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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과학, 천문학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22
박창범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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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전설(地轉說)은 김석문(金錫文: 1658 - 1735)이 처음 주장했다. 그의 사상을 홍대용(洪大容: 1731 1783)이 수용했다. 나는 지난 번 해설에서 홍대용 이야기를 하며 점성술에 가까운 천문과 수리천문학에 가까운 역()으로 구성된 조선 천문학('조선 전문가의 일생' 49, 50 페이지)은 홍대용이 공부한 천문학과 다르다는 말을 했다.

 

정성희는 홍대용의 우주관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지전설이라기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무한 우주설이라 설명하며 그의 우주관을 과학사적 입장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평가하고 싶다고 말한다.('우리 조상은 하늘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99, 100 페이지) 이유인즉 홍대용이 말하려던 바가 우주론 자체가 아니라 탈중화적 세계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근거로 읽을 책이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의 '한국의 전통 과학 천문학'이다. 박 교수는 고대의 천문 활동을 현대 천문학과 무관하게 보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하다고 말한다.(13 페이지) 저자는 고인돌의 남동쪽 방향을 천문학적 고려의 결과로 보며(25 페이지) 거석문화를 자생 천문학의 출발로 결론 짓는다.(31 페이지)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은 도교적 사상과 상통한다.(39 페이지) 중국 한나라 시대에 성립된 도교는 점성술적 믿음을 담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면의 별자리 배치 순서는 하늘의 북극과 적도를 기준 방향으로 해 천체의 위도를 나타냈고 천체의 경도는 추분점을 기준으로 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재어나갔다. 이는 현대 천문학이 채택한 적도 좌표계와 완벽하게 같다.

 

고구려 덕화리 2호분의 북쪽 벽에는 북두칠성이 그려졌고 남쪽 벽에는 남두육성이 그려졌다. 천정에는 중국식 별자리인 28(宿)가 그러졌다.(41 페이지) 인정(人定)시에 치는 28번의 종은 이 수에서 나온 것인 듯 하다. 28수는 하늘에서 달이 지나는 길을 따라 만든 개념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특징은 정확한 별의 밝기 구별이다. 삼국사기에 태백범월, 태백입월, 태백주현이란 말이 나온다. 태백범월(太白犯月)은 태백성으로 불리던 금성이 달에 근접한 현상을 의미한다. 태백입월(太白入月)은 금성이 달에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태백주현(太白晝見)은 낮에 금성을 보았다는 의미이다.

 

첨성대는 몸통은 원으로, 머리는 정사각형으로 만들어 당시의 우주 구조론인 천원지방 사상을 반영했다. 천문 현상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 천체의 주기적 운동을 파악하게 된다. 천체 중 단연 두드러지게 주기성에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은 해와 달이다.

 

해는 매일 뜨고 지며 하루를 바꾸고 달은 찼다 이지러지며 한 달을 바꾼다. 하루와 한 달이라는 주기를 한 해 안에 큰 무리 없이 짜넣으려는 노력이 달력 제작이고 역법(曆法)의 본질이다.(69 페이지)

 

우리나라에서 천문 현상 기록의 가치가 가장 높았던 시기는 고려 시대이다. 삼국시대의 20배이고 조선시대에 비해 종류와 시대 분포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81 페이지) '고려사'에는 일식 예측을 어긋나게 한 일관(日官)이 사형 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에는 태양 흑점을 흑자(黑子), 오로라를 적기(赤氣)로 표현했다.

 

오로라는 태양 활동 때 방출되는 고에너지 입자가 지구 대기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대기 입자와 부딪혀 빛을 내는 현상이다. 고려 시대의 흑점과 오로라 관측 기술이 큰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이 기록들이 태양 활동의 11년 주기를 분명히 나타내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송, , 원나라의 기록은 주기성이 없다.(92 페이지)

 

고려의 천문 관측대나 고군벽화 별 그림 등은 고려의 활발한 천문 관측 활동을 증거하는 실존 유물이다.(99 페이지) 세종 시대는 우리 천문학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때이다.(107 페이지) 세종은 이슬람 과학으로 계승된 서방의 과학과 동아시아 전통 과학을 적극 선별, 흡수해 15세기 초엽 동아시아 동쪽 끝에서 용융시킴으로써 천문의기, 관측, 역법 분야를 아우르는 세계 최고의 천문학을 일으켰다.(108 페이지)

