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
홍성담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소설(小說)과 대설(大說)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소설은 디테일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고 대설은 스케일 큰 사회적 차원의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대설에 어울리는 형식은 무엇일까? 풍자(諷刺)가 아닐지?

 

이 즈음에서 생각나는 시인이 김수영이다. 김수영은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했고 때로 자신을 까발렸다. 가령 이렇게.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 때문에 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원 때문에...”

 

이 시의 제목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이다. 그럼 풍자(諷刺)라는 단어가 직접 들어간 시가 김수영에게 있을까? 있다. 바로 누이야 장하고나란 시이다.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너는 이 말의 뜻을 아느냐...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네가 그렇고/ 내가 그렇고/ 네가 아니면 내가 그렇다..”

 

김수영을 언급하는 사설(辭說)이 길었다.(사설이란 판소리에서 소리와 소리 사이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유는 홍성담 화백의 난장의 장르인 대설(大說)의 첫 걸음을 떼어 놓은 김지하 시인이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란 산문으로 김수영 시인의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란 시를 창조적으로 배반(?)했기 때문이다.

 

홍성담 화백. 박근혜를 풍자한 세월오월을 그린 분이다. 세월(世越)이란 바로 세월호 사건(2014416)을 말한다.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대설 난장(亂場)’은 한 바탕 시원하고 짜릿하게 썰을 푼 홍성담 화백의 작품이다.

 

홍성담 화백은 난장을 출간한 같은 출판사의 월간지20145월부터 20161월까지 바리라는 작품을 연재했다. ‘난장은 역시 전기한 월간지에 실었던 그의 죽음 뒤엔 음악이 흘렀다를 수정, 보완한 작품이다.

 

특기할 것은 연재 시작과 함께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는 점이다. 정해진 이정표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엄청난 사건이 터진 이상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그 사건을 담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가능하다.

 

사건이 터지고 홍성담 화백은 바로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그의 화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단원고 학생도 희생자 가운데 있었다. 작품의 주인공은 28세의 여자 화가 오현주이다. 검은손에 의해서 쫓기면서도 그 검은손의 정체를 쫓는 인물이다.

 

3년의 수감 생활을 거쳐 석방된 그는 어느 날 매복꾼들에게 기습을 당한다. 그 위기에서 그는 매복꾼들에게 사지가 찢겨 죽는 대신 불암산의 큰 바위 절벽에서 투신을 하는 길을 택한다. 1829년에 죽은 처녀귀신인 천무생이라는 어린 귀신이 함께 몸을 날린다.

 

두 사람 아니 귀신은 중랑천 물속으로 떨어지는데 거기에는 투명한 흰 정체의 사람들이 이어가는 긴 행렬을 펼쳐졌다. 흰 정체의 사람들이란 진도 앞바다 맹골수로에서 수장당한 세월호 희생자들로 자신들이 왜 죽었는지를 알지 못해 그 이유를 따지기 위해 청와대로 가는 무리였다. ”그럼, 지금 이 행렬의 목적지가 어딘가?“.. ”청와대.“

 

난장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색채를 보임에도 직설적이다. 아니 그런 색채를 보이기에 직설적이라 해야 할까? 홍성담 화백은 어릴 때 눈병에 걸린 자신을 위해 정안수 한 그릇을 떠놓고 웅얼웅얼 비나리를 하신 할머니의 심정으로 작품을 썼다고 말한다.

 

작가의 이력에 눈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배신당하고 찢긴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런 분이었기에 걸판진 한 바탕 대설을 늘어놓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난장은 자신들을 쫓는 검은손의 정체를 역으로 찾아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기이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검은손의 윗 대가리란 것들이 가진 특성이다. 바로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압권이다. ”! 이제 끝났다? 시작도 끝도 없고, 삶도 죽음도 사라진, 중심도 주변도 없는 곳에서, 영원도 찰나도 없는 시간에,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지속도 단절도 없이 마냥 존재할 뿐이었다.”

 

여운이 많이 남는다.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듯 사회성과 실존성이 교차하는 느낌을 준다. 하기야 죽음을 애도하고 항의하고 난장처럼 풀어내는 것은 사회적인 동시에 실존적인 것이 아닌지? 한바탕 굿을 본 것 같은 마음이 가득하다. 작가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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