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 문학.신화.역사를 관통하는 조너선 실버타운의 실버과학에세이
조너선 실버타운 지음, 노승영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북소리]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고른 책은 제목도 거창한 조너선 실버타운의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입니다. 치매를 공부하다보니 ‘잘 늙어가는 일’과 ‘잘 죽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북소리]에서 이 주제들과 관련된 책을 자주 소개해드렸던 것 같습니다. 주제의 편향성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각설하고, 과연 늙는다는 것이 과연 우주적인 사건인지 톱아보겠습니다. 조너선 실버타운은 영국 오픈유니버시티에서 생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생물학자입니다. 이 책에서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넘나들며 노화와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앎의 힘은 바로 그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핵심주제는 노화와 죽음, 즉 인간의 수명입니다.


6만 년 전의 네안델타르인의 기대수명은 20세이고, 고대 로마인은 27세였으며, 20세기 초의 미국인은 48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세계인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70세를 돌파했고, 2015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기대수명이 82.1세인 것처럼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80세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인간 수명은 극적으로 늘었는데, 왜 노화와 죽음은 멈추지 않을까? 진화가 후세를 남기는 개체를 선호한다면 왜 우리는 늙지 않는, 더 나아가 죽지 않는 존재로 진화하지 않을까?”라는 두 가지 의문을 내놓은 저자는 죽음, 수명, 유전, 진화, 식물 등의 영역으로 나누어 그동안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인용하여 쉽게 설명합니다. 즉, 이 책은 현대과학이 내놓은 대답들을 짜 맞춘 저자 나름대로의 모자이크라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웨스트민스터사원은 영국이 불멸의 인물을 매장하는 곳입니다. 저자는 “이곳에서는 죽음과 후세가 같은 땅에 거하며, 위대한 예술과 과학적 이해가 필멸을 초월함을 우리에게 일깨운다.”라고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제프리 초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윌리엄 워즈워스,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T.S. 엘리엇, 헨리 제임스 등 영국 문학을 빛낸 이들은 물론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등과 같은 불멸의 과학자, 그리고 영국의 왕들, 주교들의 무덤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불멸의 인사들 사이에 필멸인 존재들의 흔적들이 넘쳐나는 것은 물론 때로는 불멸을 희롱하는 이도 생겨났던 모양입니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전을 세계 사람들에게 다시 알린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은 이곳을 방문하고서 “나는 생각했다. 이 수많은 무덤들은 굴욕의 보관함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이름의 불멸이란 얼마나 헛된 자랑거리인지!(21쪽)”라는 소감을 적었습니다.


인간은 불멸을 꿈꾸지만, 불멸을 두려워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제가 본방사수하고 있는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의 주인공 도깨비는 936년을 살아온 불멸의 존재인데, 도깨비신부를 찾아내 불멸을 끝내는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죽지 않는 사람」에서도 불멸의 존재가 된 주인공이 17세기에 걸쳐 살아고는 다시 죽는 존재가 되는 선택을 합니다. 죽을 운명의 모든 존재들에게는 모든 것이 회복할 수 없고 불안한 가치를 지니는데 반하여, ‘죽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들은 무한히 반복되는 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상이 지겹게 반복되는 것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를 희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삶을 같이 했던 필멸의 존재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아픔까지 겪어야 한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저자가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찾아낸 불멸과 필멸의 비밀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며, 두 번째는 세균입니다. 특히 시인구역에 묻힌 존 키츠, 브론테 자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D.H. 로런스 등은 결핵으로 일찍 죽음을 맞았던 것입니다. 저자는 병원성 세균 덕분에 수명의 진화적 의미를 깨닫기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세균은 세대기간이 매우 짧아서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고 진화할 수 있습니다. 세대기간이 짧은 대신 빠르게 진화하는 능력을 가진 세균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세균을 ‘극한친화성세균(extremophiles)’이라고 부르는데, 공기압보다 17,000배나 높은 압력에서도 살아남는 대장균, 영하15도에서 살아남은 크립포텐돌리토트롭스

(Crypotendolithotrophs), 섭씨 113도에서 황을 먹고사는 파이로코크스 퓨리오수스(pyrococcus furiosus)라는 세균도 있습니다. 다이노코크스 라디오듀란스(deinococcus radiodurans)는 이름대로 5백만 라드(rad)의 감마선을 쪼여도 살아남습니다. pH값이 0인 최고 산도에서 살아남은 세균, 땅속 900m에서 사는 세균도 있습니다.


