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 문학.신화.역사를 관통하는 조너선 실버타운의 실버과학에세이
조너선 실버타운 지음, 노승영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북소리]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고른 책은 제목도 거창한 조너선 실버타운의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입니다. 치매를 공부하다보니 ‘잘 늙어가는 일’과 ‘잘 죽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북소리]에서 이 주제들과 관련된 책을 자주 소개해드렸던 것 같습니다. 주제의 편향성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각설하고, 과연 늙는다는 것이 과연 우주적인 사건인지 톱아보겠습니다. 조너선 실버타운은 영국 오픈유니버시티에서 생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생물학자입니다. 이 책에서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넘나들며 노화와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앎의 힘은 바로 그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핵심주제는 노화와 죽음, 즉 인간의 수명입니다.


6만 년 전의 네안델타르인의 기대수명은 20세이고, 고대 로마인은 27세였으며, 20세기 초의 미국인은 48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세계인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70세를 돌파했고, 2015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기대수명이 82.1세인 것처럼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80세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인간 수명은 극적으로 늘었는데, 왜 노화와 죽음은 멈추지 않을까? 진화가 후세를 남기는 개체를 선호한다면 왜 우리는 늙지 않는, 더 나아가 죽지 않는 존재로 진화하지 않을까?”라는 두 가지 의문을 내놓은 저자는 죽음, 수명, 유전, 진화, 식물 등의 영역으로 나누어 그동안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인용하여 쉽게 설명합니다. 즉, 이 책은 현대과학이 내놓은 대답들을 짜 맞춘 저자 나름대로의 모자이크라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웨스트민스터사원은 영국이 불멸의 인물을 매장하는 곳입니다. 저자는 “이곳에서는 죽음과 후세가 같은 땅에 거하며, 위대한 예술과 과학적 이해가 필멸을 초월함을 우리에게 일깨운다.”라고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제프리 초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윌리엄 워즈워스,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T.S. 엘리엇, 헨리 제임스 등 영국 문학을 빛낸 이들은 물론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등과 같은 불멸의 과학자, 그리고 영국의 왕들, 주교들의 무덤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불멸의 인사들 사이에 필멸인 존재들의 흔적들이 넘쳐나는 것은 물론 때로는 불멸을 희롱하는 이도 생겨났던 모양입니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전을 세계 사람들에게 다시 알린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은 이곳을 방문하고서 “나는 생각했다. 이 수많은 무덤들은 굴욕의 보관함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이름의 불멸이란 얼마나 헛된 자랑거리인지!(21쪽)”라는 소감을 적었습니다.


인간은 불멸을 꿈꾸지만, 불멸을 두려워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제가 본방사수하고 있는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의 주인공 도깨비는 936년을 살아온 불멸의 존재인데, 도깨비신부를 찾아내 불멸을 끝내는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죽지 않는 사람」에서도 불멸의 존재가 된 주인공이 17세기에 걸쳐 살아고는 다시 죽는 존재가 되는 선택을 합니다. 죽을 운명의 모든 존재들에게는 모든 것이 회복할 수 없고 불안한 가치를 지니는데 반하여, ‘죽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들은 무한히 반복되는 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상이 지겹게 반복되는 것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를 희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삶을 같이 했던 필멸의 존재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아픔까지 겪어야 한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저자가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찾아낸 불멸과 필멸의 비밀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며, 두 번째는 세균입니다. 특히 시인구역에 묻힌 존 키츠, 브론테 자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D.H. 로런스 등은 결핵으로 일찍 죽음을 맞았던 것입니다. 저자는 병원성 세균 덕분에 수명의 진화적 의미를 깨닫기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세균은 세대기간이 매우 짧아서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고 진화할 수 있습니다. 세대기간이 짧은 대신 빠르게 진화하는 능력을 가진 세균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세균을 ‘극한친화성세균(extremophiles)’이라고 부르는데, 공기압보다 17,000배나 높은 압력에서도 살아남는 대장균, 영하15도에서 살아남은 크립포텐돌리토트롭스

(Crypotendolithotrophs), 섭씨 113도에서 황을 먹고사는 파이로코크스 퓨리오수스(pyrococcus furiosus)라는 세균도 있습니다. 다이노코크스 라디오듀란스(deinococcus radiodurans)는 이름대로 5백만 라드(rad)의 감마선을 쪼여도 살아남습니다. pH값이 0인 최고 산도에서 살아남은 세균, 땅속 900m에서 사는 세균도 있습니다.


이들이 살아남는 비결은 바로 짧은 수명과 세대기간에 있습니다. 수명이란 탄생과 죽음 사이의 평균 시간을 말하고, 세대기간은 태어나서 자식을 낳기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세균은 분열을 통하여 번식하기 때문에 수명과 세대기간이 똑같은데 짧게는 30분에 불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인간의 세대기간은 약 20-25년인 반면 수명은 70-80년입니다. 세대기간이 짧으면 개체증식이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장점에 진화의 수레바퀴를 빨리 돌릴 수 있는 장점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진화 경쟁에서는 후손을 많이 남기는 개체가 최종 승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체마다 세대기간과 수명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름대로의 개성을 지키기 위해서일까요?


