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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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스페인 여행길에 돈키호테의 무대가 되었다는 콘수에그라 마을도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돈키호테를 미리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공사에서 나온 <돈키호테 1;  http://blog.joins.com/yang412/13513137>을 선택해서 읽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열린책들에서는 <돈키호테 1&2>를 모두 내놓았던 반면 시공사에서는 <돈키호테 2>를 내지 못하고, 금년 5월에서야 내놓았던 것입니다. 일단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돈키호테 1&2>를 같이 읽었어야 했습니다. 시공사의 <돈키호테>는 박철교수가 번역을 맡았고, 열린책들의 <돈키호테>는 안영옥교수가 맡았습니다. 두 책 모두 읽는 호흡이 좋은 번역입니다. 두 번역자 모두 <돈키호테>의 번역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바로 속담이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속담은 사람들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탓에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이해하지 않으면 엉뚱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전편에 나오는 돈키호테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보면 맛이 살짝 간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편력기사소설이 세인들의 인기를 끌고 있지만, 편력기사가 과거에 존재했는지 분명치 않고, 다만 당시에는 편력기사가 실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력시사가 등장하는 소설에 빠지다 못해 스스로 편력기사가 되어보겠다고 나선 것을 보면 분명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무협소설이 인기몰이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늘을 날고 칼과 창을 가지고 대결을 펼치고, 표창을 던지는 등 어린 생각에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두워진 뜰에서 목검을 들어 휘두르던 기억이 있습니다. 옆집에서 건너보았다면 달밤에 체조를 한다고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목검을 들고 강호로 나서지는 못했던 것은 사부를 만나지 못했거나 비급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칼을 들고 나서서 싸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돈키호테는 사회적 약자들을 돕고, 악인들을 물리쳐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겠다는 숭고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전편에서 돈키호테는 두 차례에 걸쳐 집을 떠나지만, 돌아올 때는 모두 볼썽 사나운 모습입니다. 첫 번째 출정에서는 멋진 성이라고 착각하는 객줏집에서 미친 사람을 놀리듯 하는 주인으로부터 기사로 서품을 받고서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기 위하여 일단 집으로 돌아오는데, 도중에 만난 톨레도의 상인들로부터 비아냥과 매질을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마을 사람의 눈에 띄어 집까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르반테스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두 번째 출정이라고 보았습니다. <돈키호테> 하면 객줏집을 성으로, 객줏집 주인을 성주로 제멋대로 이해하거나, 돌아가는 풍차를 괴물이라고 하면서 처단하겠다고 뛰어드는 무모한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돈키호테의 두 번째 출정에서는 돈키호테가 주인공이 아니라 돈키호테가 만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또 다른 이야기, 즉 삽입소설에 추임새를 넣는 조역으로 한발 비껴있는 모습입니다. 가끔씩은 황당 사건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이미 삽입소설에 빠져든 독자에게 돈키호테의 황당한 모습은 그리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짤막하게 구성되어 구미를 당기게 하던 삽입소설은 후반부에는 복수의 등장인물을 내세워 대하소설을 만드는 치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하소설 규모의 삽입소설이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되면서 우리의 주인공 돈키호테에 관한 이야기도 마무리를 짓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돈키호테를 걱정하는 고향사람들에 의하여 우리에 갇힌 채 소달구지에 실려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돈키호테>는 출간 후 3만여 권이 팔려나가는 유명세를 탔는데도 속편을 바로 내놓지 않은 이유가 분명치 않습니다. 원작만한 속편은 없다는 진리가 그때도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이 잘 나가면 속편을 생각하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다를 게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떻든 돈키호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400년 넘게 쟁점이 되어 왔을 것입니다. 앞선 리뷰에서도 지적을 했습니다만, 술, 약물, 도박, 게임 등 다양한 것들에 빠져드는 것을 중독이라고 싸잡아 말하는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돈키호테 역시 편력소설이라는 분야에 빠져든 중독자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로 포장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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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5-08-0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 나간 괴짜`는 형식이자 겉모습 혹은 배경일 뿐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2편까지 마저 다 읽으신 후에도 이런 견해를 계속 견지하신다면 `돈키호테에 대한 지독한 오해`일 수도 있다고까지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혹시라도 2편을 아직 안 읽으셨다면 마저 다 읽으신 후에 이 글과는 사뭇 다른 생각을 피력하시길 기대해 봅니다.(저로서는 2편이 아예 나오지 않았거나, 전혀 읽지 않은 독자라도 돈키호테를 정신나간 괴짜, 혹은 광인으로 단정하는 견해에는 결코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꿈과 이상을 향해 끝없이 전진하려는 돈키호테가, 그의 앞에 놓인 온갖 난관들은 `눈꼽만큼도 안중에 두지 않고` 자신이 마음에 둔 목표를 향해 곧장 돌진하는 용감무쌍한 인물이 곧 돈키호테이고, 작가는 바로 그런 인물을 끝없는 모험과 웃음을 곁들여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봅니다. 그런 주인공을 두고 `정신 나간 괴짜`로 못박는 건 너무나 아쉬운 해석이자, 소설가가 주인공에게 불가피하게 입힌 겉모습인 갑옷과 투구에 너무 시선이 빼앗긴, 쉽게 말씀드리자면 `겉으로 드러난 형식`에 너무 치우친 해석이라 여겨집니다.

