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슬라보예 지젝 특강
슬라보예 지젝 지음, 민승기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칸여행에서 류블라냐대학의 슬라보예 지젝교수 등 17명의 현직 철학교수들이 영화 <매트릭스>에서 철학적 의미를 읽어낸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 한편을 두고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고, 특히 지젝교수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젝교수는 독일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이론화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저술로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두 차례 방문하여 대중강연을 한 바 있다고 하는데,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는 2012년 6월 27일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의 초청으로 열린 같은 제목의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당시 ‘아랍의 봄’에 이어 ‘월가를 점령하라’, 스페인의 ‘분노하라’ 운동 등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사회불복종 운동이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가 사회적 관심으로 대두되었던 것을 반영한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정치활동을 피안의 것으로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에게 참다운 정치란 대중과 소통하는 것, 그러기 위하여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관심이 크다는 점은 청중을 본론으로 이끌기 위하여 두 편의 영화를 인용하는 것으로 알 수 있겠습니다. 1930년대 허리우드가 만든 영화 <니노치카>와 1990년대의 영국영화 <브레스트 오프>입니다. 배경과 주제는 다르지만 커피라는 공통점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니노치카>에서는 커피는 동일하지만 우유 혹은 프림이 들어가는가에 따라 커피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암시하고, <브레스트 오프>에서는 커피를 빙자한 이중부정을 통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을 건드리는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커피 이야기를 인용한 것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은연중에 암시되는 함의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결국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도덕주의의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의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지적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에 대한 비판입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현실에서 보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해결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식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상황이 절망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온전히 그 삶의 일부가 될 것이 아니라 물러나 사유해야 한다.(67쪽)’ 그러니까 철학을 일상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강연이 끝난 뒤에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정리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공산주의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저는 공산주의를 어떤 긍정적인 방식으로, 다시 말해서 미래의 더 나은 사회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이야기한 ‘공산주의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말은 유효하다는 것인데, 이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서의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진리로서의 공산주의를 의미한다고 읽었습니다. 그가 여전히 맑스주의자로 남아 있다고 말한 점을 고려한다면 말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6-03-0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꽤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처음처럼 2016-03-06 23:17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려 애를 썼읍니다만,
능력이 부족했는지 분명히 손에 잡히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가장 행복한 여행자들 - 지구 곳곳의 생생한 이야기
패트릭 피츠후프 외 지음, 박미숙 옮김 / 금토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 같은 사람도 여행관련 칼럼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독서계는 여행기가 블루오션인가 봅니다. 글쓰는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제목만 보고 고르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패트릭 피츠후프 등 22명(외 22명이라고 표지에 적은 것은 옥의 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앞글’은 여행기가 아니라 일종은 여행기 묶음을 소개하는 글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의 여행작가(지명도에서 차이는 있는 듯합니다만, 분명 여행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분들입니다.)의 길고 짧은 여행기를 담고 있는 <세상에 가장 행복한 여행자들>를 고른 것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다녀온 장소도 글 솜씨만큼 다양해서 프랑스 파리가 두 번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코스타리카 과나카스테, 자이르 킨샤샤, 인도 뉴델리, 베트남 사파, 미얀마 만달레이 등 전세계에 걸친 다양한 지역이 등장합니다. 