 

그러나 그 시기의 수많은 정교한 천문기기와 서적 등이 두 차례의 왜란으로 모두 망실되었다. 소실된 관천의상의 복원은 선조대에서 정조대에 이르는 200년의 세월에 걸쳐 일어났다. 하지만 17세기 들어 중국을 통해 서양 천문학이 전래됨으로써 힘겹게 복구한 전통 천문학은 효용을 잃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일성록, 증보문헌비고 등에 방대한 천문 현상 관측 기록이 있다. 전통 시대 기록 중 객성(客星)은 별은 아니고 혜성이라고도 할 수 없는 정체 불명의 천체라 할 수 있다.(114 페이지) 객성 가운데 케플러 초신성 관측 기록도 있다.

 

조선 개국과 더불어 만든 천문도가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희귀 과학 유물이다. 별들의 밝기가 서로 다르게 그려진 것이 큰 특징이다. 별들의 밝기가 서로 다르게 그려진 것은 고구려 고분 벽화 별 그림에서 이미 나타난 현상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7세기에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 최초의 천문도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 서양 천문학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인조 9(1631)이다. 혼천의는 혼의, 선기옥형(璿璣玉衡) 등으로 불렸다. 세종 시대에 만든 간의(簡儀)는 혼천의보다 간단한 천체 측정 기구이다.(134 페이지)

 

앙부일구를 제작하려면 관측지의 북극 고도 또는 위도를 알아야 한다.(136 페이지) 조선은 건국년인 태조 1(1392) 고려의 전통을 이어받아 서운관(書雲觀)을 대대적으로 재구성해 천문 관측을 전담하도록 했다.(142 페이지) 실록에 의하면 서운관은 재이(災異)와 길조를 관측하고 책력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1467년 서운관은 관상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의정이 최고 책임자를 맡았다. 조선은 유일신이 우주를 주재한다는 믿음이 강했던 서양과 달리 종교적 반발감 없이 새 우주 모형을 탐닉하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149 페이지) 김석문은 지전설을 정설로 서술한 1767년의 베노이스트의 '지구도설'보다 먼저 지전설을 주장했다.

 

김석문의 지전설은 이익, 홍대용 등에게 이어졌다. 홍대용은 나경적(羅景績, 1690~1762)에 의뢰해 사설 천문대를 짓고 혼천의, 혼상, 자명종 등을 설치했다.(153 페이지) 훈민정음의 기본 획은 천지인을 상징한다. 원래의 28자는 28수 별자리에 맞추기 위해서 만든 숫자로 보인다.(15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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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추사, 유배를 즐기다 - 조선 최고 지성, 다산과 추사의 알려지지 않은 귀양살이 이야기
석한남 지음 / 시루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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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추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유배를 갔었다는 것이고 그를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는 점이다. 석한남의 '다산과 추사, 유배를 즐기다'는 그 점을 파고든 책이다. 저술 동기는 두 선현에 대한 막연한 추앙과 도를 넘는 찬양 일색의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써도 다산과 추사의 천재성과 그들의 열정이 빚어낸 위대한 업적이 조금도 퇴색하지 않을 것이란 게 저자의 주장이다. 추사는 여섯 살에 월성위궁에 입춘첩을 써 붙였다. 이를 본 박제가가 학예로 세상에 이름을 드날릴 것을 예언했다. 후에 추사는 박제가로부터 학문을 익혔다.

 

추사는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가 월성위(김한신; 영조의 사위) 가문의 모든 것을 이어받았다.(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의 남편인 월성위 김한신이 추사의 증조 할아버지이다.) 다산은 어머니 해남 윤씨가 공재 윤두서의 손녀이다. 공재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다.

 

옛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글을 써 보낼 때 나이에 관계 없이 자신을 아우<; >라 칭했다. 심지어 동방입격(同榜入格)한 과거 시험 동기생이 자신의 자식보다 어린 경우에 제라 쓰기가 민망해 늙은 아우라는 뜻의 노제(老弟)라 쓴 사례도 있다.