처음처럼 2015-08-05 20:56   좋아요 0 | URL
2편에서 돈키호테의 새로운 면모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이슬람과 중동 문제의 모든 것
서정민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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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스페인을 다녀오면서 이슬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 지역을 다스렸던 이슬람제국이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하여 개방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는데, 예를 들면 1125년 아틀라스 산맥에서 반란을 일으켜 22년에 걸친 오랜 전쟁 끝에 알모라비데 왕국을 무너뜨린 알모아데(Almohade, ‘신의 일체성을 주장하는 자들’이라는 뜻)족은 이슬람근본주의를 추종하였습니다. 이들이 코로도바를 점령하면서 후기 우마이야왕조와 알모라비데왕국에 이르기까지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서로를 인정하던 공존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알모아데왕조가 들어선 다음 이슬람 사회에서 벌인 종교탄압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자크 아탈리의 역사추리소설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 http://blog.joins.com/yang412/13553678>에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알모아데왕조의 통치이념이었던 이슬람근본주의는 오늘날 화두가 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초기 이슬람으로의 회귀’를 내세우는 이슬람 원리주의가 등장한 것은 무슬림 공동체의 쇠락과 연관이 있습니다. 초기 이슬람은 정교일치의 지도이념으로 강력한 정치체계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근세에 들어 서구가치의 정치이념 혹은 아랍민족주의와 같은 세속적인 정치이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슬람이 정치와 분리되어 종교적 범주에 머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랍민족주의가 실패했다는 결론에 이르자 이슬람원리주의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슬람원리주의는 종교부흥과 사회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대체적으로 급진적인 경향을 나타냈다고 합니다(지중해지역원 지음, 지중해의 전쟁과 갈등 290-300쪽, 이담북스, 2012년; http://blog.joins.com/yang412/13580816)

 