이야기의 주제도 다양해서 코스타리카를 여행한 패트릭 피츠후프는 쿨레브라라고 부르는 독사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렇시아 남성의 숭고한 자연사랑 정신을 담았는가 하면, 조노 마커스는 경찰행세를 하면서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꾼들이 우글거리는 케냐의 몸바사에서 당한 급박한 상황을 풀어놓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팬암항공사 조종사를 지낸 조세프 디드리히는 고속도로에서 고장이 난 차를 고쳐주기 위하여 몇 시간을 쏟아 부은 자이르의 ‘시민’ 믈렝게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환락의 도시 태국 방콕을 여행한 여성 자나 바흐는 자신이 꿈꾸었던 일탈을 결국은 포기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아참, ‘나의 이번 여행이 아무런 목적이 없어 보이는 날이 있었다(48쪽)’라고 고백한 브래드 뉴샘이 인도 뉴델리에서 만난 귀청소부 알리의 이야기는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어디에선가 읽어본 내용입니다. 스물두편의 여행기 가운데 길이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글 솜씨로 보나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한 것은 미국인 여행작가 제프 그린왈드가 현지가이드에 홀린 독일 유부녀와 함께 티베트의 성산 카일라스에 다녀온 이야기라고 보았습니다. 사이먼 윈체스터가 앞글의 모두에서 지적한 것처럼 여행이란 인내와 고통이 따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같습니다. 윈체스터에 따르면 여행을 뜻하는 ‘travel’은 고통을 의미하는 ‘travail’에서 왔고, 이 단어의 어원은 고대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고문도구를 뜻하는 ‘triphalium’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티베트 사람들이 캉 린포체, 즉 ‘눈으로 만든 귀한 보석’이라고 부르는 카일라스에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그린왈드는 카트만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의 네팔과 인도의 국경도시 네팔간지로 간 다음, 이곳에서 예티항공을 이용하여 해발 2,350미터에 위치한 시미코트라는 작은 공항으로 가서 트레일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물론 에티항공은 현지의 기상에 따라 예정된 비행편이 취소되기 일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린왈드가 시미코트에 도착하자마자 고산병 증상을 호소하는 장면입니다. “모든 게 얼마나 빨리 나타나는지, 고통이 맨 먼저다. 한 걸음 한 걸음 헐떡임이 심해지고, 평상시에 비해 산소량이 적어지면서 뇌가 퍼덕거리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린다.(146쪽)” 겨우 해발 2천 미터 대에서 그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제 경우는 4천 미터 대에서도 그럭저럭 견뎠는데 말입니다.


정작 그린왈드를 괴롭힌 것은 고산병이 아니라 동행한 독일인 유부녀가 가이드를 독점하려는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폭발 직전에 도달한 그린월드의 화를 가라앉혀준 것은 같이 여행을 하게 된 래프팅 가이드 로이스였습니다.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 차 카일라스에 온 로이스는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그들은 우리 자신의 분노를 다스릴 값진 기회를 주고, 자만심을 무너트리게 하기 때문이다.(163쪽)”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 역시 단체여행을 하다 보면 마음 쓰이는 순간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이럴 때마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새기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소개드린 그린왈드의 여행기는 물론 다른 21개의 여행기도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나라들
토니 휠러 지음, 김문주 옮김 / 컬처그라퍼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지난해부터 여행은 저의 책읽기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토니 휠러의 <나쁜 나라들>은 최근에 다녀온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읽게 되었습니다. 토니 휠러는 여행자들에게는 복음서와 같은 여행 전문서적들을 내고 있는 출판사 론리 플래닛의 창설자입니다. 저자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몇몇 국가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을 계기로 이상하고 나쁜 나라의 속살을 직접 들여다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자가 나쁜 나라로 분류하는데 적용한 악의 계수는 과학적인 측량법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세 가지 기준을 적용했다고 했습니다. 자국민을 어떻게 다루는가, 테러리즘에 관련되어 있는가,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되는가 등인데, 각 분야마다 0(문제 없음)에서 3(악의 전형)까지 점수를 매겨서 합산한 값으로 정했는데, 개별 지표에 대하여 각국의 사정을 들어 가감하기도 합니다. <나쁜 나라들>에는 리비아, 미얀마(미얀마),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이라크, 이란, 쿠바 등 9개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수긍이 가는 국가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가 포함된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각국을 여행하게 된 동기는 물론 입국에서 출국까지의 과정, 각국에서 무엇을 보고 겪었는지, 음식이라든지 만난 사람들에 관한 것까지 시시콜콜 적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국이 처한 국내외 상황에 관한 역사적 사실도 요약하고 있어 이해를 돕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 양비론을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과연 역사를 기록하는데 있어 중립적인가하는 문제는 논외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에서 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다. 북한은 남한이, 남한은 북한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양측에는 팽팽한 전운이 감돌았고, 양측에 자금과 무기, 전술을 지원한 미국과 러시아 역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 한국전쟁에서 누가 먼저 총격을 시작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찌 되었건 결국에는 일어나고 말았을 전쟁이었다.(109쪽)”