 

동파 소식(東坡 蘇軾; 1037-1101)은 조선 지식인들 뿐 아니라 많은 유배인들이 존경하여 따르고자 한 롤모델이었다. 추사가 스승으로 모신 청나라의 지식인 옹방강은 소동파를 흠모해 평생 제사를 지냈다. 그 영향으로 추사는 유배된 자신의 처지를 은근히 소동파의 해남도 유배 생활과 동일시하며 이를 반영한 작품을 남겼다.

 

소동파는 유배 기간 내내 잠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73 페이지) 소동파의 유배를 닮고 싶었던 추사의 유배는 우리나라 최남단 섬으로 간 것이라는 점만 빼면 소동파의 유배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보다는 도연명(陶潛 陶淵明; 365-427)의 전원생활을 동경했던 다산의 유배가 오히려 소동파의 유배 생활과 흡사했다.

 

다산은 소동파의 전원생활을 꿈꾸었으나 소동파의 귀양살이로 내달았다.(94 페이지) 추사는 어처구니 없게 당쟁에 휘말려 유배를 가게 된다. 저자는 여섯 차례에 걸쳐 36대의 신장(訊杖; 매질)을 당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위리안치라는 중형을 받고 의금부 도사의 차가운 손에 이끌려 절해고도로 유배를 가던 추사가 전라감영에 들러 당시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을 만나 그의 글씨를 보고 시골에서 밥은 먹을 만한 글씨라 혹평했다거나 대둔사에서 초의를 만나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전의 현판 글씨 대웅보전을 떼게 한 뒤 스스로 다시 써서 걸게 했다는 이야기는 억측일 뿐이라 말한다.(98 페이지)

 

다산은 유배 시절 배움에는 귀천이 없고 남녀노소, 부자와 가난한 자, 힘이 있고 없는 사람 누구에게나 독서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 믿었다. 가르침이나 교류에 있어서 신분에 구애받지 않았고 그렇게 애써 가르쳤다. 공자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공자는 가르치는 데는 계급이 없다<유교무류; 有敎無類>고 했다.

 

다산은 '논어고금주'에서 하늘이 사람을 내릴 때는 귀천을 두지 않았고 멀고 가깝고의 구분도 없었다고 해석하며 가르침이 있으면 모두 같다(유교즉개동; 有敎則皆同)고 정의했다. 다산은 유배 8년째인 1808년 비로소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추사는 유배지에서조차 계급적 신분주의와 지적 우월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159 페이지)

 

추사는 인격적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저자는 추사가 다른 사람을 과도하게 깎아 내리고 필요 이상으로 비판했지만 그의 예술혼과 실험정신까지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추사는 그 이전의 서풍과는 전혀 다른 독보적인 예술세계와 작품을 만들어냈다.(163 페이지) 다산은 아들 친구 추사를 벗으로 호칭했다.(168 페이지)

 

추사체는 수백년 동안 어떤 고증과 해석도 없이 맹목적으로 왕희지의 서풍을 답습하려고 노력해온 조선 서예에 대한 비판 및 새로운 서체의 구현을 위한 추사의 실험 정신에서 출발하고 있으니 추사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표상이다.(186 페이지) 추사는 글씨를 잘 쓰는 이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 견해가 아니라 말했다.(190 페이지)

 

세한도는 추사가 제자 이상적에게 선사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이상적의 제자 김병선과 민영휘 집안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일본의 추사 연구가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의 소유가 되었다. 추사를 근대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되게 한 인물이 후지츠카 치카시이다. 세한도는 소전 손재형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팔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아무 대가도 없이 넘겨받았으나 정치계에 투신하며 자금에 쪼들린 나머지 그림을 저당잡혔다. 개성 갑부인 미술품 수장가 손세기가 새 주인이 되었는데 그는 이를 국민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후지츠카 치카시의 아들인 후지츠카 아키나오(藤塚明直)는 선친이 평생 모은 2,750점의 추사의 필적과 자료를 자비를 들여 손질한 후 과천 추사박물관에 기증했다.(198, 199 페이지)

 

저자는 추사가 가마를 타고 오른 고갯마루에서 웅장하고 수려한 산세에 취해 감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를 읆은 것과 다산이 사람들이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른다는 시를 쓴 것을 품성에 기인하기보다 출신 배경과 성장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말한다.(210 페이지)