이들이 살아남는 비결은 바로 짧은 수명과 세대기간에 있습니다. 수명이란 탄생과 죽음 사이의 평균 시간을 말하고, 세대기간은 태어나서 자식을 낳기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세균은 분열을 통하여 번식하기 때문에 수명과 세대기간이 똑같은데 짧게는 30분에 불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인간의 세대기간은 약 20-25년인 반면 수명은 70-80년입니다. 세대기간이 짧으면 개체증식이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장점에 진화의 수레바퀴를 빨리 돌릴 수 있는 장점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진화 경쟁에서는 후손을 많이 남기는 개체가 최종 승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체마다 세대기간과 수명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름대로의 개성을 지키기 위해서일까요?


저자는 노화와 장수에 대한 비밀을 이렇게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2장에서는 인간이 왜 세균처럼 단명하지 않는지 여러 종의 생물체를 비교합니다. 종을 지키려는 일관된 목표를 가진 생물체들이 진화의 수레바퀴를 어떻게 돌린 결과인지를 해석한 것입니다. 3장에서는 노화의 비밀을 캐고 노화를 없앤다면 우리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4장에서는 유전이 장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모든 동물이 공유하고 있는 특정 유전자를 조작하면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설명합니다. 5장에서는 식물이 장수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늘 자신을 새롭게 함으로써 오랫동안 존속하기 때문”에 식물이 가장 오래 살고 있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인용한 저자는 동물에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식물이 가지고 있어 장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6장에서는 일부 식물이 사실상 불멸을 누리고 있고, 유전자를 변형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죽음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설명합니다. 7장에서는 자살하는 동물의 사례를 들어서 죽음이 적응적인가 하는 의문을 살펴봅니다. 8장과 9장에서는 분자수준에서의 노화가 일어나는 기전을 살펴봅니다.


첫 번째 주제는 수명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몸집이 수명과 연관이 있다고 보았으나, 일반화하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장수마을로 알려진 곳 역시 과장과 맹신에 따른 허구로 드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장수마을이 다른 곳과 비교해서 기대수명이 나을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극단적인 장수는 허영심, 사기, 위조, 고의적 오류 등으로 얼룩졌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52쪽)라는 기네스북 편집자의 말을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장수기록은 프랑스의 할머니 장 칼망인데 1977년 사망당시 122세 5개월 2주였다고 합니다. 40년이 지나도록 이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150세까지 사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은 괄목할 정도로 늘어나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텍사스의대의 스티븐 어스태드교수와 시카고 일리노이대학의 스튜어드 제이 올샨스키교수 사이에 걸려있는 5억 달러짜리 내기는 올샨스키교수 쪽으로 기우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34년 뒤에 끝나는 내기의 결말을 제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저 역시 100수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가능할까 모르겠습니다.


장수하는 집안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그런 집안을 골라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장수하는 부모를 마치 스스로 고른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 일단은 유머로 생각했지만, 후세를 위하여 장수하는 집안과 사돈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식물의 경우 한해살이가 있는가 하면 만년이 넘도록 살아있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동물의 경우는 그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아서 장수기록을 보유중인 대양백합조개도 450년이 고작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식물 종은 수명이 훨씬 짧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종 사이에도 기대수명이 천차만별인 것을 보면 수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진화에 있음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즉 돌연변이를 통하여 획득한 변이가 자연의 선택을 받게 되면 개선된 능력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살이라는 주제는 당연히 죽음과는 관련이 있겠지만, 노화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결국 단순하게 생명을 끊는다는 의미보다는 자손을 퍼트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번식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나니 생명을 이어갈 여력이 없어져 죽음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단회번식-저자는 빅뱅번식이라고도 표현합니다만-의 사례는 식물계나 동물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대나무도 꽃을 피우면 대밭 전체가 말라죽는다고 합니다. 태평양연어 역시 부화 후에 강을 따라 먼 바다로 내려가 성장한 다음, 모천으로 돌아와 산란을 하고는 죽음을 맞는데, 그 과정에서 모천을 둘러싼 동물 및 식물생태계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한다는 것입니다.


