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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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한 작품을 읽고 난 후에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어떠한 이미지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가령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던가, 가슴 가득 들어찬 슬픔의 묘한 전율, 혹은 「인간 실격」처럼 음침한 하늘의 탁한 잿빛 공기처럼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작품에 대한 완결의 이미지보다 강한 것은, 가슴 속을 수놓는 뜨끔한 한방의 일침일 것이다.

  그랬다.「인간 실격」을 읽으며 나는 내내 누군가 내 등을 쿡쿡 찔러대는 듯한 기묘한 감상에 사로잡혔다. ‘이건 나잖아. 이건 당신이야. 그래, 이건 어쩌면 우리 모두야.’ 허망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삶에 무심한 시선을 던지며 동참한다.

  여기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낸 한 사내가 있다. 그 사내는 인간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내다. 살아가면서 자연적으로 터득하게 되는 거짓 섞인 가식과 양심의 양면에서 괴로워한다.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마땅히 해야 할 자식의 도리조차 지키지 못하며,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위를 베풀 줄 모르며, 그저 속은 텅텅 빈 채 허물어진 빈껍데기 같은 삶을 살아갈 줄밖에 모른다. 

  술과 마약에 의지하고, 소위 여자 등 처먹는 삶을 살다가, 몇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생을 마감하고 말, 그야말로 인간 중에서도 가장 하류인, 인간 실격자. 삶을 개선하고자 할 한 줌의 희망조차 말살된 채, 엉망으로 부끄럼 많은 생을 살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내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매우 안정적이고 편안했으나, 그러한 안락에서 오는 불안함이 항상 내제되어 있었다. 인간과 인간을 구분 짓는 허례허식 속에서 괴로워하며, 타고난 천성 자체가 순수했다는 어쩔 수 없이 진부한 성선설에 기대고 마는 나약한 인간상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듯 보였다. 한 마디로 실격된 삶을 스스로 자초했고, 그렇게 귀결되고 말았다고 판단된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옮긴이 ‘김춘미’씨가 쓴 짧은 분량의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고서 비로소 그를 미약하게나마 이해했다. 이 글을 탄생시킨 작가의 이력을 보니, 이런 글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김춘미’씨의 일문학 번역을 가장 좋아하고, 가장 신뢰한다. 김춘미씨는 역자로써의 훌륭한 재능뿐만 아니라,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 또한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인간 실격」은 작가의 자서전이자, 유서이자, 가장 마지막에 탄생시킨 39년 삶을 집약한 고백이다. 끊임없이 타인과의 불안정한 유대를 생각하고, 스스로의 혐오로 인한 개인의 몰락과 파괴과정이 섬뜩하리만치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인간 실격」은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넓은 세상에 대한 공포감에서 비롯된 상처가 곪아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밥을 먹어 위를 든든하게 만드는 동물적인 기본 본능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러한 공복에 대한 불쾌감에 사로잡혀 전혀 세상과 소통할 줄 모르는 나약한 인간….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위선을 택할 때 나타나는 극도의 자괴감에 허덕이는 ‘요조’라는 남자. 그러한 인간상을 적나라하면서도 은밀하게 나타내고 있기에, 불신과 과욕으로 가득 찬 환멸의 세상을 그로인해 폭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본서에서는, 섬뜩하게 드러나는 어두운 작가의 자화상 「인간 실격」과 함께, 예수를 배반하는 유다의 장황한 변명을 다루고 있는 「직소」까지, 다자이 문학에서 빠져선 안 될 주요 두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직소」는 독특한 요설체의 어지러운 분위기와 함께, 예수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자 마음먹은 유다에 대해 재조명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두 작품 모두 신뢰를 잃은 인간의 나약한 천성과 타인의 배신으로 고통 받는 비참함, 그리고 불안함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탁한 시선을 동시에 느꼈다. 아마도 그것이 작가의 불행했던 삶만큼이나, 여기저기 혼재해 있는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자들의 서글픈 고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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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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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티븐 킹’의 「셀」의 제일 앞장에는 ‘리처드 매드슨과 조지 로메로에게 이 책을 바친다.’ 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모든 작가들이 의례 그렇듯이 존경이나 사랑을 담은, 누군가에 대한 헌사를 책의 가장 앞 장에 바치기 마련인데, 나는 ‘옮긴이의 말’을 읽기 전까지 이 두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리처드 매드슨은 「나는 전설이다」라는 전설적인 좀비 소설을 쓴 작가이고, 조지 로메로는 「새벽의 저주」라는 좀비 호러 영화를 탄생시킨 감독이라고 한다.  