바로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석좌교수)가 1981년 출간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겼느냐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전은 해방 이후 만들어진 내부의 모순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성격을 규정함으로써 나오게 된 ‘남침 유도설’ 또는 ‘남침 묵인설’에 공감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한측이나 미군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개전 직후부터 밀리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낙동강변으로 밀려내려갔겠는가 하는 정도만 생각해도 모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북한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나쁜 나라로 규정하고, 저자가 정한 악의 계수 7점으로 가장 높은 국가로서 구제불능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2007년에 출간된 점을 고려한다면 쿠바에 대한 저자의 기술은 많이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과 쿠바는 2015년 7월 1일, 54년 6개월만에 국교를 정상화한다고 전격 발표한 이래 쿠바의 국내 사정이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를 국시로 하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경제운용 면에서는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허용되는 개인사업의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고, 개인들 역시 자본주의에 눈을 떠가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동안 방치되었던 사회 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퇴락한 건물들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등, 역동적인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아바나의 거리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올드카가 넘쳐나고 있는 것인데,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에 소비재의 수입이 여의치 않았던 탓에 지금은 보기 힘든 올드카가 거리마다 넘치고 있었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쿠바사람들이 이미 단종된 올드카의 부품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는 것인데, 앞으로는 보기 힘들 수도 있어서 일찍 쿠바를 방문할 것을 권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머지 7개국을 방문하면서 저자는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우선적으로 챙겨보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몇 개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한나절에 돌아보는 등 주마간산 식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100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3주간의 긴 여행을 하면서 여행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왜 여행을 떠나는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대체적으로 두루뭉술하게 답변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앎을 넓히고, 삶에 대한 시야를 넓힌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남이 다녀왔다는 이유로 가보는 따라쟁이도 있고, 남들과는 차별화된 무엇을 만족시키려는 자기만족형 혹은 과시용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행이야기>는 왜 여행을 떠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여행의 초대’라고 한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여행의 역사를 더듬어봄으로써 여행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의 형성과 같이 해왔는지를 생각해볼 것이고, 그 다음에 여행의 사회학적․심리학적 의미를 추적함으로써 여행에 대한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5쪽)”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책의 전반부에서는 고대로부터 근대의 대항해시대에 이르기까지 여행의 역사를 짚고, 이어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여행을 하는가를 살피고 있습니다. 여행에 대한 단상은 여행에 대한 저자의 소략한 상념을 정리한 것인데, ‘여행은 여성 해방의 지표인가’라는 부제를 단 “참여와 배제”라는 마지막 장은 전체 맥락과는 조금 동떨어진 주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자는 여행의 기원을 인류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오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동부지역에 등장한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한 것을 여행의 시초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식량을 구하기 위한 이동을 여행으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를 생각해볼 일입니다.


저자 역시 생명유지와 종족 보존이라는 차원에서의 이동의 본능이 인류 역사의 궤적을 이루고 있지만, 19세기 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이동을 근대적 의미의 여행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즉 여가활용의 방법으로 이동, 즉 여행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관광으로서의 여행을 맨 처음 유행시킨 것은 북서부 유럽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영국사람들은 기후 탓인지 일찍부터 유럽의 온천지대를 즐겨 찾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6개월에 걸쳐서 프랑스를 거쳐 로마에까지 이르는 긴 여정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들어 영어에 ‘touriste’라는 합성어가 등장하고, 존 머레이는 유럽대륙의 여행안내서 <여행편람(1838)>을 펴내기도 했던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나는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조금 특별해보입니다. 폴 모랑의 <여행>에 나오는 “근대적 의미에 있어서 여행은 반사회적 행동이다. 여행자란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자이다.(51쪽)”라는 구절을 인용한 저자는 여행의 의미로 도피를 먼저 거론합니다. 