전기 기타의 전설 지미 핸드릭스, 로큰롤의 여왕 제니스 조플린, 그리고 롤링스톤스의 멤버 브라이언 존스, 도어스의 짐 모리슨, 영국의 R&B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은 모두 27살에 죽음을 맞아 ‘27 클럽’회원이 되었습니다. 록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삶의 속도와 길이 사이의 역상관관계가 성립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를 해본 통계학자도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20세기 초반에는 ‘삶의 속도 가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빨리 살면 일찍 죽는다’라고 할 수 있는데 열정을 쏟아 부어 살면 일찍 기력이 다하여 죽음을 맞는다는 가설이고, 한때 활성산소로 인한 노화이론으로 발전하는 듯하였습니다. 하지만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대사속도는 수명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열악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면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저자는 신기(神氣)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마지막 장을 금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의 노래 「영원한 젊음」에 나오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때 / 그대의 가슴이 늘 기쁘길 / 그대의 노래가 늘 불리길 / 그대가 영원히 젊길”이라는 대목을 인용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밥 딜런의 이 노래는 자녀를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늙은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자녀가 언제까지 젊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노화를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 영생을 얻거나 혹은 장수를 얻겠다는 착상은 훌륭하지만, 구체화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노화는 단일한 현상이 아니라 신체의 여러 체계가 전반적으로 부실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수명연장의 비법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결론을 맺었지만 또 다른 신기한 역설을 감춰두고 있었습니다. 소득격차가 작은 인구집단일수록 집단 전체의 기대수명이 크다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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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전쟁과 교류 ㅣ 지중해 국가정보 시리즈 8
윤용수.최재훈 지음 / 이담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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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는 세 개의 대륙이 둘러싸고 있는 만큼 다양한 민족과 문명이 어우러지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문명의 충돌은 전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지중해, 전쟁과 교류>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벌어진 대표적인 전쟁들 가운데 고대, 근대, 현대의 대표적인 전쟁을 각각 뽑아서 그 양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대표적인 전쟁으로는 기원전 264년부터 기원전 146년 간에 세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반도의 로마제국과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사이에 벌어진 포에니 전쟁이 있습니다. 근대의 대표적인 전쟁으로는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이 팔레스타인의 기독교 성지를 둘러싸고 11세기부터 13세기 후반까지 벌인 9차례의 십자군전쟁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전쟁으로는 이스라엘의 독립과 관련한 중동전쟁과 레바논 분쟁 그리고 아랍의 봄과 관련한 리비아내전을 다루었습니다.


