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슬라보예 지젝 특강
슬라보예 지젝 지음, 민승기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3년 5월
평점 :
발칸여행에서 류블라냐대학의 슬라보예 지젝교수 등 17명의 현직 철학교수들이 영화 <매트릭스>에서 철학적 의미를 읽어낸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 한편을 두고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고, 특히 지젝교수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젝교수는 독일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이론화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저술로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두 차례 방문하여 대중강연을 한 바 있다고 하는데,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는 2012년 6월 27일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의 초청으로 열린 같은 제목의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당시 ‘아랍의 봄’에 이어 ‘월가를 점령하라’, 스페인의 ‘분노하라’ 운동 등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사회불복종 운동이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가 사회적 관심으로 대두되었던 것을 반영한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정치활동을 피안의 것으로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에게 참다운 정치란 대중과 소통하는 것, 그러기 위하여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관심이 크다는 점은 청중을 본론으로 이끌기 위하여 두 편의 영화를 인용하는 것으로 알 수 있겠습니다. 1930년대 허리우드가 만든 영화 <니노치카>와 1990년대의 영국영화 <브레스트 오프>입니다. 배경과 주제는 다르지만 커피라는 공통점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니노치카>에서는 커피는 동일하지만 우유 혹은 프림이 들어가는가에 따라 커피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암시하고, <브레스트 오프>에서는 커피를 빙자한 이중부정을 통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을 건드리는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커피 이야기를 인용한 것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은연중에 암시되는 함의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결국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도덕주의의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의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지적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에 대한 비판입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현실에서 보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해결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식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상황이 절망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온전히 그 삶의 일부가 될 것이 아니라 물러나 사유해야 한다.(67쪽)’ 그러니까 철학을 일상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강연이 끝난 뒤에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정리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공산주의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저는 공산주의를 어떤 긍정적인 방식으로, 다시 말해서 미래의 더 나은 사회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이야기한 ‘공산주의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말은 유효하다는 것인데, 이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서의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진리로서의 공산주의를 의미한다고 읽었습니다. 그가 여전히 맑스주의자로 남아 있다고 말한 점을 고려한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