이슬람 원리주의를 설명하고 나선 것은 최근에 극단적인 행동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IS (Islamic State, 이슬람국가)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달 초에 [북소리]에서 소개했던 <100년의 기록>을 우리말로 옮긴 서정민교수가 IS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원리주의의 진면목을 소개한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를 제대로 읽기 위한 몸풀기라고 할까요? 중동문제 전문가인 서정민교수는 IS가 이라크나 시리아 등의 주근거지를 넘어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도 동시다발테러를 일으키면서 세력을 무한 확장하고 있으며, 특히 이들이 인터넷과 SNS를 통하여 전 세계의 청소년들을 동조자로 끌어들이는 등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년 초에 터키여행 중에 사라진 김모군이 IS에 합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충격을 준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저자는 현재 중동과 유럽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슬람주의 과격단체와 그들이 일으키는 테러공격의 이념적 배경을 설명하여 이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들에게 현혹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들을 과격 이슬람주의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행동은 이슬람율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잘라 말합니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영향력과 권력을 강화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이슬람의 가르침을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살 폭탄 공격은 이슬람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슬람이 자살을 금하고 있는 것은 피조물의 생명을 거둘 수 있는 권리는 오직 창조주 알라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중동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고 있는 IS를 포함한 과격 이슬람주의가 태동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이어서 근세 이후에 등장한 무장조직들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21세기 테러의 전형, IS를 설명합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아 이슬람을 창시하고 이슬람 국가를 건설한 무함마드와 그의 뒤를 이어 아부 바크르, 우마르 이븐 알 카탑, 우스만 이븐 아판 그리고 알리 이븐 아비 탈립이 이슬람 사회를 영도하던 정통 칼리파시대가 가장 이상적인 이슬람사회 혹은 이슬람국가로 무슬림들은 간주합니다. 정통 칼리파 시대에 무슬림들은 북아프리카와 지금의 중동 지역 전체를 정복하여 거대한 이슬람제국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기반을 닦았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이슬람 제국에 편입되면서 이들과의 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슬람제국에 편입된 피정복 주민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졌습니다. 이슬람을 수용하거나, 자신의 종교를 유지하되 지즈야(jizya)라는 인두세를 내거나, 아니면 싸우거나 떠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면에서 보면 상당히 관용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통 칼리파시대에 광대한 영역을 아우를 수 있었던 것이 이슬람원리주의자들에게도 좋은 논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즉, 이슬람 세계가 약화되어 유럽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지금까지도 서방에 뒤처져 있는 암울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초심이란 선지자 무함마드가 알라의 계시를 전하면서 빈부격차, 지나친 물질주의, 상류층의 부도덕성, 개인주의, 권력남용 등의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여 사회를 개혁하려는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통 칼리파 시대에 이어 등장한 왕조들, 특히 압바스왕조가 이슬람제국의 영역을 서쪽으로는 이베리아반도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인도북부에 이르기까지 확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점령한 지역을 포용하였을 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꽃피웠던 학문적 문화적 성과들을 모아 정리하고 재해석하는 한편 새로운 학문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역사는 시대적 상황이 꼭 같지 않기 때문에 되풀이 할 수 없으며, 지금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 들어설 때는 영원토록 이어질 것 같던 왕조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침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권력을 둘러싸고 암투가 벌어지기도 하며, 중앙권력에 대하여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결국 제국은 와해되어 소왕국으로 분할되거나 이웃의 제국의 침략을 받아 지배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슬람제국 역시 이런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이슬람제국과 오랜 세월에 걸쳐 충돌해온 기독교 세력은 유대교와 함께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비극의 시초가 되었던 셈입니다. 예수가 탄생한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인데, 예루살렘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슬람이 지배해왔던 터라 중세 유럽사회의 화두가 되었던 성지탈환을 위한 십자군전쟁을 시발로 하여 이슬람과 기독교세력의 충돌은 불가피했던 것입니다.

 

