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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가장 행복한 여행자들 - 지구 곳곳의 생생한 이야기
패트릭 피츠후프 외 지음, 박미숙 옮김 / 금토 / 2007년 6월
평점 :
저 같은 사람도 여행관련 칼럼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독서계는 여행기가 블루오션인가 봅니다. 글쓰는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제목만 보고 고르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패트릭 피츠후프 등 22명(외 22명이라고 표지에 적은 것은 옥의 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앞글’은 여행기가 아니라 일종은 여행기 묶음을 소개하는 글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의 여행작가(지명도에서 차이는 있는 듯합니다만, 분명 여행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분들입니다.)의 길고 짧은 여행기를 담고 있는 <세상에 가장 행복한 여행자들>를 고른 것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다녀온 장소도 글 솜씨만큼 다양해서 프랑스 파리가 두 번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코스타리카 과나카스테, 자이르 킨샤샤, 인도 뉴델리, 베트남 사파, 미얀마 만달레이 등 전세계에 걸친 다양한 지역이 등장합니다. 이야기의 주제도 다양해서 코스타리카를 여행한 패트릭 피츠후프는 쿨레브라라고 부르는 독사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렇시아 남성의 숭고한 자연사랑 정신을 담았는가 하면, 조노 마커스는 경찰행세를 하면서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꾼들이 우글거리는 케냐의 몸바사에서 당한 급박한 상황을 풀어놓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팬암항공사 조종사를 지낸 조세프 디드리히는 고속도로에서 고장이 난 차를 고쳐주기 위하여 몇 시간을 쏟아 부은 자이르의 ‘시민’ 믈렝게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환락의 도시 태국 방콕을 여행한 여성 자나 바흐는 자신이 꿈꾸었던 일탈을 결국은 포기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아참, ‘나의 이번 여행이 아무런 목적이 없어 보이는 날이 있었다(48쪽)’라고 고백한 브래드 뉴샘이 인도 뉴델리에서 만난 귀청소부 알리의 이야기는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어디에선가 읽어본 내용입니다. 스물두편의 여행기 가운데 길이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글 솜씨로 보나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한 것은 미국인 여행작가 제프 그린왈드가 현지가이드에 홀린 독일 유부녀와 함께 티베트의 성산 카일라스에 다녀온 이야기라고 보았습니다. 사이먼 윈체스터가 앞글의 모두에서 지적한 것처럼 여행이란 인내와 고통이 따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같습니다. 윈체스터에 따르면 여행을 뜻하는 ‘travel’은 고통을 의미하는 ‘travail’에서 왔고, 이 단어의 어원은 고대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고문도구를 뜻하는 ‘triphalium’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티베트 사람들이 캉 린포체, 즉 ‘눈으로 만든 귀한 보석’이라고 부르는 카일라스에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그린왈드는 카트만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의 네팔과 인도의 국경도시 네팔간지로 간 다음, 이곳에서 예티항공을 이용하여 해발 2,350미터에 위치한 시미코트라는 작은 공항으로 가서 트레일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물론 에티항공은 현지의 기상에 따라 예정된 비행편이 취소되기 일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린왈드가 시미코트에 도착하자마자 고산병 증상을 호소하는 장면입니다. “모든 게 얼마나 빨리 나타나는지, 고통이 맨 먼저다. 한 걸음 한 걸음 헐떡임이 심해지고, 평상시에 비해 산소량이 적어지면서 뇌가 퍼덕거리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린다.(146쪽)” 겨우 해발 2천 미터 대에서 그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제 경우는 4천 미터 대에서도 그럭저럭 견뎠는데 말입니다.
정작 그린왈드를 괴롭힌 것은 고산병이 아니라 동행한 독일인 유부녀가 가이드를 독점하려는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폭발 직전에 도달한 그린월드의 화를 가라앉혀준 것은 같이 여행을 하게 된 래프팅 가이드 로이스였습니다.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 차 카일라스에 온 로이스는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그들은 우리 자신의 분노를 다스릴 값진 기회를 주고, 자만심을 무너트리게 하기 때문이다.(163쪽)”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 역시 단체여행을 하다 보면 마음 쓰이는 순간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이럴 때마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새기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소개드린 그린왈드의 여행기는 물론 다른 21개의 여행기도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