  두 작품을 읽거나 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전작들에 대한 비교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흔히 오마주로 불리는 존경을 담은 일부 장면의 모방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두 작품에서 어느 정도의 모티브를 얻어 새로운 특색을 갖춘 「셀」이 완성된 듯 하다. 좀비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보지는 못했으나, 유명한 몇 작품을 본 경험이 있는데, 그 때 경험했던 좀비들의 허탈한 이미지와는 다소 상반된 모습을 이 소설에서 볼 수 있었다.

  우선 책을 읽는 내내 영화를 겨냥했다, 거나, 영화로 꼭 만들어질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셀」은 역시나 내후년쯤 영화로 탄생하게 된다고 한다. 스티븐 킹 소설을 원작으로 둔 모든 영화들이 대부분 큰 흥행수익을 올리며 성공가도를 탄 듯이 「셀」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원작이 굉장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둔 작품은 아니지만, (좀비라는 소재 자체가 이제는 매우 클래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신선한 맛은 떨어지더라도, 특유의 독자를 사로잡는 소위 ‘글빨’이 성공적으로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셀」은 시작부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보스턴의 유원지 한 복판에서 벌이지는 참극은 경악할 수준의 끔찍함을 담고 있었다.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연된 괴물처럼 돌변해서 서로를 죽이거나, 자살을 하거나, 지능 지수가 사라진, 마치 모든 두뇌가 포맷된 사람들처럼 행동을 한다. 피가 난무하는 문명의 마지막 종결지에서,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영웅심을 발휘한 몇몇 사람들이 살아남게 된다. 뭔가에 홀린 듯한,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어정쩡한 폰 사이코 좀비들과 우리의 영웅들은 정면으로 대결을 벌이게 되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호러, 액션, 재난 영화들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뻔한’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두 손 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볼 수밖에 없는 ‘재미’가 일단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뒷내용을 상상하며, 궁금해 하며,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당하며「셀」을 읽었다. 21세기 트렌드에 맞춰서 잘 나온 작품이라고 생각 된다.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지배당하기를 원하는 휴대폰이라는 무시무시한 매개체를 통하여 파괴되어 가는 문명의 실상을 풍자하고 있는 듯도 하다. 게다가 언제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가족간의 사랑과 어려움에 처한 사라들의 투철한 의협심도 두루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셀」에 등장하는 영웅, ‘클레어’라는 캐릭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전혀 영웅적이지 않은 영웅이라서, 더 정이 간다고 할까. 모든 영화들에 등장하는 두뇌 천재나, 경찰, 액션 영웅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미국의 어느 시민이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물론 클레어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이 존재하고,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통해서 펄스에 감염되어, 광기에 사로잡힌 이해할 수 없는 좀비가 되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많지만, 무언가를 하려는 작은 노력들이, 극악의 상황에 처한 우리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너무나도 대중적인 작가이기에, 오히려 그 유명세가 ‘스티븐 킹’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늘 독자들이 그에게 ‘지나치게’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탓도 될 것이다. 작가의 이름을 지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는다면, 무시무시한 호러 소설이 아닌, 인류에게 닥친 심각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주인공들의 인간미와 함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스토리의 흐름에 대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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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0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킹은 정말 킹!^^