 

다산의 유배지 강진은 수백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보길도 섬을 통째 소유할 정도로 대단한 부자였던 외가 해남 윤씨의 세거지(世居地)에서 가까웠다. 그래서 해남 윤씨 집안에서는 다산의 학문과 사상을 집대성하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해남 윤씨 소장의 다양한 서책을 손쉽게 열람하게 하고 경제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다.(205, 20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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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책읽기에서 글쓰기까지 나를 발견하는 시간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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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글쓰기 지침서를 읽는다. 이번에는 장석주의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란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읽은 100권이 넘는 글쓰기 지침서들을 요령 있게 정리해 독자들에게 무엇이 글쓰기에 이로운 일인지 가르쳐주기 위해 쓴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문장 노동자로 부르는 독서광이다. 책은 밀실, 입구, 미로, 출구, 광장 등 다섯 챕터로 구성되었다. 특별히 의미가 있는 편성은 아니다. 밀실은 글쓰기를 위한 책읽기, 입구는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미로는 글쓰기에서 마주치는 문제들, 출구는 작가의 길, 광장은 글쓰기 스타일과 짝하고 있다.

 

이 책을 수많은 곳에 밑줄을 치며 읽었다. 메모를 하는 대신 밑줄을 치거나 표시를 해두는 방법을 권하는 다치바나 다카시(269 페이지)의 말을 실행한 것이다. 이번에 처음 그런 것이 아니라 밑줄 긋기는 내 일상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카시는 책 한 귄을 쓸 때마다 5백여 권의 관련 책들을 읽는다는 사실이다.

 

다카시는 입문서 한 권을 정독하기보다 다섯 권을 가볍게 읽어 치우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269 페이지)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말은 특정한 한 권을 열 번 읽는 것보다 열 종류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이 유입 정보량이 훨씬 많다는 말(자현 스님 지음 '스님의 공부법' 220 페이지)이다. 자현 스님은 붓다의 생애와 관련해서 약 100여종의 책을 읽고 '붓다 순례'를 찬술했다.('스님의 공부법' 221 페이지)

 

밀실편에서는 저자에게 영감을 준 저자들이 많이 언급된다. 그 중 한 사람이 바슐라르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가란 하루도 쉬지 않고 인내와 열광의 불가사의한 피륙을 빈틈없이 직조해내는 사람이다.

 

입구편에서 저자는 작가를 문학책을 포함 모든 형태의 책을 쓰는 사람으로 정의하며 그들에게는 가난과 고독을 감수할 각오가 필요함을 언급한다. 당연히 작가는 체력도 강해야 한다. 마음의 근육도 필요하다. 꾸준히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습관도 필요하다.

 

위로가 되는 말은 유명 작가, 대작가들에게도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자만하지도 말고 좌절하지도 말고 써야 한다. 작가에게는 다르게 보고 낯설게 보는 독창성 훈련이 필요하다. 작가는 관습적인 상상력과 사유에서 벗어나 진정한 독창성을 얻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77 페이지)

 

쓰기 위한 필요조건이 고독과 칩거이다. 절제와 극기는 무언가를 꾸준히 작업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다. 문장을 어렵게 써서는 안 된다. 꼬아서도 안 된다. 어렴풋하게 써서도 안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사실들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95 페이지)

 

글은 내면의 동기가 강력할수록 더 잘 써진다. 오래 훈련해서 이치에 들어맞는 문장을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힘찬 문장, 날렵한 문장, 우아한 문장, 장중한 문장, 세련된 문장들까지 구사할 수 있다.(138 페이지) 헤밍웨이가 소설을 쓰는 방식이 참고가 된다. 그는 미리 전체 얼개를 짜놓기보다 날마다 문장을 써나가면서 사건을 만들고 조금씩 얼개를 구축하는 스타일이다.(207 페이지)

 

마지막 챕터 광장; 글쓰기 스타일에서는 주요 작가들의 문체는 물론 작품의 의미까지 설명한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의 책인 만큼 화려하고 정교하고 낭만적이다. 책쓰기보다 글쓰기에 비중이 두어진 책이다.