저자는 과격 이슬람주의가 등장한 것은 1258년 압바스왕조가 바그다드까지 쳐들어온 몽골에 무너진 시기로 보았습니다.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된 몽골세력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자신들의 이슬람 해석에 따라 통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에 태어난 과격 이슬람주의의 아버지라고 하는 이븐 타이미야는 알라의 계시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기득권 세력과 갈등을 빚었지만,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확립하고 집대성한 이븐 타이미야는, “몽골에 의한 이슬람 제국의 몰락을 무슬림들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슬람 세계는 무지, 불의 그리고 지식과 믿음의 상실이 이슬람 사회의 후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오직 쿠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 하디스에 집약된 이슬람의 본래 사상과 이념으로 돌아갈 때 이런 병폐가 치유된다고 믿었다.(73쪽)”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역사가 재현될 수 없는 것은 모든 상황이 동일하게 짜 맞추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다시 돌릴 수 없는 것처럼 과거에 성공적으로 작동했던 이슬람 원리주의가 현재의 이슬람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희망에 불과하거나, 혹은 그런 제안을 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책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몽골의 침략으로 이슬람제국이 붕괴되면서 분열된 이슬람 공동체를 다시 통합한 것은 아랍인이 아닌 소아시아 출신의 오스만터키였습니다. 1300년 경, 작은 국가로 등장한 오스만터키는 아라비아반도, 북아프리카를 거쳐 지브롤터 해협에 이르고, 시리아와 이라크를 넘어 페르시아에 이르렀으며,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 초원과 오스트리아의 빈 가까이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683년 빈을 포위한 공격에서 오스트리아제국에 패한 다음 유럽세력에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이슬람 사회에 등장한 것이 이슬람부흥주의, 혹은 이슬람계몽운동이었는데, 1798년 프랑스가 알렉산드리아를 무렵으로 점령한 것이 무슬림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자말 알 딘 알 아프가나가 이끈 이슬람부흥운동은 이성을 존중하고 과학기술을 중시함으로써 이슬람의 부흥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압바스왕조가 꽃을 피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슬람부흥운동은 무슬림 형제단을 설립한 하산 알 바나 와 같은 온건 이슬람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20세기 중반 이집트 사회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최대의 사회정치세력으로 성장하자 정부는 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무슬림형제단 역시 비밀무장단체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은 유럽국가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는데, 독립 국가를 지배하는 세력들은 권위주의적인 유럽식민통치방식에 따라 중앙집권방식에 따라 통치하기 시작했고, 억압적인 국가에 저항하는 이념과 운동이 출현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현대 이슬람 과격주의가 태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란의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이 팔레비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혁명에 성공하면서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같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은 크게 고무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동서냉전이 심화되면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을 계기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합작하여 이슬람용병들을 훈련시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소련군을 몰아내기에 성공한 다음, 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것이 알 카에다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해방 이후에 알 카에다의 구성원들은 아랍 국가들로 흘러들어 대 서방 테러활동을 강화하기에 이르렀고, 그 일부가 IS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이계기가 되어 시작한 이라크 전쟁을 통하여 사담 후세인의 철권통치가 무너진 다음에 사담 후세인의 진영에 있던 전사들이 IS에 가담하게 되면서 세력이 급속하게 팽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IS 역시 출범 초기부터 자신들의 활동목표는 이슬람법에 기반을 둔 이상국가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천명하였습니다. IS의 지도자 알 바그다디는 이름을 아부 바크르로 바꾸고 자신을 칼리파라고 선언했는데,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 사후에 이슬람공동체를 다스린 첫 번째 칼리프의 이름입니다. 이슬람법에 따르면 칼리파는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충성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슬림들의 정서를 교묘하게 자극하여 충성을 이끌어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전 세계로부터 IS에 가담하겠다는 자원자가 몰려들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IS는 외국인들을 참수하거나 화형에 처하는 등 밖으로 드러나는 잔인성보다도 자신들의 이념에 따르지 않는 무슬림을 포함한 이민족과 타 종파에 대하여 무차별 공격을 가하여 몰살시키는 인종청소를 벌이는 범죄적 행위를 일삼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이슬람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하면서도 그들은 점령지의 여성들을 무자비하게 성폭행하거나 노예로 파는 등 비윤리적 행동을 일삼고 합니다. 심지어 IS의 핵심지도부는 이슬람율법이 정하는 하루 다섯 번의 예배조차 드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이슬람 규율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이념에 불과하다고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중적 행태를 직시할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에서 그들의 정체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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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사람과 소통하기 중남미지역원 학술총서 15
Tracy Novinger 지음, 김우성.임두빈 옮김 / 이담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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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시작한 ‘아내와 함께 하는 해외여행’을 이어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남미여행도 가보고 싶은 곳의 가장 위에 있기 때문에 조만간은 다녀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여유 있게 책도 읽고 관련 정보도 찾아보는 등의 준비가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남미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조금씩 하려고 합니다. <브라질 사람과 소통하기>도 그런 공부의 일환입니다. 이 책을 쓴 분은 부동산 투자 관련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고 하니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조금은 독특하다 싶습니다. 카리브 출신이면서 브라질에서 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브라질에서 살면서 겪은 브라질 사람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점은 지금 살고 있는 미국에서 겪는 미국인들과 비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종의 비교문화인류학적 기법이라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브라질 문화를 조목조목 철저하게 분석하거나 브라질 문화와 미국 문화를 조목조목 비교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브라질의 두드러진 문화적 특징들을 강조하고 브라질 문화 내에서 그 기능들을 설명함으로써 외국인들이 브라질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도와주려는데 목적이 있다.’