mind0735 2007-01-0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정군님이 진정 킹입니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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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며칠 전 「사랑이라니, 선영아」로 나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했던 김연수 작가는, 「나는 유령작가 입니다.」로 끝없는 작품 탐구의 연속 길을 걷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작가의 문체와 사고는 360도 회전을 한다지만, 어쩜 분위기가 이다지도 틀릴 수 있단 말인가! 아니, 내 판단이 짧았고, 내가 한 작가에 대해 지니고 있는 어떠한 관념 자체가 지나친 오만이자 만용이었다. 솔직히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자 했던 한 권의 소설집을 저녁 내내 붙잡고 있으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면의 진지한 결과물을 맞닥뜨렸을 때의 낭패감이란….

첫 작품을 읽는 순간, 내 머리는 이미 아플 준비를 하고 있었고, 두 번째 작품을 읽는 순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사로잡히며, 마침내 ‘작가의 말’이 적혀 있는 마지막 장까지 읽은 후 책을 덮으면서 어벙벙해진 머릿속을 억지로 수습하기에 바빴다. 창백하고 고요한 문체는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는 법 없이 온통 겨울 빛으로 물들어 있다. ‘사랑’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역사’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인간’을 냉정하게 논하면서도, 지나간 ‘시대’를 발견할 수 있는 탁월한 재량을 흠뻑 만끽해 보았다.

바나나를 먹으며 우유를 마시면 바나나 맛이 나는 우유를 마실 수 있는데, 굳이 바나나 맛 우유가 탄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 달달해서? 더 편리해서? 은근한 매력이 있어서? 아니면 단순히 더 맛있으니까?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모든 이유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일관된 감동이나 인생의 회환 따위도 그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역사가 궁금하면 역사서를 찾아보면 되는 것이고, 사랑이 고프다면 연애론의 솔직담백한 해설서를 읽으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인간의 생이 집약되어 있는 소설책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설에서 얻게 되는 부차적인 행복까지 더 합산하여, 반드시 찾게 되는 단 하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필시 작품 속에 녹아있는, 도저히 단어로 나열 할 수 없는 작가의 ‘만족스러운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나는 유령입니다.」를 읽는 내내, 그러한 김연수 작가의 만족스러운 힘과 섬세한 작업의 귀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장편소설로 오인하고 읽던 도중, 단편 분량의 연작 소설임을 알았을 때, 어느 작품 하나 깨알만큼도 부족하지 않을 수준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음에 다시 한번 놀라움에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지나친 한쪽의 기울임 없이 두루두루 여러 방면을 살펴보고 있는 작품들이다. 시집의 제목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창의적이고, 사색적인 제목들에서부터, 그 제목 속에 녹아 있는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나’에 해당하는 많은 인물들의 행로가 슬프고도 아름답다. 특정 시대에 대한 지나친 반감을 품은 글은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험스럽게 느껴지는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상에 대한 제시 역시 획일 되지는 않았으나, 느껴지는 시선은 비슷한 듯 하다. 암울하고도, 허전한 겨울 같은 메마른 체온을 가진 사람들의 불완전한 사랑과 삶.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던 책인데, 의외로 아주 강인한 인상으로, 하루 종일을 묵직하고도 짙은 먹 냄새를 맡은 기분이었다. 절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어느 유령작가가 내게 들려준 아홉 편의 이야기에서, 내가 살지 않는, 앞으로도 내가 살지 않을 시대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오늘 역시 내일의 역사로 가는 발목 일 텐데, 암묵적으로 이루어질 어떤 행위에 대한 누군가의 설명이 덧붙여져 씌어질까?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는 본문의 한 문장이 자꾸만 눈앞에서 맴을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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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7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d0735 2006-12-2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아직..
이번달 말에 입금된다고 하시던데.. ^^;;

2006-12-27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d0735 2006-12-28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1일에 반드시 좋은 소식 있을 겁니다. -
저도 눈이 빠져라 기다렸답니다. ㅠ_ㅠ;;; 하하.
원고료 받으심 뭐하실 거예요? 연말이라 저도 이리저리 나갈 구멍이 많군요.