 

글이 안 써질 때 들여다보기에 적절한 책이다. 책 뒤편에 실린 참고서적들을 찾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할 부분은 문장을 어렵게 써서는 안 된다. 꼬아서도 안 된다. 어렴풋하게 써서도 안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사실들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100권의 관련 책 읽기, 입문서 한 권을 정독하기보다 다섯 권을 가볍게 읽어 치우는 편이 낫다는 말 또는 특정한 한 권을 열 번 읽는 것보다 열 종류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이 유입 정보량이 훨씬 많다는 말 명심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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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철학하다 -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이진경 지음 / 휴(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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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의미를 어떤 전공자보다 래디컬하고 설득력 있게, 그러면서 자유롭게 풀어쓴 책이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이다. 제목에 철학이란 말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이진경은 '외부, 사유의 정치학', '필로 시네마; 탈주의 철학에 대한 10편의 영화' 등 철학 저서들을 쓴 저자이다.

 

문화의 '우리 시대 인문학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처럼 우리사회에서 인문학이 소비되는 방식에 근본적 문제제기를 한 '불온한 인문학'(20116월 출간)에 수록된 '횡단의 정치, 혹은 불온한 정치학'에서 저자는 하이데거의 개념들과 유식불교나 화엄학의 개념들간에 유사한 개념들을 찾아 대응시키는 것 등을 횡단으로 간주되는 유비적 대응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의 관심이 불교 철학으로 드러났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충격을 의도하고 쓰지 않았겠지만 이진경의 책은 래디컬한 만큼 충격적이다. 개인적으로 김영명의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를 가장 핵심적 불교 비판서이자 애정의 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대목은 다음의 구절이다. "기존 불교계는 자동차는 엔진, 브레이크, 바퀴 등 즉 자동차 전체보다 작은 단위의 실체들이 일시적으로 만나 이루어진 것이기에 자동차라는 실체는 없다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자동차의 실체를 부정하기 위해 그 부품들의 실체는 인정한다."는 것이다.(163 페이지)

 

각설하고 이진경의 책은 불교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의도한 빛나는 책이다. 연기(緣起), 무상(無常), 인과(因果), 무아(無我), 보시(普施), 중생(衆生), 분별(分別), 중도(中道), (), 윤회(輪回), 자비(慈悲), 마음, (), 십이연기(十二緣起) 등 열 네 개념에 대해 저자가 펼치는 사유는 놀랍다.

 

모호한 부분에 대해서도 명쾌하고 논란이 분분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연한 것이 저자의 미덕이라 할 만하다. 과장하면 카뮈가 그르니에에 대해 한 문득 적절한 말, 정확한 지적을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 되고 무질서가 멈춰 버린다.”란 말을 해도 좋을 듯 하다.

 

저자는 철학에 익숙하기에 동서 사유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금강경 등의 불교 경전, 벽암록 같은 선불교 공안집, 유식(唯識) 불교 등은 물론 보르헤스, 마르크스, 생물학, 나비효과,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카게무샤(かげむしゃ)', 매트릭스(영화), 데카르트, 스피노자, 블랑쇼, 포틀래치 개념, 조르주 바타유, 프로이트, 양자역학, 현대음악, 진은영의 시, 니체 등을 여유롭게 횡단한다.

 

전체가 버릴 것이 없지만 특별히 몇 부분을 보자. 저자는 공()을 어떤 규정성도 없음으로 정의한다. 어떤 규정성이나 본성이 없기에 연기적 조건에 따라 그 조건이 규정하는 규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공은 단지 없음을 뜻하는 무()가 아니라 차라리 가능한 규정성들이 너무 많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가령 달걀은 식재료도 될 수 있고 남을 괴롭힐 무엇인가(투척용)가 될 수 있고 실험재료도 될 수 있고... 무질서가 아닌 무한질서로서의 카오스가 생각난다. 인연을 의지해 생기는 연기는 어떤 조건에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는 없음을 가르친다. 하나의 동일한 사물이나 사실조차 조건이 달라지면 본성이 달라진다.(18 페이지)

 