포에니전쟁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신흥 로마제국이 지중해의 패권국 카르타고와 자웅을 가름한 전쟁으로 로마제국이 세 번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였고, 카르타고라는 도시 자체가 지상에서 사라지고 만 불행한 전쟁이었습니다. 혹자는 카르타고가 최종 승리를 하였다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카르타고는 합리적이었다는 것입니다. 5세기 초 훈족에게 쫓긴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카르타고 지역까지 이주하여 427년 왕국을 세웠는데, 455년 로마를 침략하여 함락시킨 바 있습니다. 당시 반달족의 약탈과 신성모독을 두고 반달리즘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제2차 포에니전쟁 때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코끼리를 몰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본토로 쳐들어가 로마 함락을 목전에 두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주춤거린 것이 결정적 패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한니발을 후방 지원하던 히스파니아를 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한니발이 먼저 로마를 함락시켰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십자군전쟁은 셀주크 투르크 제국이 아나톨리아반도를 점령하자 동로마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로마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구원을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동로마제국의 속셈은 대규모 병력의 파병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용병을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교황은 차제에 성지회복을 핑계로 동방정교회를 로마 가톨릭으로 흡수하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 셀주크제국은 예루살렘에서의 기독교인들의 종교활동에 제약을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 유럽의 기독교도들도 순례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군의 속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1202년부터 1204년간에 진행된 제4차 십자군 원정으로 교황 인노첸시오3세의 촉구로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예정된 규모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서 원정군을 수송하기로 한 베네치아와의 계약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원정군에게 달마치아에 있는 헝가리 영향권의 자다르를 굴복시켜달라는 요청으로 계약을 퉁치기로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비잔틴제국의 황위계승에서 밀려나 망명 중이던 알렉시우스 알겔루스 황태자의 부탁으로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혹자는 베네치아가 주도하여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고도 합니다만, 십자군원정군과 비잔틴제국의 황태자 사이의 밀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동전쟁은 사정이 매우 복잡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지역은 오랫동안 이슬람 국가가 지배해왔지만, 이슬람교인과 유대교인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공존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제국이 패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영국 등 유럽국가의 영향력이 커지고, 특히 유럽에 불어닥친 시오니즘의 영향으로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오면서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1948년 영국의 주도로 이스라엘이 건국하면서 이 지역을 둘러싼 아랍세력과 이스라엘의 유대인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미묘한 국제정세를 타고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고, 결국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전쟁을 끝났지만 아직도 긴장관계는 제대로 수습되지 않고 남아 있는 형국입니다.


<지중해, 전쟁과 교류>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명멸했던 다양한 문명,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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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세트 - 전12권 ㅣ 그림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우지더 외 지음, 자오시웨이 외 그림, 한국학술정보 출판번역팀 옮김 / 이담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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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다보니 어떤 방향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는가에 따라서 모양새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세기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유럽 혹은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들이 주로 소개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국인의 시각으로 본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연환화(連環畵)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만든 책입니다. 중국의 대표적 문화 가운데 하나인 연환화는 이야기의 전체 과정을 여러 폭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회화를 말합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보았던 그림 연극과 비슷한 형식입니다. 그림 연극에서는 극장의 무대처럼 만든 틀 안에 그림을 그린 화면이 연속으로 넘어가면서 변사가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연환화에서는 그림 아래 간략한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 요약된 설명을 이어서 읽으면서 그림을 통하여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그림책입니다. 중국의 상하이에서 20세기에 등장하여 발전하고 있으며 연환화를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도 있는 듯합니다.