2006-12-28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d0735 2006-12-2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아이고! 대량 출혈이었군요. ^^ 노트북 구매하셔서 너무 좋겠어요. 몇 년 전에 비해서 가격이 많이 다운된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노트북은 노트북이죠 ; 한동안 궁핍한 생활을.. ㅠ.ㅠ 얼른 입금이 되야 할텐데....;;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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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사랑에 불만족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기억 속에 묻어 뒀던 ‘그’가 나타났다. 결혼을 앞둔 여자의 마음처럼 복잡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결혼을 앞두고, 배우자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서 ‘사랑해.’란 말을 들을 때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결혼을 앞둔 광수와 선영에게로 느닷없이 추억 속의 남자 진우가 나타나 평온한 저수지에 돌을 던져 흙탕물을 일으키고 있다. 세 사람은 대학동창이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절친한 친구 사이다. 다만 하나의 문제점은 과거 선영이 진우와 사귀었던 사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금은 말끔하게 정리 된 상태라고 하는데, 남의 떡이 늘 상 커 보이는 법이므로 진우의 평온했던 마음에는 불연 듯 평범했던 선영이 예뻐 보이기 시작하며, 잊고 있던 ‘사랑’이라는 불안요소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흔들려야 하느니라. 흔들려야 하느니라.’ 누군가가 다그치는 것도 아닌데, 세 사람은 서로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갈등의 폭은 점점 커져만 간다. 언제나 모든 연애소설이 그렇듯이, 겉 테두리만으로 판단하자면 충분히 진부한 내용이다. 30분 동안 섹스 하다가, 30분 동안 피 터지게 싸우다가, 30분 동안 화해하고 다시 화합하는 뻔한 프랑스 멜로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이게 흐르는 연인들을 위한 찬가가, 모든 연애의 공식이라면 공식일 것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독특한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평범한 연애 공식에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본서의 시작은, 결혼식장에서 신부 선영의 부케 팔레노프시스 꽃대가 부러진 것을 보고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집착하는 광수의 시점이다.) 일률적으로 그려질 남, 녀 간의 말다툼도 없이, 맛깔스럽다고 밖에 할 수 없을 탁월한 대사들 하나로 독자를 압도 하고 있다. 한국말에 이런 단어가 있었나, 싶을 만큼 생소한 형용사들과 유머러스하게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얼한 사랑 풍경이, 시간의 흐름도 잊게 할 만큼 유유히 흘러간다.

‘사랑’이라는 가장 흔하지만 중요한 주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았다. 흐르는 시간에 묻혀져 있었던 과거의 사랑을 진정으로 잊을 수 있었다는 여자와, 추억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는 누군가를 쫓아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 얼멍얼멍한 남자와, 적절한 수준의 로맨틱함을 갖추면서도 쫀쫀한 남자의 끓어오르는 질투심의 절정까지.

‘선영아, 사랑해’ 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는 대한민국 여자들의 가슴에 사랑하고 싶다는 불을 질렀고, ‘사랑이라니, 선영아’ 는 대한민국 여자들의 가슴에 사랑이라는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 준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광수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느끼고 있는 그 사실을, 그래도 부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지나친 이기심일까? 결혼과 함께 시작될 그들의 운명이 더욱 궁금해 진다. 읽는 내내 ‘진우를 믿지 마!’ 라는 외침을 나도 모르게 내지르게 되었던 즐거움을 겸비한 아주 발칙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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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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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근하고 익숙한 느낌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책을 통해 저자와 소통하며 마치 내 분신을 마주 대하는 듯한 생경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지금의 기분을 어수룩한 언변으로 표현하자면, 유년기를 통해 겹겹이 쌓여 있던 나의 치부를 조심스럽게 들춰내는 놀라움과 그 번뜩임을 넘어선 약간의 불쾌함에 사로잡히는 기이한 체험이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같은 여자이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김형경 작가의 「사람 풍경」을 통해, 절대로 알아내고 싶지 않았던 내 안의 나를 꺼내어 볼 수 있었다.

