

 

현실의 인간 삶에서 여성과 남성의 구별이 차별이 되었고 종법(宗法) 질서는 지독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주의의 위계질서가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유교 성속 체계의 사각지대이다. 이일분수(理一分殊)의 세계관을 가졌지만 현실에서는 속()의 전 영역을 거룩의 영역으로 화()하게 하기 위해 출발점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 출발점을 모든 세속 가정의 적장자 가부장으로 본 것이라고 이해(61 페이지)하는 저자는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도 또 하나의 성화(聖化)의 과정으로 본다.(62 페이지)

 

()는 하나이지만 여럿으로 나뉘어져서 다르다고 직역할 수 있는 이일분수(理一分殊)란 모든 리는 태극이라는 하나로 귀결되며 모든 만물에는 각자의 태극이 존재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주희(朱熹) 철학의 핵심이다.

 

저자는 오늘날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한류의 바람과 그 밑바닥에 오랜 기간의 유교적 살림의 과정에서 다듬어진 한국 여성들의 살림의 영성과 리더십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63 페이지) 그런데 이 시점에서 의문이 든다. 유교 이전에 있었던 장구한 세월의 비유교적 가치관들은 오늘날의 한국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이다.

 

저자는 유교 전통 여성들보다 오히려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현대 여성들이 오히려 사적 영역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유교 여성들은 당시 하나의 공적 영역이기도 했던 가계의 유지와 계속을 위해 모자 관계를 극진히 일구었다. 반면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현대 여성들은 대부분 사적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사적 영역에 갇힌 것이라는 논리이다.(67 페이지)

 

저자는 사기종인(舍己從人)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사기종인이란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남이란 공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논리이다. 문제는 그런 대의를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에게 보상책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다.

 

저자는 한국 유교의 사기종인의 종교성과 영성을 영적 종교성, 세속적 종교성, 탈세속적 종교성 등으로 부른다. 저자는 생명을 낳고 살리고 보살피면서 공적 영역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의 역할을 극진한 의미의 주체성의 표현으로 본다.(69 페이지)

 

저자는 사기종인의 리더십이 어짊을 구해 성인(聖人)됨을 이르는 구인성성(求仁成聖)의 리더십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74 페이지) 저자는 원망은 곧음으로 갚고 덕은 덕으로 갚으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그것이 사기종인과 구인성성의 덕을 실행하는 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왜곡될 수 있으며 자기 부정과 굴종, 억압의 덫이 되는지 잘 알려준 것이라 말한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의 세계는 인간 문화 자체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가족과 같은 인간적 토대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관건은 누가 사기종인과 구인성성의 도를 행하는 사람이 되는가, 이다. 저자는 이는 단순히 정치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안목만으로는 되지 않으며 훨씬 더 궁극으로 밀고 가서 존재론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탐구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82 페이지)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성()과 속()을 분리하는 종교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성과 속이 급진적으로 하나됨을 지향하는 유교적 도의 가르침으로 한 번 진지하게 살펴보자고 말한다. 저자는 맹자가 말한 무군(無君)을 공적 영역의 훼손과 함몰에, 무부(無父)를 가족적 삶의 해체에 견준다.(87 페이지)

 