라고 머리말에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이유 역시 멀다고만 느껴왔던 브라질이 어느새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더라는, 즉 무역, 체육, 학술, 관광 등 다양한 이유로 브라질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우리 한국사회가 브라질의 사회와 문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적었습니다. 특히 한국과 브라질 수교 50주년과 브라질 이민 50주년에 즈음하여 뜻깊은 기획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모두 4부분으로 되어 있는 본문 가운데 핵심은 ‘찬란하게 빛나는 모순의 땅’이라는 제목을 단 두 번째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브라질의 역사, 원주민과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섞여든 혈통, 사회조직이나 경제는 물론 가치관과 정체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다룬, 존 찰스 채스틴의 <아메리카노; http://blog.joins.com/yang412/13691658>에서도 브라질의 독립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습니다만, 포르투갈의 식민지 브라질을 경영하는 방식이나 브라질이 독립하는 과정은 남미제국과 스페인과의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는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한 포르투갈 왕실의 선택은 본토를 포기하고 식민지 브라질로 왕실을 옮긴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물러난 뒤 왕실이 본국으로 복귀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주앙 6세는 큰 아들 페드로를 브라질에 남겨 브라질 제국의 왕이 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브라질은 남미대륙의 절반이 넘는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어, 포르투갈 왕실은 15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귀족들이 나누어 다스리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지리적,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브라질 사람들은 지역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상파울루 사람들은 성실하고, 리어 사람들은 노는 것을 좋아하고, 미나스 사람들은 검소하고, 북동부 사람들은 내성적이며, 남부 사람들은 매우 독립적이라는 것입니다. 지역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다른 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브라질 사람들의 특성 가운데 주목할 것은 ‘제이뚜’ 혹은 ‘제이칭뉴(jeitinho)’라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독특한 방식인데, 일종의 편법에 가까울 수도 있는 것이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제이칭뉴를 사용하는 것이 심각한 위반이나 문제를 일으킬 만한 편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브라질 사람]는 세상에서 가장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다…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제이뚜)를 찾을 수 있다.(235쪽)’라고 말하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이뚜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며, 때로는 다른 사람이 희생될 수도 있다고 하니,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경험해보면 브라질 사람들은 머리회전이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브라질 국민들은 매력적이며, 이들은 즐겁고, 온화하고, 따뜻하겨, 특히 외국인에게 매우 친절하다.(245쪽)’라는 평을 듣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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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1만 년의 시간여행 1 - 동서 문명의 교차로, 자세히 읽기 터키, 1만 년의 시간여행 1
유재원 지음 / 책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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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게 된 책입니다. 적지 않게 나와 있는 터키여행에 관한 책들 가운데 유적에 관련된 정보가 가장 풍부하게 담겨 있는 책으로 보았습니다. 책을 쓰신 유재원교수님은 그리스로 유학하여 그리스어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그리스에서 공부하는 동안 터키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고, 그 여행이 인연이 되어 터키를 자주 방문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저자께서 터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생기게 된 동기입니다. 그리스에서 유학할 때 처음 닥친 부활절 방학기간 중에 떠난 터키여행에서 찾았던 아야 소피아대성당에서 만난 독일 고등학생들에게 인솔하신 선생님께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막상 자신은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무지로 인한 절망감에서 울음이 북받쳤고, 울음은 오열로, 통곡으로 이어졌는데, 결국은 자신의 무지를 아들과 딸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서야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녀분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보통사람들을 모두 구제하시겠다는 생각을 하셨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지난해 방문한 스페인을 돌아보면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구경은 했지만, 충분히 준비를 하고 갔더라면 또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터키 여행는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길목에 위치하여 소아시아라고도 부르는데, 이러한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고대로부터 다양한 문명이 충돌하는 요지였던 까닭에 다양한 유적이 풍부한데, 그 유적들에 얽힌 이야기들의 범위가 방대하여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권으로 나누어 엮은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에서 먼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설명하고, 이스탄불에서 볼 수 있는 유적들에 대한 설명으로 터키여행을 시작합니다. 이어서 터키의 수도 앙카라 등 20여 의 핵심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인근지역을 돌면서 그 도시의 역사적 배경은 물론, 그곳에서 만나는 유적들에 대하여 풍부한 사진을 곁들여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저자가 그리스어를 전공하셨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는 물론 이 지역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풍부하게 인용하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모든 지역에 대한 설명이 앎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만, 이번 여행에서 방문할 예정인 지역의 경우는 돌아보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체적으로 우리는 중동보다는 유럽에 대하여 더 많이 공부를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 로마의 신화는 알아도 이집트, 페르시아 등의 역사는 깊이 알지 못하는 편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강역이 그리 크지 않은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왕조가 존속한 기간이 긴 편인데, 중동지방의 경우는 왕조의 교체도 자주 있었고, 하나의 왕조가 무너진 다음에 작은 왕국들이 수없이 등장하여 힘겨루기를 하다가 다시 힘센 왕국으로 통합되는 과정이 반복되다보니 특정 지역을 지배한 왕국의 변천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은 연대별로 일어났다가 스러진 왕조들이 차지했던 강역들을 정리해보면 개념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점이 보완되면 완벽해지지 않을까요?