하지만 빚쟁이처럼 야반도주하는 경우나, 현실에 마주하기에 지친 사람의 경우도 있겠지만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여행이 모두는 아닐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글의 말미에 “여행이란 단순하게 말하자면 세계의 다양성과 마주하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의 여행에는 그들을 떠나게 만드는 복잡한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이다.(58쪽)”라고 정리한 부분이 더 공감된다 하겠습니다.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한 발짝 두 발짝 혹은 느리게’라거나, ‘조금씩 나를 비우기’와 같은 원칙적인 이야기도 나오면서, 인증샷에 대해서도 ‘소유냐 존재냐’하는 거창한 논제로 발전시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란 그 동안 내적으로 축적된 정보와 지식과 통찰의 능력이 외부의 경험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되도록 많은 사물, 장소 그리고 사람들과 접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70쪽)”라는 여행의 정의가 철학적이면서도 실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도 조금은 논점을 비약시키는 것 아닌가 싶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단상에서도 ‘여행을 근대적 형태의 전쟁’이라는 도전적 시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 역시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든 여행의 의미를 새겨보는 좋은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정일, 작가 - 43인의 나를 만나다
장정일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언젠가는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는 인터뷰어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김명수기자의 <인터뷰 잘 만드는 사람; http://blog.joins.com/yang412/13046338>을 읽고서 막연하던 생각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하면, <장정일, 작가>를 읽고서는 윤곽이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시인이자 작가 장정일은 <장정일, 작가>는 ‘장정일이 만난 작가’를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장정일작가 역시 젊어서 인터뷰어를 꿈꾸었다고 합니다. “인터뷰는 명성 있는 인사를 만나, 그들을 독선생으로 모시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다가 이 일은 유명 인사의 후광에 힘입어 내 이름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11쪽)”라는 속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세 번씩이나 인터뷰어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매번 ‘때려죽여도 하기 싫은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창작은 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던데 반해, 인터뷰는 상대의 말을 듣는 기술이다. 창의적인 일이라고 내세우기 꽤 애매한 이 일은, 글을 정리하면서 인터뷰이의 눈치도 봐야 하고, 자칫하면 욕까지 얻어먹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장정일, 작가>는 그가 마지막으로 맡았던 인터뷰 연재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장정일, 작가>에서는 모두 43명의 인터뷰이를 만나고 있습니다. ‘장정일이 만난 작가’를 의미한다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터뷰이들 모두 책을 쓴 작가들입니다. 다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작가라고 부르는 소설가나 시인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협소한 의미의 문학으로 온전하게 포획되지 않는 또 다른 문학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교양과 글쓰기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즉 언어로 사고하는 사람들, 그것을 문서의 형태로 남긴 사람들 역시 작가라고 함이 옳겠다는 장정일 작가의 철학을 내비친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만난 43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들을, ‘1부 시대를 만나다, 2부 교양을 만나다, 3부 인문을 말하다’로 구분하였습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면 장정일작가의 시야가 얼마나 넓게 열려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부 시대를 만나다편에서는 문화연구자, 일문학자, 음식칼럼니스트, 사진작가, 정치평론가, 희곡작가, 영문학자, 극작가 등을, 2부 교양을 만나다편에서는 만화가, 나무칼럼니스트, 영화저널리스트, 칼럼니스트, 소설가, 큐레이터, 연극평론가, 영화문화연구자, 지구물리학자, 기업인, 바이올리니스트, 미학자, 방송인, 3부 인문학을 만나다면에서는 역사학자, 한국문화연구자, 방송기자, 동양철학자, 서양사학자, 인도사연구가, 자유저술가, 생태경제학자, 정치학자, 러시아문학연구자, 고전평론가, 강호동양학자, 국문학자, 문학자, 신화학자, 역사에세이스트, 한국고대사학자 등으로, 중복되는 분야라고는 5개 정도에 불과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매번 서평 혹은 에세이를 쓴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했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장정일 작가는 인터뷰이가 쓴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저자의 집필의도 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정일, 작가>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인터뷰한 저자 혹은 그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는 결과를 낳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작가가 만난 인터뷰이의 작품 가운데 몇 권을 챙겨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서평을 담은 책의 경우는 원작이 서평을 쓴 사람의 생각으로 굴절되어 전해지는 반면, <장정일, 작가>의 경우는 장정일 작가의 해석에 더하여 원작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론의 뭇매를 각오하면서까지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것들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담은 일문학자 박유하와 서양사학자 이용우의 책을 우선 고를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