저자는 오늘날 서구 기독교 여성신학자들이 가부장적 전통을 여성해방적으로 재해석하여 다른 관계를 맺고 있듯 유교 진영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본다.(88 페이지)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유교의 포스트모던적 종교성이다. 저자는 서구적 포스트모던의 탐색과 유교의 궁극 이해가 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에 비해 여성 인권 면에서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 고려 시대가 당면했던 문제로 혼인이 성립하면 신랑이 신부의 집에서 일정 기간 거주하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을 든 저자는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논의에 의거해 너무 단기적인 과정과 정태적인 개별 대상에 대한 집중에서 벗어나 좀 더 긴 기간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판단하면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남귀여가혼의 문제점은 여자 집에서 혼수를 마련하고 사위를 거주시켜야 하는 제도였기에 실제 상황에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집안의 여성들은 버림받을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이고 도이힐러의 논의란 조선 사회에서 16세기 중반과 17세기 후반의 큰 인구 증가로 효율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서 토지가 더 이상 작게 나뉘어서는 안 되었기에 출가한 딸에게까지 상속을 해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너무 여자와 남자의 대결 구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91 페이지) 저자는 모든 역사적 추세를 부동적이고 진화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는 역사의 정태주의, 역사에서 오직 끊임 없는 변화만을 보고 그런 변화의 기저에 있는 질서와 역학 구조, 방향 등을 무시하는 역사 상대주의를 모두 배격하고 장기간에 걸친 역사적 경험을 실증적으로 살펴보면 거기에는 분명 뚜렷한 포괄적인 사회발전의 방향과 구조가 드러난다고 역설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92 페이지)

 

1930년대에 주로 활약했던 엘리아스는 1970년대 아날학파에 의해 재발견된 이후 빛을 보았다. 아날 학파는 사건들로 시끄러운 역사의 표면 아래에서 거의 무의식과도 같은 평형들을 밝혀냈다. 즉 시원으로부터의, 그리고 시원으로의 목적론적 과정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의 평형 뒤에 찾아오는 급격한 변환의 모델을 사용함으로써 변증법적 역사 철학의 패러다임을 파기시켰다.(이정우 지음 담론의 공간’ 146 페이지)

 

시원으로부터의, 그리고 시원으로의란 말을 들으니 베르그손이 거부한 기계론과 목적론이 생각난다. 엘리아스는 유럽인들의 삶의 변화를 문명화 과정으로 보았다. 이에 영감을 받은 저자는 조선조(朝鮮朝)가 성립한 이래 유교적 예()를 국가 삶의 전 영역으로 확산시키고자 한 조선의 예치(禮治) 노력이 조선 사회를 유교화해 갔고 그 과정 안에 여성들의 삶과 살림살이도 포괄되었다고 말한다.(92 페이지)

 

저자는 조선조 이전에는 여성들이 문화의 각 분야에서 그렇게 폭넓게 활동한 적이 없었다는 한국 여성사 연구를 소개한다.(수긍할 수 있지만 여성들의 활동이 기록보다 더 크고 많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란 의문을 전하고 싶다.)

 

저자는 문해력을 갖추고 외국어 성서를 번역하거나 여신도들을 계몽한 조선 여성들을 거론한다.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조선사 이전에 미미했던 여성들의 활동을 감안하면 조선은 특히 여성의 주체적 능력면에서 발전했다는 말이다.

 

저자는 유교화 과정을 단순히 간단한 윤리, 도덕적 차원에서의 예화(禮化: 매너화) 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화(聖化)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저자가 말하는 성화란 성과 속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 영역을 서로 깊이 연결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유교를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그 안에 풍부한 영적 추구와 실천적 수행의 차원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96 페이지) 물론 저자가 말했듯 공자 자신도 유교 가부장주의에 갇혀 있었다.

 

유럽에 가서 서양 지도교수로부터 명나라의 신유교 사상가 왕양명을 소개받고 단번에 빠져들었다는 저자(85 페이지)는 체()와 용(), (), (), 안과 밖의 하나 됨을 훨씬 강조하는 양명은 대학 팔조목의 모든 공부가 결국 하나를 이루는 것이며 결코 안팎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121 페이지) 팔조목이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이다.

 

저자는 5내가 믿는 이것, 한국 생물(生物) 여성정치와 교육의 근거에서 한나 아렌트가 19세기 부르주아 제국주의로부터 파생된 20세기 전체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원리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 탄생성의 원리라 말한다. 탄생성의 원리란 오직 태어남에 근거해서 귀한 존재이고 존엄한 존재임을 말한다.