 

유적의 다양성도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은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종교관련 유적도 다양하고, 특히 타 문명과 종교에 비교적 관대하였던 이슬람의 가치철학 때문에 기독교나 유대교의 유적도 다수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지중해를 경계로 하여 대륙의 판들이 충돌하는 지역이다 보니 지진활동이 왕성했던 것이 전쟁으로 인한 파괴에 더해서 과거에는 빛났던 유적들이 파괴되고 스러진 결과를 낳았던 점이 아쉽기만 합니다.

 

부피가 부담스럽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은 터키에 갈 때 짐에 챙겨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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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2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터키 가기 전, 이 책 두권을 구매했어요. 다는 읽지못하고 갔지만요.‥ 좋더군요 아야소피아에서는 하루종일 머무르고 싶은 정도였습니다.

처음처럼 2015-08-01 07:26   좋아요 0 | URL
받아놓은 일정이 너무 짧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프레이야 2015-08-01 09:48   좋아요 0 | URL
네, 후기 기대합니다

처음처럼 2015-08-03 20:15   좋아요 0 | URL
넵...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2015-07-28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처럼 2015-08-01 07:27   좋아요 0 | URL
다음달 초에 다녀올 예정인데, 늘 그렇지만 해야 할 일들이 밀려들고 있는 것도 문제네요..
 
베네치아의 돌 - 아트 라이브러리 19 아트 라이브러리 19
존 러스킨 지음, 박언곤 옮김 / 예경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오랫동안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의 맨 위에 올라있던 존 러스킨의 <베네치아의 돌>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베네치아하면 운하를 미끄러져 가는 곤돌라와 곤돌라 사공이 부르는 노래가 떠오릅니다. 3년 전 이탈리아 스트레사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할 때 시간을 내어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2년 전 [북소리]에서 소개한 <건축의 일곱 등불; http://blog.joins.com/yang412/13284036>을 통하여 존 러스킨을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을 옮긴이는 “건축의 미학적 개념과 사례를 말하고 있지만 그의 도덕관, 종교관, 경제관을 바탕으로 종합적 사고로 우리에게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건축 자체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성찰을 유도한다(건축의 일곱 등불 299쪽)”고 평하였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화가, 예술비평가인 동시에 위대한 사회개혁 사상가였던 존 러스킨(1819-1900)의 관심사는 예술을 비롯하여 문학, 자연과학(지질학과 조류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방면에 걸쳐 있어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우리나라에는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존 러스킨의 드로잉>, <황금강의 임금님>, <베네치아의 돌>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러스키과의 만남이 이어진 것은 프루스트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러스킨에 매료되어 있던 프루스트는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면서 방대한 분량의 역자 서문을 붙였는데, 이 서문은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 http://blog.joins.com/yang412/13437547>에서 소개된 바 있습니다. 프루스트는 <독서에 관하여>에서 “독서란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그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들과의 대화라고 주장한다.(독서에 관하여 29쪽)”라는 러스킨의 말을 인용하면서, “독서는 대화와는 다르게 혼자인 상태에서, 즉 고독한 상태에서 지적인 자극을 계속해서 즐기고 영혼이 활발히 활동하게 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독서관을 보였습니다.

 

이밖에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사라진 알베르틴; http://blog.joins.com/yang412/12927835>에서도 러스킨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알베르틴의 비밀을 알게 된 마르셀이 그녀의 문제에 무관심해지기 위하여 어머니와 함께 베네치아로 향합니다. 굳이 “점심 식사 뒤, 혼자서 베네치아의 시가를 산책하지 않을 때에는, 러스킨에 관한 연구를 적어 둔 공책을 가지러 내 방에 올라갔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사라진 알베르틴 293쪽, 국일문화사)”라는 구절을 들지 않아도, 곤돌라를 타고 수로를 지나면서 만나는 풍경을 마치 중계하듯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곤돌라를 타고 대운하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양쪽에 늘어선 귀족 저택이 장밋빛 측면에 빛과 시각을 반사시키고 있는 광경을, 그것이 유명한 건물이라든가 사저라기보다도, 저녁 무렵에 쪽배를 타고 일몰을 보기 위해서 그 밑까지 간, 잇닿은 대리석 절벽같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 풍치를 바라보았으니까 말이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사라진 알베르틴 273쪽, 국일문화사)”