중국연환화출판사에서 내놓은 <제2차 세계대전 연환화고>를 우리말로 옮긴 <그림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은 “독자들이 역사적인 사실을 배우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전쟁 도발자들의 추악한 면모와 야욕을 알고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깨닫기 바란다.”라는 기획의도를 적었습니다. 모두 열두권으로 된 연작물에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전쟁의 기류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다루고 있는데,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상하이전투가 치러지는 과정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유럽에서 주축국이 전쟁을 벌이기 전에 이미 동북아시아에서는 뒤에 주축국의 일원이 되는 일본이 전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무대를 유럽으로 옮겨 독일의 폴란드침공에 이어 전장이 서유럽과 동유럽 그리고 아프리카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그렸고, 연합국이 전기를 잡아 역습에 성공하여 전쟁을 마무리하기까지의 과정이 차례로 그려집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마무리되면 아시아로 되돌아와서 일본이 아시아 전역으로 전장을 확대하고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서태평양 전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과정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기를 잡은 미군이 일본을 본토로 몰아넣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습니다. 일본이 주축국에 가담하게 된 것은 아시아의 패권을 잡으려는 야욕에서 시작된 것인데, ‘아시아는 아시아 사람들의 손으로’라고 하였지만, 속내로는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들이 식민지배하던 아시아권역을 차지하려는 야욕에서 시작된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이들 국가들이 유럽에서 사로 싸우느라고 식민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전략적 오판을 했던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변수가 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려 17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입니다만, 그림이 많고 설명이 잘 축약되어 있어 전체의 흐름을 빠르게 읽어갈 수 있습니다. 그림을 읽다가(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보면 화풍이 달라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방대한 분량의 그림을 이야기 전개에 맞춰 그리다보니 한 사람이 끝까지 그려낼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달라진 화풍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의 설명도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가 하면 치열한 전투장면을 상세하게 소개하기도 해서 글 자체가 건조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의 시각에서 본 역사이지만 전쟁 초기에 일방적으로 몰리거나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있었던 묘한 갈등 같은 것 등을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개중에는 감추고 싶은 역사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작전지도 같은 것을 통하여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사실 전투장면은 대체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기도 해서 오히려 신선함이 점점 떨어지는 느낌이었는데,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긴박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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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클라스 후이징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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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벌레’라고 부르면 무엇에 빠져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을 이릅니다. <책벌레>도 어쩌면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책을 좋아해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때로는 책밖에 모르는 사람을 조롱하는 의미로도 쓴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진짜 책을 갉아먹는 서두(書蠹)라는 일종의 진드기를 의미하는 한자어를 가져와서 책을 많이 읽기만 하고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을 비꼬는 말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뮌헨대학에서 체계이론을 가르치는 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책벌레 이야기를 독특한 구조로 구성한 소설입니다. <책벌레>은 두 개의 이야기와 책읽기에 관한 짧은 아홉 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개의 이야기는 200여년의 시차가 있어 각각 다른 주인공이 이끌어갑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면 앞의 이야기가 뒷 이야기의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소설은 책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살인과 강도짓으로 얻은 돈으로 책을 사들인 혐의로 종신형을 언도받은 작센주 포르제나의 목사 게오르크 티니우스의 사건을 축으로 작가가 창조한 팔크 라인홀트가 2세기 뒤에 6만권을 수집한 티니우스가 출판한 다섯 권의 책을 뒤쫓으면서 티니우스를 닮아가는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팔크 라인홀트는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의 전기를 남김없이 마셔버렸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그 자신이 티니우스의 텍스트가 되었다.(151쪽)” 무슨 일이든 집착이 생기면 불행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책읽기였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는 누구의 글이라고 콕 짚어주지는 않았지만, 아주 익숙한 글귀들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처음 대하는 구절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팔크는 마들렌을 먹을 때처럼 단어들을 오래 전에 식어 씁쓸해진 차에 적셔 입에 넣고는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천천히 혀로 굴렸다.(109쪽)”라는 대목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집 쪽으로; >의 한 장면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아홉 개의 양탄자들은 글과 작가, 독자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짧은 수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양탄자에서는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인용하여 글의 의미를 논하였습니다. 두 번째 양탄자에서는 ‘최초의 작가는 누구일까?’하는 질문을 내놓은 저자는 ‘자연이 한 권의 책’이라고 한다면 신이 최초의 작가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세 번째 양탄자에서는 배움의 방법을 논하는데, 기억력보다는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네 번째 양탄자에서 말하는 책에도 얼굴이 있다는 설명은 아마도 글 쓰는 이마다의 색깔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독서는 변화를 가져온다는 다섯 번째 양탄자는 크게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독서의 체험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한 자루의 도끼와 같다(117쪽)’라는 놀라운 비유를 인용한 것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책의 세속적 측면을 다룬 여섯 번째 양탄자도 독특한 면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책은 우리 자신과 동일화시킬 대상을 제공하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한 일곱 번째 양탄자는 아무래도 제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독자는 공작새다’라는 제목의 여덟 번째 양탄자도 생각거리가 많은 항목입니다. “맹목적이고 게으른 심성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앓고 있는 전염병(179쪽)‘이라고 비유한 것을 보면 저자는 독자의 분발을 에둘러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양탄자 ‘독서의 기술’이야말로 이 책의 화룡첨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내가 기대하는 독자란 적어도 세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독자는 침착하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독자는 독자 자신과 자신의 ‘교양’을 개입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독자는 책의 말미에 일종의 결론으로서 ‘도표’들이 나오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197쪽)”라는 구절이야말로 저자가 이 책을 읽은 이에게 당부하는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홉 개의 양탄자는 저자 나름대로의 독서의 문화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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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쟁탈전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주제 사마라구의 <리스본 쟁탈전>은 1147년 7월 1일부터 10월 25일까지 알폰소왕의 포르투갈군이 제2차 십자군의 도움을 받아 무어인이 점령하고 있던 리스본을 함락시킨 사건을 꼬투리로 한 소설입니다. 리스본공방과 관련한 색다른 내용이 담겼을 것으로 기대한 책읽기였지만, 기대는 기대로 끝났습니다.


