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친근하고 익숙한 느낌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책을 통해 저자와 소통하며 마치 내 분신을 마주 대하는 듯한 생경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지금의 기분을 어수룩한 언변으로 표현하자면, 유년기를 통해 겹겹이 쌓여 있던 나의 치부를 조심스럽게 들춰내는 놀라움과 그 번뜩임을 넘어선 약간의 불쾌함에 사로잡히는 기이한 체험이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같은 여자이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김형경 작가의 「사람 풍경」을 통해, 절대로 알아내고 싶지 않았던 내 안의 나를 꺼내어 볼 수 있었다.

우선, 「사람 풍경」다소 독특한 구성으로 독자에게 접근하고 있다. 여행 중에 겪었던 실질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 심리를 파헤친 ‘심리/여행 에세이’라는 절묘하게 궁합이 맞아 떨어지는 주제와, ‘소설가’라는 저자의 능력을 한껏 발휘한 매력적인 문장들이 만난 것이다. 20년이 넘도록 글만 써온 탁월한 문장가에게 ‘여행’의 맛은 참으로 알싸했음이 틀림이 없다. 그녀의 곳곳에 베인 상처들과 절망들에서 새롭게 느껴 볼 수 있는 가득한 충만의 기운을 찾아서, ‘여행’을 도피 삼아, 기회 삼아, 혹은 다시 모든 것이 처음부터라는 기분으로 일생일대의 기나긴 외출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좋다. 그녀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그 ‘여행’들에게서 희망을 배웠고,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기회를 제공 받았으니 말이다. 본서를 읽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절대적으로 공감 할 수 있었던 수많은 일화들에서 느낀 점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일종의 동질감이었다. 사람 대 사람, 반드시 가식적일 수밖에 없고, 뭔가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이 들릴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편일률적이게도 나만은 그렇지 않다는 지나친 자기애의 승화는 내 스스로를 가장 이기적인 인간으로 몰고 가야했었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심리를 공부하면서, 혹은 부득의하게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그녀의 고충과 깨달음을, 여행이라는 현실의 이탈에서 철저하게 복습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인 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집합에서 나와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인간의 심리와 적절한 해석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일반인들의 상식 수순에 머물러 있던 ‘심리’라는 심오한 학문은, 한층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 받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느꼈던 불안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면서, 나 또한, 내가 사랑하는, 내가 증오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라는 쉽고도 편한 정의를 이해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보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사람’을 느끼고 상대하는 것만큼 어렵고, 피곤한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오해를 사거나, 지나친 관심, 혹은 지나친 무관심 등에서 상처 받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남겨질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회와 일종의 계약이라면 계약을 맺고 살아가는 동물이므로,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한 내면의 문제점들을 짚어보면서, 인간의 심리를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을 만났기에, 원인모를 성취감마저 느껴진다. 결국은 혼자이지만, 결국 혼자가 아니라는 불변의 진리.

나는 항상 내 자신이 나약하고, 볼품없다는 자기 비약이 심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본서에도 언급되어 있는 유년기의 불안정한 심리가 발단이 되었으리라 생각 된다. 결코 정신이 빈약한 것은 아닌데, 무언가 허전하고 텅 빈 것 같은 초라함이 나를 휩싸고 돌면, 우울증의 증세를 동반해 몸까지 아파왔다. 많은 나이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허망하게 앉아 땅만 바라보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행복해지자고 소리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면서 다시 한번 용기를 다짐해 봤다. 사람이라면 다 비슷비슷하다는 단 결론으로, 지금의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이 뜻 깊은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혼자 보고, 혼자 걷고, 혼자 느끼고, 혼자 사유하며,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응원군인 나 자신을 만나는 길이다. 그 혼자 하는 여행길에서, 작가 ‘김형경’은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을 추억했고, 그들의 심리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치료하고자 노력했다. 결국, 문제가 있다고 느꼈던 많은 사람들은 나와 많이 다르지 않은 보편적인 인간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솔직하고도 편안한 고백이 진심으로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역시, 그냥 보통의,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평범하지만, 조금 특별하기도 한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풍경이 궁금하다면, ‘김형경’의「사람 풍경」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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