 

프루스트의 작품을 읽다보면 러스킨이 <베네치아의 돌>에 무엇을 기록했는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점점 커졌지만, <베네치아의 돌>은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 다니기 시작한 마을 도서관의 귀퉁이에 숨어 있는 이 책을 발견하였을 때 기쁨보다는 놀라움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러스킨이 스케치한 산 마르코 성당이 아닐까 생각한 표지가 사실은 윌리암 터너라는 화가가 1834년에 그린 <베네치아 세관과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일부라는 설명에 조금 실망했고, 옮긴이가 적은 머리말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베네치아의 돌>은 러스킨이 1851년부터 1853년까지 집필한 모두 3권의 책의 내용을 요약한 내용을 담았다고 해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러스킨 자신도 원본에서 너무 많은 어휘를 사용했다고 해서 1877년 트레블러 출판사에서 ‘요약본’을 출간하면서 원본이 1/4로 축소되었다고 옮긴이는 설명합니다. 요약본에서는 건축의 원리를 제시한 ‘건축의 길잡이(do it yourself)’와 ‘고딕의 본질(The Nature of Gothic)’에 관한 글이 생략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옮긴이는 저자의 요약본에서 빠졌던 첫 번째 책의 내용들을 대부분 포함시켰으며, 오히려 장식에 관해 지나치게 장황하게 설명한 부분을 생략했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옮긴이가 건축을 전공했기 때문에 장식에 대한 배려가 소홀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네치아의 돌>이 ‘분명 대단히 독보적이고 흥미로운 책이며, 순수한 교과서적 건축론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건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목차에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은 나타나지만 세 번째 책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책에서는 아예 빠져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벽, 코니스, 아치, 지붕, 버트레스, 중첩을 비롯하여 장식을 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첫 번째 책의 내용은 주로 건축의 원리에 관한 내용을 다룬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은 베네치아에 세워진 건물들을 중심으로 비잔틴 시대, 고딕 시대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양식을 설명합니다.

 

러스킨은 제1장 탐색에서 왜 베네치아의 건축을 논하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모든 건축은 나쁘건 좋건, 옛 것이건 새 것이건 간에 그리스에서 파생되어 로마를 거쳐 왔으며 동방에 의해 채색되어 완성되었는데, 베네치아의 건축이 그 기원에서부터 줄곧 나머지 유럽의 건축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같은 동네에 건축을 전공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이 시카고로 이사를 가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시카고는 미국의 근대 건축의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시카고에 세워진 건물들이 미국의 근대 건축의 시대적 변모상을 오롯이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러스킨에 따르면 베네치아의 건축이 유럽 건축의 시대적 변화상을 담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적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해석합니다.

 

우선 러스킨은 건축물이라고 하면 세 가지 미덕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전제합니다. 1. 건물은 기능이 좋아야 하고, 의도한 대로 최상의 효율로 이루어져야 한다, 2. 건물은 잘 설명되어야 하고, 의도한 대로 가장 좋은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3. 건물은 보기 좋아야 하고, 기능이나 표현이 어떻든 간에 건물이 있음으로 해서 기쁨을 주어야 한다.(27쪽) 결론적으로 건물은 보는 사람이나 사용하는 사람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장에서는 보호와 위치라는 건축의 임무를 제시하면서 ‘건축의 6가지 분류’를 제목으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분류의 어느 한 항목도 보이지 않아서 무슨 내용을 담았던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건축물의 벽체의 전형으로 알프스를 든 것은 러스킨의 사유의 폭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알프스는 벽체의 전형이 어떠한지를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건축물의 한 단편으로서 아주 뛰어난 예라 할 수 있다. (…) 이 꼭대기의 코니스는 거의 150피트(약 46m)의 높이에서 육중한 측면을 굽어보고 있는데, 이는 빙하면에서 3,000피트(약 900m), 해수면에서 14,000피트(약 4200m) 위에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진실로 장엄한 벽이며, 알프스 산맥 몬테체르비노 전역에서 가장 가파르고 가장 견고한 존재이다.(45쪽)”

 