 

2부 다른 기독교의 1한국 천지생물지심의 영성과 기독교 영성의 미래에서 저자는 오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실리주의와 공리주의, 경제제일주의는 경제라는 하나의 원리에 의해서 삶의 다른 모든 차원이 무시되고 억압되는 것으로 서구적 근대 문명의 물질주의와 깊이 관계되어 있고 그 문명의 토대가 되는 기독교 절대주의와 거기서 실체론적으로 굳어진 기독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179, 180 페이지)

 

저자는 여성신학자로서 우리 시대의 물음을 위해 유교와 대화하려는 이유는 유교의 보편성과 인간주의 때문이라 말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탈세속적이거나 선험적인 방식이 아닌 보편과 다원성, 이곳, 수행의 인간성 속에서 답을 찾는 유교의 비근한 특성이다. 저자는 서구 전통의 배경에 있는 기독교 영성의 초월 신관과 실체론적 세계관을 신유교의 내재 신관과 생명 유기체적, 역동적 사고와 밀접히 만나게 한다면 생명 경시와 공동체 파괴의 인류 문명적 난제를 푸는 데 좋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185 페이지)

 

책의 중요 부분은 24포스트 휴먼 시대에서의 인간의 조건5장 한국 교회와 여성, 그리고 인류의 미래이고 핵심적인 장은 4장이다. 이 장은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다룬 장이다. 저자는 유교 전통을 하나의 특별한 종교적 전통으로 보며 거기서 여성들이야말로 그 유교적 영성을 아주 잘 체현하면서 살아왔다고 본다.(281 페이지)

 

유교 영성의 핵심은 이 세상의 세간적 삶에서 도를 이루려는 것이다. 유교 전통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은 이 세상의 온갖 살림살이를 맡아오면서 그 유교적 삶을 살아온 경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아가 신이 되고 원리가 되고 법이 되는 서구 근대성이란 유()의 사고를 극단적으로 펼친 결과라고 생각한다.(283 페이지)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의 사고이다. 저자는 사기종인 극기복례, 구인성성 등을 유교적 무의 세 가지 방식으로 본다. 이 세 덕목은 서구 근대주의가 빠져들기 쉬운 자아 절대 의의 유()의 언어에 대한 대안으로서 유교적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의 무()의 언어이다.(298 페이지)

 

물론 전통 사회에서 이 세 언어는 한편으로 여성들에게는 혹독한 억압의 언어였고 오늘날에도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들도 도덕적 주체성을 세우는 일을 회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적 사기종인, 여성적 극기복례, 여성적 구인성성이란 말이다.

 

저자는 모든 포스트휴먼적 논의에서 나오는 관계성의 의미나 익명성의 의미 같은 것들이 유교 전통, 특히 거기에서의 여성들에 의해서 실행된 유교적 삶 속에서 이미 잘 녹아 있다고 본다.(303 페이지)

 

저자는 맺는 말에서 기독교 성경의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이 동시에 전하는 수로보니게(가나안) 여자의 믿음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귀신 들려 괴로워하는 딸을 고쳐달라는 여자의 이야기로 예수가 그녀가 이방인이라는 이유를 들어 아이들을 먼저 먹여야지 개들에게 빵을 던져줄 수 없다는 말로 거절하자 여자는 개들도 주인의 상 아래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는다는 이야기로 예수를 굴복시킨다는 내용을 갖는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뜻을 꺾고 승복한 예는 이것이 유일하다. 여인에게 승복했다는 점이 중요한데 그녀는 다름 아닌 어머니이다.(311 페이지) 저자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속된 것을 거룩으로 선포하는 하나님의 창조 사건, 말씀 사건, 언어 사건이 계속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것은 그리스도 영역의 확장이고, 한 청년 예수가 그리스도로 선언되는데 그치지 않고 이방여인과 온 피조물이 그리스도로 선언되는 것을 고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필요한 것은 변화이고 대화이고 질적 도약임을 알게 하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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