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현재의 사랑에 불만족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기억 속에 묻어 뒀던 ‘그’가 나타났다. 결혼을 앞둔 여자의 마음처럼 복잡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결혼을 앞두고, 배우자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서 ‘사랑해.’란 말을 들을 때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결혼을 앞둔 광수와 선영에게로 느닷없이 추억 속의 남자 진우가 나타나 평온한 저수지에 돌을 던져 흙탕물을 일으키고 있다. 세 사람은 대학동창이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절친한 친구 사이다. 다만 하나의 문제점은 과거 선영이 진우와 사귀었던 사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금은 말끔하게 정리 된 상태라고 하는데, 남의 떡이 늘 상 커 보이는 법이므로 진우의 평온했던 마음에는 불연 듯 평범했던 선영이 예뻐 보이기 시작하며, 잊고 있던 ‘사랑’이라는 불안요소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흔들려야 하느니라. 흔들려야 하느니라.’ 누군가가 다그치는 것도 아닌데, 세 사람은 서로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갈등의 폭은 점점 커져만 간다. 언제나 모든 연애소설이 그렇듯이, 겉 테두리만으로 판단하자면 충분히 진부한 내용이다. 30분 동안 섹스 하다가, 30분 동안 피 터지게 싸우다가, 30분 동안 화해하고 다시 화합하는 뻔한 프랑스 멜로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이게 흐르는 연인들을 위한 찬가가, 모든 연애의 공식이라면 공식일 것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독특한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평범한 연애 공식에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본서의 시작은, 결혼식장에서 신부 선영의 부케 팔레노프시스 꽃대가 부러진 것을 보고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집착하는 광수의 시점이다.) 일률적으로 그려질 남, 녀 간의 말다툼도 없이, 맛깔스럽다고 밖에 할 수 없을 탁월한 대사들 하나로 독자를 압도 하고 있다. 한국말에 이런 단어가 있었나, 싶을 만큼 생소한 형용사들과 유머러스하게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얼한 사랑 풍경이, 시간의 흐름도 잊게 할 만큼 유유히 흘러간다.

‘사랑’이라는 가장 흔하지만 중요한 주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았다. 흐르는 시간에 묻혀져 있었던 과거의 사랑을 진정으로 잊을 수 있었다는 여자와, 추억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는 누군가를 쫓아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 얼멍얼멍한 남자와, 적절한 수준의 로맨틱함을 갖추면서도 쫀쫀한 남자의 끓어오르는 질투심의 절정까지.

‘선영아, 사랑해’ 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는 대한민국 여자들의 가슴에 사랑하고 싶다는 불을 질렀고, ‘사랑이라니, 선영아’ 는 대한민국 여자들의 가슴에 사랑이라는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 준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광수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느끼고 있는 그 사실을, 그래도 부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지나친 이기심일까? 결혼과 함께 시작될 그들의 운명이 더욱 궁금해 진다. 읽는 내내 ‘진우를 믿지 마!’ 라는 외침을 나도 모르게 내지르게 되었던 즐거움을 겸비한 아주 발칙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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