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100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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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주간의 긴 여행을 하면서 여행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왜 여행을 떠나는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대체적으로 두루뭉술하게 답변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앎을 넓히고, 삶에 대한 시야를 넓힌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남이 다녀왔다는 이유로 가보는 따라쟁이도 있고, 남들과는 차별화된 무엇을 만족시키려는 자기만족형 혹은 과시용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행이야기>는 왜 여행을 떠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여행의 초대’라고 한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여행의 역사를 더듬어봄으로써 여행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의 형성과 같이 해왔는지를 생각해볼 것이고, 그 다음에 여행의 사회학적․심리학적 의미를 추적함으로써 여행에 대한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5쪽)”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책의 전반부에서는 고대로부터 근대의 대항해시대에 이르기까지 여행의 역사를 짚고, 이어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여행을 하는가를 살피고 있습니다. 여행에 대한 단상은 여행에 대한 저자의 소략한 상념을 정리한 것인데, ‘여행은 여성 해방의 지표인가’라는 부제를 단 “참여와 배제”라는 마지막 장은 전체 맥락과는 조금 동떨어진 주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자는 여행의 기원을 인류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오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동부지역에 등장한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한 것을 여행의 시초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식량을 구하기 위한 이동을 여행으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를 생각해볼 일입니다.


저자 역시 생명유지와 종족 보존이라는 차원에서의 이동의 본능이 인류 역사의 궤적을 이루고 있지만, 19세기 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이동을 근대적 의미의 여행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즉 여가활용의 방법으로 이동, 즉 여행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관광으로서의 여행을 맨 처음 유행시킨 것은 북서부 유럽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영국사람들은 기후 탓인지 일찍부터 유럽의 온천지대를 즐겨 찾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6개월에 걸쳐서 프랑스를 거쳐 로마에까지 이르는 긴 여정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들어 영어에 ‘touriste’라는 합성어가 등장하고, 존 머레이는 유럽대륙의 여행안내서 <여행편람(1838)>을 펴내기도 했던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나는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조금 특별해보입니다. 폴 모랑의 <여행>에 나오는 “근대적 의미에 있어서 여행은 반사회적 행동이다. 여행자란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자이다.(51쪽)”라는 구절을 인용한 저자는 여행의 의미로 도피를 먼저 거론합니다. 하지만 빚쟁이처럼 야반도주하는 경우나, 현실에 마주하기에 지친 사람의 경우도 있겠지만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여행이 모두는 아닐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글의 말미에 “여행이란 단순하게 말하자면 세계의 다양성과 마주하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의 여행에는 그들을 떠나게 만드는 복잡한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이다.(58쪽)”라고 정리한 부분이 더 공감된다 하겠습니다.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한 발짝 두 발짝 혹은 느리게’라거나, ‘조금씩 나를 비우기’와 같은 원칙적인 이야기도 나오면서, 인증샷에 대해서도 ‘소유냐 존재냐’하는 거창한 논제로 발전시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란 그 동안 내적으로 축적된 정보와 지식과 통찰의 능력이 외부의 경험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되도록 많은 사물, 장소 그리고 사람들과 접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70쪽)”라는 여행의 정의가 철학적이면서도 실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도 조금은 논점을 비약시키는 것 아닌가 싶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단상에서도 ‘여행을 근대적 형태의 전쟁’이라는 도전적 시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 역시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든 여행의 의미를 새겨보는 좋은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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