저자는 노화와 장수에 대한 비밀을 이렇게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2장에서는 인간이 왜 세균처럼 단명하지 않는지 여러 종의 생물체를 비교합니다. 종을 지키려는 일관된 목표를 가진 생물체들이 진화의 수레바퀴를 어떻게 돌린 결과인지를 해석한 것입니다. 3장에서는 노화의 비밀을 캐고 노화를 없앤다면 우리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4장에서는 유전이 장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모든 동물이 공유하고 있는 특정 유전자를 조작하면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설명합니다. 5장에서는 식물이 장수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늘 자신을 새롭게 함으로써 오랫동안 존속하기 때문”에 식물이 가장 오래 살고 있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인용한 저자는 동물에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식물이 가지고 있어 장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6장에서는 일부 식물이 사실상 불멸을 누리고 있고, 유전자를 변형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죽음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설명합니다. 7장에서는 자살하는 동물의 사례를 들어서 죽음이 적응적인가 하는 의문을 살펴봅니다. 8장과 9장에서는 분자수준에서의 노화가 일어나는 기전을 살펴봅니다.


첫 번째 주제는 수명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몸집이 수명과 연관이 있다고 보았으나, 일반화하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장수마을로 알려진 곳 역시 과장과 맹신에 따른 허구로 드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장수마을이 다른 곳과 비교해서 기대수명이 나을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극단적인 장수는 허영심, 사기, 위조, 고의적 오류 등으로 얼룩졌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52쪽)라는 기네스북 편집자의 말을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장수기록은 프랑스의 할머니 장 칼망인데 1977년 사망당시 122세 5개월 2주였다고 합니다. 40년이 지나도록 이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150세까지 사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은 괄목할 정도로 늘어나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텍사스의대의 스티븐 어스태드교수와 시카고 일리노이대학의 스튜어드 제이 올샨스키교수 사이에 걸려있는 5억 달러짜리 내기는 올샨스키교수 쪽으로 기우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34년 뒤에 끝나는 내기의 결말을 제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저 역시 100수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가능할까 모르겠습니다.


장수하는 집안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그런 집안을 골라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장수하는 부모를 마치 스스로 고른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 일단은 유머로 생각했지만, 후세를 위하여 장수하는 집안과 사돈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식물의 경우 한해살이가 있는가 하면 만년이 넘도록 살아있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동물의 경우는 그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아서 장수기록을 보유중인 대양백합조개도 450년이 고작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식물 종은 수명이 훨씬 짧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종 사이에도 기대수명이 천차만별인 것을 보면 수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진화에 있음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즉 돌연변이를 통하여 획득한 변이가 자연의 선택을 받게 되면 개선된 능력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살이라는 주제는 당연히 죽음과는 관련이 있겠지만, 노화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결국 단순하게 생명을 끊는다는 의미보다는 자손을 퍼트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번식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나니 생명을 이어갈 여력이 없어져 죽음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단회번식-저자는 빅뱅번식이라고도 표현합니다만-의 사례는 식물계나 동물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대나무도 꽃을 피우면 대밭 전체가 말라죽는다고 합니다. 태평양연어 역시 부화 후에 강을 따라 먼 바다로 내려가 성장한 다음, 모천으로 돌아와 산란을 하고는 죽음을 맞는데, 그 과정에서 모천을 둘러싼 동물 및 식물생태계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한다는 것입니다.


전기 기타의 전설 지미 핸드릭스, 로큰롤의 여왕 제니스 조플린, 그리고 롤링스톤스의 멤버 브라이언 존스, 도어스의 짐 모리슨, 영국의 R&B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은 모두 27살에 죽음을 맞아 ‘27 클럽’회원이 되었습니다. 록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삶의 속도와 길이 사이의 역상관관계가 성립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를 해본 통계학자도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20세기 초반에는 ‘삶의 속도 가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빨리 살면 일찍 죽는다’라고 할 수 있는데 열정을 쏟아 부어 살면 일찍 기력이 다하여 죽음을 맞는다는 가설이고, 한때 활성산소로 인한 노화이론으로 발전하는 듯하였습니다. 하지만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대사속도는 수명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열악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면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저자는 신기(神氣)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마지막 장을 금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의 노래 「영원한 젊음」에 나오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때 / 그대의 가슴이 늘 기쁘길 / 그대의 노래가 늘 불리길 / 그대가 영원히 젊길”이라는 대목을 인용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밥 딜런의 이 노래는 자녀를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늙은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자녀가 언제까지 젊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노화를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 영생을 얻거나 혹은 장수를 얻겠다는 착상은 훌륭하지만, 구체화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노화는 단일한 현상이 아니라 신체의 여러 체계가 전반적으로 부실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수명연장의 비법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결론을 맺었지만 또 다른 신기한 역설을 감춰두고 있었습니다. 소득격차가 작은 인구집단일수록 집단 전체의 기대수명이 크다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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