<리스본 쟁탈전>은 역사에 대한 인식을 두고 생각해볼 거리를 담았습니다. 역사자료가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기록한 사람의 희망사항이 담긴 왜곡된 기록인가 하는 문제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책이 출판되는 과정에서 저자와 교정자의 역할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교정기호인 델레아투르(deleatur)를 두고 저자와 교정자가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도입부의 책읽기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대화체를 표시하는 따옴표가 없어서 누가 한 말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원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교정자의 역할은 어디까지 일까요?


주인공은 교정자 라이문두 벤빈두 실바입니다. 50대의 독신인데 ‘누가 나를 사랑해줄 것이며, 내가 누굴 사랑하겠어?’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교정을 보고 있는 책을, “사람들이 풀어놓은 픽션들은 창조된 것이고, 책과 픽션에는 의심이라는 요소가 항상 존재하며, 과묵한 긍정도 존재한다(77쪽)”고 믿습니다. 실바는 자신이 검토한 <리스본 쟁탈전>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빠집니다. 리스본 쟁탈전과정에서 십자군이 돕지 ‘않았다.’라고 손을 본 것입니다. 십자군이 ‘도왔다.’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꾼 것입니다. 출판사에서는 정오표를 붙여 독자의 오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면서 뜻밖의 제안을 해옵니다. 리스본공방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은 역사소설을 써보라는 제안을 해온 것입니다. 작가는 포루투갈왕국의 아폰소국왕의 연설 속에서 십자군이 리스본공방전에 참여하지 않을 꼬투리를 잡아낼 정도로 포르투갈 역사에 조예가 깊었던 것이 <리스본 쟁탈전>이 탄생하게 된 힘이었다고 합니다.


쟁점을 읽으면서 헷갈렸던 것은 리스본 공방전에 십자군이 개입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작가적 상상력 혹은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어인의 지배로부터 국토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외세의 힘을 빌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존심 같은 것을 포르투갈 사람들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외세의 도움에 기대야 했던 우리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그런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집책임을 맡게 된 마리아 사라박사와의 만남에서 사랑을 느낀 실바는 리스본공방전의 새로운 해석을 써나가는 과정에 사라와의 관계를 풀어 넣게 됩니다. 작가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통하여 포르투갈 사람들의 의식 속에 숨겨진 자존심의 실체를 비벼 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물을 대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점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역사적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기억해야 하며 작가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역사가 역사적 사실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책 말미에 붙인 영어판 후기에서 지오반니 폰티에로 역시 이 점을 짚고 있습니다. “역사집필과 소설집필 사이의 차이점과 과거를 재구성하는 기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508쪽)”


그런가 하면 작가 역시 믿을만한 역사기록과 의심스러운 역사기록을 구분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역사는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써질 수 있었다. 이처럼 역사가 무한하고 다양하다는 생각이 내 글의 핵심이다. 불가능한 일, 꿈, 환상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내 소설의 주제이다.(50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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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6-12-2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즈 사라마구 작가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리스본 쟁탈전은 눈길이 가지 않았어요. 역시 한번 읽어봐야 할 작품이었군요. 좋은 서평 읽고 갑니다.

처음처럼 2016-12-23 00:13   좋아요 0 | URL
시작부분을 인내할 필요가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