옮긴이는 장식에 관한 부분이 지나치게 장황하여 생략했다고 합니다만, 장식에 관한 러스킨의 생각은 매우 독특한 것 같습니다. 러스킨은 장식은 신의 창조물과 인간의 창조물로 구분하고, 모든 고귀한 장식은 신의 창조물에 대해 느끼는 인간의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인간 자신이 창조한 것들은 천박하고 저급한 것으로 치는 것입니다. 장식의 기능이란 그것을 보는 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인데 “진정한 행복은 신을 응시하는 것으로, 신이 하는 일들과 신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신의 율법을 따르고 신의 의지에 당신을 맡기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91쪽)”라고 본 것입니다. 신이 창조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장식의 소재가 될 수 있는데, 추상적인 선, 대지, 물, 불, 하늘의 네 가지 요소와 동물의 유기체를 모방한 형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장식의 취급’이라는 장에서 러스킨은 베네치아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느릅나무와 잎이 무성한 포도넝쿨 사이에 한 두 갈래로 평평하게 펼쳐져 있다. 나무의 얇은 잎사귀들은 홍조를 띄고 포도송이는 점차 짙은 푸른빛을 띠어간다. (…) 태양은 천천히 솟아오르고, 돌로 광장의 하얀 벽을 강렬히 내리쬔다. 브렌타 강의 갈라진 지류에 자리한 황량한 무대는 불규칙적이고 반쯤은 흐르지 않는 수로를 형성하며, (…) 약 200야드를 걷고 나서야 비로소 수로 말단의 강가로 난 양측 긴 계단을 가진 낮은 선창에 도달하게 된다. 그곳은 온통 베네치아의 검은 배들로 덮여 있다. (…) 노를 저어감에 따라, 곤돌라의 측면을 가볍게 쓸어 올리는 노의 궤적은 마치 은빛 부리를 앞으로 내뻗는 것과 같다. (…) 서쪽으로는 메스트레의 탑이 빠르게 멀어져 가고, 그 뒤로 시든 장밋빛 석양이 서서히 물들어 간다. 네다섯 개의 돔과 끝이 Qy족한 말뚝들이 멀리 보이는 희미한 형체들 속에서 확연히 솟아나 보이지만, 처음 눈길을 끈 것은 북쪽 위로 피어오르는 음침한 검은 연기구름이며 그것은 교회의 종탑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베네치아이다.(107-109쪽)” 한폭의 세밀화를 그리듯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곳인가 봅니다.

 

두 번째 책은 베네치아 지역에 세워진 건물들을 건립방식에 따라 비잔틴 시대, 고딕 시대,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비잔틴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베네치아에서 북쪽으로 7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토르첼로섬에 있는 토르첼로 성당과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을 들었습니다. 러스킨은 건물의 모양만을 두고 논의한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지까지도 살피고 있습니다. “토르첼로 교회는 심지어 황혼이 깊을 때조차도 조각품과 모자이크들이 지극히 세밀한 부분까지도 자세히 드러난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에 햇빛이 자유롭게 들어오도록 허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거기에는 더더욱 우리를 감동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125-126쪽)”

 

저자는 고딕시대의 건축물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고딕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흔히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고트족의 문화적 배경이 얕은 점을 꼬집기 위해서 고딕양식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야만성을 고딕의 정신의 맨 위에 두곤 합니다만, 러스킨은 변화성과 자연주의, 견고성 그리고 잉여성 등을 고딕의 특징으로 꼽고 있습니다. 즉, 예술적 창안이나 계획은 위대한 로마네스크나 비잔틴의 장인보다 못했지만, 장식적 감성과 풍부한 상상력에 더하여 사실에 대한 사랑을 더한 점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인 고딕의 장인들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고백하는 겸손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을 진실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고트족의 후예로서의 시각이 개입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두칼레궁전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러스킨은 ‘두칼레 궁전에 대한 글은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산물 중의 하나이다’라고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두칼레 궁전은 산 마르코광장을 사이에 두고 산 마르코 대성당과 복합적 형태로 지어졌고, 건축 이후에 몇 차례 화재가 있었기 때문에 비잔틴 양식과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섞여 있어, 개별 양식의 원형으로 기준이 되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베네치아를 구경했더라면 <베네치아의 돌>에 담은 러스킨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네치아에 갈 때 건축물들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를 정립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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