저자는 가변적 세계의 저편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무상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으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니체는 가변적 세계의 저편을 추구하는 행위를 니힐리즘으로 규정했다. 공성(空性)을 본다는 것은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음을 보는 것이고 최대치로 열린 잠재성 속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179 페이지)

 

저자는 어떤 누구도 될 수 있는 '아무도 아닌 자', 그것만이 윤회하는 것이라며 절대적 가변성을 갖는 이 능력을 무아라 한다면 윤회란 그때마다의 연기적 조건에 따라 수많은 존재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이 펼쳐지는 장이 될 것이라 결론짓는다.(21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여러 생의 윤회든 한 생 안에서의 윤회든 그것은 나나 진아(眞我), 아트만보다는 무아나 생명이라고 불리는 게 더 적절한 어떤 힘의 영원한 흐름이다. 윤회를 긍정하는 것은 이 힘의 되돌아옴, 이 흐름의 가변성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다.(218 페이지)

 

압권(壓卷)은 마음 즉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대한 해명이다. 저자는 마음을 논하며 스피노자의 자유의지 부정을 논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쓸 때도 그것은 그가 겪은 어떤 사건, 혹은 사람이 무언가 쓰도록 촉발했기 때문이고 그런 자극을 표현할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247 페이지)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행위조차 신체의 어떤 상태가 요구한 것을 따른 것이다. 신장이나 방광이 앞장서는 그런 촉발이 없다면 소변기 앞에 서려는 마음이 생겼을 리 없다. 소변을 보는 것도 내가 마음 먹기 이전에 신체가 마음먹은 것이고 그 신체에 흡수된 수분이 마음 먹은 것이다.

 

내가 내 뜻대로 행위한다고 즉 자유의지에 따라 행위한다고 믿는 것은 그 행위를 하게 만든 원인을 하게 만든 원인을 모르고 있음을 뜻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라 할 때 그 마음은 저렇게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하는, 내게 다가온 것들에 속한 마음들이다.(247 페이지)

 

그렇기에 일체유심조는 연기법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연기법의 다른 표현이고 내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식의 관념론과 반대되는 방향의 사고이다.(248 페이지) 저자는 이 부분에서 스피노자의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을 활용한다.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뜻하는 '마음이 모든 것을 산출하는 역할'을 능산적 마음, 나의 마음이나 개미의 마음 등 각각의 마음은 그것에 의해 산출된 능력이란 점에서 소산적 마음이라 설명한다.(251 페이지)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들었지만 전편이 이런 논리와 흐름으로 진행된다.

 

화려하면서 꼼꼼하고 치밀하면서 자유로운 책이 불교를 철학하다이다. 자주 들여다 보아야 할 책이다. 놀라운 책이기 때문이고 더 배우고 적응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비판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다른 생각이기에 비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유식무경(唯識無境)은 다르게 볼 여지가 충분하다 하겠다.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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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논문법 - '논문의 신' 자현 스님이 대놓고 알려주는 논문 쓰기의 기술
자현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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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논문법'4개의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동양철학, 미술사학, 철학, 역사교육)를 가진 자현 스님의 저서이다. 스님은 우리나라 인문학자 중 가장 많은 논문을 학진 등재지에 발표해 논문의 신으로 불린다.

 

저자는 대학 수업에서 학생 과제물을 평가할 때 잘 베껴오는 사람을 최고로 친다. 과제물 주제에 가장 잘 맞는 전문 지식을 찾아 요구한 분량에 맞게 재가공해 오는 학생을 최고로 친다는 의미이다.

 

석사 과정은 재가공을 넘어서는 재구성을 필요로 한다. 박사과정은 전체를 일관하는 자신의 생각과 선행연구를 넘어서는 +a가 있어야 한다. 저자는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보되 논문 분량은 최소화할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도 한다.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은 오래 잡고 있어도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논문은 관점과 감각의 산물이다. 다른 사람과 변별되는 깔끔한 한칼이 있으면 좋지만 이것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무딘 쇠가 갈려서 날카로운 칼이 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지속적인 노력 속에서 점차 타인이 범접하지 못하는 한칼을 갖춘 전공자로 거듭 나는 것이다. 붓다는 법사의(法四依)에서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즉 진리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폈다.