우선, 「사람 풍경」다소 독특한 구성으로 독자에게 접근하고 있다. 여행 중에 겪었던 실질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 심리를 파헤친 ‘심리/여행 에세이’라는 절묘하게 궁합이 맞아 떨어지는 주제와, ‘소설가’라는 저자의 능력을 한껏 발휘한 매력적인 문장들이 만난 것이다. 20년이 넘도록 글만 써온 탁월한 문장가에게 ‘여행’의 맛은 참으로 알싸했음이 틀림이 없다. 그녀의 곳곳에 베인 상처들과 절망들에서 새롭게 느껴 볼 수 있는 가득한 충만의 기운을 찾아서, ‘여행’을 도피 삼아, 기회 삼아, 혹은 다시 모든 것이 처음부터라는 기분으로 일생일대의 기나긴 외출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좋다. 그녀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그 ‘여행’들에게서 희망을 배웠고,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기회를 제공 받았으니 말이다. 본서를 읽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절대적으로 공감 할 수 있었던 수많은 일화들에서 느낀 점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일종의 동질감이었다. 사람 대 사람, 반드시 가식적일 수밖에 없고, 뭔가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이 들릴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편일률적이게도 나만은 그렇지 않다는 지나친 자기애의 승화는 내 스스로를 가장 이기적인 인간으로 몰고 가야했었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심리를 공부하면서, 혹은 부득의하게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그녀의 고충과 깨달음을, 여행이라는 현실의 이탈에서 철저하게 복습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인 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집합에서 나와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인간의 심리와 적절한 해석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일반인들의 상식 수순에 머물러 있던 ‘심리’라는 심오한 학문은, 한층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 받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느꼈던 불안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면서, 나 또한, 내가 사랑하는, 내가 증오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라는 쉽고도 편한 정의를 이해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보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사람’을 느끼고 상대하는 것만큼 어렵고, 피곤한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오해를 사거나, 지나친 관심, 혹은 지나친 무관심 등에서 상처 받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남겨질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회와 일종의 계약이라면 계약을 맺고 살아가는 동물이므로,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한 내면의 문제점들을 짚어보면서, 인간의 심리를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을 만났기에, 원인모를 성취감마저 느껴진다. 결국은 혼자이지만, 결국 혼자가 아니라는 불변의 진리.

나는 항상 내 자신이 나약하고, 볼품없다는 자기 비약이 심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본서에도 언급되어 있는 유년기의 불안정한 심리가 발단이 되었으리라 생각 된다. 결코 정신이 빈약한 것은 아닌데, 무언가 허전하고 텅 빈 것 같은 초라함이 나를 휩싸고 돌면, 우울증의 증세를 동반해 몸까지 아파왔다. 많은 나이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허망하게 앉아 땅만 바라보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행복해지자고 소리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면서 다시 한번 용기를 다짐해 봤다. 사람이라면 다 비슷비슷하다는 단 결론으로, 지금의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이 뜻 깊은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혼자 보고, 혼자 걷고, 혼자 느끼고, 혼자 사유하며,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응원군인 나 자신을 만나는 길이다. 그 혼자 하는 여행길에서, 작가 ‘김형경’은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을 추억했고, 그들의 심리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치료하고자 노력했다. 결국, 문제가 있다고 느꼈던 많은 사람들은 나와 많이 다르지 않은 보편적인 인간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솔직하고도 편안한 고백이 진심으로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역시, 그냥 보통의,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평범하지만, 조금 특별하기도 한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풍경이 궁금하다면, ‘김형경’의「사람 풍경」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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