 

이 사람 안에는 지도교수도 포함된다. 지도제자의 목적은 스승을 넘어서는 독립인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두 개의 챕터 중 두번째인 '누구나 논문의 신이 될 수 있다'에서 저자는 논문은 합리적 거짓, 논문은 지성의 산물일 뿐 완벽한 진실은 아니라는 말을 한다.

 

대부분의 인문학적인 진실은 과거 속에 존재하기에 완전 복원은 불가능하지만 최선의 복구 작업을 통해 최상의 결과물을 도출할 수는 있다. 논문이란 이미 알려진 것을 가지고 모르는 부분으로 진일보해나가는 노력이다. 저자는 자신이 생각해본 문제는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 본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렇기에 선행 연구를 보면 자신의 주장이 들어설 공간이 없는 관계로 좌절할 수 있지만 이는 너무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이다.(129 페이지) 저자는 완전한 논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 말한다. 논문은 다른 사람이 놓치고 지나가는 현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재해석하는 작업이다.(138 페이지)

 

논문쓰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전혀 논문거리가 없다고 판단하는 학문의 사막 같은 곳에서 논문 주제를 뽑고 구상을 완성한다. 논문이란 자료를 바탕으로 지금까지는 없던 변별적인 논리 구조를 세우는 작업이기에 주제의식을 가지고 면면히 이어가는 글쓰기를 전개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논문의 글쓰기 방식은 다양하다. 단서들을 나열해 확실성을 높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자료들을 제시하고 최종적으로 이것들을 하나로 연결해 결론을 도출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읽는 사람에게는 잘 잡히지 않는 작은 비약들을 더해 연구자가 쓰는 방향으로 독자가 고개를 끄덕이게 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는 논문의 주제와 참고자료의 한계 및 명확성을 감안해 상대를 설득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139 페이지) 여러 논문들을 보면서 고개만 끄덕이고 나만의 2%를 찾지 못하면 그냥 공부를 하는 것이지 논문을 쓰려는 전투적 자세는 아니다.(143 페이지) 저자는 머릿속으로 전체 구상이 완전히 끝난 뒤에 본 작업에 뛰어든다고 말한다.

 

논문 구성은 순간적인 영감이 중요하다. 노력보다 감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논문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래 잡고 있어봐야 좋은 논문 안 된다, 마음에 들지 않아 오래 고쳤는데 끝나고 나니 처음 생각이었다는 말이 있다. 논문은 전체가 쓰는 사람의 주관이기에 자신의 생각을 너무 강하게 드러낼 필요는 없다. 내용 중심의 논문은 어려운 논문이 되기 십상이다. 기술적인 부분이 강조되는 논문은 쉽게 쓸 수 있다.

 

논문은 내용이 중요하지만 형식과 구조에서 문제가 생기면 내용은 보기도 전에 신뢰도를 잃는 문제가 발생한다. 분석적 논문은 작은 부분을 정밀하게 해체하는 논문이다. 종합적인 논문은 그 이전의 여러 선행 연구들을 바탕으로 합종연횡으로 정리해 갈래짓는 논문이다. 많은 연구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도 의미 있는 논문이 된다.

 

박사 논문을 쓸 당시에 최선을 다했다 해도 새 자료가 발견되면 논문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니 아무리 파헤쳐도 더는 나오지 않을 주제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박사가 되면 공부가 끝난 것이 아니라 비로소 전문가로서의 운전이 가능한 상황이라 말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중간에 쉬었다가 쓰면 읽는 사람도 그 지점에서 쉰다는 말이 있다. 내가 재미 있게 작업한 것과 고통스럽게 작업한 것을 상대도 느낀다는 의미이다. 논문은 쓰기 싫은 글이 아니라 쓰고 싶은 글이 되어야 한다.(208 페이지)

 

평소 타인의 글을 읽을 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라. 현대는 종류는 늘어나고 수명은 짧아지는 논문의 홍수시대다. 그렇기에 더도 덜도 말고 시대적 요구에만 맞추면 된다.(237 페이지) 비교논문 속에 답이 있다.

 

이미 다 된 것들을 충돌시키는 것이다. 선행연구의 정리는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저자는 귀신과 자신만 아는 논문을 쓰라고 조언한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것을 가지고 논문을 쓰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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